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45
제45화
“턱이라도 한 대 올려붙이고 싶은 얼굴이군그래.”
“잘 아네.”
“그럼 거절인 건가?”
“당연한 소리를.”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았나.
양심이란 게 없다고.
선이 무분별하다는 건 믿을 수 없는 족속들이란 뜻이다.
그런 인간들과 어떻게 동맹을 맺겠는가?
동맹 맺어 봐야 배신하지 않을까 걱정하고 의심하기 바쁠 뿐이다.
서지혁은 입꼬리를 올린 채 말했다.
“너 때문에 크라우드와 싸우게 됐는데 너무한 처사 아닌가?”
“우릴 건드린 대가라고 생각해. 특히, 나.”
“그렇게 생각하기엔 거스름돈이 너무 큰데.”
“그건 내가 알 바 아니고.”
그리 말하면서 어깨를 으쓱였다.
최기정에게서 빠드득 이를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거겠지.
잘 보이고 싶은 마음도 없어서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애초에 나도 저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아쉽게 됐군.”
그는 제 부하를 잠깐 돌아보고는 말을 이었다.
최기정이 그에게 고개를 살짝 숙여 보았다.
바로 숙이는 걸 보면 자기도 이를 가는 소리가 그렇게 클 줄 몰랐던 것 같다.
“우리가 동맹을 맺는다면 크라우드 놈들을 손쉽게 제거할 수 있을 텐데.”
“아, 제거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웬만하면 놈들을 죽이지 말아 주겠어?”
“뭐? 왜 그래야 하지? 설마 너도 백도희처럼 불살 주의인 거냐?”
불살 주의….
흔히 그렇게들 착각하곤 하지.
대한민국 최고의 힐러로서 아무리 악인이라도 죽이지 않는 모습을 보여 주니까.
사실 그건 도희가 불살 주의라서가 아니다.
사람을 죽이면 힐링 스킬에 페널티가 따라오기 때문이다.
하얀 성녀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진실을 숨겨서 붙은 오해에 불과하다.
그 사실을 아는 건 나와 태천이뿐이다.
태천이의 오른팔인 한재임도 모른다.
“뭔 개소리야? 정 죽일 거면 나한테 데려와.”
“음?”
천칭 길드와 크라우드가 서로 견제하는 정도는 괜찮다.
신경 쓰다가 나를 잊어버릴 수도 있을 테니까.
하지만 서지혁이 놈들의 숨통을 끊는 건 조금 곤란하다.
“데려와라? 어째서지?”
“놈들의 숨통을 끊는 건 나여야 하니까.”
서지혁이 그리 말하는 나를 몇 초간 빤히 쳐다봤다.
그러다가 최기정에게 물었다.
그의 입에선 생각지도 못한 말이 내뱉어졌다.
“최기정. 그 여자가 그렇게 예쁜가?”
“…대장장이치고 미인이긴 합니다. 그 때문에 오히려 실력이 평가 절하 받는 경향도 있고요.”
“바보 같은 소리군.”
“그러니까 말입니다. 우리나라에서 100대 대장장이 안에 드는 게 쉬운 일도 아닌데.”
“흠, 그래서 크라우드 놈들이 그런 말도 안 되는 오해를 한 거였나. 얼굴 한 번 봐야겠군.”
“…이봐, 그런 거 아니거든?”
“그럼 놈들을 왜 직접 죽이겠다는 거지?”
“그야…!”
할 말이 없어서 입을 꾹 다물었다.
크라우드를 직접 죽이려는 건 녀석들이 퀘스트 대상이기 때문이다.
현재 처치한 수는 2마리로, 가장 좋은 보상을 얻으려면 아직 8마리를 더 잡아야 했다.
서지혁이 놈들을 처치하면 내가 퀘스트를 완료하는 데 방해가 된다.
녀석들이 몇 마리나 되는지도 모르는데 함부로 죽게 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문제는 그 사실을 솔직하게 말해 줄 수가 없다는 것.
직접 죽이려는 이유에 대해서 뭐라고 말할까 고민하는데, 서지혁이 피식 웃었다.
“좋다. 약속은 못 하겠지만 최대한 선처해 주지.”
“…그래, 정말 고맙다.”
“마스터.”
“음?”
최기정이 서지혁을 부르더니 귓속말을 속삭였다.
내용은 들리지 않았지만, 아마도 떠나야 한다는 말이었던 것 같다.
최기정이 떨어지자 그만 가겠다는 말을 전해왔기 때문이다.
다만, 그리 말하기 전에 어딘가를 바라봤다.
마치 누군가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걸 알아차린 듯이.
“…용건은 끝났으니 이만 가 봐야겠군.”
“그래, 잘 생각했어.”
빨리 꺼지라고 말하듯 손을 휙휙 저었다.
그 둘의 발밑에 순식간에 둥근 마법진이 그려졌다.
순간이동 마법이었다.
