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415
제416화
“딸꾹!”
마른하늘에 벼락이 쳤다.
전조도 없이 내리친 벼락에 최 클라우디아 수녀는 깜짝 놀라 딸꾹질까지 하며 컵을 떨어뜨렸다.
다행히 깨지진 않았지만, 내용물은 전부 쏟아 버렸다.
붉은 와인은 꼭 피가 흩뿌려진 듯했다.
“…몰랐는데, 원장님은 번개를 무서워하시나 보네요?”
정 세실리아 수녀가 컵을 주워 올리는 그녀에게 묻는다.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구석에 있던 대걸레를 가지고 돌아왔다.
바닥을 닦으려고 하자 최 클라우디아가 받아내어 직접 닦았다.
“그렇지 않아. 자연 현상일 뿐인데 뭐가 무섭겠니?”
“그래요?”
정 세실리아는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바닥에 흩뿌려진 붉은 와인이 조금씩 대걸레에 의해 닦였다.
깜짝 놀라서 컵까지 떨어뜨렸으면서 안 무섭다고요?
그리 묻는 듯한 얼굴에 최 클라우디아는 변명하듯 말했다.
“내가 무서운 건 번개 치고 함께 찾아오는 거란다….”
“……?”
정 세실리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번개가 치고 찾아오는 것.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최 클라우디아는 정 세실리아가 궁금해하는 것을 알면서도 따로 설명하지 않았다.
묵묵히 바닥만을 닦았다.
이미 붉게 흩뿌려졌던 붉은 와인은 다 닦이고 사라졌는데도.
그 순간, 정 세실리아의 목에 걸린 십자가가 허공에 떠오르면서 흰빛을 뿜어냈다.
“어?”
“이건….”
두 수녀는 십자가를 바라봤다.
그것이 흰빛을 뿜어내는 것이 뭘 뜻하는지는 분명했다.
적대심을 가진 누군가가 보육원을 보호하는 도희의 결계에 접촉했다는 뜻이다.
이 밤에 성당 보육원에 적대심을 가지는 사람이라니…?
두 수녀의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은 곧 해소됐다.
십자가에서 뿜어진 흰빛이 영상기처럼 결계 바깥의 모습을 나타낸 덕분이다.
결계 바깥엔 머리가 덥수룩한 남자가 손을 내뻗은 채로 서 있었다.
빠직, 빠직!
결계에 맞닿은 오른손에선 푸른 번개가 마구 튀었다.
“한진환…!”
두 수녀가 동시에 남자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한진환이 왼손 새끼손가락으로 귓구멍을 후볐다.
정 세실리아가 그 모습을 어처구니없게 바라봤다.
“저 인간 진짜 미친 거 아니야? 설마 설마 했는데, 여길 진짜로 찾아와? 도운 오빠 없는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했나?”
“수연아? 그게 무슨 소리니?”
“아. 그게요….”
정 세실리아는 크리스마스 때 있었던 일을 가르쳐주었다.
설명을 들으면서 최 클라우디아의 낯빛이 빠르게 어두워졌다.
큰 실수를 저질렀을 때의 후회로 보인 탓에 정 세실리아는 고개를 갸웃했다.
“원장님? 왜 그러세요?”
“그, 그게….”
“무서워서 그래요?”
“…….”
“에이, 걱정하지 마세요. 자기 멋대로 구는 사람이기는 한데, 별일 없을 거예요. 우리가 호들갑 떠니까, 원장님 얼굴이나 한번 보고 싶었던 걸 거예요.”
“그래….”
“그런데… 결계를 왜 안 부수는 걸까요? 저번엔 부수려고 했었는데.”
정 세실리아는 허공에 떠오른 한진환을 바라봤다.
그는 여전히 손으로 결계를 짚고 있을 뿐이었다.
빠지직!
대신 푸른 번개가 마구 튀어대면서 결계 덮었다.
안팎으로.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
“네?”
“그에게… 결계는 시간 벌이밖에 안 되거든….”
“그게 무슨 말씀… 어? 이 인간 어디 갔어?”
정 세실리아는 질문하다 말고 눈을 찌푸렸다.
방금까지 결계 바깥에 서 있던 한진환이 없었던 것처럼 사라졌다.
“한진환….”
그 모습을 본 최 클라우디아가 힘없이 중얼거렸다.
그녀가 중얼거린 이름의 주인은 어느새 그녀들 앞에 서 있었다.
“…….”
“…….”
“…깜짝 놀랐잖아요!”
두 남녀 사이에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정 세실리아가 끼어들었다.
두 주먹을 옆구리에 낀 채 앞으로 나서는 모습은 마치 최 클라우디아를 지키려는 듯이 보였다.
또 허공에 떠오른 십자가 목걸이가 마치 방패처럼 앞을 가로막았다.
“…….”
그걸 보고 한진환이 얼굴을 굳혔다.
이를 악무는 모습에서는 평소의 여유 대신 분노가 느껴졌다.
