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444
제445화
“저 탱크…. 당신들이 판매한 위드 밤과 위드 허니로 만든 거야.”
“네…?”
한재임이 얼빠진 목소리를 냈다.
안마의자에 앉아 시원한 소리를 내던 내 입도 비슷한 소리를 냈을 거다.
위드 밤과 위드 허니로 만들었다?
저게 대체 뭔 소리래?
유혜주가 설명을 이어나갔다.
“알고 만든 건지, 모르고 만든 건지 모르겠지만… 그 두 음료수엔 정화하는 힘이 들어 있었어.”
…그렇겠지.
내가 가지치기했을 때 생긴 나무와 풀을 따서 만든 음료수들이니.
세계수 나뭇잎은 아니지만 세계수 마나가 담긴 나뭇잎과 풀잎이다.
그런 효과가 있는 게 당연했다.
포션으로 제조할 정도는 아니어서 음료수로 방향을 바꾼 거였지만.
그런데 그것들로 저 저장 탱크를 제작했다고?
“그 음료수들에서 정화하는 힘을 추출했어.”
“그런 게 가능한 겁니까…?”
“이런 데에 전문가인 녀석이 도와줬거든.”
전문가라면 공우재를 말하는 게 분명하다.
공우재는 무려 바이올렛 바이올런스에서 V 물질만 추출한 놈이었다.
그것에 비하면 위드 밤과 위드 허니에서 정화하는 힘만 빼내는 건 손쉬운 일이겠지.
“대단해요! 역시 선생님은 동료도 대단하시군요! 그분은 어떤 분이세요? 꼭 좀 소개를!”
“…….”
홍수정이 눈을 반짝반짝 빛내자 유혜주는 쓰게 웃었다.
탈옥수인 공우재는 누군가에게 소개할 만한 인물이 못 된다.
또 내가 얌전히 지내라는 경고까지 했으니….
누군가를 만나거나 어딘가에 가기는커녕 한동안 위버멘쉬 길드 건물에서 꼼짝도 하지 않을 터다.
“아무튼, 이건 너희들이 그 음료수를 판매했기 때문에 제조할 수 있었던 거야. 그리고….”
유혜주는 우릴 돌아봤다.
그러다 마지막으로 안마의자에 앉아 있는 나를 응시했다.
“그건 너의 힘이지.”
“맞아.”
“순순히 인정하네?”
“너한텐 숨길 필요 없을 것 같아서.”
“왜? 아니. 말하지 마.”
“……?”
“아주 굉장히 귀찮아질 것 같아.”
“오.”
어떻게 알았지?
내가 부려먹을 생각으로 솔직하게 말하려고 했다는 것을.
역시 천재인 건가.
삐비비빅, 삐비비빅.
감탄하는 동안, 마호의 안마가 끝났다.
내 전신을 주무르던 장치들이 떨어져 나가고, 무중력 상태였던 안마의자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금방 끝나네요?”
마호에서 일어나는 동안, 도희가 유혜주를 쳐다보며 넌지시 물었다.
시술 자체가 이렇게 빨리 끝나는 거냐고 묻는 것이었다.
휙, 휙.
유혜주는 손을 휘저었다.
“저장 탱크에 아무것도 없어서 빨리 끝난 것뿐이야.”
“아.”
“원래는 몇 시간 정도 걸려. 풀로 채워 넣으면 며칠이 걸릴 수도 있고.”
“며칠이나요? 그럼 도중에 끊었을 땐 어떻게 되죠?”
“잠깐 화장실 갔다 오는 정도는 괜찮아.”
“오래 걸리면요?”
“당연히 말짱 도루묵이지.”
“……!”
“영약 날리고 싶지 않으면 명심하도록 해.”
“그럴게요.”
그리 대답한 도희는 “말짱 도루묵”이라는 말을 몇 번 중얼거렸다.
아마 다른 녀석들이 받는 도중에 화장실을 갔다가 깜빡하는 일을 걱정하는 듯했다.
정신이 제대로 박힌 놈들이라면 그 중요한 걸 까먹지 않겠지만…, 안타깝게도 백운천에는 정신이 제대로 박히지 않은 놈들이 더 많다.
“흐음…!”
마호에서 일어난 나는 기지개를 쭉 켰다.
이것으로 검증은 완전히 끝났다.
[세계수가 나뭇가지를 갸웃거립니다.] [뭘 검증한 것인지 모르겠다고 전합니다.]모르겠다고?
뭐야.
그럼 새싹이 너는 내가 왜 마호에 앉아 있다고 생각했는데.
안마나 받으려고?
[세계수는 나뭇가지를 끄덕입니다.]사람을 뭐로 보고….
단순히 안마만 받을 생각이었다면 아까 재이한테 차례를 넘겼겠지.
피곤한 사람을 세워 두고 마음 편하게 안마를 받았겠어?
[……!]깨달음을 얻은 새싹이를 뒤로 한 채 재이를 마호에 앉혔다.
