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414
제415화
앨릭스 협회장이 말한 문제는 바로 이번 일에 다른 S급 헌터들이 끼어들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리롄제, 밀러, 리우이호 말이다.
이 세 명은 어떻게 알았는지 자기들도 가겠다는 의사를 전해왔고, 앨릭스는 그들을 말릴 명분이 없었다.
해서, 지금 프랑스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는 그위친과 스미르노프를 제외한 모든 S급 헌터들이 탑승해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일이다.
스미르노프까지 함께했다면 지금보다 배는 더 복잡해졌겠지.
물론,
“후우우….”
그렇다고 입 밖으로 한숨이 안 나오지는 않았다.
지금도 충분히 복잡한 상황이었으니까.
“후후. 아까부터 한숨을 연거푸 내쉬는군. 그러다 복 달아나면 어쩌려고 그러나?”
리롄제가 웃으며 말했다.
옆에서 밀러와 리우이호도 짧게 웃는다.
내가 한숨 내쉬는 이유를 알면서 저 뻔뻔한 얼굴들 좀 보게.
도무지 묻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군.
“대체 거길 왜 함께 가겠다는 겁니까?”
“그걸 진정 몰라서 묻는 게냐?”
리롄제가 씩 웃으며 되묻는다.
그 말대로 물을 필요도 없었다.
그가 용 오타쿠라는 건 전 세계가 아는 사실이니까.
베르동 협곡 게이트에 함께 가는 건 단지 블랙 드래곤을 구경하고 싶기 때문일 거다.
리우이호는 그런 스승을 따르는 것뿐일 테고.
마지막으로 밀러는….
“궁금하잖아요. 미스터 백이 드래곤과 어떤 대화를 나눌지! 후훗….”
역시 호기심이었나.
어떤 대화를 나눌지 궁금하다, 라….
그래, 그 말엔 동감이다.
나도 내가 앞으로 블랙 드래곤을 만나서 어떤 대화를 나누게 될지 몰랐으니까.
지금 아는 것이라곤 만나서 대화를 나누지 않으면 인류가 멸망하게 될 거라는 살벌한 경고뿐이었다.
그것으로 예상이라도 해보자면….
아마 블랙 드래곤은 내게 충고를 빙자한 예언을 하지 않을까 싶다.
서둘러 새싹이를 성장시키라던 알루키노르처럼 말이다.
물론, 이 예측은 다 틀릴 수도 있었다.
앞서 앨릭스에게 말했던 것처럼 세상 돌아가는 얘기나 하고 나올지도 모른다.
그 얘기의 중점은 마족에 관한 것이 될 거고.
“후우….”
생각하면 한숨만 나오는 이 녀석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을까….
아.
그러고 보면, 레드 드래곤 데이모스는 크라우드가 제주도에 숨어 있다고 경고해줬었다.
이번에도 그럴 가능성이 있겠다.
그리 생각하면 전대 세계수 씨의 퀘스트 내용과도 얼추 들어맞는다.
헤미스파이리움을 잔뜩 들고 나갔다던 크라우드의 목적은 국가가 아니라 전 세계일 수도 있으니까.
“클클클…. 한숨을 쉬어봤자 변하는 건 없느니라. 이미 다 결정된 일이니까 말이다.”
리롄제가 턱수염을 쓸어 넘기며 말했다.
계속 한숨을 내쉬었더니, 방금도 그것 때문인 줄 알았나 보다.
이번에 내쉰 것은 크라우드 때문이었지만….
그들 때문인 것도 아예 없진 않으니 부정하지 않았다.
리롄제와 리우이호 그리고 밀러를 돌아보면서 한숨을 내쉰다.
“에휴.”
“껄껄껄!”
“후후….”
그게 웃긴다는 듯 리롄제와 밀러가 웃음을 터뜨렸다.
정들게 실없이 웃어대기는….
***
도운이 프랑스로 가는 비행기에서 연거푸 한숨을 내쉬던 시각.
한국으로 돌아온 조우민 헌터 협회장은 열과 성을 다해 소파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 소파에는 한진환이 마치 자기 집 안방 침대라도 되는 양 드러누워 있었다.
“…언제까지 노려보고 있을 거요?”
“그러게 말이다. 난 언제까지 협회장 일을 해야 하는 거지.”
“응?”
“지금이라도 그만둘까…. 그럼 너처럼 소파에 드러누운 채로 흥청망청 살 수 있을 텐데….”
“내가 아니라 소파를 노려보던 거셨어?”
“시간 아깝게 너를 왜 봐야 하는데.”
“…….”
한진환은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계속 누워 있다간 조우민이 정말로 소파에 드러누운 삶을 살고자 협회장 자리를 그만둘 것 같았다.
