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423
제424화
“무기 몸통만 하더라.”
다들 궁금해하는 것 같아 대답해주었다.
드래곤을 만나고 왔는데 그걸 더 궁금해하는 게 맞나.
그런 생각도 들긴 했지만….
“…그렇게나 커요?”
“아르카가 가는 나뭇가지로 만든 거였잖아. 그 정도일 만하지.”
“흠….”
“왜?”
“전대 세계수는 미래를 본다고 그랬죠. 그래서 필요할 때에 필요한 것을 오라버니한테 전달하는 거고.”
“그렇지.”
아르카의 재료가 된 전대 세계수의 나뭇가지도 그랬다.
홍유릉 게이트에 진입했을 당시 나로서는 A+등급 몬스터인 스켈레톤 로드와 싸워 이길 가능성이 작았다.
통나무로 보였던 전대 세계수의 나뭇가지가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지 확신할 수 없다.
항상 시기적절하게 보내왔던 만큼 이번에도 내게 필요해서 보낸 게 분명했다.
문제는….
“그 큰 걸 어떻게 사용해야 할까요?”
도희의 말대로 어디에 써야 잘 썼다고 소문이 날지 모르겠단 거다.
원하는 대로 다룰 수만 있다면 사용 방법이 무궁무진할 만큼 최상급 재료이긴 했으나….
귀수산 등껍질조차 한 수 접고 들어가야 하는 단단함을 자랑하는 전대 세계수의 굵은 나뭇가지는 쉽게 다룰 수 있는 재료가 아니었다.
애초에 유재이가 아르카를 내 키만 한 대검으로 제작한 것도 그래서이지 않았던가?
그 자체로 완전한 무기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말이다.
“일단 감정부터 받아보려고.”
“예전에 받았잖아요?”
“그렇긴 한데, 크기가 다른 만큼 성질이 다를 수도 있잖아. 감정하다 보면 뭘 할 수 있을지 아이디어를 얻을 수도 있고.”
“그건 그렇네요.”
도희가 바로 동의했다.
그러자마자 한재임이 끼어들었다.
“좋아. 그럼 이제 본론을 얘기할 수 있겠군.”
“본론?”
“그린 드래곤 말이다.”
“아아.”
“…….”
한재임은 나를 빤히 쳐다봤다.
대단한걸?
예전 같았으면 혀를 차거나 한숨을 내쉬었을 텐데.
이렇게 내가 말하기를 잠자코 기다리다니.
내가 이 녀석들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 것처럼 녀석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도 달라진 거겠지.
“음… 그게 말이지….”
“역시 안 됐나 보군.”
뜸을 들이자마자 한재임이 바로 결론을 내렸다.
그 말대로였다.
알루키노르를 찾아간 일은 좋은 결과를 도출하지 못했다.
사실… 생각지도 못한 결과를 맞이했다고 볼 수 있었다.
“후우….”
한숨을 짧게 내뱉은 후, 태평양 던전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
오랜만에 온 태평양 던전은 밝았다.
도희와 재이가 합작해 만든 발광석에서는 여전히 따스한 햇볕 같은 빛이 뿜어졌다.
그 때문일까?
발광석을 올려다보고 있노라면 이곳이 햇빛이 닿지 못하는 심해라는 것을 잊어버릴 것 같았다.
어쩐지 빛의 세기가 더 강렬해진 것 같기도 했고….
『오셨소?』
머릿속에서 울리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린 드래곤, 알루키노르 루모스.
발광석 아래에 일광욕을 즐기는 듯한 그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알루키노르 님.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덕분에 잘 지냈소. 관리인은 아니겠지만.』
아니겠지만, 이라….
역시 알고 있었군.
내가 블랙 드래곤과 싸우게 되리란 것을.
그리고 블랙 드래곤이 전대 세계수 페어를 배신했다는 것을.
『…….』
알루키노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나를 똑바로 응시하기만 했다.
