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446
제447화
시간이 흘러 17일이 되었다.
그동안 한재임을 시작으로 일곱 명이 마호를 통해 잔뜩 사들인 영약을 받아들였다.
안타깝게도 가위바위보로 마지막 순서가 된 박건영과 최준석은 마호에 앉지 못했다.
지금까진 나도 녀석들도 미뤘지만, 이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그럴 수 없었다.
오늘이나 내일 두 놈이 영약을 흡수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겠다.
그래도 미뤘던 덕분에 A등급 게이트를 전전해,
[결실 저장고 – 80% 이상]결실 에너지를 이만큼이나 채울 수 있었다.
베르동 협곡 게이트의 브레이크 날이 25일 언저리였으니….
아직 일주일 넘게 남았다.
충분히 100%를 채워 두 번째 결실을 볼 수 있을 터다.
시간상 엘릭서를 만들 수 없다는 점은 아쉽지만, 최상급 포션과 버프 포션 등을 만들 시간은 되겠지.
그리고 그때쯤이면 재이의 헤미스파이리움 개조도 마무리될 것이다.
마호에 앉혀 억지로 안마를 받게 해 재웠던 다음날, 푹 자고 일어난 덕분인지 그녀는 막혔던 부분이 뻥 뚫렸다고 밝혔다.
머리가 팽팽 돌아간다고 해맑게 말할 때의 목소리가 얼마나 귀엽던지.
[세계수가 관리인을 흐뭇하게 바라봅니다.] [두근두근한다고 전합니다.]두근두근은 무슨….
그 통화 이후로 나는 게이트를 전전하고 재이는 대장간에 처박혀서 만나지도 못했는데.
“결국 데이트도 못 했고….”
그리 중얼거리며 스마트폰을 내려다봤다.
진동이 울린 탓이다.
화면엔 새싹이 모습 대신 이름이 떠올라 있었다.
앨릭스 협회장이다.
– 도운. 성장은 잘 되고 있나?
전화를 받자마자 앨릭스 협회장이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서는 다급함이 느껴졌다.
성장이라….
명제 마법을 쓸 수 있겠냐고 묻는 것이 분명했다.
안타깝게도,
“안 될 것 같습니다.”
토벌 날까지 명제 마법을 쓸 만큼 성장할 수는 없었다.
스마트폰을 한 시도 떼어놓지 않고, 메스트 일행이 열심히 알테라-쇼넴을 썼는데도 무리였다.
특히 살아남기 위해 누구보다 애쓰는 흐레이스가 평소와 달리 대충하지 않고 최선을 다했는데도,
[캐릭터 창] [MP – 6000만/1억2000만(50% 상시 공유 중)]변동은 없었다.
나뭇가지는커녕 나뭇잎 한 장도 자라지 않았다.
성장 자원 필요치가 엄청나게 증가했다고 해도 이건 이상했다.
아무래도… 며칠 전 성역에 잠시 들어 파트리아에게 물어봤을 때 들었던 짐작이 맞는 것 같다.
새싹이가 너무 안 자라는 것 같다는 질문에 파트리아는 “확언은 드릴 수 없겠습니다만…”이라는 말을 시작으로 대답했었다.
“그간 세계수님이 너무 빨리 성장한 탓이 아닌가 싶습니다. 싹을 틔운 지 1년도 안 됐는데 이렇게 어엿한 세계수로 자라나신 것은 사실 정상적인 성장 속도가 아닙니다.”
그 말을 하고 난 이후 파트리아는 송구스럽다는 듯 고개를 숙이고 덧붙였다.
“물론 관리인님의 노력을 폄하하려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관리인님께서 애쓰시고 있다는 건 제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으니까요.”
-라고 말이다.
그땐 긴가민가했는데….
상황이 이러니 파트리아의 예상이 맞는 것 같다.
– 그런가….
앨릭스 협회장이 안타까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의 아쉬움은 이해하지만,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블랙 드래곤 토벌 날까지 더 이상의 극적인 성장은 없을 것이다.
그나마 오만을 잡은 덕분에 가지치기할 수 있었다는 게 다행스러운 부분이었다.
– 오만 때처럼 분노와 나태를 붙잡는 건 어떻겠나?
“아. 그쪽은 안 돼요.”
– 안 된다니?
“예전에 서로 건드리지 말자고 합의했었거든요.”
합의한 것은 천칭 길드의 서지혁이었지만….
나태와 분노는 그 서지혁과 동맹 관계였으니 건드릴 수 없었다.
합의를 우회하는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그걸 생각하기엔 시간도 상황도 여의치 않았다.
– 왜 그런 합의를….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대충 둘러댔다.
