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465
제466화
“안 되겠네….”
툭….
스마트폰을 던지듯 내려놓고, 거실 소파에 대자로 뻗었다.
내 방 침대가 아니라 거실 소파에 누운 것은 무기에게 침대를 빼앗긴 탓이다.
언젠간 꼭 되찾고 말리…!
굳은 다짐을 하는 가운데, 현관문 도어락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 문을 바라보자 세 사람이 들어오고 있었다.
도희와 한재임 그리고 이성훈 대리였다.
우리 길드에서 꿍꿍이가 가장 많은 녀석들이 함께하는 모습이 퍽 어울렸다.
어울리는 건 어울리는 거고.
“너흰 왜 왔냐?”
“후우….”
“인사하는 사람 보고 한숨을 왜 내쉬는데.”
“안 내쉬게 생겼어요? 오라버니가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인데.”
“응? 내가 뭘 몰라?”
“지금 세상이 얼마나 난리가 난 줄 알아요?”
그리 말하며 도희가 바로 내 옆에 앉는다.
편히 앉을 수 있게 소파에서 상체를 일으켜 자리를 내줬다.
이어 빈 소파 위에 엉덩이가 내려앉는 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한재임과 이 대리도 각자 빈 소파에 앉아서 난 소리다.
“난리가 났다고?”
“네. 지금 인터넷에-”
“나에 대한 비난이 엄청 올라왔지.”
“어라?”
“그리고 그 비난 댓글을 올리던 놈들과 김재식이 싸우는 바람에 인터넷 기사까지 났고.”
“……!”
“또 나흘 후 블랙 드래곤을 토벌하려고 했다는 사실도 다 들켜버렸잖아.”
“뭐야, 다 알고 있었어요…?”
도희가 깜짝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내가 알고 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 모양이다.
도희뿐만이 아니라 한재임과 이 대리도 그랬다.
참나….
“내가 뭐 하루종일 [세계수 키우기]만 하는 줄 알아?”
“…맞잖아요?”
도희가 황당하다는 듯 반문했다.
한재임과 이 대리도 그랬고, 이번엔 우리 새싹이도 그랬다.
[세계수가 관리인을 빤히 바라봅니다.] [한진환 장례식장을 다녀온 이후 관리인이 한 거라곤 박건영과 최준석이 영약을 잘 흡수할 수 있게 도와준 것이 전부였다고 설명합니다.] [그것을 제외하면, 어제오늘 관리인이 ‘능동적으로 한 일’은 침대를 빼앗은 무기에 대한 알량한 복수심을 품은 게 다라고 지적합니다.]뭐, 알량한 복수심?
그게 무슨 소리니.
내 침대를 되찾겠다는 다짐이 어떻게 복수가 되는 건데?
이건 올바르고 마땅한 정의 실현이야.
알량하지도 않고.
[세계수가 나뭇가지를 절레절레 젓습니다.] [관리인이 세계수 관리인으로서 넓은 아량과 도량을 갖게 되길 바랍니다.]넓은 아량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내가 뭐 아낌없이 주는 나무도 아니고.
난 꼭 내 침대를 되찾고 말 거야.
“지상욱이 가르쳐줬어. 내 오른팔로서 꼭 찾아내 엄벌을 내리겠다나 뭐라나.”
“아아….”
도희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 말을 듣자 흡족한 표정을 지었는데….
기분 탓이려나?
어째 가만히 내버려 두면 지상욱이랑 손잡고 같이 엄벌하러 가버릴 것 같다.
“토벌 건에 관해선 모를 수가 없더라. 어찌나 연락을 해오는지….”
그리 말하면서 스마트폰을 가리켰다.
던지듯 내려놓았던 스마트폰은 현재 잠금 화면 상태로 계속 반짝이고 있었다.
전화와 문자 메시지가 무음 상태로 끊임없이 수신되고 있는 것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연락이 오는 꼴이라서 마음 편히 [세계수 키우기]를 할 수조차 없었다.
그래서 난 끊임없이 전화를 걸어대던 사람 중 가장 정보가 많을 것 같은 사람을 골랐다.