내 말을 기다리는 것으로 보여서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자신도 받아들이지 않을 거로 생각하는 부탁을 말하기 위해서.
“알루키노르 님. 저흴 도와주시겠습니까?”
『싫소.』
“…….”
예상했던 일이기는 하다.
그런데 내 생각보다도 단호한 거절이라서 할 말을 잃었다.
조금이라도 고민하는 척을 할 줄 알았는데 말이다.
흐음….
“…알루키노르 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싫다고 그냥 돌아가는 건 좀 그렇겠지.
여기까지 온 김에 몇 마디 더 얹어봐야겠다.
“블랙 드래곤이 바로 배신자라는 것 말입니다.”
『물론 알고 있소.』
“그렇다면 직접 배신자를 처단하는 것도 좋지 않겠습니까?”
『됐소.』
알루키노르는 또다시 단연하게 즉답했다.
그의 목소리도 어쩐지 초탈함이 느껴져서 어이가 없었다.
배신자에 대한 복수에 대해 말하고 있건만 그는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마치 ‘그렇기에 드래곤이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정말이지… 어느 협곡에 처박혀 있는 음험한 놈하고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비교하는 게 미안할 정도인걸.
『애초에 그 복수의 몫은 여의 것이 아니오.』
“네?”
『…….』
알루키노르가 거대한 에메랄드 같은 눈동자를 조금 내렸다.
내 오른손에 쥐어진 스마트폰, 즉 새싹이를 바라본 것이었다.
그건 방금 그가 말했던 복수의 몫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가르쳐준 것이었다.
전대 세계수의 복수를 하는 것은 당연히 당대 세계수가 해야 옳지 않겠소?
그의 눈길은 그리 말하는 듯했다.
[세계수가 나뭇가지를 끄덕입니다.] [알루키노르의 말이 옳다며 의사를 존중한다고 밝힙니다.]말로 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도 동의하는 바였기 때문에 조용히 넘어갔다.
『물론, 인간들 처지에선 충분히 불편하게 여길 수 있음을 인정하오.』
“네?”
『다른 드래곤이 저렇게 못난 꼴을 보이는데 같은 드래곤인 여가 나서지 않겠다고 한 것이니 말이오.』
“아. 아니, 전혀 그렇게 여기지 않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손을 휘저으며 부정했다.
다른 사람들 생각은 몰라도 내 생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전대 세계수의 복수는 우리 몫이라는 뜻은 마땅했으니까.
솔직히 배신당한 장본용이 초탈한 모습을 보이는 건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어떻게 화를 안 낼 수가 있는 걸까.
의문을 중얼거리는 동안 알루키노르가 말을 이었다.
『심지어 부탁까지 했었던 주제에 이번 일에 대해 돕지 않겠다니 기분이 나쁠 만도 하지.』
“아니. 괜찮다니까요?”
『그러니 저걸 도로 가져가도록 하시오.』
“네? 도로 가져가라니 무엇을…!”
무슨 소릴 하나 싶어 쳐다보는데, 그는 생각지도 못한 일을 했다.
발광석을 향해 꼬리를 뻗어서는 시계 방향으로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끼릭, 끼릭, 끼리릭.
허공에 뜬 발광석이 돌아갈 때마다 백열전구가 뽑혀 나오는 소리가 났다.
뽁!
『여기 있소.』
알루키노르는 발광석을 내게 내밀었다.
그것은 뽑힌 전구와는 달리 여전히 강렬하게 빛을 뿜어냈다.
어우, 눈부셔.
눈을 간신히 가늘게 뜨고 말했다.
“…괜찮습니다. 발광석은 발광석이고, 블랙 드래곤은 블랙 드래곤이죠.”
『그리 말해주어 고맙소. 하지만 가져가도록 하시오.』
“…….”
눈을 찌푸렸다.
그러다 애초에 눈이 부셔서 찌푸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덕분에 마음껏 찌푸리기로 했다.