“어? 아니. 괜찮아. 난-”
“안아서 앉혀줄까?”
거절하려는 재이를 향해 두 팔을 내밀었다.
이대로 안아 들면 그 유명한 공주님 안기가 될 것이다.
재이가 얼굴을 새빨갛게 붉혔다.
“…스, 스스로 앉을 테니까 하지 마!”
“잘 생각했어.”
톡, 톡.
재이의 머리를 살살 두드렸다.
아무리 주변 신경 쓰지 않는 그녀라도 사람들 앞에서 그런 모습이 되고 싶진 않겠지.
꾹.
재이가 마호에 앉는 것을 확인한 나는 전원을 눌렀다.
우웅….
낮은 기계 소리가 나면서 안마의자가 재이의 전신을 주물렀다.
“으, 으음….”
재이는 잠들지도 모른다고 스스로 짐작했던 대로 순식간에 잠에 빠져들었다.
어휴, 이런 상태로 뭘 하겠다고….
아마 더 깨어 있었어도 뭘 할 수는 없었겠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유혜주를 바라봤다.
톡톡.
마호를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윤건은 마호를 통한 시술이 엄청나게 고통스럽다고 했던 거 같은데.”
“아. 그 부분은 개조하면서 완전히 수정했어.”
“왜 그랬냐.”
“뭐?”
“그러지 말지…. 하….”
허망하게 중얼거리며 허탈한 한숨을 내쉬었다.
왜 쓸데없는 짓을 한단 말인가.
누군 주기적으로 가지치기를 해야 하는데, 이놈들은 편안하게 안마를 받으면서 강해지다니…!
[세계수는 관리인을 황당하게 바라봅니다.] [방금 검증한 것이 제대로 고통을 주는지를 확인한 것이냐고 질문합니다.]당연하지.
그거 말고 검증할 게 뭐가 있는데?
아이고, 억울해.
녀석들이 고통에 몸부림치는 걸 옆에서 구경하려고 했는데!
[…….]***
주인 없는 방의 소파에 누워 있던 공우재가 눈을 떴다.
빈방의 주인인 유혜주가 방금 문을 열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공우재는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그녀를 반겼다.
“생각보다 빨리 왔군.”
“물건 가져다주면서 설명만 하면 끝나는 일인데, 뭐.”
반면, 유혜주는 그런 공우재를 보자마자 눈을 찌푸렸다.
공우재를 거들떠보지 않고 맞은편에 몸을 돌돌 만 채로 자고 있던 기니피그 위에 드러눕는다.
잠에서 깬 기니피그는 제 주인의 온기를 느끼고는 귀를 두어 번 까닥였다.
그 귀를 유혜주는 톡톡 건드리며 못살게 굴었는데, 기니피그는 그녀의 손길이 좋은 듯 구구구 울었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던 공우재가 소파에서 일어나 냉장고로 걸어갔다.
냉장고에서 꺼낸 것은 위드 허니였다.
“야. 너 내가 그거 마시지 말랬지! 그건 음료(飮料)가 아니라 재료(材料)야!”
“맛있는 걸 어떡해? 그리고, 어차피 다시 구할 수 있잖아. 대량 판매하는 음료수인데.”
“그건 모를 일이지. 내가 오늘 마호의 저장 탱크를 제작할 때 위드 허니를 사용했다고 말했으니까.”
“그걸 솔직하게 말했다고?”
“궁금했거든. 녀석들이 알고 만든 건지 모르고 만든 건지.”
“그래서?”
공우재가 소파에 다시 앉으며 물었다.
톡, 톡.
그가 위드 허니를 두드리며 3초쯤 기다렸을까?
유혜가는 천천히 대답했다.
“알고… 아니. 반만 알고 있었다고 해야 하나….”
“반?”
“정화하는 효과가 있다고 말하니까, 다들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을 보였거든.”
“대충 짐작은 하고 있었다는 뜻인가?”
“응.”
“그런 효과가 있을 걸 알면서도 음료수 따위로 만들어 팔았다…라는 건,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재료가 아니었단 뜻이로군.”
“그렇겠지. 뭐, 당연하다면 당연해. 엘릭서도 만든 놈들이잖아?”
“…즉, 이건 지금처럼 잘 팔 거라는 뜻이군. 네가 앞으로도 쉽게 구할 수 있을 거고.”
그리 말하고는 공우재는 위드 허니를 한 모금 마셨다.
유혜주는 그런 그의 입술을 마음껏 잡아당기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였다.
하지만 공우재가 그럴 수 있게 가만히 있을 리 없었으므로 충동으로만 그쳤다.
그때, 유혜주는 문득 떠오른 것을 말했다.
“참, 엘릭서 홍수정이 제작한 거 아니더라.”
“뭐?”
“못 들었어? 홍수정이 엘릭서를 제작하지 않았다고.”
왜?
공우재는 그 질문을 하기에 앞서 먼저 해야 할 일을 했다.
바로 정보의 확인이었다.