그게 바로….
“황정희 장관이 자세히 가르쳐줬어. 그리고 내가-”
“근데 왜 이러고 있어요?”
도희가 내 말을 끊고 신경질적으로 질문했다.
어휴, 하루가 멀다고 저렇게 미간을 찌푸려대니 어쩜 좋아.
블랙 드래곤 토벌 끝나고 나면 새싹이 나뭇잎으로 화장품을 좀 만들어서 줘야겠다.
속으로 도희에게 줄 선물을 생각하며 물었다.
“그럼 뭐 하고 있어야 하는데?”
“오라버니 때문이 아니라고 진실을 밝혀야죠!”
도희가 따지듯 대답했다.
나머지도 도희와 같은 생각을 하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세 사람이 이러는 것은 블랙 드래곤 토벌 계획만 알려져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세계 헌터 협회가 토벌 계획을 세워야 했던 이유도 함께 밝혀졌는데, 그 이유란 게 굉장히 악의적으로 편집되고 왜곡됐기 때문이었다.
어떤 내용이었나 하면….
[‘백도운’ S급 헌터의 오만함이 하늘을 찔렀다.] [지난해 S급 헌터가 된 날 밤, 백도운 헌터는 혈혈단신으로 ‘S등급 베르동 협곡 게이트’로 쳐들어가 ‘블랙 드래곤’과 전투를 벌였다.]그렇게 시작한 기사에는 내가 베르동 게이트에 진입하던 사진이 함께 게시됐다.
옆에 있던 다른 사람들 모습은 모조리 편집되어 나 혼자 진입하는 것처럼 보였다.
심지어 거의 동시에 들어가다시피 했는데 말이다.
다음으로 이어진 기사 내용도 허무맹랑했다.
[승부의 행방은 베르동 협곡 게이트가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백도운 헌터는 그날 크게 다치고 간신히 도망쳐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그 오만함이 불러온 결과는 최악이었다.] [백도운 헌터가 블랙 드래곤의 심기를 건드린 탓에 인류가 위험에 빠지게 된 것이다.] [‘세계 헌터 협회’가 무리한 토벌 계획을 감행하는 것도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으로 밝혀졌다.] [아울러 한 전문가에 따르면 지난 17일 故 ‘한진환’ A+급 헌터가 A등급 테러 조직 ‘크라우드’의 수뇌부와 홀로 싸워야 했던 이유도 백도운 헌터가 블랙 드래곤과 싸우다 다친 탓으로 추측된다.]읽으면 읽을수록 헛웃음만 나오던 기사였다.
하나하나 지적할 부분이 어찌나 많던지….
블랙 드래곤 놈의 심기가 불편한 게 어떻게 내 탓인가.
마족에게 뒤통수를 얻어맞아 이곳까지 쫓겨난 제 탓이지.
내가 다쳐서 한진환을 도울 수 없었다는 추정도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그날 고정된 시간의 벽에 막혀 한진환을 돕지 못한 헌터가 나 말고도 수십 명이다.
두 발로 뛸 필요도 없이 전화 몇 통만 하면 알아낼 수 있는 정보인 것을.
즉, 이 추정으로만 쓰인 선동과 날조와도 같은 기사는 내가 직접 나서서 정정할 필요도 없었다.
“신경 쓸 필요 없어. 다른 사람들 증언만으로 금방 해결될 문제니까. 최희석이 가만히 있을 리도 없고.”
“그건 그렇기는 한데요…. 후우….”
도희가 긍정하면서 한숨을 내쉰다.
그래도 그냥 넘어갈 순 없겠는지 날 설득하려는 듯했다.
“그리고… 크라우드 목적은 따로 있어.”
“…따로 있다고요?”
“도희야. 크라우드가 왜 이런 짓을 저지른 것 같아?”
“그야 오라버니의 명성을 떨어뜨리기 위해서죠.”
“내가 떨어질 명성이 있긴 하고?”
“…….”
도희가 바로 입을 다문다.
그녀도 나한테 이렇다 할 명성 같은 게 없다는 걸 안다.