괜찮다고 말했는데도 알루키노르는 발광석을 도로 허공에 끼울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것 참….
그에게 발광석을 만들어준 걸 아는 사람은 극소수다.
그것 가지고 뭐라고 할 사람이 없다는 뜻이다.
조용히 있으면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고 넘어갈 일인데….
굳이 왜 이러는 걸까.
『다른 생각하지 말고, 가져가시오. 관리인.』
알루키노르는 낮은 목소리로 경고하듯 말했다.
가져가지 않으면 화낼 것처럼 보이는 건 착각인가?
으음.
“제가 가져가지 않겠다고 버티겠다면요?”
『달라질 건 없소. 시간은 여가 더 많으니.』
그야 그렇지.
인생은 용생보다 짧으니까.
평생까지 얘기할 필요도 없었고.
난 애초에 블랙 드래곤 때문에 이곳에 죽치고 있을 수 없었다.
“그냥 가겠다면…?”
『그럼 억지로 챙겨줄 수밖에 없겠지.』
“…….”
드래곤의 억지…?
예상컨대, 절대 좋은 일이 아닐 듯하다.
내가 아무리 생각 없이 길을 걷는 놈이라도 그건 피해야겠다 싶다.
[세계수가 관리인의 생각에 동의합니다.] [이어 일단 받아들이고 일이 끝나면 다시 돌려주러 오는 게 현명할 것 같다고 조언합니다.]그래, 그러자.
조금 귀찮기는 해도 그게 이대로 버티는 것보단 적당하겠어.
슬슬 눈도 편하게 뜨고 싶고.
“후우, 알겠습니다. 가져가겠습니다, 일단은.”
『잘 생각했소.』
손을 뻗어 발광석을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알루키노르는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정말 이해 안 가네.
그의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어 머리를 긁적였다.
***
“…….”
도희는 미간을 찌푸린 채 나를 빤히 쳐다봤다.
저 얼굴을 잘 안다.
평생토록 봐왔던 얼굴이다.
바로 이해하지 못 하는 일과 맞닥뜨렸을 때 짓는 얼굴이다.
[세계수는 지금 도희는 관리인을 보고 있다고 지적합니다.]그러니까.
도희가 세상에서 가장 이해하지 못 하는 일이 바로 내 행동이거든.
[…….]참고로 두 번째로 이해하지 못 하는 일은 태천이 행동이란다.
[세계수는 어련하겠냐며 나뭇가지를 절레절레 젓습니다.]“그래서 받아왔다고요? 발광석을?”
“응.”
“하아…. 그걸 도로 받아오면 어떡해요?”
“갖고 가라는 걸 어떡해?”
“그래도 그냥 두고 왔어야죠. 발광석이랑 이번 일과는 별개의 문제인데.”
“나도 그렇게 말했지. 그런데 전혀 듣지를 않았다고. 막, 그냥 가면 억지로 챙겨줄 거라고 협박까지 했다니까?”
“협박을 하셨다고요?”
“그렇대도.”
“…….”
도희는 또다시 미간을 찌푸렸다.
나를 볼 때처럼, 태천이를 볼 때처럼, 이곳에 없는 알루키노르를 머릿속에 떠올리고 있을 것이다.
이해할 수가 없어서.
그냥 넘어갈 일을 굳이 왜?
-라며, 내가 태평양 던전에서 했던 생각을 그대로 하고 있겠지.
“…아무튼. 블랙 드래곤과 싸울 때 그린 드래곤의 도움은 받지 못한다는 거군. 레드 드래곤의 도움도.”
한재임이 끼어들어 정리했다.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자 녀석은 콧숨을 짧게 내쉬었다.
블랙 드래곤과의 싸움에 다른 두 드래곤의 도움을 받지 못한다는 게 퍽 아쉬운 모양이었다.
물론, 녀석의 아쉬움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그런다고 달라질 것은 없었으니까.
대신 나와 태천이를 부르고는 질문을 던졌다.
