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445
제446화
원탁에 홀로 앉은 해골은 사진을 보고 있었다.
S급 헌터인 알레딩 밀러가 푸른 나무 한 그루 앞에 서 있는 모습이 찍힌 사진이었다.
또 그녀를 ‘교수님’이라고 부르며 따르는 제자들이 함께 찍힌 사진도 여러 장 있었다.
끼익….
해골이 차례차례 사진을 넘기며 보던 와중 원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어딘가 불편한 듯 제대로 걷지 못하는 원은 힘겹게 해골의 맞은편으로 가 앉았다.
톡.
해골이 들여다보던 사진을 던지듯 내려놓고 물었다.
“몸은 좀 괜찮나?”
“많이 나아졌네….”
“큭큭…. 그위친이 난 놈은 난 놈이야. 정신 속에서 그분을 상대하면서 우리와 싸우고 자네에게 큰 상처까지 남기다니 말이야.”
“난 놈은 무슨…!”
원이 이를 악물었다.
몸에 힘이 들어간 탓일까?
곧 신음을 흘리며 오른 옆구리를 부여잡았다.
그러면서도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그분의 그릇으로 쓸 몸이니 전력을 다할 수 없었을 뿐…! 그런 게 아니라면 우릴 상대로 버티는 게 가당키나 했을까.”
“그래, 그 말엔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다.”
해골은 바로 긍정했다.
죽이는 것과 죽이지 않고 제압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후자가 전자보다 훨씬 힘든 일이었던 데다가 상대가 그 그위친이었으니 원이 상처를 입은 것은 절대로 실력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팔랑….
해골이 원탁 위에 놓인 사진 한 장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아쉽게 됐군. 설마 그위친이 세계수 관리인의 후손이었을 줄이야.”
“…내 탓이네. 백도운 그놈과 비슷한 능력이 있다는 점에서 유추했어야 했어.”
“그건 자네의 자학에 불과하지. 능력이 비슷하다고 해서 어떻게 그걸 유추할 수 있었겠나.”
“후우….”
원은 한숨을 내쉬었다.
유추했어야 했다고 말은 했지만, 사실 해골의 말이 옳았다.
세계수 관리인과 비슷한 능력을 쓸 줄 안다고 해서 먼 후손일 것이라고 유추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아무리 깊이 고민했다 한들 어떤 연관성도 찾지 못하고 그저 우연히 비슷한가 보다 하고 넘겼으리라.
“…그분께서 강림하지 못한 것은 아쉬우나 그위친을 죽였다는 것으로 만족해야겠지. 놈이 살아 있었으면 우리 일에 계속 방해가 됐을 테니 말이야.”
“음….”
원의 말에 해골이 신음을 짧게 흘렸다.
신음에서 느껴지는 곤란함에 원이 의아함을 느끼고 물었다.
“왜 그러나?”
“그게 말일세…. 사실, 그위친 그놈은 죽지 않았네.”
“뭣…!”
콰당!
원이 요란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그 탓에 원래부터 좋지 못한 상태였던 몸이 비명을 질러댔다.
몸의 비명은 원의 입을 통해 앓는 소리로 흘러나왔다.
“크윽….”
“자네 괜찮나?”
“나는 괜찮네…! 그보다, 방금 한 말이나 다시 해보게! 그위친이 살아남았단 말인가? 그분의 들끓는 어둠 속에서?”
“살아남았다, 라고 해야 할까. 죽지 않았을 뿐, 이라고 해야 할까….”
“해골!”
“이걸 보게.”
팔랑….
해골은 손에 쥐고 있던 사진을 원에게 날려 보냈다.
사진엔 푸른 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이게 뭔가? 갑자기 왜 나무 사진을-”
“그게 그위친이네.”
“…뭐라고?”
“놀랍게도, 그위친은 나무가 되었다네.”
“…….”
원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방금 해골의 입을 통해 들은 말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위친이 나무가 되었다.
그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알 수 없었던 원은 해골이 미친 것은 아닌가 고민하기까지 했다.
원의 고민을 알아차린 해골이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는 말했다.
“믿지 못하는 것도 이해는 한다만, 이건 거짓이 조금도 섞이지 않은 진실일세.”
“진실이라니….”
“어떻게 했는지까진 모르겠으나 현재 그위친은 제 몸을 나무로 바꿔 살아 있네.”
“그런 말도 안 되는… 아니. 설령 나무가 됐다고 해도 상관없지. 이 꼴로는 우리 일을 방해할 수 없을 테니까.”
“음….”
해골이 또다시 신음을 흘렸다.
이걸 말해야 하나.
그런 곤란함이 느껴지는 신음에 원이 다그치듯 물었다.
“설마 이 꼴로 우리 일을 방해할 수 있다는 건가?”
“확실하진 않으나 그럴 수도 있다고 보네.”