태천이처럼 선하고 정의로운 일을 행하며 살지 않았고, 한재임처럼 이미지를 메이킹하지도 않았다.
최희석처럼 오랜 세월 궂은일을 묵묵히 한 적은 더더욱 없다.
S급 헌터로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기만 한, 난 딱 그런 놈이었다.
무엇보다….
“그게 목적이었다면 굳이 블랙 드래곤이 인류를 멸망시키려 한다는 것까지 알릴 필요는 없었어.”
“토벌…에 대해 퍼뜨린 건, 다른 목적 때문이란 건가요?”
“응.”
“그럼-”
“그 목적이 대체 뭔데요?”
잠자코 있던 이 대리가 질문을 던졌다.
그 후 놀란 표정을 지었는데, 아마 속으로 생각하고 있던 질문인 모양이었다.
바로 고개를 숙여 도희에게 사과를 전했다.
도희는 같은 걸 묻고 싶었기 때문인지 따지지 않고 그냥 넘어갔다.
“…놈들이 바란 건, 세상이 불안과 공포에 떨며 혼란스러워하는 거야.”
세상은 S등급 베르동 협곡 게이트가 브레이크할 거란 걸 알고 있었다.
알면서도 걱정하지 않은 건, 다른 두 드래곤이 잠잠했으니 이번에도 그럴 거로 생각해서다.
그런데 크라우드가 나를 이용해 그 전제를 바꿔버렸다.
이번 베르동 게이트가 브레이크하면 나한테 분노한 블랙 드래곤이 인류를 학살할 거라는 식으로.
그리하여 세상은 불안과 초조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면, 우린 블랙 드래곤을 토벌할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취지로 인터뷰를 해야겠군요.”
그래….
이 대리 너는 그리 말할 줄 알았지.
“그걸 우리가 왜 해?”
“네? 그야, 도탄에 빠진 세상 사람들을 격려하기 위해서죠…?”
“그런 거 하라고 정부랑 협회가 있잖아.”
“아…?”
이 대리가 얼빠진 목소릴 냈다.
뒤이어 내 말이 옳다는 걸 느끼고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하여간….
“이번 혼란…. 잠재우기 쉽지 않겠군….”
턱을 쓸며 생각에 잠긴 한재임이 중얼거렸다.
그 말대로였다.
각국 정부와 협회들은 불안에 떠는 사람들을 안심시키는 데 큰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사람들 생각으로 이번 토벌의 핵심 전력은 에디탓 그위친이었다.
문제는 그가 정령이 되어 토벌에 참여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한진환이 죽지 않았나.
지금 사람들 머릿속에선 블랙 드래곤 토벌 실패가 기정사실이 됐을 것이다.
에디탓 그위친과 한진환은 그만한 존재감이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극도의 불안과 공포에 발작하는 사람들도 나오겠어.”
“이미 나왔을지도 몰라요.”
“음….”
도희의 부정적인 말에 한재임이 신음을 짧게 흘리며 수긍했다.
두 사람의 머릿속엔 별의별 일들이 다 떠오르고 있을 거다.
모든 것을 자포자기하는 놈들.
인류가 멸망할 거라고 무책임하게 떠드는 놈들.
이번 일을 기회 삼아 신에게 회개해야 한다고 지껄이는 놈들 등등.
이 대리가 쓴웃음을 지은 채로 말했다.
“좀 알아봤는데요. 스미르노프는 참가할 생각이 없다고 합니다….”
“걔도 참 징글징글해.”
본심이 툭 튀어나왔다.
생각을 바꿔먹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
설마 전 세계가 자신을 속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세상이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여기는 놈이라 그럴지도 모른다는 게 웃기면서 무서운걸.
그때, 도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를 불렀다.
“오라버니.”
“응?”
“아까 황 장관님이랑 통화했다고 하셨죠.”
“응.”
“지금 우리와 나눈 대화도 황 장관님과 했어요?”
“응!”
“…….”
도희가 미간을 찌푸렸다.
참 이상한 일이다.