“너희가 봤을 때, 승산은 어땠지?”
승산?
머릿속에 블랙 드래곤을 떠올리면서 태천이를 바라봤다.
우린 조용히 블랙 드래곤과의 싸움을 그려 보았다.
먼저 다른 이의 도움 없이도 블랙 드래곤과 싸울 수 있는 전력을 떠올린다.
나, 태천이, 리롄제, 스미르노프, 그위친.
밀러와 리우이호는 새싹이를 소환하기 전까진 맥도 못 추렸었고.
한진환은… 솔직히 어떨지 잘 모르겠다.
그 인간이 블랙 드래곤 앞에서 리우이호처럼 무릎을 꿇는 모습은 그려지지 않긴 한데….
일단 한진환을 제외하고 다섯 명으로 블랙 드래곤과 싸운다고 상상해보자.
“이길 수 있어.”
머릿속에서 블랙 드래곤과의 싸움을 시뮬레이션하는 동안, 태천이 씩 웃으면서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 모습에 원탁에 둘러앉은 녀석들의 얼굴이 밝아졌다.
딱 두 사람.
도희와 한재임의 얼굴은 밝지 못했다.
그 둘은 태천이 아니라 나를 보고 있었다.
안심하는 건 내 말을 듣고 나서 결정해야 한다는 듯이.
“오라버니.”
“나도, 싸워서 이기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지긴 해.”
“그렇군요. 그런데 오라버니가 그 길을 선택하진 않을 것 같은데요.”
“맞아.”
“왜요?”
“아무리 상상해봐도 태천이가 죽을 것 같거든.”
“……!”
그랬다.
방금 짧게 생각해본 상상에서는, 어떤 식으로 싸우든 태천이가 죽었다.
그것도 가장 먼저.
다섯 명 중에서 가장 약하기 때문은 아니었다.
세계 최고의 탱커로서 맨 앞에 섰기에 가장 먼저 죽는 것이었다.
“으음….”
원탁에 앉은 이들이 놀라서 황급히 태천이를 쳐다보자 녀석은 곤란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역시.
저 자식도 나와 같은 상상을 한 게 분명하다.
그래놓고 이길 수 있다고 자신을 내비치다니….
세상 구하겠다고 죽는 걸 각오하기라도 한 걸까.
멍청이가.
“미친 새끼!”
“절대 안 돼!”
“당연히 안 되고말고!”
“원장 수녀님한테 다 말씀드릴 거다, 너!”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니!”
최희주의 욕을 시작으로 다들 한 마디씩 던졌다.
아까처럼 도희와 한재임만 조용했다.
두 사람이 가장 펄쩍 날뛸 줄 알았는데, 웬일이지?
내 의문에 대답하듯 도희가 말했다.
“오라버니가 생각하던 건 뭐였어요?”
아, 그렇군.
도희와 한재임은 태천이가 죽게 되는 승리는 논할 가치조차 없다고 여긴 거다.
두 사람답군.
“당연히 태천이가 죽지 않는 승리지.”
“가능한 거죠?”
“당연하지. 이런 거로 거짓말해서 뭐해?”
“설명해줘요.”
“설명이랄 것도 없는데?”
어깨를 한번 으쓱 올렸다.
조금만 생각하면 알 수 있는 거였다.
태천이가 죽게 되는 승리는 전투에 참여한 인원이 적기 때문이었다.
다른 이들의 도움 없이 스스로 블랙 드래곤과 싸울 수 있는 인물들만을 가정해서.
그 말은, 반대로, 다른 이의 도움을 받는다면 블랙 드래곤과 싸울 수 있는 인물들이 엄청나게 늘어난다는 소리였다.
비단 한진환, 밀러, 리우이호만을 뜻하는 게 아니다.
내가 말한 인물들은 눈앞의 녀석들과 이곳에 없는 이들까지 포함했다.
“자고로, 드래곤 사냥은 ‘레이드’ 아니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