어쩐 일인지 그 분노는 최 클라우디아를 향했기에 정 세실리아는 당황했다.
“왜, 왜 그렇게 쳐다보는 거예요? 왜 우리 원장님을-”
“오랜만이네. 한진환….”
“그러게 말이다.”
“…엥?”
정 세실리아가 깜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오랜만이네, 한진환.
최 클라우디아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 몰랐다.
“원장님? 설마, 한진환이랑 아는 사이에요?”
“응. 옛날에 조금….”
“말도 안 돼! 어떻게요? 학교 친구? 설마 원장님 헌터였어요? 아! 알겠다! 첫사랑이구나!”
“…….”
“…….”
“어, 음….”
흥분해서 떠들어대던 정 세실리아는 입을 다물었다.
두 남녀 사이에 흐르는 음울한 분위기는 첫사랑을 만났을 때의 씁쓸한 것이 아니었다.
정 세실리아는 둘이 무슨 관계인지 알아내지 못했지만 분명 긍정적인 관계는 아닐 것이라고 짐작했다.
“수연아. 자리 좀 피해줄래?”
“네? 하지만…-”
“오랜만에 만난 지인이야. 둘이서만 대화를 나누고 싶어.”
“…알았어요. 하지만 근처에 있을 테니 무슨 일 생기면 소리치셔야 해요!”
“으음….”
“꼭이요!”
그러면서 정 세실리아는 한진환을 슬쩍 흘겨봤다.
왼손으로 흰빛을 뿜어내는 십자가를 잡으면서 반대쪽 오른손으로는 중지와 검지를 펼치고는 자신의 눈과 한진환을 번갈아 가리켰다.
마치 ‘내가 지켜보고 있을 거예요!’라고 경고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탁….
정 세실리아가 끝까지 걱정스러운 얼굴로 바라보다가 이내 문을 닫고 나갔다.
한진환은 쓴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네가 수도복을 입고 있다니…. 퍽 잘 어울려서 웃기는데.”
“…….”
“아무도… 네 정체를 모르는 것 같고. 칠죄종, 음욕의 마녀.”
“날 그렇게 부르지 마…. 뇌제….”
최 클라우디아가 두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그녀의 얼굴은 귀까지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마치 어릴 적의 흑역사를 눈앞에 맞닥뜨린 사람 같았다.
털썩!
한진환이 그녀의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어쩐지 이상하다 싶었지….”
한진환은 무덤덤하게 말했다.
최 클라우디아는 여전히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로 서 있었다.
하지만,
“백도운, 백도희. 이태천, 한재임….”
그의 입에서 익숙한 이름들이 나올 때마다 어깨가 움찔했다.
귀까지 빨개졌던 얼굴도 점점 원래대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다른 백운천 간부 녀석들까지…. 어떻게 그런 녀석들이 한 보육원에서 다 함께 자랄 수 있었을까 이상했거든.”
“…….”
“그건 너무 운이 좋다고,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었는데… 역시 이유가 있었네. 네가 전부 모은 거였어. 그 ‘미래를 보는 마녀의 눈’으로.”
“…….”
스윽….
최 클라우디아는 두 손을 내렸다.
그러고는 한진환을 똑바로 바라봤다.
그녀의 눈은 평소와 달리 고양이의 그것처럼 가늘었다.
그는 그것을 긍정으로 받아들였다.
“목적은… 역시 널 지키기 위해서였겠지.”
“…….”
“…축하해. 넌 성공했어. 다들 널 지키기 위해서 앞으로 나설 거야. 아까, 그 어린 수녀가 내 앞에 나섰던 것처럼.”
“그런 짓, 안 해…!”
최 클라우디아가 한진환을 노려봤다.
고양이의 눈 같았던 그녀의 눈이 평소처럼 돌아와 있었다.
또 화가 난 듯 높아진 목소리에서는 진심이 느껴졌다.
하지만 한진환은 믿지 않았다.
“웃기는 소리. 그게 네가 가장 잘하는 짓이었잖아. 네게 사랑에 빠진 인간들을 매료해 꼭두각시처럼 이용하는 거.”
“우리 아이들한텐 그런 짓 안 시켜!”
“안 시킨다고.”
“당연한 거 아니야? 우리 아이들은 그 인간들과는 달라!”
“뭐가 다른데?”
“그 인간들은 내게 집착했어. 날 인간이 아닌 한낱 소유물로 취급하려 했고…. 그래서 내가 그들보다 먼저 선수를 쳤을 뿐이야.”
“…….”
한진환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과거,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몰랐다.
아는 것이라곤 미래를 보는 능력으로 자신을 대신해 다른 이들을 죽음에 밀어 넣었다는 것.
그리고 S등급에 해당하는 매료 마법을 사용해서 인간들을 조종해 유유히 도망 다녔다는 것이다.
그런데 방금 말에서 그녀가 그들을 인형처럼 다뤘던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가 본 미래에서 그들이 먼저 그녀를 인간이 아닌 도구와 소유물로써 이용했었던 거다.