호기심에 졌다고 어떻게 말해?
– 끄응….
앨릭스 협회장이 골이 아픈 듯 신음을 흘렸다.
흠?
어째 내가 나태와 분노를 붙잡지 못하는 것 때문에 그러는 것 같지가 않았다.
“무슨 일 있습니까?”
– 아…. 그게 사실, 러시아가 결국 불참을 결정했네.
“저런. 설득에 실패했군요?”
– 설득이라…. 들을 생각도 없는 자들에겐 어떤 말도 안 통하더군.
“아아….”
그렇겠지.
아무리 옳은 말이라도 들을 생각조차 없는 사람에겐 소귀에 경 읽기일 뿐이니까.
스미르노프의 불참이 확실해진 그런 상황에서 내가 명제 마법을 쓸 수 있을 만큼 성장할 수 없다고 했으니….
그가 골 아픈 신음을 흘릴 만도 했다.
– 참 야속하군. 그위친이 밀러와 그녀의 학생들에게 마법을 가르쳐 주고 있는데 말이야.
“그위친이요?”
– 우리 상황을 전해 듣곤 어떻게든 도움이 되고 싶은 모양이야. 얼마 활동하지 못하는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 가르쳐주고 있네.
“발전이 좀 있습니까?”
– 엄청나게. 밀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성장하고 있지.
“그렇군요….”
정말 야속하다고 할 만도 하군.
그들이 그렇게 애쓰더라도, 블랙 드래곤은 마법 봉인을 쓸 수 있기에 별 도움이 되지 못할 터다.
소용없을 테니 그만두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 아, 참. 블랙 드래곤 토벌은 25일로 결정됐네. 24일쯤 모인 후 다 함께 게이트에 진입할 계획이고.
예상했던 날짜였다.
다들 그 날짜에 맞춰 준비 중이기도 했고.
“알겠습니다.”
– 그럼… 24일 날 보도록 하지. 계획에 변동이 생기면 다시 연락하겠네.
“네.”
그 말을 끝으로 그는 전화를 끊었다.
화면에 통화 종료 문구가 떠올랐다가,
“응?”
진동하면서 금세 바뀌었다.
[받지 마, 받지 말라고, 미친 새끼야!]도희 전화였다.
언제 올 거냐고 물어보려는 건가?
“여보세요?”
– 드디어 받았네. 대체 누구랑 그렇게 통화를 하고 있었어요?
“앨릭스 협회장이랑. 스미르노프가 결국 토벌에 불참한대.”
– 아, 그래요.
스미르노프가 지랄하고 끊었을 때 이미 예상했던 일이기 때문일까.
도희는 별로 놀라지 않은 듯 심드렁했다.
“토벌 날짜도 25일로 결정됐고. 아, 그리고 그위친이 밀러한테-”
– 그건 됐고요.
“어?”
– 지금 어디 있어요? 아니. 어디에 있든 서둘러 돌아와요.
“…왜? 나 뭐 잘못했어?”
– 그런 게 아니라, 지금 백운천에 원장님이 오셨어요.
“원장님? 아줌마 말이야?”
– 네!
“……?”
믿을 수 없는 소리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우리 아줌마는 보육원 붙박이로 내가 입원했을 때조차 잠깐 들렀다 돌아갔던 사람이었다.
처음 길드 건물을 샀을 때도 찾아오지 않았고, 신논현 쪽으로 건물을 옮긴 후 이전 파티를 열었을 때도 직접 오지 않고 정 세실리아 수녀를 대신 보냈었다.
그뿐인가?
학창 시절 귀신같이 알고 나를 찾아내던 상황에서도 내가 사고를 칠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보육원에서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런 아줌마가 지금 백운천에 와 있다고?
– 그러니까 빨리 돌아와요. 원장님이 오라버니 기다리니까.
“어, 음…. 알았어.”
내 대답과 동시에 전화가 끊겼다.
또다시 떠오른 통화 종료 문구를 멀거니 바라봤다.
이게 뭔 일이래?
***
문을 열려는데 새싹이가 의문을 표했다.
왜 그래?
[세계수는 관찰을 시작합니다.]뜬금없이 웬 관찰?
…응?
새싹아?
저기요?
“……?”
아무리 불러봐도 새싹이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관찰에 온 신경을 다 쏟고 있기 때문인 걸까.
흠….
관찰이 끝나면 말하겠지.
그리 생각한 후 문을 열었다.
끼익.
문을 열자 난생처음 보는 광경이 펼쳐졌다.
최 클라우디아 수녀, 그녀가 태천이 사무실에 앉아 있는 것이다.
보육원이 아닌 곳에 앉아 있는 아줌마라니 어울리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어색하다.
