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428
제429화
숲을 뒤덮은 어둠은 부정(不正)했다.
끓어 넘치고 흘러내리며 주위를 잠식해 나갔다.
앨릭스 매그너스 협회장은 그 어둠을 보며 치를 떨었다.
“끄윽….”
다가갈 엄두조차 나지 않는 어둠을 보고 있노라니, 가라앉아 있던 오래된 과거가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기억들은 농담으로라도 지나고 보니 추억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한쪽으로 치워버리고 싶은, 평생토록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들이었다.
하지만 자꾸만 떠올랐다.
기억들이 숲을 잠식한 어둠처럼 그의 머릿속을 마구 헤집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별.
어깨를 나란히 했던 동료의 희생.
그의 등 뒤를 따라오던 후배의 배신….
머릿속에서 끓어오르는 기억들이 형상화한 듯 앨릭스의 눈에서 주룩 흘러나왔다.
맑지도 붉지도 않은 탁한 눈물은 새카맸으나 그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 순간,
“어둠에 당신의 어린 양들이 있나이다. 이렇게 비나니, 제게 어린 양들을 밝힐 빛을 인도하소서.”
견실한 목소리가 나지막이 들려왔다.
삐이이이….
귓가에 이명이 울리는 듯한 소리가 나면서 등 뒤에서부터 새하얀 빛이 지나쳤다.
앨릭스 협회장은 자신을 지나쳐 간 빛이 새벽의 어스름처럼 어둠을 몰아내는 모습을 망연히 지켜봤다.
“……!”
그러다가 무언가를 깨닫고 뒤를 돌아봤다.
뒤쪽에는 어느새 왔는지 모를 교황청 사제들이 하얀빛을 뿜어내며 서 있었다.
방금 기도의 주인은 사제들 가운데 맨 앞에 선 사제였다.
그는 그녀를 단번에 알아봤다.
“이자벨 성녀…?”
앨릭스 협회장이 당황스러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광활한 숲을 뒤덮은 어둠을 발견하자마자 앨릭스는 교황청에 도움을 요청했었다.
저런 어둠을 분석하고 제어하며 몰아내는 것이 그들의 특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설마 교황청에서 성녀를 보내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새해 첫날인 오늘 그곳에서 가장 바쁜 사람은 교황과 성녀 두 사람이기에.
“당신이 여길 어떻게…?”
“역시… 제 미숙한 기도로 몰아내는 것은 무리군요.”
이자벨 성녀가 쓰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그 말에 앨릭스 협회장은 다시 숲을 바라봤다.
빛이 지나간 숲에서는 아까처럼 심하지는 않았으나 어둠이 여전히 들끓고 있었다.
마치 숲의 그늘에 도사린 채 사냥감을 노리는 새카만 짐승같이.
“…닦으세요.”
이자벨 성녀가 다가와 품에서 손수건을 꺼냈다.
새하얀 손수건을 내려다보던 앨릭스 협회장은 그제야 자신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음을 알아차렸다.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들 때문에 그런 것임을 깨달은 그가 헛기침을 몇 번 했다.
이어 뒤늦게 쫓아온 민망함을 지우려는 듯 두꺼운 손가락으로 눈물을 훔치는데,
치이익…!
생각지도 못한 소리가 들려왔다.
손에 묻은 탁한 눈물이 숲의 어둠처럼 끓어오르고 있었다.
“이, 이게 무슨…?”
앨릭스 협회장이 당황해 중얼거렸다.
그걸 털어내려는 그의 손목을 이자벨 성녀가 부드럽게 붙잡았다.
그러고는 내밀었던 손수건으로 조심스럽게 닦아내 주었다.
끓던 어둠은 손수건에 닿자마자 그 탁한 색을 잃어버렸다.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는 무저갱의 어둠이에요.”
“무저갱…?”
“너무 멀어 빛마저 닿지 못하는 곳의 어둠이죠. 이걸, 실제로 보게 될 줄은 몰랐네요.”
“…즉. 성녀께선 저것이 무엇인지 잘 아신다는 거로군.”
그리 말하며 앨릭스 협회장은 숲을 바라봤다.
그가 교황청에 도움을 요청했던 것은 저것을 없애는 동시에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이자벨 성녀가 그의 눈에서 흘러내린 탁한 눈물도 마저 닦아냈다.
“…고맙소.”
“천만에요.”
“저게 정확히 무엇이오?”
“설명해 드리기에 앞서, 동료분들에게 뒤로 물러나라고 해 주겠어요? 다른 분들도 협회장님처럼 어둠에 잠식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 그렇군. 지금 바로 그러도록 하지.”
앨릭스 협회장은 곧바로 소리쳐 명령을 내렸다.
세계 헌터 협회 직원들은 기뻐하며 뒤로 물러났다.
몇몇은 홀가분한 표정마저 지어 보였는데, 그들이 지금껏 지켜보던 어둠이 무척 꺼림직했던 탓이다.
그 와중에 물러나란 소리를 들었으니 어찌 기쁘지 않을 수 있을까.