믿을 수는 없지만.
“…좋아. 과거엔 네가 그래서 이용했던 거라고 치자.”
“치는 게 아니라 그런 거라니까.”
“그렇다면, 넌 왜 지금도 이용하고 있는 거지?”
“…아까 모습 때문에 그렇게 생각한 거라면 오해야. 난 우리 아이들한테서 보호받고 싶은 생각 없어. 특히, 내가 저질렀던 죄 앞에서는….”
“그거 말고.”
“……?”
“난 지금 이태천을 말하는 거야.”
“태천이? 더더욱 이용한 적 없어!”
“그럼 왜 베르동 협곡에 백도운과 함께 들어가게 한 건데?”
“……!”
최 클라우디아가 몸을 멈칫했다.
마치 핵심을 찔린 듯한 태도에 한진환이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그, 그건…-”
“뭐가 목적이냐? 백도운과 이태천이 너무 강해지는 바람에… 네가 컨트롤 할 수 없으니까 죽게 할 셈인 거냐?”
“……!”
그녀가 입을 쩍 벌렸다.
생각지도 못했다는 그녀의 표정에 한진환은 당황했다.
“미친…!”
그녀는 손으로 입을 가렸다.
자기도 모르게 욕을 내뱉으려던 걸 멈춘 것이다.
“그런 거, 아니야…!”
“아니라고?”
“그래! 내가 왜 그런 짓을 해야 하는데?”
“칠죄종인 음욕의 마녀라면 능히 그럴 수 있지.”
“…내 과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거라면, 그래, 어쩔 수 없어. 하지만 난 정말 그럴 생각으로 태천이에게 부탁한 게 아니야.”
“그럼? 어째서 함께 들어가게 한 거냐.”
최 클라우디아는 입을 다물었다.
어떻게 변명해야 하나.
그런 걸 생각하는 거냐?
한진환의 눈빛이 달갑지 않게 변해갈 때, 그녀가 힘없이 말했다.
“통화하는 거 들었다면서…?”
“통화? 아. 크리스마스 때.”
“그럼 알 거 아니야? 도운이를 위해서라는 걸….”
“백도운을 위해서였다고?”
“그래. 베르동 게이트에 태천이가 함께 들어가야… 도운이가 그곳에서 살아나올 수 있거든….”
“……!”
한진환이 눈을 부릅떴다.
이어 최 클라우디아가 한 말의 진의를 파악하기 위해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곧 머릿속에 여러 가지 생각들이 떠올랐다.
블랙 드래곤의 위협?
아니, 백도운은 드래곤과 만나도 괜찮다는 걸 확신하기 때문에 들어간 것이었으리라.
다른 S급 헌터들의 배신?
리롄제라면 그럴 만한 위인이었지만, 능구렁이 같은 인간이었으므로 가능성이 희박하리란 것도 알았을 거다.
아무리 수제자인 리우이호가 함께한다고 해도 도운의 옆에는 태천과 밀러가 함께였으니 차라리 다음 기회를 노리는 게 그 영감다운 선택이었다.
마지막으로….
“크라우드? 그 마족의 권속 놈들이 베르동 협곡 게이트 안에 들어가 있나?”
“…묻지 마. 난 아무 말도 못 해주니까.”
“말을 못 한다고? 어째서냐. 네가 정말로 ‘우리 아이들’이라고 생각한다면, 말해야지. 그래야 백도운을 도울 수 있-”
“아니!”
최 클라우디아가 소리쳤다.
찢어질 듯한 목소리에 한진환은 입을 다물었다.
“말하면 안 돼. 내가 본 미래를 자세하게 말하면… 그렇게 고정돼버릴 테니까…!”
“……!”
미래를 말하면 고정돼 버릴 것이다.
그 말에 한진환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닫고 오싹함을 느꼈다.
먼 과거가 그를 빠르게 덮쳤다.
그것은,
“축하해, 뇌제…. 넌 선구자(先驅者)가 될 거야. 대신… 죽어서.”
눈앞의 마녀가 무표정한 얼굴로 그에게 예언했던 순간이었다.
“미안해, 뇌제….”
현재의 목소리가 과거의 목소리를 밀어냈다.
과거에서 무표정하게 축하를 보냈던 마녀가 현재에서는 진심으로 사과를 보내고 있었다.
그 얼굴을 보고 나서야 한진환은 눈앞에 있는 여자를 마녀가 아닌 한 보육원의 수녀로서 보게 되었다.
“…기도나 좀 해줘.”
“뭐?”
“선구자…. 그딴 거 될 생각 없으니 신한테 말 좀 잘해달라고. 또 알아? 바꿔줄지.”
“그런 거라면… 직접 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형제님.”
최 클라우디아는 기도하듯 두 손을 맞잡으며 말했다.
그 모습을 보고 한진환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기도해 달랬더니 바로 전도하려는 꼴이라니….
“수녀 맞네.”
한진환은 쓴웃음을 흘리며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