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424
제425화
“레이드요?”
해맑은 내 말에 도희가 되물었다.
그런데… 왠지 생각지도 못했다는 얼굴이다.
왜지?
도희라면 당연히 레이드를 생각할 줄 알았는데.
“하지만… 태천 오라버니 말로는 블랙 드래곤의 버프 때문에 힘들 거라고 했는데요. 밀러조차 얼마 버티지 못했다면서요?”
“그렇기는 했지.”
“그럼 안 되는 거 아니에요? 밀러보다 약한 사람들이 들어가 봐야 전투 불능 상태가 돼버릴 뿐인데.”
“…뭐?”
“……?”
좀 이상한데?
느낌이 왠지 대화가 맞물리지 않는 것 같다.
태천이에게 설명을 들었으니 밀러가 곧 괜찮아졌다는 것도 알았을 텐데?
설마 이걸 설명 안 했나?
고개를 돌려 태천이를 바라봤다.
녀석은 곤란하다고 말하듯 머쓱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정말 새싹이 소환한 거 말하지 않은 건가?
왜?
…아니.
이유는 뻔하군.
블랙 드래곤과의 싸움에서 다른 이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기에 제외한 거다.
설령 그 선택으로 자신이 죽게 된다고 해도.
하여간 우리의 기사는 세계에서 가장 멍청한 놈이다.
그딴 걸 내가 용납할 리가 없는데.
“…새싹이를 소환하면 블랙 드래곤의 버프는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어.”
“…….”
도희가 태천이를 향해 눈을 흘겼다.
간단한 해결책이 있는데 왜 말하지 않은 거냐고 따지는 듯한 눈이었다.
말로 따지지 않은 건, 눈을 흘기는 동안 태천이의 생각을 파악해서겠지.
나를 제외하면 도희는 태천이를 가장 오래 지켜봐 온 인간이니, 단번에 녀석의 의도를 파악했다.
물론, 행동의 의도를 파악한 것과 행동을 이해하는 것은 전혀 다른 얘기다.
“음….”
태천이는 스리슬쩍 시선을 피했다.
그런 태천이를 원탁에 앉은 모두가 못마땅하게 바라봤다.
나도 그랬고,
[세계수도 동참합니다.]새싹이도 포함됐다.
“어흠! 흠!”
우리 모두의 시선에 태천이는 헛기침을 몇 번 했다.
민망한 모양이지?
“백도운.”
고민에 빠진 얼굴로 앉아있던 한재임이 날 불렀다.
“왜?”
“네가 세계수를 소환하면… 우리도 함께 싸울 수 있는 거냐?”
함께 싸울 수 있냐고?
그야 당연히,
“무리지.”
즉시 대답해주었다.
블랙 드래곤이 어디 A등급 게이트의 보스 몬스터도 아니고.
아무리 새싹이를 소환했다고 바로 싸울 수 있을 리 있나.
그런데 한재임은 그 생각을 못 한 듯 당황해서는 되물었다.
“무리라고?”
“새싹이를 소환하면, 너희도 블랙 드래곤 앞에 설 수는 있을 거야. 하지만 블랙 드래곤과 싸운다?”
“…….”
“너도 알겠지만, 그저 서 있는 것과 싸우는 건 전혀 다른 얘기야.”
휙, 휙.
왼손을 휘저으며 부정했다.
지금 녀석들로는 블랙 드래곤과의 절대적인 격차로 인해 주저앉아버릴 거다.
싸움은커녕 리우이호처럼 전투할 수 없는 상황에 빠지게 될 뿐이다.
그나마 도희는 도움이 되겠지.
빛의 성역이라는 엄청난 효율을 자랑하는 스킬을 지니고 있었으니까.
제주도에서 그랬던 것처럼 안전한 곳에서 빛의 성역만 써도 큰 도움이 되리라.
그래서 난 도희를 멀리 떨어뜨려 놓을 생각이다.
옆에는 도희를 지킬 녀석들을 배치하고.
“뭐야? 블랙 드래곤의 버프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며? 근데 왜 못 싸우는 건데?”
최희주가 눈을 찡그리며 중얼거렸다.
내 말이 앞과 뒤가 다르다고 생각했나 보다.
이 간단한 걸 설명해줘야 한다니….
얘는 생각이란 게 없나?
“버프가 해결됐다고 해서 너와 블랙 드래곤과의 격차가 줄어든 건 아니잖아.”
“…아.”
“코끼리와 개미 같은 격차는 그대로니까 당연히 싸울 수 없지.”
“켁….”
최희주는 목이 막힌 소릴 내며 날 째려봤다.
하지만 평소처럼 신경질을 부리지는 않았는데, 그런다고 달라질 건 없다는 걸 본인도 알기 때문이다.
날 째려본다고 최희주가 강해지거나 블랙 드래곤이 약해지는 건 아니니까.
“저기….”
태천이 다음으로 덩치가 큰 박건영이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회의할 땐 늘 조용히 있었던 놈이 웬일이지?