겨우 몇 초 만에 순간이동 마법을 발동한 거다.
최기정…. 생각보다 대단한 마법사인걸?
서지혁이 인사라도 나눌 생각인 듯 날 바라봤다.
“또 보자고.”
“보기 싫은데?”
“동맹 건도 더 생각해 보고.”
“싫다니까. 정 동맹을 맺고 싶으면 전명환 목이라도 갖고 오든가.”
“하하, 그래, 그렇게 하지.”
웃는 낯의 서지혁은 최기정과 함께 한순간에 사라졌다.
바닥에 그려졌던 마법진도 찾아볼 수 없었다.
혼자 남은 나는 서지혁이 바라보던 곳을 바라봤다.
저녁노을이 진 산업단지 건물들만 보였다.
아마 그가 봤던 건 건물이 아니라 나를 미행하던 사람이었으리라.
도희와 태천이라는 사람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알 수 있다.
“역시, 오늘 아침에 걸린 게 문제겠지?”
피로 젖은 옷이 도희의 걱정 스위치를 올린 듯하다.
늘 그렇듯 그 걱정은 사람을 붙이는 등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갔을 것이다.
건물 쪽을 잘 살펴봐도 미행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나보다 주변 시선을 세세하게 느끼는 새싹에게 물었다.
“새싹아, 혹시 시선 느껴져?”
[세계수 새싹은 관리인 백도운에게 아무런 시선도 느껴지지 않는다고 전합니다.]새싹이도 시선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혐오스럽거나 졸렬한 시선이 아니라서 알아차리지 못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거리가 너무 멀거나.
물론, 미행하는 사람이 없는데 나 혼자 바보짓을 하는 걸 수도 있다.
일단 확실히 있는지 없는지부터 확인해 봐야겠다.
미행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용해 줘야지.
***
“네, B급 헌터 백도운 님. 확인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게이트 관리인에게 자격증을 건네받으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B등급 헌터 백도운.
그 말이 듣기 좋은 울림으로 다가와 헤벌쭉 미소를 짓게 했다.
위조 자격증을 제출해 들었던 A급 헌터라는 말과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그때는 거짓말이었기 때문에 들킬까 걱정만 됐었다.
“지온은 이제 이상한 짓을 할 때나 써먹어야지.”
헌터 자격증을 지갑에 넣으며 ‘보라매공원 게이트’로 진입했다.
보라매공원 게이트는 리자드맨이 서식하는 늪지였다.
단일 개체는 B등급 수준으로 그리 강력하지 않았지만, 군대처럼 조직 생활을 해 솔로잉 하기 힘든 곳이다.
그 때문에 게이트 주변과 초입엔 모인 헌터들은 3~4명의 파티로 형성돼 있었다.
그들이 나를 보곤 떠들어 댔다.
“저 사람 혼자인가 봐.”
“여길 혼자서 돌겠다고? 그것도 밤에? 미친 거 아니야?”
“잠깐만, 얼굴이 좀 익숙한데? 유명한 헌터 아냐?”
“으음, 그래? 난 모르겠는데.”
“아, 그 사람이다! 왜, 이번에 실시간 검색에 오른-”
그런 말들이 들려왔다.
그들의 말대로 야행성인 리자드맨을 밤에 상대하는 건 현명한 생각이 아니다.
상관없었다.
지금부터 하려는 건 리자드맨들과 싸우다가 장렬하게 쓰러지는 연기였으니까.
오히려 현명하지 못한 짓을 해야 날 미행하는 사람들을 속이기 쉬울 거다.
도희가 날 걱정해서 붙인 사람들이다.
당한 척 연기를 하면 내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접근해 올 것이 분명하다.
“…찾았다.”
몇십 분 정도 늪지를 걸었을까?
말갈기처럼 목에 지느러미가 자란 리자드맨들 무리가 보였다.
마릿수는 대략 한 소대 정도였다.
대부분 뼈로 된 미늘창을 꼬나쥐었는데, 이따금 활을 쥔 녀석들도 있었다.
음, 대충 연기할 시나리오가 그려졌다.
따스한 손길을 쓰고 바로 리자드맨들을 향해 돌진했다.
“캬르르륵!”
리자드맨들은 바보같이 무턱대고 달려드는 나를 비웃었다.
미늘창을 피하면서 양손으로 한 번씩 녀석들의 머리를 두드렸다.
손가락으로 톡 두드렸을 뿐인데 머리가 터져 죽자 리자드맨들은 비웃음을 거뒀다.
그래, 그렇게 나와 줘야 실감이 나는 연기를 보여 주지.
맨 뒤에 서 있는 덩치가 가장 큰 리자드맨이 명령을 내렸다.
“캬륵…!”
“캬륵!”
나를 비웃던 리자드맨들은 아가리를 꾹 다물고 내게 달려들었다.
녀석들은 확실히 다수의 이점을 이용할 줄 알았다.