세상에 그보다 해맑을 수 없게 대답했는데, 왜 미간을 찌푸리는 걸까?
도희는 아까보다 조금 낮아진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오라버니.”
“응?”
“그런 대화를 나눴다면, 황 장관님이 도와달라고 부탁했을 것 같은데… 맞아요?”
“응.”
“도와주겠다고 했어요?”
“응!”
또 세상 해맑게 대답했다.
사실, 원래는 돕지 않으려고 했었다.
블랙 드래곤 토벌 준비를 더 공고히 하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했으니까.
하지만,
-라는 메시지를 새싹이가 보내와서 생각을 고쳤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새싹이 말은 일단 듣고 보는 게 좋았다.
일대 그룹 백화점에서 한진환이 사달라고 떼쓸 때도 그랬다.
새싹이가 한진환의 요구를 들어주는 게 좋을 듯하다고 했고, 그랬더니 정말로 좋은 일이 됐다.
이번에도 그럴지도 몰랐다.
“허, 참, 허! 인터뷰 왜 하느냐더니, 그런 약속을 잡으셨어요?”
“이거 인터뷰 아닌데.”
“그거나 저거나요. 취지가 똑같잖아요!”
“그래서 불만이야? 지금이라도 안 하겠다고 말할까?”
“…….”
이 대리가 입을 꾹 다문다.
물론, 입만 닫았을 뿐 속으로는 불만을 엄청 구시렁거리고 있을 게 뻔했다.
내가 속마음을 읽을 줄 알았다면 엄청 시끄러웠으리라.
“오라버니. 그걸 먼저 말해주셨으면 좋았을 텐데요.”
“어? 나 말하려고 했어.”
“속으로요?”
“아니, 그렇게 말하면 좀 억울해. 네가 ‘왜 그러고 있냐’면서 말 끊어서 그랬던 건데….”
“……?”
도희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기억이 나지 않는 모양이라 자세히 설명해주려고 하는데,
“아.”
곧 탄성을 내뱉었다.
말이 끊기기 전에 “그리고 내가”라면서 무슨 말을 하려고 했었다는 사실이 기억난 모양이다.
도희는 민망한 듯 헛기침을 두어 번하곤 물었다.
“흠, 흠! 그래서, 어떻게 하기로 했는데요?”
“내일 보여주기로 했어.”
“뭘 보여주는데요?”
“그건 내일 직접 보여줄게.”
“…장난해요?”
“아니. 진심인데?”
순도 100% 진심이었다.
467화
헌터 협회 촬영장은 촬영 준비로 소란스러웠다.
앞으로 이십 분 후 전 세계를 대상으로 방송이 시작될 예정이었다.
그 한가운데에, 방송 진행을 맡은 공철이 긴장한 얼굴로 서 있었다.
“후우….”
공철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이번 방송의 규모가 자신의 진행 능력을 훌쩍 넘어섰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중압감 탓일까?
혈액 순환이 잘되지 않는 듯 손발이 차가워 자꾸만 손을 쥐었다 펼쳤다.
쉴 새 없이 흐르는 이마 위 식은땀을 휴지로 찍어 닦아낸다.
하지만 식은땀은 눈치 없이 송골송골 맺혔다.
“공철.”
긴장으로 제정신이 아닌 공철의 귓가에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공철은 그 목소리를 들은 것만으로 안색이 아주 조금 나아졌다.
굳세고 듬직한 팔이 중압감으로 짓눌려 굽은 등을 지탱해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목소리의 주인을 본 공철이 울 것 같은 얼굴을 했다.
“최, 최희석 선배님…!”
“…자네 괜찮나?”
“네…. 괜찮습….”
“공철…?”
“아뇨…. 안 괜찮습니다! 죽을 것 같아요! 어젯밤 제가 방송을 진행한다는 말을 들은 순간부터 아무것도 안 먹었는데, 토할 것 같아요!”
공철이 초조함이 물씬 느껴지는 목소리로 말을 쏟아냈다.
어쩔 수 없이 말이라도 게워내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음….”
공철의 격렬한 반응에 최희석은 당황했다.