고개를 돌려 보자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럼, 도운이 너는 블랙 드래곤 레이드에 우릴 참전시키지 않을 거야?”
“그럴 리가요.”
그건 여러모로 낭비다.
나는 혼자 움직이는 놈이니 상관없지만, 태천이는 여기에 있는 녀석들과 오래 합을 맞춰왔다.
아무리 그위친이나 리롄제가 강하다고 해도 이 녀석들과 함께 할 때 더 강하다.
물론, 가장 강한 건 우리 남매와 함께할 때고.
[세계수가 관리인을 흘겨봅니다.]왜.
내 말이 뭐 틀렸어?
[세계수는 나뭇가지를 으쓱입니다.] [그저 바라봤을 뿐이라고 전합니다.]…같은 이유로, 리롄제도 동료들과 함께 올 것이다.
혹은 그가 가르친 제자들이나.
다른 S급 헌터들도 마찬가지겠지.
그위친은 A+등급 친구들을 잔뜩 데리고 올지도 모른다.
무기와 임페일에게 인사를 나누게 할 생각을 하니 조금 설레는걸?
[세계수도 그건 기대된다고 전합니다.] [어떤 친구들이 있을지 궁금하다고 덧붙입니다.]그러게.
인터넷에 찾아보거나 협회에 물어보면 가르쳐주겠지만….
만났을 때의 즐거움으로 남겨두는 게 좋겠지.
“당연히 다들 참전시킬 생각이에요. 아. 물론 상대가 상대니… 무서우면 참전하지 않아도 좋고요.”
“아….”
당황하는 박건영의 뒤로 날 째려보는 녀석들이 보였다.
그래, 그래.
방법이 아예 없으면 모를까, 있는데 태천이 혼자 블랙 드래곤과 싸우게 보낼 놈들이 아니지.
그럴 놈들이었다면… 이미 옛날에 내가 다 치워버렸을 거다.
어떡하면 이런 놈들이 한 보육원에 모일 수 있었던 건지….
생각해 보니 새삼 놀랍다.
꼭 누가 이렇게 모아놓은 것 같다고 생각하면 좀 너무 나간 거려나?
“아무튼 넌 싸가지가 읍…!”
소리치는 최희주의 입을 김보민이 왼손을 뻗어 틀어막는다.
그러고는 대화를 이어나가라는 듯 오른손을 살살 흔들었다.
곧 최희주의 “읍, 읍!”하는 소리가 줄어들었다.
“새싹이 나뭇가지로 만든 무기까지 줬잖아요. 그 값은 치르셔야지?”
“읍, 으으읍! 읍읍!”
최희주의 목소리가 다시 커졌다.
김보민이 잘 틀어막은 덕분에 무슨 말인지는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뭐, 욕이겠지.
그녀뿐만 아니라 서인철과 이현욱을 포함해 모두 눈을 찌푸렸다.
스톨로 카풀루스를 준 값을 치러야 한다는 말에 기분이 상한 건 아니다.
아까와 같이, 그저 내 말투가 재수 없어서 그런 거다.
“하지만… 도운이 네 표현을 빌리자면 우리와 블랙 드래곤 사이엔 개미와 코끼리만큼의 격차가 있다면서.”
“아, 다시 생각해 보니 개미는 아니네요. 개미는 너무 강하겠어.”
“하하….”
박건영이 머쓱하게 웃었다.
다른 녀석들이 눈을 부라리는 가운데 미소를 짓는 건 그만이 유일했다.
도희마저도 내 입을 때리고 싶은 듯 노려봤는데 말이다.
그만 비아냥거려야지.
“어쨌든, 우리는 상대가 안 된다는 거잖아. 그럼… 들어가 봤자 아니야?”
“당연하죠. 아까도 무리라고 했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우릴 참전시킨다는 거야?”
박건영….
이 인간도 바보였나?
왜 이걸 설명해줘야 하는 거지.
“격차를 줄이면 그만이죠.”
“…한 달도 안 남았는데 그게 가능할까?”
그가 반문했다.
순수한 의문이 담긴 질문이었다.
한 달도 남지 않은 시간에 블랙 드래곤과 싸울 수 있을 만큼 강해질 수 있는가.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어떻게 한 달 만에 A급 헌터들이 드래곤과 싸울 수 있을 정도로 강해질 수 있겠나.
태천이 같은 잠재력의 소유자라면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 정도의 잠재력을 지니지 않은 녀석들은 무리였다.
단, 세계수의 사랑을 받는 관리인인 내가 옆에 없다면 말이다.
[세계수는 나뭇가지로 기둥을 긁적입니다.] [‘사랑을 받는 관리인’이라는 표현에 어리둥절합니다.]어리둥절하지 말아 줄래.
이럴 땐 그냥 인정해주면 되는 거야.
가만히 지켜보든가.
[세계수는 관리인을 못마땅하게 바라봅니다.]가만히 지켜보라니까….
누굴 닮아서 이렇게 말을 안 듣는 건지.