“대체 어떻게? 이건, 이건 그냥 나무이지 않나…!”
“자네 말대로 나무이긴 하지. 평범하진 않다는 게 문제일 뿐.”
“뭐라…?”
“그위친은 나무가 된 것으로 그치지 않고 정령이 돼버렸네.”
팔랑….
원은 사진을 떨어뜨렸다.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듣고 나니 손에 힘이 풀린 탓이다.
덜컹!
더불어 힘이 풀린 건 손뿐만이 아니었다.
두 무릎이 저절로 굽혀진 탓에 원탁을 짚고 나서야 서 있을 수 있었다.
“그위친이… 정령이 되었다고…?”
“그렇다네.”
“정령, 정령이라니? 인간이 어떻게 정령이 될 수 있다는 말인가!”
원이 소리쳤다.
답답한 마음을 치워버리고 싶어 큰소리를 낸 것이었으나 답답한 마음은 더 커졌다.
원은 씩씩거리면서 해골에게 설명을 요구했다.
가만히 지켜보던 해골은 어깨를 한 번 으쓱이고 말했다.
“백도운 그놈 짓이네.”
해골의 목소리는 서로 알고 있는 사실을 말하는 것처럼 단조로웠다.
“그놈이 나무로 변한 그위친을 어루만지자 푸른 빛을 띠더니 정령이 되었다는군.”
“세계수…. 그것이 그런 짓도 할 수 있었다는 말이냐….”
“우연이 겹쳐서 가능했다고 생각하네.”
“우연?”
“관리인의 먼 후손이 나무가 됐기에 그럴 수 있었다고 말이야. 그위친이 후손이 아니었다거나 나무가 되지 못했다면 그럴 수 없었겠지.”
“…하!”
털썩.
원은 토해내듯 헛웃음을 흘리곤 의자에 앉았다.
그러고는 원탁 위에 떨어뜨렸던 사진을 다시 집어 들었다.
사진 속 푸른 나무를 불태워버리고 싶은 마음이 샘솟는 것을 느끼며 질문했다.
“혹시 더 알아낸 게 있나?”
“자유롭지는 않네. 하루에 몇 시간 활동하지 못하는 데다가 놈의 이름이 붙은 숲에서 빠져나올 수 없거든.”
“그건 마음에 드는 소리… 후….”
원은 말하다 말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위친이 살아 있는데 자유롭지 못하다는 말에 만족을 느낀 자신의 꼴이 우스웠다.
그 마음을 이해한 해골이 쓰게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도 방해가 될지도 모른다고 한 것은… 의사소통이 되기 때문이네.”
“……?”
“모르겠나? 의사소통이 된다는 건, 그위친이 다른 이를 가르칠 수도 있다는 뜻이네.”
“설마…!”
“그래, 맞네.”
팟, 파밧!
해골이 제 앞에 놓인 사진 두 장을 원에게 빠르게 날렸다.
원은 한 손으로 받아든 후 곧바로 확인했다.
두 장의 사진 속엔 각각 밀러의 모습과 수십 명의 마법사가 찍혔는데, 그들은 모두 푸른 나무 앞에 서 있었다.
“이미 그러고 있지.”
“그위친이… 밀러를 가르치고 있다는 건가….”
“밀러의 학생들까지.”
“…좋지 않군.”
툭.
원이 사진을 내려놓았다.
“계획이 틀어졌음을 확인했으니, 이대로 블랙 드래곤한테 모든 걸 맡기고 있을 수만은 없겠어.”
“나도 정확히 그리 생각했다네. 그래서 자네가 쓰러져 있는 동안 계획을 세웠지.”
“…자네가?”
“심지어 모든 준비도 끝났네. 바로 실행하면 되지.”
“…….”
원은 해골을 빤히 쳐다봤다.
해골은 그 시선을 마주했다.
왜 쳐다보는지 모르겠다는 듯이.
“자네는… 자네가 계획이라는 단어와 어울린다고 생각하나?”
“당연한 소릴 하는군. 내 머릿속에 얼마나 많은 계획이 들어 있는지 안다면, 자넨 그런 소리를 하지 못했을 거네.”
해골이 당당한 목소리로 말했다.
툭, 툭.
가슴을 두드리는 모습은 자신만만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원이 해골에게 보낸 것은 신뢰가 아니라 불신이었다.
“알겠으니, 자네가 세웠다는 계획을 말해보게.”
“지금 내가 세운 계획을 확인하겠다는 건가?”
“그렇네.”
“…….”
“어서 말하게. 내가 새로 세우기 전에.”
“동료의 불신이란 이토록 슬픈 일이었군.”
“웃기는 소리. 그건 타인을 믿는 놈이나 하는 말이다. 무엇보다… 나와 자네는 동료가 아니지. 그저 같은 분을 추앙할 뿐.”