“이제 된 것 같군.”
물러난 이들을 보던 앨릭스 협회장이 말했다.
설명을 요구하는 얼굴로 성녀를 바라봤다.
“태고(太古)에 바닥이 없는 구렁텅이에서 혼자 태어난 존재가 있었습니다.”
“……?”
앨릭스 협회장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의 말이 뜬금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숲을 가득 메운 어둠이 무엇이냐고 물었는데, 왜 갑자기 태고의 존재에 대해 논한단 말인가?
설마 성서에 관한 얘기라도 하려는 걸까.
미심쩍은 얼굴로 차츰 변해갈 때쯤, 이자벨 성녀가 신중하게 말했다.
“혼자 태어난 그것이 자신에게 스스로 붙인 이름은 아바돈(Abaddon).”
“아바돈…? 성서에서 나오는 괴물이군. 아마 요한계시록에 나왔었지.”
“그걸 아시나요?”
“예전에 읽은 적 있거든. 지금은 치워버렸지만.”
“…….”
이자벨 성녀가 조용히 쓴웃음을 띠었다.
그건 신을 믿지 않는 그에 대한 아쉬움도, 성서를 치워버렸다는 데에 따른 불만도 아니었다.
신을 믿으려고 노력했으나 만나지 못한 그의 노력이 진심으로 안타까웠을 뿐이다.
“아무튼. 아바돈 얘기는 왜 꺼낸 거요?”
“그게 바로 마족의 이름이거든요.”
“……!”
앨릭스 협회장이 숨을 헉 들이켜며 어둠으로 뒤덮인 숲을 바라봤다.
저 어둠이 마족의 힘이라고?
정말로 그렇다면, 저런 짓을 누가 저질렀는지는 자명한 일이었다.
마족의 권속이라고 자칭하는 조직이 있었으니까.
“크라우드….”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린 그는 그제야 깨달았다.
온 국가가 전 세계를 뒤지고 있는데 찾아낼 수 없었던 이유.
크라우드는 바로 이곳에 있었던 거다.
그가 단 한 번도 찾으려고 들여다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곳에.
“크라우드가 노리고 있던 게, 그위친이었다…?”
앨릭스 협회장의 당혹스러움이 말로서 흘러나왔다.
에디탓 그위친.
그가 누구인가?
전력은 아니었다지만 같은 S급 헌터인 알레딩 밀러와 리롄제와 막심 스미르노프를 혼자서 몰아낸 위업을 보인 인간이었다.
그 이후 세계 최강의 사나이라고 불리게 된 인간을 크라우드가 노렸다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크라우드가 오만에 빠져 아주 멍청한 짓을 저질렀다고, 앨릭스는 그리 생각했을 것이다.
눈앞에 있는 그위친의 숲이 어둠으로 들끓는 모습을 보지 않았다면 말이다.
“이자벨 성녀. 그럼 그위친은…?”
“…….”
앨릭스 협회장의 질문에 이자벨 성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침묵이 충분한 대답이 되었다.
즉, 오만에 빠져 있던 건 바로 그였다.
크라우드가 그위친을 노릴 리 없다고 단정 짓지 말아야 했고, 다른 이들이 그럴 리 없다고 말하더라도 그는 가정했어야 했다.
그러라고 앉아있는 게 세계 헌터 협회장이라는 자리였으므로.
“…헉! 이럴 때가 아닌데! 도와주시오, 이자벨 성녀!”
앨릭스 협회장이 문득 떠올랐다는 듯 소리쳤다.
이자벨 성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려고 왔으니 당연하죠. 걱정하지 마세요. 이제부터 저희가 저 숲의 어둠을 몰아낼-”
“아니! 그걸 도와달란 게 아니오!”
“네…?”
“지금, 저 숲엔 밀러가 들어가 있소!”
“뭐…라고요?”
이자벨 성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대체 왜 저기에 들여보냈냐고 나무라는 듯한 태도에 앨릭스는 헛웃음을 흘리며 변명하듯 말했다.
“내가 말릴 새도 없었소…. 밀러가 저걸 보자마자 곧장 날아 들어갔거든.”
“아….”
이자벨 성녀가 탄식을 흘렸다.
밀러는 어제부로 세상에 7명밖에 없게 된 S급 헌터였다.
앨릭스 협회장을 포함해 이곳에서 그녀를 멈춰 세울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죄송해요.”
“죄송이라니…?”
“저희는 저곳에 들어갈 수 없어요.”
“그, 그게 무슨 소리요? 방금 저걸 몰아내겠다고 하지 않았소?”
“몰아내는 건 가능해요. 하지만 저기에 들어가는 건 무리예요.”
“무리라니…. 몰아내면서 들어가면 그만인 일 아니오?”
“…최대한 빨리 몰아낼게요.”
이자벨 성녀는 그의 의문에 대답해 주지 않았다.
대답하고 설명하는 시간에 차라리 빨리 몰아내는 게 낫겠다고 판단한 거다.
