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430
제431화
“그위친…!”
밀러가 소리쳤다.
구덩이의 바닥에는 그위친이 정좌한 채로 있었다.
평소와 같이 명상을 하는 듯한 모습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고 말하는 듯했다.
그래, 그렇게 보였다.
머리에 왕관처럼 자라난 검은 뿔들이 없었다면 말이다.
“검은 뿔…?”
그것들을 본 밀러가 중얼거렸다.
던전의 마나가 짙어졌을 때 보스 몬스터에게 자라나는 현상이 어째서 그위친에게 나타난 것인지 의문을 품은 것이다.
그리고 그 의문이 그녀가 냉정함을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녀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그위친에게 달려가는 대신 검은 뿔에 대해 분석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럴 필요 없었다.
“무기야.”
「음?」
“밀러를 지켜줘.”
「알겠다.」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무기에게 부탁했다.
무기는 곧바로 몸의 크기를 조금 줄이고는 밀러를 보호하듯 칭칭 감았다.
그위친의 모습을 분석하던 밀러는 놀란 얼굴로 나와 무기를 돌아봤다.
왜 이러는 거냐고 묻고 싶은 얼굴이기에 대답해줬다.
“분석할 필요 없어요.”
“네?”
“예전에 본 적이 있거든요.”
“저걸, 본 적이 있다고요?”
“네.”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우크라이나의 체르노빌에서 봤었던 드라이어드의 모습은 기억에서 쉬이 지울 수 있는 편이 아니었다.
사실, 크라우드가 노린 게 그위친이었다는 말을 듣자마자 이런 일이 벌어졌을지도 모른다고 짐작했다.
크라우드가 그위친이라는 귀중한 자원을 겨우 마족 권속의 권속으로 만들 리가 없지 않은가?
그위친을 그렇게 쓰고 버리는 것은 자원을 낭비하는 것이고 비효율적인 짓이었다.
내가 놈들이라면 다른 목적으로 사용할 터였다.
이를테면….
마족을 강림시킬 그릇으로 쓴다든가.
“그럼… 지금 그위친은…?”
밀러가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내 표정을 보고 저 현상이 절대로 좋은 일이 아닌 걸 알아차린 거다.
“글쎄요….”
확실히 대답하지 않고 그위친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체르노빌에서 봤던 드라이어드는 이미 죽어 육신만 움직이는 상태였었다.
새싹이 표현을 빌리자면, 육신에 살의(殺意)만 가득 차 있었다.
공격만 퍼부어대는 인형 같은 존재로 전락했었던 거다.
“…….”
먼저 긍정적으로 짐작해 보자면, 크라우드의 계획은 실패했다.
마족이 그위친의 몸을 그릇으로 삼아 온전하게 강림했다면 이 구덩이에 놓아두고 갔을 리가 없었다.
함정일 가능성도 현저하게 낮다.
타인의 몸을 빼앗자마자 제 마음대로 가눌 수 있을 리 없었으니까.
무기도 영혼으로 차원을 넘는 일이니 한동안 본래의 힘을 100% 사용할 수 없는 페널티가 존재할지도 모른다고 했었다.
무엇보다 함정이었다면 우리 새싹이가 낌새를 알아차리고 조심하라는 경고를 보냈겠지.
그런 경고를 보내지 않는다는 건 눈앞의 그위친은 마족 같은 게 아니란 뜻이다.
즉.
그위친은 체르노빌의 드라이어드와 같은 모습이 된 거다.
긍정적으로 생각해서 말이다.
그러니 밀러가 아닌 내가 해야 한다.
그도 그걸 바라고 있을 테지.
“…….”
그위친의 몸이 미동했다.
명상하듯 무릎 위에 올린 손가락이 까딱였다.
“그위친…!”
밀러는 그 미세한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다.
소중한 이가 살아 있다는 희망이 얼굴에 담겼다.
하지만… 그 희망의 끈이 이미 끊어져 있다는 걸 나는 안다.
그위친이 텅 빈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
역시나.
“…아르카.”
오른손을 쫙 펼쳤다.
그런데….
“……?”
새싹이가 인벤토리에서 아르카를 꺼내주지 않았다.
새싹아?
멈춰 서서 허공을 바라본다.
새싹이가 주로 메시지를 띄우는 자리로, 잠시 후 푸르스름한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 [세계수가 나뭇가지를 갸웃거립니다.]푸르스름한 메시지창에서 새싹이가 얼떨떨해하는 게 느껴졌다.
새싹아, 왜 그래?
[세계수가 그위친에게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고 설명합니다.] [그위친의 마나도, 마족의 혐오스러운 마나도.] [텅 빈 것 같은 그에게서 느껴지는 것은 오직 예전처럼 영문을 알 수 없는 그리움뿐이라고 전합니다.]그게, 무슨 소리야…?
