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429
제430화
쏴아아…!
하늘에서 흙이 끝없이 쏟아졌다.
흙의 비를 맞은 숲은 푸르게 빛나기 시작했다.
들끓던 어둠만이 걸려 있던 나뭇가지에 초록의 이파리들이 자라나고, 새카맣던 바닥에서는 새로운 풀이 싹을 틔웠다.
“이건, 기적인가…?”
“저 어둠이 정화되다니!”
“아아, 저 흙으로 내 더러운 육신을 씻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초록까지 자라나게 할 줄이야!”
“반복되는 멸망이 끝나는 모습을 실제로…!”
교황청의 사제들이 탄성을 흘렸다.
그 탓에 자기들이 할 일인 빛을 뿜어내는 것도 깜빡 잊은 듯했지만,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도착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도운이 어둠을 정화한 범위가 그들이 지금껏 몰아낸 범위보다 훨씬 더 넓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앨릭스 협회장마저 감탄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꼭… 옛 선지자 같은 모습이군….”
“후후….”
이자벨 성녀가 동의한다는 듯 엷게 웃었다.
현재 도운은 이무기를 타고 마족의 어둠을 몰아내고 드넓은 숲을 되돌리고 있었다.
앨릭스 협회장의 옛 선지자처럼 보인다는 말은 무척 어울렸다.
아마 이자벨 성녀와 다른 사제들은 무릎을 꿇고 성호를 그은 후 기도를 드렸을지도 몰랐다.
도운의 오른손에 나무로 깎아낸 투박한 지팡이가 들려 있고, 또 왼팔과 옆구리 사이 웬 금고가 끼어 있지 않았다면 말이다.
***
쏴아아…!
흙이 파도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새싹이의 마나가 담긴 흙이 숲으로 떨어지자마자 부정한 어둠이 힘을 잃고 훅훅 꺼졌다.
어쩐지 예전에 뉴스에서 봤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숲의 화재를 꺼뜨리기 위해 물을 투하하던 소방 헬기.
지금 내 모습이 딱 그 소방 헬기처럼 보이지 않을까 싶었다.
「…넓군.」
“흙이 충분해서 다행이지?”
그위친의 숲은 무기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릴 만큼 광활했다.
하지만 이 숲을 다 뒤덮어도 남을 흙이 새싹이 주변에 있었다.
예상컨대, 이대로 흙을 뿌려대면 분명 1시간도 채 안 돼서 어둠을 다 정화할 수 있겠지.
「관리인. 아래쪽에서 관리인을 부른다.」
무기의 말에 바로 땅을 내려다봤다.
한곳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날 올려다보고 있는데, 높이가 높이인지라 표정까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산불 끄는 소방 헬기처럼 보고 있겠지, 뭐.
“그런데… 뭐라는 거지?”
덩치가 가장 큰 사람, 앨릭스 협회장이 숲을 가리키며 고래고래 소리치고 있었다.
당연히 표정을 확인할 수 없는 높이 때문에 뭐라고 하는지도 들리지 않았다.
무슨 이유가 있어서 저러는 걸 테니, 일단 아래쪽으로 내려가야겠다.
“무기야.”
「그럴 필요 없다.」
“응?”
「내가 들었으니까.」
“저게 들려?”
「내 귀와 인간의 귀를 비교해선 안 되지.」
“그렇긴 하네. 앨릭스가 뭐래?”
「숲에 밀러가 들어갔으니 서둘러 구해달라는군.」
“뭐? 저기에?”
황당한 목소리로 반문했다.
새싹이의 마나가 담긴 흙에 속절없이 정화되고 있었지만, 저 어둠은 함부로 다가가도 괜찮은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마족의 힘 그 자체였으니까.
“밀러가 무사할지 모르겠는걸. 설마 권속이 돼버린 건 아니겠지?”
눈을 찌푸리며 의문을 중얼거렸다.
저 마족의 힘은 수십 개의 헤미스파이리움이 토해낸 것이 분명했다.
몸에 닿기만 해도 마족의 권속이 되어버리는 무기이다.
[세계수는 나뭇가지를 가로젓습니다.] [탐색한 결과 아직 무사한 밀러를 발견했다고 전합니다.] [그녀는 한 자리에 멈춰서 혐오스러운 기운에 대항하고 있다고 설명합니다.]과연 밀러.
그녀는 세계수의 마나도 없으면서 저 혐오스러운 어둠에 저항하고 있었다.
S급 헌터라는 게 허울이 아니군.
감탄하는데 눈앞에 메시지와 함께 경로가 떠올랐다.
[세계수가 곧바로 관리인에게 경로를 안내합니다.] [대항하고 있긴 하지만, 밀러의 힘이 곧 다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그건 안될 일이지.
난 무기에게 새싹이가 밀러를 찾았다고 말한 후 경로를 전달했다.
“서둘러 줄래? 시간이 별로 없어 보여.”
「알겠다.」
무기는 대답하자마자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자연히 흙은 거리를 두고 새카만 숲으로 뿌려졌고, 군데군데 푸른 구멍이 생겨났다.