하지만 그 순간은 잠시였다.
금세 정신을 차리고 공철을 격려했다.
“긴장하지 말게. 자네는 인사와 소개만 잘하면 되네.”
“네, 그렇죠….”
“…어차피 오늘 방송은 도운이 주가 될 테니까 말이네. 현장에 나가 있는 것도 정하설 후배고.”
“네, 알고 있습니다….”
공철이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희석의 말마따나 이번 방송의 주인공은 백도운이었다.
심지어 그 백도운은 이곳 협회가 아니라 강원도에 가 있는 상황.
당연히 이번 방송에서 공철은 아주 잠깐만 출연할 터였다.
시간으로 따지면 불과 5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순간이었다.
그러나 공철은 협회가 이 방송을 하루 만에 다급히 편성한 이유를 알고 있었다.
‘세계 헌터 협회가 꾸린 토벌대는 블랙 드래곤 토벌이 가능하다.’
그 메시지를 세상에 확신으로 심어주기 위한 방송인 것이다.
공철은 기껏해야 수만 명 정도 되는 시청자와 하하 호호 떠들며 방송하던 자신이 감당하기엔 스케일이 커도 너무 크다고 생각했다.
출연 시간이 짧다고 해서 안심되지 않는 것도 그래서였다.
“역시… 이런 방송은 제가 아니라 선배님께서 하시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아니. 자네여야만 하네.”
“어째서요? 저는 그냥 예능 방송 MC일 뿐인데요?”
“…….”
되묻는 공철을 보며, 최희석은 싱긋 웃어 보였다.
자넨 예능 방송 MC가 아니라 한국 헌터 협회의 직원이라네.
-라고, 신원을 정정해주는 대신 그의 질문에 대답했다.
“자네가 바로 이 협회 방송의 원래 진행자니까.”
“네…?”
“우린 지금 상황이 평소와 다르지 않다는 걸 세상에 보여줘야 하네. 그런데 내가 방송을 진행하게 된다면, 특별한 상황이라고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없지.”
“하지만… 지금 이건 특별한 사안이 맞지 않습니까? 무려 드래곤인데요….”
공철은 최희석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해 되물었다.
이번 방송을 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하루 전, 블랙 드래곤이 인류를 학살하려 한다는 정보가 거론됐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은 그 사실에 불안과 공포를 느끼기 시작했고, 헌터 협회는 그 부(不)의 감정을 진정시키고자 했다.
그런 계기로 기획된 방송이 어째서 평소와 똑같아야 하는가.
공철은 이해할 수 없었다.
“블랙 드래곤 토벌은 성공할 거네.”
“……!”
최희석의 단언에 공철이 숨을 들이켰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주변에서 방송을 준비하며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이들도 행동을 멈췄다.
촬영장의 모든 시선이 최희석에게 향했을 때, 그는 무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별것 아닌 일을 말하듯이.
“그런데 그 성공을 믿지 못한 자들이 벼랑 끝이라고 생각해 폭동을 일으키거나 범죄 행위를 저지르면 어떻게 되겠나.”
“…….”
촬영장의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들은 최희석이 진심으로 토벌 이후의 일을 생각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방금 본인이 말했던 것처럼 토벌 성공을 믿어 의심치 않는 것이다.
토벌 대상이 세상에 셋밖에 없는 S등급 몬스터 블랙 드래곤인데도 불구하고.
“그런 일이 없도록, 우린 세상에 확신을 보여줘야 하네.”
“그 방법이, 평소와 같은 태도…를 보여주는 것입니까?”
“바로 그렇네. 비단 우리나라만 그런 게 아니야. 다른 나라 협회들도 우리처럼 방송 진행자를 바꾸지 않았지.”
“…….”
“이제 알겠나? 내가 자네여야 한다고 말한 이유.”
“…네. 이해했습니다.”
“그럼 됐네.”
긍정의 대답에 최희석은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곧 공철의 얼굴에 의문이 여전히 남아 있음을 느꼈다.
“왜 그러나?”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하게. 대답해줄 수 있는 거라면 해줄 테니.”