어색한 건 나뿐만이 아닌 듯하다.
아줌마 맞은편에 앉아 있는 도희, 태천이, 한재임 모두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저 웃음을 본 적이 있다.
학교 다닐 때였던가?
같은 반 녀석들이 제 부모가 학교에 찾아왔을 때 저렇게 민망하게 웃곤 했었다.
“왔어?”
세 사람 모두 머쓱함을 느끼고 있던 탓일까.
문을 열고 들어온 나를 가장 먼저 반긴 건 사무실의 주인인 태천이가 아니라 아줌마였다.
아줌마는 두 손을 녹이려는 것처럼 따스한 김이 올라오는 커피잔을 꼭 쥐고 있었다.
“…웬일이에요?”
“웬일은. 내가 뭐 못 올 데 왔니?”
“그런 뜻으로 한 말 아닌 거 알면서 그런다.”
털썩.
아줌마 옆에 앉았다.
자연스럽게 맞은편에 앉은 세 사람의 모습이 더 잘 보였다.
불안한 듯 어찌할 바를 모르는 놈들을 봐서 그런가?
방금까지 내가 느끼던 어색함이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보육원에 있는 것처럼 편한 마음으로 아줌마에게 물었다.
“또 악몽이라도 꿨어요?”
“…비슷해.”
“무슨 꿈인데요?”
“…….”
아줌마는 말할 수 없다는 듯 입을 다물었다.
그럼 왜 왔어요?
-라는 말이 나오려다 턱 끝에서 멈췄다.
내가 할 말을 순식간에 알아차린 도희가 째려보지 않았다면, 분명히 그리 말했을 거다.
아줌마가 침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너희한텐 피해가 가지 않을 거야….”
“……?”
대체 어떤 꿈이기에 이러는 거람.
아니, 그보다 피해라니.
아줌마가 우리한테? 내가 아니라?
“난… 내 눈으로 직접 봐야 할 것 같았어….”
“뭐를요?”
“내 과거의 실수…. 그래서는 안 됐었는데….”
“……?”
이게 대체 뭔 소리야?
지금 나만 이해 못 하는 건가?
그리 생각하고 맞은편을 바라보자, 나처럼 이해하지 못해서 멍한 얼굴을 짓는 태천이가 보였다.
저놈이 이해할 거라고는 애초에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우리 길드에서 가장 똑똑한 녀석 중 하나인 한재임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연신 갸웃거린다.
도희는 뭔가 짐작한 얼굴인데….
이걸 나만 모르는 상황은 아니라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달그락.
아줌마가 따스한 김이 나는 커피잔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창밖을 바라봤다.
“시간이 됐네….”
“시간? 그게 무슨-”
그 순간,
[세계수가 혐오스러운 기운을 느꼈습니다.]새싹이가 메시지를 보내왔다.
혐오스러운 기운이라니.
설마 서울 한복판에, 그것도 세계수 관리인인 내가 있는 이곳에 크라우드가 나타났다는 소리야?
새싹이를 향해 묻는데,
“얼씨구? 하늘이…?”
태천이의 얼빠진 목소리가 들렸다.
중얼거린 대로 하늘이 이상했다.
밝았던 한낮의 하늘이 어둑해졌다.
들끓는 어둠이 아주 높은 곳에서부터 내려오고 있었던 탓이다.
머릿속에서 그위친의 숲이 떠올랐다.
설마… 이 새끼들이 그위친의 숲에서 했던 짓을 서울에다가 하려는 건가?
“오라버니. 저거 혹시-”
“맞아. 크라우드.”
“저놈들이 갑자기 왜…?”
“도운이라고 알겠어?”
태천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곧바로 자신의 장비를 착용했다.
그 모습에 도희와 한재임도 싸울 준비를 시작했다.
난 방금 게이트에서 돌아왔기에 그럴 필요가 없었다.
곧 장비를 모두 착용한 태천이가 말했다.
“원장님. 여기에서 기다려줄래요? 잠깐 다녀와야 할 것 같아요.”
“…….”
아줌마는 태천이를 빤히 바라봤다.
왜 저렇게 바라보는 거지?
그런 의문이 우리 머릿속에 떠오를 때였다.
우르르 쾅!
온통 새카만 하늘에 날벼락이 쳤다.
먹구름이 낀 것도 아니고, 비가 내리기 시작한 것도 아니었다.
그런 하늘에 날벼락이 연달아 떨어진다는 것은… 한진환이 왔다는 뜻이었다.
“허, 이 인간은 어떻게 알고 온 거야?”
당황스러움에 중얼거리는데,
“미안해. 뇌제….”
원장 아줌마가 울 것 같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