그렇게 무기의 속도로 3분 정도 날았을까?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경로 안내를 종료합니다.]새싹이의 경로 안내가 끝났다.
무기가 멈춰 서고, 우린 함께 아래쪽을 내려다보았다.
숲에 가득한 어둠이 그곳에만 더 모여 있어서 마치 새카맣고 둥근 실타래가 놓인 듯했다.
아마 밀러가 어둠에 파묻힌 채로 저항하고 있는 탓에 저런 모습이 된 것 같았다.
바로 스마트폰 화면을 그곳으로 향했다.
쏴아아!
흙이 소방 호스에서 뿜어지는 물대포처럼 쏟아져 끓는 어둠을 강타했다.
새싹이의 마나가 담긴 흙에 얻어맞은 어둠은 불이 훅 꺼지듯 허물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밀러가 보였다.
내가 밀러를 발견하는 것과 동시에 스마트폰에서 쏘아지던 흙이 그쳤다.
투웅, 탁…!
바로 무기의 목덜미에서 뛰어내리고, 세계수의 뿌리를 스프링처럼 만들어 착지했다.
“헉…, 허억…?”
밀러가 숨을 헐떡이며 주변을 돌아본다.
뒤에 서 있던 탓에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를 덮치려고 용쓰던 어둠이 순식간에 사라진 탓에 혼란스러워하고 있다는 건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녀에게로 걸어갔다.
“미스터 백….”
“……!”
어떻게 알았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걸어가기만 했는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인 걸 알아차릴 줄은 몰랐네.
밀러는 잠시 호흡을 진정시키고는 나를 돌아봤다.
“후우…. 구해줘서 고마워요. 5분만 늦었어도 저 어둠에 휩쓸려버렸을 거예요….”
“괜찮아요. 별일도 아니었는데요.”
“…….”
밀러가 쓴웃음을 흘렸다.
아, 실수했군.
그녀는 내가 별일 아니라고 말한 일에 당할 뻔했다.
본인이 말한 대로 5분만 늦었다면 그녀는 어둠에 뒤덮여 버렸으리라.
그랬다면 죽었거나 마족의 권속으로 떨어졌겠지.
물론, 마족의 힘이었으니 그녀로서는 어쩔 수 없는 문제였다.
세계수의 마나가 아니었다면 이 혐오스러운 힘은 이렇게 쉽게 정화되지 않았을 거다.
빛의 마나 정도는 돼야 몰아내든지 저항하든지 했겠지.
“서둘러줘요.”
“네?”
“분명 그위친도 나와 같은 상황일 거예요. 그러니, 그를 구하려면 서둘러야 해요.”
“…….”
말문이 막혔다.
구한다?
밀러는 지금 그위친이 살아 있을 거로 생각하고 있었다.
“…….”
“미스터 백. 어서요…!”
입 다물고 서 있자 그녀가 나를 종용했다.
그위친이 살아 있지 못할 거라고는 전혀 하지 않는 태도였다.
이 어둠 속에서?
말도 되지 않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어쩐지 그녀의 마음이 이해가 갔다.
나도 그랬을 것 같으니까.
태천이가 이 어둠 속 어딘가에 있다고 생각해본다면….
분명 이런 어둠에서도 살아 있다고 생각하고 말 거다.
막연하게.
아무 근거와 논리도 없이.
그저 그러길 바라는 심정으로.
“…알겠습니다.”
“고마워요!”
밀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는 함께 가겠다는 듯이 결연한 얼굴을 해 보였다.
방금까지 주저앉아서 숨을 헐떡이고 있었으면서 도움이 될 거로 생각하는 걸까.
하지만… 데려가지 않겠다고 해도 들을 표정이 아니었다.
무시하고 그냥 가버리는 것도 좋지 못할 것 같고.
그녀를 여기 혼자 두는 게 좋은 방법일 리 없었다.
놓고 가는 것보다 내 옆에 함께 있는 게 더 안전할 테고.
톡.
이마를 쳐서 세계수의 나무껍질을 써주었다.
당연히 체력과 마나도 채워줬다.
“아, 고마워요….”
“밀러. 어제 나한테 말했었죠.”
“……?”
“마법사는 언제나 냉정한 법이라고.”
“그랬었죠….”
내 의중을 파악한 밀러가 고개를 푹 숙이며 대답했다.
그녀는 아마 그위친의 숲을 가득 메운 어둠을 보고 무작정 날아든 것이 분명했다.
그위친이 걱정되어 냉정함을 잃은 것이다.
그 탓에 어둠 속에서 혼자 죽을 뻔했다.
냉정함을 잃지 않고 조금만 더 침착했다면 알아차렸겠지.
혼자서는 이 혐오스러운 어둠을 헤쳐나갈 수 없음을.
그리고 앨릭스가 그랬던 것처럼 교황청에 도움을 요청하고 나를 불렀을 거다.
“…실망하게 해서 미안해요.”
“실망? 그건 오해고요. 난 당신한테 그런 걸 한 적이 없거든.”
