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422
제423화
“미스터 백?”
밀러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나를 부른다.
갑자기 다른 곳을 보고 멍하니 서 있으니 걱정이 된 것 같다.
“괜찮아요? 혹시 어디 다쳤어요?”
“멀쩡해요. 그냥,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을 좀 했어요.”
“아….”
밀러의 어깨가 축 처진다.
블랙 드래곤은 게이트가 폭발한 이후 학살을 시작할 거다.
이곳 프랑스부터.
프랑스계 미국인인 그녀는 그걸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으리라.
“우리가 생각하기에 앞서, 먼저 매그너스 협회장한테 연락하는 게 좋을 듯하군.”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밀러가 리롄제의 말에 동의하며 스마트폰을 꺼냈다.
통화 연결음이 몇 번 울린 후 앨릭스 협회장이 전화를 받았다.
– 밀러! 벌써 나온 건가? 정말로 빨리 끝났군그래.
“…네.”
– 음? 목소리가 좋지 않군. 왜 그러나?
“그게….”
밀러는 게이트에서 있었던 일을 모두 설명했다.
블랙 드래곤이 보였던 행동, 그에 따라 비쳐 보였던 목적.
그리고 블랙 드래곤의 무시무시한 강함까지도.
설명을 듣고 나서 앨릭스는 당황한 듯 얼빠진 목소리로 반문했다.
– 그게… 정말인가?
“네. 그리고 한 가지 더 문제가 있어요.”
– 여기에서 더?
“짧으면 보름, 길면 한 달 후에 게이트 브레이크가 있을 거예요….”
– …즉,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한 달 남짓이란 거군.
“넉넉잡아서 생각한다면요….”
스마트폰에서 앨릭스의 침음성이 들려왔다.
협회장으로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게 분명하다.
– 사람을 보내서 정확히 언제쯤 게이트 브레이크가 일어날지 계산해야겠군.
“그게 좋겠어요.”
– 도운.
“네.”
– 자네는 혹시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나?
“네?”
– 크리스마스 때 자네가 그랬었잖나. 인류를 지키기 위해서 가는 거라고.
“아, 그거요.”
그렇게 말하긴 했었지.
전대 세계수 퀘스트 때문에 해본 말이었는데, 그걸 기억하네….
내가 미래라도 보는 줄 알겠는걸.
“대충 이럴지도 모른다고는 생각했습니다. 알루키노르 님이 경고해줬었거든요.”
– 그린 드래곤이 경고해줬었다고…?
“네. 서둘러 강해지라고요. 그땐 크라우드 때문인 줄 알았지만요.”
– 과연….
“잠깐.”
리롄제가 끼어들었다.
그는 고개를 연신 갸웃거리며 질문했다.
“녹룡은 자네에게 왜 그런 경고를 해준 거지? 둘은 같은 용이 아닌가?”
“같은 용이라도 같은 편은 아닙니다.”
알루키노르와 데이모스는 마족을 싫어했다.
블랙 드래곤처럼 전대 세계수 페어를 배신하지도 않았고.
그런 이들이니 블랙 드래곤의 편을 들 리 없었다.
서두르라고 경고해준 것도 그래서였겠지.
– 그나마 다행이로군….
앨릭스의 목소리에 안도감이 느껴졌다.
드래곤 한 마리 상대하는 것도 버거운 실정이니 당연했다.
이런 상황에 다른 두 마리까지 더 상대해야 한다면…?
솔직하게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저 메시지가 바로 상상의 결과였으니까.
앨릭스가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이름을 불렀다.
이곳에 있는 다섯 명의 이름을 부르더니 진중하게 묻는다.
– 싸워주겠습니까…?
그 질문에 밀러는 입을 다문 채로 우리의 눈치를 살폈다.
그녀는 이미 싸우기로 결심했다.
자신의 뿌리가 있는 곳을 버릴 수 없었으므로.
아마 적지 않은 수의 친척들도 이 나라에 살고 있겠지.
“…….”
태천이를 바라봤다.
내가 대답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이런 순간에 우리 태천이는 언제나 한 가지 결정을 내리는데, 난 예전부터 그걸 지켜보는 걸 좋아했다.
“당연히 싸워야죠.”
그 말엔 한 치의 거짓도 없다.
‘싸우지 않는다’라는 생각도 전혀 없다.
담담하게 진심을 말한다.
“백운천은 블랙 드래곤 토벌에 참전합니다.”
– …고맙네.
“고마워요.”
앨릭스와 밀러가 고마움을 전해왔다.
특히, 밀러는 거의 울 것 같은 얼굴로 고개를 살짝 숙였다.
고맙기는.
이건 우리에게 고마워할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애초에 블랙 드래곤을 쓰러뜨리지 못하면 인류는 멸망합니다. 다 함께 싸워서 쓰러뜨려야 할 일이에요, 이건.”
그렇다.
함께 싸워서 블랙 드래곤을 사냥하는 게 살아남을 가능성이 크다.
싸우지 않겠다고 빼는 건 멍청한 짓이다.
물론, 이럴 때도 머리를 굴리는 사람은 존재한다.
