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46
제46화
두 사람을 회유하는 건 손쉬운 일이었다.
그들이 백운천 가입 후 가장 많이 얼굴을 마주한 간부가 누구인가?
A등급 길드의 신입으로 마음고생 하는 그들을 위로해 준 선배는 또 누구인가?
바로 다름 아닌 나였다.
‘너희들 마음 다 안다’라는 식으로 살살 구슬리니 그들은 쉽게 넘어왔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재욱과 김상철은 고깃집 주인이 소주를 갖다 놓자마자 두세 잔을 단번에 들이켰고, 한숨을 푹 내쉬더니 고충을 토로했다.
“으허헝! 도희 누나 너무 무서워요!”
“후우, 백발 마녀….”
“도희가 무섭긴 하죠. 나도 그래서 전화에다가 이름을 ‘받지 마’라고 저장했다니깐?”
그렇다.
우린 공통된 적(?)을 가진 동지로서 금방 의기투합했다.
웃긴 건 술이 들어가니 둘의 성향이 바뀌었다는 거다.
진중한 말투였던 이재욱은 부드럽게, 순한 말투였던 김상철은 무겁게 바뀌었다.
“자, 자. 소주만 먹으면 속 버려, 이것도 먹어요.”
집게로 고기를 두세 점씩 집어 그들의 그릇에 놓아 주었다.
D등급 몬스터인 ‘파이어 보어’ 삼겹살로, 쫄깃쫄깃한 식감이 일품이다.
반년 전에 한국의 한 중소길드가 먹을 수 있도록 가공해 냈는데, 이후 급속도로 퍼져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메뉴 중 하나가 됐다.
이재욱과 김상철도 굉장히 좋아하는 음식인 것을 알고 있어서 이곳으로 데려왔다.
해체업자 아저씨들과 회식할 때 쫓아왔던 그들이 너무 맛있다며 좋아하던 기억이 있다.
두 사람은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로 고기를 우물거렸다.
힘들어도 입맛은 살아 있는지 고기를 연신 집어 먹는다.
저 정도면 앞으로 최소한 6인분은 더 먹겠군.
“이모, 여기 파이어 보어 삼겹살 6인분 추가요!”
“네? 아니, 이미 충분한데….”
고기를 추가하자 이재욱과 김상철이 눈을 동그랗게 뜬다.
거절하려는 걸 이미 시켰으니 먹어야 한다는 말로 묵살했다.
둘은 고개를 숙이며 감사히 잘 먹겠다고 말했다.
입에 고인 침이나 삼키고 충분하다고 해야지 믿지.
이럴 때 보면 B급 헌터가 아니라 그냥 어린애다 싶다.
“많이 먹어도 괜찮으니까 더 시켜요.”
“감사합니다….”
소주를 따라 주며 주변을 슥 둘러보았다.
이쪽 테이블을 보던 사람들이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한다.
“…….”
아까부터 드문드문 우리를 쳐다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재욱과 김상철이 이렇게 대놓고 구경할 정도로 유명했던가?
두 사람은 한국에 천 단위밖에 없는 B급 헌터다.
이연지를 제외하면 백운천 길드의 유일한 신입이니 웬만한 B급 헌터보단 이름이 알려져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알아보고 흘깃흘깃 쳐다볼 정도로 인기가 많은가?
그리 묻는다면 단언컨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사람들이 주로 신경 쓰는 A급 헌터만 해도 수천 명이다.
미인이거나 빵빵한 배경이라도 있으면 모를까.
종사자가 아닌 한 굳이 평범한 B급 헌터를 신경 쓸 리 없다.
사람들은 대체 우리 쪽을 왜 바라보는 걸까.
부르르.
그 때마침 스마트폰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새싹이 위에 ‘김재식’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먹고 있어요. 전화 좀 받고 올 테니.”
“넵! 맛있게 잘 먹고 있겠습니다!”
“부족하면 더 시켜도 돼요.”
“넵! 감사합니다!”
자리에서 일어나자 두 사람은 군대도 안 다녀왔으면서 “충성!”하며 경례를 해 왔다.
뭐, 이렇게 말하는 나도 군대를 다녀오지는 않았지만.
대신 2년 동안 국가 소속 E급 헌터로 대체복무를 해야만 했다.
스마트폰을 귓가에 갖다 대며 식당 바깥으로 나갔다.
“여보세요?”
– 형님, 아니. 형! 지금 바쁘세요?
“안 바빠. 지인들이랑 밥 먹고 있어. 왜?”
– 역시, 모르시는 것 같네요.
“뭐를?”
– 오늘 아침 시험의 탑 테스트 영상이 올라왔더라고요.
“시험의 탑?”
다른 게이트와 달리 시험의 탑은 카메라가 풍화돼 사라지지 않는다.
그 점을 악용해 몇몇 인터넷 방송인이 시험을 치르는 헌터들을 촬영하곤 한다.