“그래, 그랬지….”
해골이 큭큭 웃었다.
그의 웃음에선 만족과 즐거움이 묻어나 있었다.
***
백운천은 아침 일찍 마호 앞에 모였다.
마호에 첫 번째로 앉을 사람을 고르기 위함으로, 후보는 도희와 한재임이었다.
나와 태천이는 제외됐는데, 우리에겐 마호가 별로 큰 도움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마호에 앉아 있는 시간에 알테라-쇼넴을 쓰거나 결실 에너지를 모으는 게 이득이고, 태천이는 자신의 힘을 아직 완전히 통제하지 못했기에 제어 훈련을 하는 게 더 나았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가장 큰 도움이 될 도희와 우리 다음으로 강한 한재임이 후보가 된 것이다.
물론, 마호에 앉을 사람은 이미 결정이 난 거나 다름없었다.
백운천이 어떤 조직인가?
우리 도희와 태천이한테 반한 놈들로 구성된 조직이다.
다수결을 하든 다른 방식으로 정하든 우리 도희가 마호에 앉을 사람으로 결정 날 터였다.
“도운아.”
“응?”
“넌 누가 먼저 앉는 게 좋을 것 같아?”
“한재임.”
우리 도희로 결정이 날 테지만, 개인적으로는 한재임이 앉았으면 한다.
태천이 의아한 듯 나를 쳐다봤다.
“도희가 아니라?”
“마호로만 강해질 수 있다면 도희라고 했겠지. 그런데 내가 있잖아.”
“응?”
“내가 영약 먹은 도희 옆에 붙어서 도와주면 된다고.”
“아. 그렇네?”
“무엇보다… 몇 시간이고 한재임 옆에 붙어 있고 싶지도 않고.”
수단이 없다면 모를까.
마호라는 아주 좋은 기계가 있는데 왜 한재임 옆에 달라붙어 있어야 한단 말인가.
그것도 몇 시간이나.
태천이 하하 웃었다.
“그 이유가 더 크겠구만.”
“그렇지, 뭐.”
“어, 잠깐. 그럼 도희한테 그렇게 하자고 말해야 하는 거 아니냐?”
“내가 생각한 걸 도희가 모르겠냐.”
“…그것도 그렇네.”
태천이가 수긍하는 것과 동시에 도희가 손사래를 치며 뒤로 물러났다.
그러고는 한재임에게 마호에 앉기를 권했다.
다들 놀란 얼굴로 왜 그러냐고 물어보자 도희는 내가 태천이에게 했던 말 그대로 설명했다.
그러자,
“고맙다. 백도희. 정말 고마워….”
한재임이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했다.
내가 저놈 옆에 있는 걸 싫어하듯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하하, 저 빌어먹을 놈.
그렇게 욕을 하는데 한재임과 시선이 마주쳤다.
나와 녀석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내밀었다.
그리고 그 순간,
“가위바위보!”
“보!”
“보…!”
갑자기 백운천 녀석들이 맹렬하게 가위바위보를 하기 시작했다.
단체로 미친 건가?
“이겼다!”
그런 생각을 했던 나는 최후까지 살아남은 최희주가 만세를 부르는 것을 보고 깨달았다.
저 녀석들이 열과 성을 다해 저 짓거리를 한 건 오랜 시간 내 옆에 앉아 있기 싫어서라는 것을.
불편한 마음 없이 마호를 통해서 편안하게 강해지고 싶었던 거다.
“…확 그냥 다 엎어버릴까?”
“오라버니도 똑같으면서 뭘 그래요.”
내 앞으로 걸어온 도희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태천이도 도희 말이 맞는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 말대로긴 하다.
도희가 아니라 한재임이 마호에 처음으로 앉길 원했던 것도 저놈들처럼 함께하기 싫어서였지 않나.
물론, 수긍이 간다고 해서 아니꼬운 마음이 불식되는 것은 아니다.
“보!”
“보.”
“보….”
합창하듯 소리치던 목소리가 하나둘씩 빠졌다.
곧 박건영과 최준석 두 명이 남게 됐고, 녀석들은 황야에서 결투라도 하듯 서로를 쳐다봤다.
우연인지 운명인지 탱커끼리 남았군그래.
“준석아.”
“네, 형.”
“꼭 형을 이겨야겠니? 양보해줄 수 없을까?”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었다면, 대답이 될까요.”
“음…. 그래. 시작하자.”
“…네.”
마지막 순서를 결정할 가위바위보기 때문일까?
두 탱커의 얼굴은 마지막 전투에 나서는 사람처럼 결연하기까지 했다.
가위, 바위….
두 주먹이 허공에서 위아래로 움직인다.
마지막 순서가 결정 날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진지하게 중얼거렸다.
“지랄들을 하고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