그 사실을 알기에 앨릭스 협회장도 더는 질문하지 않았고, 성녀를 포함한 사제들의 방해가 되지 않도록 뒤로 물러났다.
“…….”
앨릭스 협회장은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숲을 바라봤다.
밀러가 무사하길 바라는 동안, 다행히 성녀와 다른 사제들의 몸에서부터 뿜어져 나온 새하얀 빛이 숲의 어둠을 빠르게 몰아냈다.
단 하나 문제가 있다면….
그건 바로 그위친의 숲이 덩치 큰 A+등급 몬스터들의 서식지로 쓰이는 만큼 광활하다는 것이었다.
저 속도라면 적어도 몇 시간은 걸릴 게 분명했고, 그럴수록 밀러가 무사할 가능성은 현저히 낮아졌다.
그 순간, 맨몸의 나무들이 앨릭스 협회장의 눈에 띄었다.
방금까지 들끓던 어둠에 뒤덮여 있었는데도 숲의 나무들은 멀쩡해 보였다.
초록의 빛깔은 잃어버린 채였으나 그 기둥과 가지들은 지금도 꼿꼿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라고 말하는 듯이.
자연히 앨릭스 협회장의 머릿속에 한 남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꽁지머리가 잘 어울리는 그 남자는 제 무기를 들고 말했었다.
“이건, 세계수의 나뭇가지로 제작한 무기입니다.”
세계수의 나뭇가지로 만들었기에, 마족의 마나를 정화할 수 있다고.
저 숲의 들끓는 어둠 또한 가능하리라.
왜 바로 생각해내지 못했을까.
앨릭스 협회장은 자신의 멍청함을 나무랐다.
오만했던 데다가 머리도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니!
이제 그만 협회장 자리를 내려놓아야 할 때가 된 게 분명했다.
그는 반성하면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몇 번의 착신음이 울린 뒤 상대방이 전화를 받았다.
– 여보세요?
“도운, 나 좀 도와주게…!”
– 어라…?
수화기에서 도운이 당황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시간이 부족한 탓에 앨릭스는 간략하게 본론을 말했다.
“크라우드가 노리던 게 누구인지 알아냈네.”
– …어디로 가면 됩니까?
도운이 다른 설명을 요구하지 않고 대답했다.
그 순간, 앨릭스 협회장은 그의 목소리가 믿음직스럽다고 생각했다.
알고 지낸 후 처음으로.
***
놀라웠다.
설마 크라우드가 그 많은 헤미스파이리움을 들고 나간 게 한 국가를 전복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니.
하지만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었다.
그위친을 상대하는 거라면, 나 같아도 그러겠다.
「…관리인.」
나를 부르는 무기의 목소리에 상념에 빠져나와 광활하게 펼쳐진 숲을 바라봤다.
미국이 확실히 땅덩어리가 크긴 크다.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그위친의 숲은 한눈에 다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드넓었다.
그리고….
“설마, 저 새까만 게 다 마족의 마나야?”
숲의 어둠을 보자 입이 절로 중얼거렸다.
크라우드 이 미친놈들….
최동훈이 말했던 헤미스파이리움 수십 개의 위력은 몸서리가 쳐질 만했다.
[세계수가 나뭇가지를 끄덕입니다.] [숲에서 마족의 혐오스러운 기운이 느껴진다고 설명합니다.] [마족 권속들의 존재감은 느껴지지 않는다고 덧붙입니다.]저 모습을 보니 새싹이의 표현이 이해가 간다.
벌레가 우글거리는 것처럼 보이는 저걸 보고 어떻게 혐오스럽다고 말하지 않을 수 있을까.
「관리인.」
“응?”
「협회장이 있는 곳이 저곳인 것 같다.」
무기가 고개를 돌렸다.
그곳은 숲의 한쪽으로 흰빛이 은은하게 뿜어지고 있었다.
도희의 빛과 비슷하게 느껴지는 마나 덕분에 교황청 사제들도 저곳에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무기 말대로 앨릭스가 있는 곳이 저기겠군.
“무기야.”
「알겠다.」
무기는 곧장 그곳까지 날아가 주었다.
가까워지자, 흰빛을 뿜어내는 교황청 사제들 가운데 이자벨 성녀가 보였다.
그녀의 일행과 앨릭스가 나를 올려다보며 놀란 얼굴을 지어 보였다.
연락한 지 30분도 안 됐는데 도착한 것에 놀란 모양이다.
놀라긴.
워프 게이트를 탄 데다가 무기가 태워줬는데 당연한 거지.
“흠.”
이자벨 성녀를 중심으로 교황청 사제들이 뿜어내는 빛을 바라봤다.
빛은 어둠을 열심히 몰아내고 있었지만, 그 노력이 무색하게도 상황은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다.
저 속도로는 몇 시간이 아니라 며칠 단위가 될 터였다.
일단 저 어둠부터 없애야겠다.
그래서 나는,
[세계수가 자기 주변의 흙을 관리인에게 전송합니다.]일단 스마트폰을 들어 흙부터 뿌리고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