10마리가 미늘창을 동시에 찔렀는데, 나머지 녀석들이 뒤이어 미늘창을 찔렀다.
활을 든 녀석들은 그 틈에 화살을 쏘아 댔다.
몬스터가 아니라 인간들을 상대로 싸우는 느낌이었다.
“캬르륵!”
네댓 마리 더 쓰러졌을 때쯤, 리자드맨 리더가 앞으로 나섰다.
그놈은 양손에 미늘창을 쥐고 있지 않았다.
격의 유별함을 나타내기 위해선지 거대한 도끼를 들고 있었다.
슬슬 쓰러질 타이밍 같다.
허공을 세차게 가르는 거대한 도끼를 마나 실드가 발동된 몸으로 받아 냈다.
부러 과장되게 쓰러졌다.
“으헉!”
“캬륵?”
리자드맨 리더는 도끼가 내게 치명상을 입히지 못했음을 알았다.
주변의 리자드맨들은 쓰러지는 나를 보고 리더가 이겼다고 착각했지만.
놈은 승리의 함성을 내지르는 부하들과 쓰러진 나를 번갈아 가며 보았다.
그러다가 결국 부하들과 함께 함성을 내질렀다.
“…….”
기절한 척 가만히 기다렸다.
몇 마리가 그런 내게 접근했다.
녀석들의 손은 마나 실드에 의해 막혀 몸에 닿지 않았다.
그제야 녀석들은 이상함을 느낀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도 그것들처럼 고개를 갸웃거리고 싶었다.
이렇게 쓰러져 있는데도 아무도 나타나지 않아서다.
설마 지금 나 혼자 멍청한 짓 하고 있는 건가?
민망함을 느끼며 일어나려는 순간, 리자드맨의 비명이 들려왔다.
“젠장! 설마 죽은 건 아니겠지?”
“설마, 그럴 리가 없잖아!”
김상철과 이재욱이다.
도희가 그들에게 나를 지켜봐 달라고 부탁한 모양이다.
휴, 다행이다.
하마터면 밤에 이불 걷어차는 경험이 하나 추가될 뻔했다.
B급 헌터로 잔뼈가 굵은 그들은 순식간에 리자드맨들을 베었다.
마지막으로 리자드맨 리더까지 처치한 그들은 곧장 내게로 달려왔다.
“팀장님!”
“무사하십-”
“안녕하세요?”
무사태평한 자세로 누워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넸다.
내게로 달려오던 둘은 제자리에 멈춰 섰다.
곧 내가 당한 척 연기를 했다는 걸 알아차렸는지 둘의 눈동자가 점점 커졌다.
생긴 건 안 그래도 제법 귀여운 구석이 있다니까?
“헉…!”
“설, 설마 저흴 속인 겁니까?”
“나 다쳐도 금방 회복되는 거 아시면서.”
전명환과 싸울 때 다쳐도 회복되는 걸 봤으면서 속을 줄이야.
뭐, 둘이 투덕거리는 소리를 들어보면 그 생각을 하지 못한 건 아닌 듯하다.
“거봐! 내가 함정일 거라고 그랬지!”
“거봐는 무슨 거봐! 너도 확인해 보자는 말에 동의해서 온 건데!”
“으아, 이거 어떡하지?”
“부탁받은 당일 걸릴 줄이야…!”
생각은 했지만, 그래도 내 걱정이 더 앞선 것 같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살펴보러 온 거였다.
이건 좀 감동인데?
음. 김상철과 이재욱에게 ‘회유’라는 이름의 희망을 줘야겠다.
우선 확인 먼저.
“혹시, 방금 만났던 사람들에 대해 보고했습니까?”
“네? 아, 그게요, 아직-”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질문에 대답하려는 김상철의 머리통을 이재욱이 바로 후려갈겼다.
왜 때리냐고 따질 듯이 노려보는 김상철은 “헉!” 소릴 내며 제 입을 틀어막았다.
이미 늦었지만 말이다.
후후, 분명 아직이라고 했겠다?
“그럼 이제 우리는 동맹입니다.”
“네?”
두 사람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고 그들에게로 걸어가며 물었다.
“이대로 두 분이 들킨 걸 도희에게 전하면 어떻게 될까요?”
“제발! 제발 그러지 마십시오!”
“그러면 우리 도희 누나한테 완전 혼날 거예요!”
이재욱과 김상철이 기겁했다.
도희야, 너는 대체 이 둘에게 무슨 짓을 한 거니?
이제 갓 길드에 가입한 신입들에게마저 공포의 대상이라니.
2년 전에는 대책 없이 순진무구해서 걱정거리였는데….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그러니까, 이제 우리는 동맹인 겁니다? 아까 만난 사람들에 관해서도 보고하지 마시고.”
“아….”
“하지만 도희 누님이-”
“괜찮아요.”
걱정하는 이재욱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러고는 내가 낼 수 있는 가장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안 들키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