그렇기에 나는 방금의 말을 하는 내내 리롄제를 똑바로 봤다.
저 뱀 같은 노인이 다른 소리를 하지 못하게 선수를 친 거다.
그는 분명 당국이 어쩌고저쩌고하며 대답을 피했을 테니까.
“끌끌끌…. 하여간 싹수가 없는 놈이로고…!”
내 시선의 저의를 알아차린 리롄제가 눈썹을 살짝 꿈틀거렸다.
난 느긋하게 어깨만 으쓱해주었다.
눈썹을 꿈틀거린 게 내 생각이 옳다는 증거나 마찬가지였다.
“여기에서 싸우지 않겠다고 말하면 나는 창피를 당하게 되겠구나.”
“그렇겠죠?”
“…좋다. 싸우도록 하지. 그쪽이 더 승산이 있을 것 같고.”
– 고맙습니다, 리롄제.
“대신 조건이 있네.”
– 당연히, 뭐든 들어드리겠습니다.
“그럼 좋네. 조건은 나중에 천천히 보내도록 하지.”
– 네. 그러십시오.
“…앗.”
두 사람의 대화에 태천이 탄식을 흘렸다.
그 탄식은 자신이 실수했음을 깨달아서 나온 것이었다.
그렇다.
우리 태천이는 이런 순간이면 늘 한 가지 결정을 내리기 때문에 뜯어낼 수 있는 것도 못 뜯어낸다.
내가 잠자코 있었던 것도 그래서였다.
이러면 태천이는 우리 도희에게 혼나게 될 거니까!
한재임조차도 대체 왜 바로 받아들인 거냐고 따지겠지.
태천이를 보며 큭큭 비웃는 내게 앨릭스가 질문을 던졌다.
– 혹시 두 드래곤에게 도움을 청하는 건 어떻겠나?
데이모스와 알루키노르에게 도움을?
생각해보지도 않았던 거군.
“아마 안 될 겁니다. 안 그래요?”
“…음.”
리롄제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답지 않게 그의 표정에서는 서운함이 느껴졌다.
왜 그런가 싶었는데, 생각해보니 그는 레드 드래곤과 친구로 지내는 사이였다.
친구 사이인데도 도와주지 않으리란 걸 알기에 서운한 모양이다.
답지 않네.
“…하지만 시도해봐서 나쁠 건 없겠지.”
– 그 말씀은…?
“찾아가 보겠네. 함께 싸워주지는 않을지라도 중재는 해줄지 모르지 않나?”
– 고맙습니다, 리롄제.
“됐네. 어차피 빈손으로 돌아올지도 모르는 일이니….”
모를 일이 아니다.
안타깝게도 리롄제는 빈손으로 돌아오게 될 거다.
데이모스는 자신을 이방의 존재로 여기고 있었으니까.
이 세상이 어떻게 되든 관심이 없는….
그리고 그건 알루키노르도 마찬가지다.
우리에게 발광석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한 것도 그래서였지 않은가.
– 도운.
“소용없을걸요.”
– 그래도 부탁함세.
“…뭐, 알겠습니다.”
갔다 오는 게 힘든 일도 아니고.
씨앗을 심어놓았으니 갔다 오는 건 순식간이다.
걱정스러운 건, 알루키노르가 과연 나를 환대해줄 것인가? 그것이다.
– 고맙네.
“기대는 하지 마세요. 도와줄 거였으면 애초에 도와줬을 겁니다. 예의 경고가 마지막 도움이었을 테니.”
– …알겠네.
앨릭스는 힘없이 대답했다.
마음 같아서는 한숨이라도 우라지게 내뱉고 싶은 것 같다.
하지만 그는 마냥 힘없이 앉아 있을 수 있는 위치의 사람이 아니다.
세계 헌터 협회장.
그 자리에 앉은 그는 블랙 드래곤의 위협에 누구보다 발 벗고 대비해야 하는 사람이다.
아, 맞다.
블랙 드래곤에 대해 말하면 조우민 협회장이 좋아 죽겠는걸?
– 밀러. 자네는 바로 돌아오게. 나와 그위친을 찾아가자고.
“네. 그럴게요.”
“우리도 바로 움직이도록 하겠네.”
– 부탁합니다.
앨릭스와 밀러는 그위친에게.
리롄제는 데이모스에게….
어째 분위기가 나도 지금부터 알루키노르를 만나러 가야 할 것 같은데?
“그럼, 각자 만날 이들 만나고 다시 연락하도록 하지.”
– 네. 그러는 게 좋겠습니다.
리롄제의 제안을 앨릭스가 받아들이며 통화가 끊겼다.
그러고 나서는 다들 빠르게 베르동 협곡을 떠났다.
리롄제는 고개만 끄덕였고, 리우이호는 “오늘 고생하셨습니다.”라면서 정중하게 인사한 후 떠났다.
마지막으로 남은 밀러는 고마운 감정이 잔뜩 담긴 얼굴로 우리에게 인사했다.
“둘 다 고마워요. 선뜻 싸우겠다고 해줘서….”