[세계수는 관리인을 가만히 바라봅니다.]…음.
말을 말자.
어쩐지 하면 할수록 내가 말리는 기분이 드는군.
“…현질하면 가능하죠.”
“현질?”
박건영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다른 녀석들도 마찬가지다.
현질이 무슨 뜻인지 모르는 건 아닐 테고….
아마 돈으로 뭘 사려는 건지 몰라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영약 잔뜩 사서 먹일 거라고요.”
그뿐인가?
장비도 전부 새로 맞춰줄 계획이다.
능력치를 올려주는 것과 마법에 저항하는 옵션이 A등급 이상으로 덕지덕지 붙은 것들로다가.
내 말에 녀석들이 반응을 내비친다.
“영약…? 그거 엄청 비싸지 않나?”
“비싸죠. 싼 것도 한 개에 몇십억은 할걸요? 그치, 현욱아.”
“얼마 전 협회가 주관하는 경매장에서 거래된 게 24억 언저리였을 겁니다. 근데 그것도 별로 좋은 게 아니었어요.”
“켁…! 별로 좋지 않은데 그렇게 비싸? 그걸로 여기에 있는 사람들 한 개씩만 사서 먹어도… 그러니까… 300억이네!”
“정확히는 312억.”
김보민이 최희주의 계산을 정정해주었다.
그러자 최희주가 “300억이나 312억이나!”라며 으르렁거렸다.
영약을 사서 먹겠다고 하자마자 한다는 게 돈 걱정이라니….
한숨이 절로 나오는걸.
“흠…. 우리가 없이 살긴 했나 봐.”
“…제 탓이에요. 사람 일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매일 절약해야 한다고 노래를 부르는 바람에….”
도희가 힘없이 중얼거리며 인정했다.
뭐, 그 말에 틀린 점은 없었다.
백운천은 벌어들인 돈 대부분을 전국 각지의 보육원에 기부하기 때문에 돈을 허투루 쓸 수 없었으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다들 바본가?
백운천 금고에 뭐가 들어 있는지 기억도 못 하는 거냐고.
그것만 몇 개 내다 팔아도 세상에 존재하는 영약을 종류별로 사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닐 텐데.
오히려 돈은 있는데 구매할 영약이 없는 황당한 가능성을 생각해야 옳았다.
영약이 비싼 건 그 효능도 효능이지만 희귀하기 때문이니까.
“한재임.”
“왜.”
“오늘 백운천 일정이 어떻게 되냐?”
“없다. 전부 다 취소했어.”
“과연.”
블랙 드래곤과의 싸움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원래 일정이 무엇이었든 이젠 다 쓸데없는 일이다.
“잘됐네. 오늘부로 우리 백운천은 전 세계의 유명한 모든 백화점과 경매장을 찾아 나선다.”
“음…?”
“가서, 온갖 영약이란 영약은 다 사들일 거야.”
“오.”
한재임이 탄성을 짧게 흘렸다.
영약의 힘을 직접 느껴본 놈이라서 그런지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런데,
“히익, 안 돼!”
“소비는 항상 현명하게 해야 한다고!”
“정신 차려, 백도운!”
“계획 없는 소비는 집안을 무너뜨리고 자신을 망하게 하는 지름길이야!”
“음, 영약이라….”
원탁에 둘러앉은 녀석들이 사이좋게 난리를 쳐댔다.
그중 서인철만 유일하게 소란을 떨지 않고 어떤 영약을 먹을지 고민했다.
녀석들답지 않게 날 걱정해주는 게 고맙긴 한데… 그래도 지랄도 참 풍년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이 지랄에 내 지랄을 얹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지랄 중의 지랄은 역시 돈 지랄이지.
히히히!
“큰일 났다…! 저 자식 웃기 시작했어!”
“도, 도희야! 어서 빨리 쟤 좀 말려! 내버려 뒀다간 큰일 나겠어!”
“야, 너 멈-”
또다시 시끄럽게 야단법석을 떠는 놈들을 뒤로 한 채 회의실을 빠져나왔다.
씨앗 심어놓기 스킬로 이동해온 곳은 바로 백운천의 금고가 있는 곳이었다.
예전에 엘릭서 훔칠 때 몰래 심어놓았던 건데 이렇게 써먹게 될 줄은 몰랐다.
그땐 흐레이스한테 금고를 열게 했었지….
새해 새벽부터 알테라-쇼넴을 쓰고 있다니.
고생이 참 많네.
뭐, 블랙 드래곤과 싸우게 된 나 때문이지만.
[세계수가 관리인을 바라봅니다.]응?
아, 맞다.
금고 어떻게 열 거냐고 물었었지.
하하, 나 열 생각 없어.
비밀번호도 모르고, 따는 방법도 모르고.
[……?] [그럼 어떻게 금고 속의 엘릭서를 꺼낼-]우직!
펑, 퍼벙!
곧바로 금고를 들어 올렸다.
“들고 가면 도희가 열어주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