반문이 저절로 나오는 말이었다.
그위친의 마나가 느껴지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마족이 몸을 빼앗으려고 했으니 멀쩡하게 느껴진다면 그게 더 이상했다.
하지만 혐오스러운 마나마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말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럼 저 왕관처럼 자라난 검은 뿔은 대체 뭐란 말인가?
새싹이는 체르노빌에서 드라이어드의 머리에 자라난 징그럽게 많은 뿔에서 혐오스러운 기운이 느껴진다고 했었는데 말이다.
그런 의문을 중얼거렸을 때,
“…왔군요, 도운.”
그위친이 잠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좀 전까지 텅 비었던 눈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생기가 감돌았다.
이게 무슨…?
“…그위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간… 잘 지냈어요?”
“…….”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져 버렸다.
그위친이 나를 쳐다보고 내게 말을 건네다니.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지?
영문을 알 수 없어 메시지창을 바라봤다.
새싹이도 당황한 건 매한가지인 듯 메시지를 보내오지 않았다.
대신 뒤쪽에 있던 밀러가 울 것 같은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위친!”
“밀러. 너도 함께 왔구나.”
“무사해서, 무사해서 정말… 다행이에요…! 난, 나는 당신이 죽은 줄 알고…!”
“정확하게 본 거란다.”
“네…?”
“나는 죽은 게 맞거든.”
“…뭐라고요?”
밀러가 황당한 얼굴로 반문했다.
나도 그러고 싶었다.
죽은 사람이 왜 말을 하고 있냐고 따져 묻고 싶었다.
언데드라도 된 건가?
당치 않은 의문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런 거라면 아까 새싹이 주변의 흙을 뿌렸을 때 정화되어 사라졌을 거다.
“보시다시피, 나는 잘 지내지 못했답니다.”
그위친의 목소리가 점점 원래대로 되돌아왔다.
꼭 자다 일어난 사람 같은 모습이라서 어처구니가 없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이미 짐작하고 있을 텐데요.”
“짐작엔 늘 확인이 필요한 법이니까요.”
“그런가요?”
그위친이 고개를 갸웃했다.
물론, 내가 정말로 확인하고 싶은 건 딱 하나였다.
몸을 빼앗으려고 했을 아바돈을 어떻게 했는가.
그는 처음부터 설명했다.
“크리스마스에 크라우드가 찾아왔습니다. 이상한 기계장치들을 잔뜩 갖고 왔는데, 그걸 가동하니 어둠이 금세 숲을 덮어버리더군요.”
그랬겠지.
헤미스파이리움은 세 개만으로 제주도를 뒤덮었을 수 있었다.
그런 게 수십 개나 있었으니, 그위친의 숲을 뒤덮는 건 시간문제도 되지 않았을 거다.
“헤미스파이리움이에요.”
밀러가 가까이 다가오며 가르쳐주었다.
그위친의 상태가 괜찮아 보이니, 무기가 다가올 수 있도록 비켜준 거다.
“그게 그런 이름이었구나.”
“마족 에너지란 걸 발사하는 장치인데, 그것에 맞으면 몸이 마족의 권속처럼 변해버려요.”
“아아…. 그래서 그 아이들이 이성을 잃었던 것이구나….”
그위친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 아이들은 그와 함께 지내던 몬스터들이 분명했다.
인간마저 권속이 돼버리는 힘이니 몬스터들은 더 쉽게 영향을 받았을 거다.
그리고 그 아이들은 분명….
“도운 덕분입니다.”
“네?”
“그대가 준 엘릭서 덕분에 아이들의 정신을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었어요.”
“이 미친놈이….”
“네…?”
그위친이 당황한 듯 눈을 살짝 크게 떴다.
아.
내가 나도 모르게 욕을 입 밖으로 내뱉었나 보다.
뭐, 진심이었으니 정정하지는 않았다.
그 먹으라고 준 것이었는데, 다른 놈들을 주면 어떡한단 말인가.
“후후….”
그위친은 웃으면서 고개를 돌려 무기를 쳐다봤다.
그 동작만으로도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 수 있었다.
그럼 너는 무기가 위험할 때 엘릭서 주지 않을 거냐고 묻는 거다.
그야, 당연히, 주겠지.
엘릭서보다 무기가 훨씬 소중하니까.
“쯧….”
하지만 아니꼬운 마음이 어디 가는 건 아니어서 인정하지 않고 혀만 차댔다.
그위친이 또다시 후후 웃었다.
뭘 잘했다고 웃어?
“밀러. 그 아이들은 원래 있던 곳으로 돌려보냈단다.”
던전으로 돌려보냈다는 뜻이다.
그곳들은 그위친의 축소 능력으로 작아져 있을 테고, 따라서 던전의 마나가 짙어지며 검은 뿔이 자라나는 일도 발생하지 않을 거다.