그녀는 우리 둘을 꽉 끌어안고 싶은 얼굴을 하다가 떠나갔다.
그렇게 나와 태천이만 게이트 앞에 남게 됐다.
단둘이 남게 됐으니, 게이트에서부터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한 거야?”
“뭘?”
“나 그림자에서 빼낸 거 말이야.”
“아, 그거?”
아? 그거?
그 대단한 일을 뭐 이렇게 대수롭지 않게 반응해?
“별거 아냐. 너 있는 곳에 문 연 거야.”
“……?”
이해가 안 가서 고개가 절로 갸웃거려졌다.
그런데도 태천이 이놈은 씩 웃기만 했다.
뭘 쳐 웃어?
설명이나 해줄 것이지.
“나 문지기잖아.”
“그게 문지기의 힘이었다고?”
“응.”
“그건 중력을 다루는 거잖아?”
“그것도 문지기의 힘이고.”
“……?”
뭔 소리야?
지금 나만 이해가 안 가는 건가?
[세계수는 나뭇가지를 으쓱입니다.] [인정하고 싶지만, 자신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전합니다.]…앞에 말이 마음에 안 들기는 하는데, 그래도 다행이네.
또 내가 멍청해서 나만 이해 못 하는 건 줄 알았지.
슬퍼하지 마.
나 같은 게 뭐 어때서!
[세계수는 나뭇가지로 이태천을 가리킵니다.] [관리인은 이태천과 같은 수준이라고 하면 좋겠냐고 질문합니다.]…아하.
***
백운천 회의실은 간부들이 모두 모였으나 조용했다.
이른 새벽이었음에도 간부 중 잠에 취한 사람은 없었다.
블랙 드래곤이 인류를 멸망시키려 한다.
태천의 설명을 요약한 그 한 문장이 그들의 잠을 순식간에 달아나게 해버린 것이다.
그들은 멍하니 허공을 바라봤다.
10초, 30초, 1분….
시간이 흘러 침묵이 10분 정도 흘렀을 때, 최희주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기….”
그들 중 가장 조용한 걸 참지 못하는 그녀는 분위기를 파악해 입을 다물고 있었지만 결국 그 한계에 도달한 것이었다.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향했다.
시선의 주인들은 표정이 좋지 못했다.
그녀 때문이 아니라 블랙 드래곤 때문이었음에도 최희주는 말을 조심스럽게 했다.
“그게, 질문이 있어서….”
“…뭔데요?”
도희가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말을 한 후 목소리가 잠겼음을 깨달은 그녀는 헛기침을 몇 번 했다.
헛기침이 끝난 후 최희주가 말했다.
“블랙 드래곤이 인류를 멸망시키려고 한댔잖아.”
“응. 마족한테 배신당한 분풀이로.”
팔짱을 끼고 있던 태천이 대답했다.
그는 도운과 함께 태평양 던전으로 떠나지 않았다.
백운천 간부들을 모으고 상황을 설명해주기 위해서였다.
“그거, 정말…이야?”
“……?”
태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말이냐니?
설마 이런 거로 거짓말을 할 리가 없건만 왜 저런 질문을?
머릿속에 그런 의문이 떠오를 때쯤, 최희주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백도운이 시비 건 거 아니고…?”
“뭐?”
“아니, 백도운이잖아? 드래곤한테 비아냥거린 거 아니야?”
“뭐, 비꼬기는 했는데….”
태천이 중얼거렸다.
그 순간, 도희를 포함한 이들의 시선이 태천에게로 향했다.
설마 이 사달이 난 게…?
태천은 손을 세차게 휘저었다.
“아니야! 블랙 드래곤은 애초에 그러려고 했어. 비꼰 것도 전대 세계수가 부탁해서 그런 거였다고!”
“전대 세계수가요?”
“응. 비아냥거린 후에 퀘스트가 완료됐대.”
“…….”
도희는 입을 다물었다.
퀘스트가 완료됐다는 사실에 황당함을 느낀 것이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설마 전대 세계수가 퀘스트란 시스템까지 이용해서 비아냥거리길 부탁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아무튼, 도운이 때문에 그런 건 아니야.”
“…그렇게 말해도 믿을 수가 있어야지.”
최희주의 중얼거림에 다들 공감하며 웃었다.
그들이 지금껏 도운에게 들어온 비아냥은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빈번했다.
그래서 벌어진 사달도 무수했고.
“퀘스트 보상은 뭐였는데?”
한재임이 안경을 고쳐 쓰며 물었다.
태천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밖에 없었다.
바로,
“전대 세계수의 나뭇가지.”
도운이었다.
도운은 어느새 자라난 푸른 꽃과 함께 서 있었다.
한재임이 눈을 찌푸렸다.
마치 “또?”라고 묻는 듯했다.
“대신 ‘굵은’이라는 형용사가 붙긴 해.”
“아….”
전대 세계수의 나뭇가지는 통나무만 했다.
그것이 ‘가는’ 나뭇가지라는 말을 들었을 때 얼마나 황당했던가.
그렇다면, 과연 굵은 나뭇가지는 크기가 얼마만 할까?
모두의 머릿속에 공통된 의문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