“이번 토벌…. 선배님은 어째서 성공을 확신하시는 겁니까?”
공철의 질문에 스태프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그 질문의 답을 그들 모두 알고 싶었다.
드래곤 토벌.
그것은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입 밖으로 꺼내는 것이 금기시되던 것이었다.
‘드래곤은 S급 헌터들도 토벌할 수 없다는 것’이 공공연하게 돌아다니던 정론(定論)이었고, 할 수 없는 것을 말해봐야 패배감만 느끼게 될 뿐이었다.
그런 드래곤을 최희석은 토벌할 수 있다고 확신했고 의심하지 않았다.
수십 개의 눈동자가 한순간에 최희석을 향한 것은 당연했다.
“진환이 그렇게 말했으니까.”
“…….”
최희석의 대답에 촬영장에 침묵이 흘렀다.
그 대답은 그들이 바라던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최희석이 토벌대 구성원의 실력에 관해 설명해주거나 이번 일을 대비해 세계 헌터 협회가 비장의 카드를 준비해왔다고 대답할 줄 알았다.
‘누가 그렇게 말했기 때문’이라는, 아무런 근거 없는 대답이 나올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후….”
촬영장에 있는 모든 이의 얼굴에서 불안함과 초조함이 옅어졌다.
몇몇이 엷은 미소까지 지었는데, 그중엔 공철도 포함돼 있었다.
“그렇네요…. 한진환 선배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면, 그런 거겠죠….”
공철이 웃는 낯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송골송골 맺히던 식은땀은 어느새 멈춰 있었다.
땀방울이 없는 공철의 이마를 보고, 최희석이 만족한 듯 싱긋 웃었을 때였다.
한 스탭이 소리쳤다.
“현재 오전 10시 25분! 방송 곧 시작합니다!”
“아, 벌써 이렇게 됐나.”
툭.
시간을 들은 최희석이 공철의 가슴께를 살짝 쳤다.
“그럼, 수고하게.”
“네.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최희석은 공철을 뒤로 한 채 자리를 피했다.
카메라와 스태프들 뒤에까지 물러나고 보니, 문 쪽에 그가 후계로 점찍은 안지민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는 덩치만큼 큰 보폭으로 안지민을 향해 걸어갔다.
앞에 서자마자 질문을 던졌다.
“지민. 자네가 왜 여기 있나? 자넨 대기 명령을 받았을 텐데. 설마 ‘그걸’ 받고 싶지 않아서 그런 건가?”
“설마 그럴 리가요. 자격이 된다면, 받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그럼 왜 여기 있나?”
“선배님께 손님이 찾아오셨는데, 다들 바빠서 말씀을 전할 사람이 없었거든요. 저를 제외하면요.”
“전화하면 됐을 텐데?”
“저도 처음에 그렇게 말했었는데, 선배님께 통화가 연결되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음?”
최희석이 바로 주머니를 뒤져 스마트폰을 꺼냈다.
스마트폰은 화면이 연신 반짝이고 있었다.
통화와 메시지가 무음 상태로 끊임없이 수신되고 있는 것이었다.
“여기저기에서 연락이 너무 많이 와서….”
“네. 그렇게 보이네요.”
“아. 이게 중요한 게 아니지.”
최희석은 스마트폰을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이 계속 들이치는 연락 중에 꼭 받아야 할 중요한 연락은 없었다.
현재 상황을 조금이라도 더 알고 싶은 지인들이 무작정 연락해오는 게 대부분이었다.
혹시라도 중요한 연락이 있었다면, 안지민처럼 누군가가 직접 찾아와 전했을 것이다.
“찾아왔다던 손님은 누구인가? 지금 시간에 만나기로 한 사람은 없었던 거로 기억하는데….”
“수녀분이십니다.”
“수녀?”
“네. 성함은 최 클라우디아였고요.”
“최 클라우디아…?”
최희석이 전해 들은 이름을 중얼거렸다.
기억하지 못하는 건가 싶어 일부러 입으로 중얼거려봤는데도 최 클라우디아라는 이름은 처음 말하듯 낯설었다.