“인간들을 먼저 공격할 일은 없을 테니 앨릭스에겐 가만 내버려 두면 된다고 전해주렴.”
“…왜요?”
“응?”
“왜 전해달라고 하는 거예요? 그위친은… 지금 살아 있잖아요? 직접 전하면 되는 거잖아요!”
“아까도 말했지. 난 이미 죽었다고.”
“대체 그게 무슨-”
“아니. 새로 태어났다고 보는 게 옳을까….”
“그위친…?”
밀러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아마 나와 같은 의문을 느끼고 있겠지.
새로 태어났다.
저게 무슨 의미인지 말이다.
“숲을 뒤덮은 어둠은 곧 내게 몰려들었지….”
그는 우리의 의문을 알아차렸을 텐데도 말해주지 않았다.
그저 이곳에서 벌어졌던 일에 대해 다시 설명해나갔다.
“그것이 내 몸으로 들어오고 들어올 때마다….”
터엉.
그위친은 검지로 머리 위에 돋아난 검은 뿔을 쳤다.
뿔은 속이 텅 빈 듯 공허한 소리가 났다.
원래 검은 뿔에서 저런 소리가 났던가?
아니, 드라이드의 머리에 자라난 검은 뿔들에선 저런 소리가 나지 않았다.
혐오스러운 기운으로 가득 차 있었으니까.
그렇다면….
“이것들이 자라나면서 구덩이가 점점 깊게 파였습니다. 이 바닥이 생겨났을 때쯤엔, 미지의 존재가 내 몸으로 흘러들어온 후였죠. 그 존재는-”
“아바돈….”
“맞아요. 그 존재는 자신을 마족이라고 소개했습니다. 태초의 파괴자이며, 세계수를 죽인 멸망과 파멸의 왕이라는 말과 함께요.”
“…그리고?”
“그리고… 잠시 고민했죠. 싸울지 친구가 되자고 말할지.”
“뭐?”
“그런데 싸워야겠더군요. 친구가 되기에 그 존재는 너무 이기적이었거든요.”
그야 그렇겠지, 마족인데.
마족에게 친구가 되자고 말할까 고민했다니 제정신인가?
심지어 몸을 빼앗기는 와중인데.
「…관리인. 아무래도 더 힘을 내야 할 것 같다.」
“대뜸 무슨 소리야?”
「방금 세상에서 가장 나사 빠진 인간 자리를 빼앗길 뻔했거든.」
“…필요 없어, 그딴 거. 얼마든지 빼앗길래.”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뭐?”
「아직까진 관리인의 정신 나간 짓이 우위에 있으니.」
“아니, 내가 대체 뭘 했다고?”
「…….」
무기는 말없이 고개를 살짝 내렸다.
내 왼쪽 옆구리를 향해서.
흠, 흠.
“…그래서? 아바돈과 싸운 겁니까?”
“네. 정신 속에서 몸을 차지하기 위해 싸웠죠.”
“대체 어떻게 이긴 겁니까?”
“못 이겼어요.”
“……?”
“지지도 않았고요.”
이기지 못하고 지지도 않았다.
그건, 결과를 내지 못했다는 뜻이었다.
이유는….
“…몸이 버티지 못한 겁니까?”
“바로 맞혔어요.”
그래서 검은 뿔에서 텅텅거리는 소리가 났던 거군.
즉, 아바돈은 그위친을 차지하지 못한 게 아니라 안 한 거다.
두 영혼 간의 싸움을 버티지 못한 몸이 파괴돼버릴 걸 알아차린 아바돈이 스스로 물러난 것이다.
머지않아 파괴될 몸 따위로 넘어오고 싶진 않았겠지.
일단 넘어온 후 다른 그릇으로 넘어가는 방법도 있겠지만… 글쎄? 몸을 바꾸는 게 그리 연달아서 할 수 있을 만큼 쉬운 일일 리가 없었다.
온 세상이 크라우드를 찾으려고 혈안인 상황도 한몫했겠지.
그런데….
“대체 그위친은 어떻게 마족과 싸울 수 있었던 겁니까?”
그위친이 대단한 사람이라는 건 인정한다.
하지만 차원을 넘어올 정도로 대단한 마족이 침투했는데 정신을 온전히 유지하고 싸우기까지 한 것은 쉬이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드라이어드조차 버티지 못하고 정신이 파괴돼버리지 않았던가?
“내게 흐르는 피 덕분이에요.”
“피요…?”
“그건 내가 도운에게 그리움을 느끼는 이유이기도 했죠.”
“……?”
대체 무슨 피가 흐르기에 이유가 되는 걸까.
궁금한 마음에 한쪽 눈을 찌푸리자, 그위친이 개구쟁이 같은 미소를 짓고 말했다.
“나는 세계수 관리인…의, 먼 후손이었거든요.”
네?
잘 못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