그것은 한진환이 바라던 일이 아니었다.
조우민 만큼 까다롭지 않고 귀찮게 굴지 않는 협회장은 별로 없었다.
현장을 파악하고 배려할 줄 아는 상사는 귀한 법이었다.
“아무튼… 축하합니다?”
“축하? 뭐가?”
“뭐긴, S급 헌터가 탄생한 거 말이요. 이제 어디 가서 무시당하지는 않을 거 아뇨?”
“…….”
조우민이 처음으로 시선을 올렸다.
소파를 노려보던 눈길 그대로 한진환을 노려본다.
제법 매서운 시선에 한진환은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래요?”
“S급 헌터 탄생한 게 축하받을 일이야…?”
“그럼 아니요?”
“아니지! 귀찮은 일이 늘어나게 됐단 뜻인데!”
“아….”
한진환은 탄식을 흘렸다.
오랜만에 봤던 터라 눈앞에 있는 남자의 성격을 깜빡했다.
다른 사람들에겐 축하할 일이더라도 조우민에겐 귀찮은 일에 불과하다는 것을.
“축하 말고 위로와 격려나 좀 해줘.”
“힘내쇼…. 안 됐네. 음….”
한진환은 조우민이 바라는 대로 해줬다.
이게 맞나?
해주면서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물론, 그 생각은 조우민의 흡족한 미소를 보고 금세 사라졌다.
본인이 만족했으면 됐지, 뭐.
“사실… 난 네가 될 줄 알았는데 말이야.”
“이런. 협회장님조차 그런 말을 할 줄은 몰랐는데.”
한진환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고는 소파 옆 테이블에 놓인 스마트폰을 쳐다봤다.
스마트폰은 전원이 꺼진 채였다.
사용자의 마나로 충전되는 스마트폰은 전원이 꺼지지 않는다.
그것의 전원이 꺼져 있다면, 그건 사용자가 스스로 전원을 꺼뒀을 때뿐이다.
조우민은 그 이유를 단번에 파악했다.
한진환은 쏟아지는 위로와 격려 따위로부터 협회장실까지 도망쳐 온 것이다.
“이거 실례했군.”
“됐어. 어쨌든 협회장님은 진심으로 한 거니까.”
“아….”
조우민은 또 한 번 깨달았다.
그가 단순한 위로와 격려에 도망친 것이 아님을.
오늘 밤 그를 향한 위로와 격려에는 진심이 담기지 않았을 거다.
열등감에서 비롯된 비아냥거림만이 잔뜩 담겨 있었으리라.
지금껏 그의 재능을 시기하고 질투한 인간들이 너무나도 많았으므로….
한진환은 풍선에서 바람이 빠지듯 맥없이 중얼거렸다.
“애초에 S급 헌터 같은 거 될 수 없다고 말해뒀었는데 말이지….”
“나도 그랬지만, 아마 그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인 놈은 없었을 거다. 네가 지금까지 해온 노력을 봤으니….”
“바로 그게 착각이었단 말이요. 내가 한 노력은 S급 헌터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었거든.”
“아니었다…. 그럼 넌 지금껏 뭐를 위해서 수련해온 거지?”
“전쟁?”
“뭐?”
“러시아가 전쟁을 일으킬 수도 있잖수. 그런 사태를 대비한 거요.”
“이봐, 이봐…. 전쟁이라니? 그런 귀찮은 짓을 저지를 만큼 멍청한 놈이 있을 리 없잖아.”
“그건 모를 일 아뇨. 세상엔 멍청한 놈들이 발에 치일 정도로 많은데.”
말도 안 되는 소리.
-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한진환의 말에 “그렇기는 하지…”라는 대답이 나오려고 했다.
하지만 전쟁이란 것이 상식적으로 쉽게 일어나는 일이 아니란 걸 아는 조우민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아무튼. 그런,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를 사태를 대비한 거라고….”
“러시아나 중국엔 S급 헌터가 있으니, 전쟁이라도 나면 내가 막아야 하잖아.”
한진환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고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S급 헌터가 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싸워서 이기지 못하리란 법은 또 없기도 하고.”
“…….”
조우민은 이번에도 긍정과 부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저 한진환을 빤히 바라보기만 했다.
S급 헌터 테스트에 통과하지 못했음에도 그들과 어깨를 견줄 수 있는 남자.
너무나도 강했기에 세계 최초로 등급 체계를 바꿨던 남자.
뇌제, 한진환.
그의 자신만만한 얼굴이 조우민의 입가에 미소를 짓게 했다.
정말로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서다.
그리고 그 생각은 단지 그와 알고 지낸 세월이 길어서만은 아니리라.