“그걸 어떻게 알아?”
“어떻게 알긴. 보면 딱 아는 걸 가지고.”
유혜주는 기니피그 위에서 천천히 몸을 돌렸다.
느긋한 동작처럼 느긋한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홍수정이 포션 메이커로서 제법이긴 하지만 엘릭서를 만들 수 있을 정도는 아니야. 절대.”
“그러니까, 네 느낌이란 거잖아.”
“너 바보야?”
“뭐?”
“넌 싸움광 꼬맹이랑은 싸웠는데 김서준이랑은 안 싸웠지.”
“…그래서?”
“네가 질 것 같아서 안 싸운 거잖아.”
내가 이겨.
공우재는 그리 말하지 못했다.
김서준과 마주한 순간 격차를 느꼈기 때문이다.
현재로선 싸워서 이길 수 없다고.
홍수정이 엘릭서를 만들 수 있는지 없는지 실제로 보지 않았는데 확신한 유혜주처럼.
“…그럼, 백운천은 왜 숨긴 거지? 아니, 홍수정이 아니라면 누가 만들었다는 거야?”
그 사실을 깨달은 공우재는 다음으로 넘어갔다.
바로 ‘왜?’라는 질문을 던진 것이다.
유혜주는 천장을 올려다보며 질문에 대답했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
“내가 아는 건, 백도운과 관련이 있다는 것뿐이야.”
“백도운?”
“위드 시리즈에서 추출했던 힘이 백도운의 마나와 같더라. 마치 백도운에게서 떨어져나온 것처럼.”
“……!”
그 순간, 공우재는 머릿속에 스파크가 튄 듯 깨달았다.
포션 메이커 홍수정 대신 엘릭서를 제조한 사람과 그걸 숨긴 이유.
위드 시리즈에 담긴 힘처럼 지금껏 그와 김서준 일행을 정화했던 이가 누구였던가.
바로 백도운이다.
백운천이 위드 시리즈 같은 음료와 엘릭서를 제조한 것도 전부 백도운 덕분인 게 분명했다.
그 재료는 분명… 유혜주의 말처럼 ‘백도운에게서 떨어져나온 것’일 터였다.
“그래서 넌지시 정체를 떠볼까 했는데… 그만뒀어.”
“…뭐? 아. 말해줄 것 같지 않았나?”
그리 질문하면서도 공우재는 ‘그랬겠지’라고 생각했다.
자신 같아도 숨기고 볼 테니까.
그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유혜주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 반대야.”
유혜주의 머릿속에 백도운이 히죽 웃어대던 얼굴과 “너한텐 숨길 필요 없을 것 같아서.”라던 대답이 떠올랐다.
그 얼굴과 목소리에서, 유혜주는 불안함과 불길함을 느꼈었다.
“들었다간 굉장히 귀찮아질 것 같았달까….”
“……?”
“있어, 그런 게.”
휙, 휙.
유혜주는 말하기 귀찮다는 듯 손을 휘저었다.
공우재는 알겠다며 위드 허니를 한 모금 더 마셨다.
자신이 깨달은 것을 조용히 곱씹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그 백도운을 만난 감상은 그게 다야?”
그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유혜주가 홍수정이 엘릭서를 제조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처럼, 백도운의 능력에 대해서 깨달았는지 궁금했다.
“감상?”
“응.”
“…그거 제정신 아니던데.”
공우재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한 말은 그와 김서준 일행의 공통으로 느낀 감상이었다.
이번엔 또 백도운이 무슨 짓을 저질렀을까.
그는 조금 기대를 품고 질문했다.
“이번엔 또 무슨 일이 있었는데?”
“울었어.”
“울었다고?”
공우재는 바로 반문했다.
개조를 부탁한 물건을 가져다주고 설명을 듣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울 일이 있나 싶었다.
그의 머리로는 울 만한 순간을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유혜주가 한숨을 짧게 내쉰 후 설명했다.
“마호로 시술하면 원래 고통스럽잖아.”
“그랬지. 그걸 네가 안마기 형태로 바꿨고.”
“그거 바꿨다고 울었어. 다른 놈들 편한 꼴 보려던 게 아니라고.”
“음….”
설명을 들은 공우재는 할 말을 잃었다.
설마 백도운이 그런 이유로 울었을 줄은 짐작도 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 순간,
“……!”
공우재는 자신이 잘못 생각했음을 깨달았다.
위드 시리즈와 엘릭서의 재료는 ‘백도운에게서 떨어져나온 어떤 것’이지 않던가.
그 어떤 것을 얻기 위해선 고통이 수반될 게 분명했고, 도운은 동료들이 그 고통을 공감해주길 원한 것일 터였다…!
-라는, 도운 본인이 들었으면 자지러지게 웃어젖혔을 착각에 공우재가 빠졌을 때.
“아이고, 시원하다….”
도운은 마호에 앉아 시원하게 안마를 받고 있었다.
톡톡 톡톡톡!
스마트폰 화면을 신명 나게 두드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