사람들의 헌터에 관한 관심을 미끼로 조회 수를 쉽게 올리려는 것이다.
카메라를 일일이 들고 와 촬영하는 것도 노력이라면 노력이겠지만.
무단으로 촬영하기 때문에 온갖 비난을 받고 있다.
매번 문제가 되는데도 솜방망이 처벌로 그런 짓을 하는 놈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뭐, 무단으로 촬영돼도 좋아하는 놈들이 있긴 하다.
지상욱이 딱 그런 부류다.
“그게 뭐?”
– 어, 그게요.
전화해 올 만큼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그런 영상은 시험의 탑 테스트가 치러진 다음 날이면 늘 올라오던 거였으니까.
이번엔 우채연 영상이 올라왔을 거다.
대기업 회장의 딸이라 유명한 데다가 아직 어리긴 해도 미인이란 소리가 절로 나올 만큼 예쁘니까….
아, 이런 멍청이.
– 형이 찍혀서요.
“역시나….”
한숨을 푹 내쉬면서 이마를 긁적였다.
귓가에 재식이 어색하게 웃는 소리가 들려온다.
후우,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우채연의 영상이 올라오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자연스럽게 그 옆에 있던 나도 함께 찍혔으리라.
“촬영하는 거 못 느꼈었는데….”
– 어휴, 500m 떨어진 곳에서 촬영하는데 그걸 어떻게 느껴요?
“뭔 미터?”
– 500m요.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데 찍혀?”
– 괜히 대포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거겠어요?
정말 그렇다.
500m면 못 느끼는 게 당연하다.
탐색 스킬이라도 있다면 모를까 그런 게 없으면 알 수 없으리라.
연예인들이 파파라치에 사생활이 찍히는 게 다 이유가 있다니까.
– 지금 실검에도 오르고 난리 났는데, 아예 몰랐어요?
“실검? 내가?”
– 네. 잠깐만요. 링크 보내 드릴게요.
그 말이 끝나자마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링크를 클릭하니 곧바로 동영상이 떠올랐다.
오늘 아침 올라왔다는 동영상의 조회 수는 벌써 몇백만이나 되었다.
[사이클롭스 사냥이 어려워? 그럼 무기가 좋으면 되지!]그런 제목의 영상 섬네일엔 모자이크 처리된 내 얼굴이 떠 있다.
모자이크됐는데도 나를 쉽게 알아보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생선 꽁지 같은 머리는 너무 눈에 띄어서 날 알아보기 어렵지 않았다.
재생 버튼을 누르자 “안녕하세요, ‘시탑 TV’ 구독자 여러분!”이라는 인사가 들려왔다.
영상은 정보 전달 컨테츠를 빙자하는 영상이 흔히 그렇듯 딱딱하고 단조로운 여성 AI 목소리로 진행됐다.
[지금부터 논란의 헌터 영상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형? 보고 있어요?
“어, 보고 있어. 잠깐만.”
– 아, 넵.
재식은 내가 영상을 볼 수 있게 조용히 해 주었다.
영상 속의 나는 거대하고 푸른 칼날을 뿜어내는 아르카로 사이클롭스와 싸우고 있었다.
저런 걸 들고선 찌르고 휘둘러 댔으니 눈에 띈 것도 당연했다.
아마 우채연 옆에 없었어도 눈에 띄었으리라.
“얼씨구?”
영상은 편집된 영상이었다.
전투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보여 주고 있지 않았다.
사이클롭스의 힘에 밀려나거나 공격을 방어하는 내 모습이 주를 이뤘다.
마치 실력이 부족한데 무기빨로 사이클롭스를 사냥해 내는 모습 같았다.
신체 능력이 향상하는 패시브 스킬이 없었다면 사냥하지 못했을 거긴 한데….
이건 너무 악의적이다.
“나랑 뭐 원수라도 졌나?”
– 다 보셨어요?
“응. 방금.”
– 괜찮으세요?
“뭐, 별생각 없는데.”
– …….
입을 다무는 걸 보니 못 믿는 눈치다.
괜찮지 않은데 괜찮은 척한다고 걱정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정말로 별생각 없었다.
왜냐하면,
“넌 어떻게 생각하는데?”
– 당연히 악의적 편집이라고 생각하죠! 영상에서 형은 방어하기만 하는데 사이클롭스는 이미 다쳐 있잖아요. 내가 형 실력을 알기도 하고!
“그래, 바로 그거야.”
– 네?
“네가 그렇게 생각해 주는데 딴 놈들 생각이야 알게 뭐야.”
– 아….
나를 멸칭으로 부르는 걸 적극적으로 부정하지 않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내 주변 사람들은 그리 생각하고 있지 않으니까.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에게까지 이미지를 관리하는 건 너무 귀찮다.
그딴 거에 신경 쓸 바에 스마트폰 화면이나 한 번 더 두드리는 게 낫다.
귀엽고 좋은 거만 보기에도 바쁜 세상이지 않은가?