모르는 사람이 분명했다.
“흠…. 진환이 자란 보육원에서 오신 분인가?”
“그렇게 생각해서, 일단 응접실로 모셨습니다.”
“잘했네. 몇 층 응접실에 계시지?”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그리 말하며 안지민이 앞서 걸어갔다.
최희석은 바로 안지민을 따라 걸었다.
몇 걸음 옮겼다가,
“…….”
멈춰 서서 촬영장의 모든 카메라가 향하는 곳을 바라봤다.
그곳엔 방송을 시작한 공철이 진행을 하고 있었다.
그가 바랐던 대로, 평소와 같이.
“선배님?”
“…지금 가네.”
안지민의 부름에, 최희석은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
“……!”
응접실에 들어섰을 때, 최희석은 깜짝 놀랐다.
엄청나게 아름다운 수녀가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어째서인지 나이를 가늠할 수도 없었다.
얼굴만 봐서는 젊은 수녀가 확실한데, 앉아 있는 자세나 자신을 바라보는 태도에서 외모에 맞지 않는 세월이 느껴졌다.
어떻게 대해야 하나 고민하는 그에게 수녀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부동벽(不動壁)’…. 저는 최 클라우디아예요.”
그 인사에서 최희석은 수녀의 나이가 절대 적지 않다는 것을 확신했다.
부동벽.
움직이지 않는 벽이란 뜻의 그 별호는 그가 한창 혈기왕성할 때 들었던 것이었다.
최희석이 맞은편에 앉으며 멋쩍은 듯이 말했다.
“아직도 그 별호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군요.”
“아, 이젠 그렇게 불리지 않나요?”
“그렇게 불리기엔 너무 많이 움직였습니다. 하하….”
최희석이 쓰게 웃었다.
그동안 밀려나고 퉁겨지고 날아가 버린 기억들이 떠오른 탓이다.
그의 세대는 ‘황금기’라고 불릴 정도로 유독 재능이 넘쳐나는 헌터들이 많았다.
“그보다, 절 찾으셨다고요. 진환이 보육원에서 오셨습니까?”
“날 모르나요?”
“……?”
최희석은 눈을 찌푸렸다.
그의 인생에서 최 클라우디아 같은 미인을 본 횟수는 드물었다.
과거에 마주한 적이 있다면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무엇보다 그 미인이 수녀라면 우연히 스쳐 지나갔다고 해도 기억했을 것이다.
“잠시만요.”
최 클라우디아가 조심스럽게 베일을 벗었다.
그렇게 하면 자신을 떠올리는 데 큰 도움이 될 거라고 말하는 듯했다.
하지만 최희석은 기억해내지 못했다.
베일을 벗은 최 클라우디아를 보고 그가 느낀 건, 미인 수녀가 베일 벗은 미인 수녀가 됐다는 감상뿐이었다.
눈이 참 고양이 눈 같다는 감상과 함께.
“미안합니다. 난 당신을 처음….”
최희석이 말끝을 흐렸다.
순간, 어제 떠나보낸 친한 동생의 젊을 적 목소리가 떠올랐다.
“무지하게 예쁘더구만. 특히, 고양이 같은 눈으로 날 바라보는데…, 한 번 봐줄까 싶더라니까?”
최희석의 눈이 놀라서 조금씩 커졌다.
기억해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는 사람이었으니까.
다만, 떠올릴 수는 있었다.
친한 동생에게 굉장히 주관적인 묘사와 감상을 전해 들은 적이 있었으므로.
“…….”
최희석은 혼란을 느꼈다.
복잡한 혼란은 곧 의문으로 바뀌었다.
최희석은 그러나 머릿속 의문을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고민하기에 앞서 행동부터 하는 인간이었고, 그렇기에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
쾅!
최희석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사이에 있던 탁자를 치웠다.
이어 그의 두꺼운 오른손가락들이 굵은 갈고리처럼 최 클라우디아의 목을 향했다.
“…….”
그 손가락들을, 최 클라우디아는 그저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