“그나저나…. 내 신세도 처량한걸. 도운이랑 태천이는 지금쯤 맛있는 전 세계 음식들을 먹고 있을 텐데, 난 이런 데에 처박힌 꼴이라니….”
“불만이면 나가든가. 안 말려.”
조우민이 날카롭게 말했다.
졸지에 자신의 방이 ‘이런 데’ 취급을 받았으니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한진환은 이런 데에서 나가지 않고 입맛만 다셨다.
이곳을 나서면 그가 갈 곳은 없었다.
자주 찾던 곳이 있긴 했지만, 오늘만큼은 그곳에 갈 수 없었다.
그곳에 가면 그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순수한 인간이 진심으로 위로해주기 위해 노력할 테니까.
한진환은 그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쩝….”
“…위로가 될지는 모르겠다만, 백도운은 지금 연회장을 빠져나왔어. 다른 S급들과 베르동 협곡 게이트로 비밀리에 출발했지. 아, 스미르노프는 함께하지 않았댔나.”
“베르동….”
“잘은 모르겠다만, 블랙 드래곤이랑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할 거라고 했다던데.”
“뭘 한다고?”
“세상 돌아가는 얘기.”
한진환은 입을 다물었다.
뭘 하는지 제대로 듣지 못해서 질문한 게 아니잖아.
그런 말을 중얼거릴 것 같은 표정을 지었는데,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몇 초 지나지 않아 그의 표정이 바뀌었다.
개구쟁이 같은 얼굴이었기에 조우민은 불안함을 느꼈다.
“흐응…?”
“뭐야?”
“도운이가 베르동 협곡 게이트에 갔다면 곧 연락이 끊기겠네?”
“그렇겠지. S등급 게이트인 데다가 비밀리에 진입하는 거니까.”
“생각지도 못한 기회가 찾아왔군.”
“기회? 아니. 뭘 하려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만둬. 나 귀찮아질 일 만들지 마!”
“에이. 안 귀찮아져. 난 그냥 숙녀분을 만나고 싶을 뿐이요.”
숙녀를 만나고 싶다.
그 한 마디만으로 조우민은 한진환의 목적을 눈치 챘다.
한진환이 백운천의 간부들을 키워낸 방주 보육원의 원장 수녀에게 관심이 지대하다는 보고를 받았었기 때문이다.
덧붙여 바로 얼마 전 방주 보육원에 몰래 찾아갔었다는 보고까지도.
찾아간 그 날, 백도희가 타이밍 좋게 결계를 새로 펼치지 않았다면 한진환은 분명 원장 수녀와 만났을 거다.
조우민이 못마땅한 얼굴로 지적했다.
“수녀님이다. 만나서 뭘 하려고?”
“사람들 참…. 내가 하긴 뭘 해? 말한 대로 수녀님인데. 그냥 얼굴만 보려는 거요. 도운이 놈들 하는 짓 때문에 궁금해서.”
“그런 거라면 그만둬라. 보고서 읽어보니까 어머니 같은 분이던데.”
“그런 것만은 아니면 되는 거요?”
“뭐? 다른 이유가 또 있다는 거야?”
“사실, 도운과 통화하는 목소리가 어쩐지 예전에 들어봤던 목소리 같았거든.”
조우민은 눈을 찌푸렸다.
순간 머릿속에 ‘우리 어디에선가 본 적 있지 않아요?’라는 삼류 멘트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찌푸린 눈을 다시 펴면서 떠오른 멘트를 지워버렸다.
한진환이 그럴 목적으로 말을 꺼냈을 리가 없었다.
“혹시, 지인 같다는 뜻이냐?”
“그걸 확인해보고 싶은 거요.”
“예전이라면… 학교 친구?”
“학교 친구는 아니야. 나 친구 없었어.”
“…….”
“그렇게 보지 마쇼. 내가 너무 잘난 걸 어떡해? 다들 어찌나 열등감들을 폭발하던지….”
한진환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열등감을 폭발하던 이들이 오늘 그에게 가식적인 위로와 격려 메시지를 보낸 이들일 것이다.
조우민은 그리 예상하면서 다른 가능성을 말했다.
“…은퇴한 헌터일 수도 있겠군.”
“은퇴… 글쎄…?”
“하여간 지인인 것 같으면 그냥 기다려. 얼굴만 봐도 확인할 수 있는 거니, 지금 바로 사진을….”
그리 말하면서 조우민은 사무책상 위의 전화기로 손을 뻗었다.
하지만 수화기를 들어 올리지는 못했다.
쾅!
벼락 떨어지는 소리가 울린 탓이다.
“…….”
소파엔 아무도 없었다.
어느새 협회장 실엔 조우민이 홀로 앉아 있었다.
아주 먼 하늘에서 벼락 울리는 소리만 두어 번 들려올 뿐이었다.
우르르 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