– 그럼 그냥 내버려 두실 거예요?
“설마.”
– 그러면요?
“사람 잘못 건드렸다는 것 정도는 가르쳐 줘야지.”
어떤 일에 기생충처럼 달라붙어 사는 쓰레기들.
이런 놈들은 가만히 내버려 두면 더욱더 기어오르게 된다.
그 끝은 내가 아니라 내 주변으로 퍼지게 될 거고.
벌써 어떻게 될지 그림이 그려진다.
시간이 좀 지나면 나는 실력도 없는 주제에 강력한 아이템으로 나대는 파렴치한이 돼 있을 거다.
태천이는 그런 녀석을 절친한 친구로 둔 몰상식한 놈이 될 거고, 도희는 몰상식한 오빠들을 둔 불쌍하고 처량한 여동생이 돼 있겠지.
– 제가 도와드릴까요?
“네가?”
– 취미가 인방 보는 거라서 이쪽은 좀 알거든요. 커뮤니티도 몇 군데 활동 중이고요. 형도 편집에 악의가 담겨 있다는 거 느꼈잖아요.
“그랬지.”
영상을 보는 내내 나랑 원수라도 진 것처럼 느껴졌다.
나를 어떻게든 엿 먹이려는 목적이 빤히 보였다.
이상하다고 생각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시탑TV?
아무리 유명하다 해도 내겐 듣도 보도 못한 잡채널일 뿐이다.
나하고는 아무 관계도 없는 놈이 왜 이런 짓을 저지른 걸까.
그게 궁금하긴 하다.
“좋아. 너한테 한번 맡겨 볼게.”
– 오, 잘 생각하셨어요! 혹시 뭔가 알게 되면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래, 고맙다.”
– 에이, 아니에요! 도와드릴 수 있어서 기쁘네요!
그러고는 재식은 전화를 끊었다.
도와줄 수 있어서 기쁘다니, 착한 녀석이다.
이제 다른 착한 녀석들 2명을 처리하러 가야겠다.
스마트폰 화면을 두드리며 고깃집 안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은 배가 부른지 배를 쓱쓱 문질렀다.
내 예상대로 딱 파이어 보어 삼겹살 6인분을 먹은 채였다.
“다들 잘 먹었어요?”
“네, 팀장님 덕분에 잘 먹었습니다.”
술이 깬 건지 이재욱의 말투가 돌아와 있었다.
“근데 계속 팀장님이라고 부를 거예요? 나 백운천 그만뒀는데.”
“아….”
“이제 언더커버 끝났으니 백운천에서 활동하시면 되는 거 아닙니까?”
“맞아요. 우리 엄청 기대하고 있었는데….”
그러면서 두 사람은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아직도 언더커버한 걸로 알고 있었나.
“뭘, 우리 동맹 맺은 사이잖아요. 도희 몰래 같이 게이트 가면 되죠.”
“…어, 정말 그러네요?”
“약속하신 겁니다!”
두 사람의 어깨가 동시에 다시 올라왔다.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정말로 함께하는 걸 기대했던 모양이다.
어차피 두 사람은 앞으로 날 쫓아다닐 테니, 어떤 식으로든 함께할 시간은 많았다.
그때 한 번쯤 게이트에 같이 진입하면 될 일이다.
“그래요, 다음에 꼭 한번 같이 게이트 돌아요.”
“감사합니다!”
…감사까지야.
황당한 나머지 웃음이 어색하게 흘러나왔다.
그런 당황스러운 약속을 잡고 나서 우리는 자리를 파했다.
곧 12시가 될 정도로 시간이 늦었기 때문이다.
재식에게 맡기긴 했지만 나 자신도 시탑TV에 대해 알아볼 생각이다.
두 사람은 고깃집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내게 생기 가득한 목소리로 인사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안녕히 들어가세요!”
손을 부드럽게 흔들며 두 사람의 인사를 받았다.
그들은 서로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손을 흔들어 댔다.
어차피 몇 시간 후면 또 볼 건데 뭐 저렇게까지 하는 건지.
그래도 고깃집에 들어갈 때의 시무룩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어 다행이었다.
역시 사람 위로하는 데는 고기가 최고라니까.
“자, 나도 이만 집으로 돌아가서-”
차 문을 열려는데 메시지창이 팟 떠올랐다.
[‘특별 이벤트’ 발생!] [세계수 관리인 백도운은 따스한 손길로 세계수 새싹을 어루만진 지 열흘이 지났습니다.] [전대 세계수가 고마운 마음을 담아 특별 이벤트를 진행합니다!]“특별 이벤트?”
이건 또 뭐람?
[앞으로 10초 후 이벤트 공간으로 자동 이동됩니다!] [10, 9, 8, 7, 6….]잠깐, 뭔지는 몰라도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을 줘야지!
그러나 메시지창에 떠오른 숫자는 멈추지 않고 작아졌다.
스마트폰에서부터 흰 빛무리가 뿜어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