저 힘에 혼자 저항한 건 감탄할 만한 일이었지만, 그뿐이었다.
[세계수가 나뭇잎을 파르르 떱니다.] [지금 타이밍에 그런 말을 하느냐고 관리인을 나무랍니다.] [관리인의 저 입을 꿰매버릴 수 없다는 게 진심으로 안타깝다고 분통을 터뜨립니다.]“…하지만 그위친은 당신한테 기대를 걸고 있었죠.”
“……!”
분한 마음에 아랫입술을 깨물던 밀러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새싹이도 같은 마음이었는지,
[……!]이런 메시지를 보내왔다.
단순한 사실을 말했을 뿐인데 왜들 그렇게 놀라는 걸까.
내가 내 주변 사람들만 기대하는 것처럼, 밀러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도 나 같은 놈이 아니라 그위친에게 기대를 받고 싶겠지.
그러니까….
“나 말고, 그위친을 실망하게 하지 마요.”
“…네. 그렇게 할게요.”
밀러가 고개를 끄덕였다.
휘둥그레 떴던 눈도 원래대로 되돌아왔다.
평소의 자신감 넘치는 S급 헌터 알레딩 밀러로.
한결 보기 좋군.
저 얼굴이라면, 앞으로 무엇을 보게 되든 냉정함을 잃지 않을 것 같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별로 보여주고 싶지 않았지만.
새싹아.
그위친 지금 어디에 있어?
[세계수는 탐색한 결과 숲 한가운데에서 커다란 구덩이를 발견했다고 전합니다.] [다른 곳에선 그위친을 탐색하지 못했으니, 있다면 구덩이 속에 있을 것으로 추측합니다.]구덩이…?
아.
그러고 보니, 아바돈이 영원한 구렁텅이인 무저갱(無底坑)에서 태어난 놈이라고 했었다.
구덩이는 그 마족의 능력이 분명했다.
권속인 해골이나 원이 관련 능력을 쓸 수 있는 게 분명하다.
그위친이 거기 있을 거라는 새싹이의 추측이 맞겠군.
“실례.”
밀러를 안아 든 뒤 높이 뛰었다.
나보다 키가 컸던 탓에 조금 어색한 자세가 돼 버렸지만, 그래도 무기가 있는 높이까지 뛰어오를 수는 있었다.
무기가 살짝 몸을 틀어 내가 착지하기 쉽게 해주었다.
“고마워.”
「별 것 아니다. 구했으니, 이제 돌아가나?」
“아니.”
「그럼 저 혐오스러운 걸 없애려는 거겠군. 사막에서처럼 하면-」
“그것도 아니에요.”
「……?」
무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탓에 떨어질 뻔한 밀러가 다급하게 몸을 숙였다.
“우린 그위친을 도우러 갈 거예요.”
「아.」
무기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눈동자를 굴려 나를 바라봤다.
그 안에 담긴 속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서둘러 가주겠어?”
하지만 그냥 넘겼다.
혹시 또 모르지 않는가?
만에 하나, 와 같은 일이 있을지….
「…알겠다.」
무기는 탐탁지 않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고맙게도 군말은 덧붙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주었다.
구덩이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어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꿀꺽….”
밀러가 침을 삼켰다.
그럴 만도 했다.
우리 눈 앞에 펼쳐진 구덩이는 새카매서 깊이와 바닥이 가늠되지 않을 정도였다.
무저갱, 영원한 구렁텅이.
그 이름과 무척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리인. 이대로는 무리다.」
“응.”
곧바로 스마트폰을 들어 올렸다.
눈치 빠른 새싹이가 곧바로 주변의 흙을 보내왔다.
쏴아아…!
화면에서부터 강렬하게 내뿜어지는 흙이 구덩이로 쏟아져 그득 찬 어둠을 빠르게 정화해나갔다.
곧 아래로 들어갈 길이 뚫려 무기가 몸을 구불거리며 들어갔다.
구덩이가 워낙 컸기 때문에 몸의 크기를 줄일 필요도 없었다.
「깊군….」
계속해서 아래로 내려가던 무기가 무심코 중얼거렸다.
그 말대로 구덩이는 깊었다.
오늘 무기를 타고 구덩이까지 날아온 거리보다 구덩이의 깊이가 더 깊었다.
여전히 바닥도 가늠되지 않았기에, 위에서 새싹이가 그위친을 탐색하지 못한 것도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슬슬 세계수의 마나가 담긴 흙이 남아날지 걱정이 되는 순간,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경로 안내를 종료합니다.]새싹이의 경로 안내가 끝났다.
계속해서 내려갈 것 같던 구덩이에도 결국 바닥이 있었다.
마법으로 형성된 공간이 아니라 물리적인 공간이었으므로 당연했는데도 바닥이 있다는 게 새삼스러웠다.
빠지직!
무기가 번개를 뭉쳤다.
빛이 전혀 닿지 않을 정도로 깊었기 때문에 주변을 비출 수 있게 해준 것이다.
그 덕분에 우리는 구덩이 바닥을 살펴볼 수 있었다.
“……!”
그리고 구덩이의 바닥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