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464
제465화
백운천 공용 훈련장 옆 휴게실.
김재식이 반쯤 드러눕다시피 앉아 스마트폰으로 왓쳐 캐스트를 보고 있었다.
온종일 훈련에 힘쓰다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진 것이다.
스마트폰으로 시청하는 영상은 사흘 전 고인이 된 A+급 헌터 한진환의 활약상으로, 그 길이가 무려 27시간이나 됐다.
그동안 한진환이 얼마나 많은 활동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 형님. 큰일 난 것 같은데.
스마트폰에서 한진환의 목소리가 퍼져 나왔다.
그답지 않게 진중한 목소리에 영상 속 최희석이 얼굴을 살짝 굳혔다.
무언가 일이 잘못됐나?
그런 생각이 담긴 표정이 지어진 순간, 한진환이 개구쟁이 같은 미소를 지었다.
– 내가 다 끝내버렸어.
– 끝냈다니? ‘랩틸리언’들이 저렇게 득시글….
우르르 쾅!
최희석의 말을 끊듯 벼락이 쳤다.
그와 동시에 한진환이 지하에서 올라오던 A등급 몬스터 랩틸리언들을 가리켰다.
정확히는 랩틸리언이었던, 이제는 익은 고깃덩이가 된 것들을.
– 봐봐. 끝났잖아.
– …….
영상은 최희석이 얼빠진 얼굴로 앞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여준 뒤 다음 장면으로 넘어갔다.
이어진 다음 장면들은 방금 김재식이 본 장면과 얼추 비슷했다.
한진환이 뽐내듯 우쭐거리고, 최희석이 황당해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활약하는 모습을 모은 영상이었지만, 간간이 인터뷰 장면도 나왔다.
– 스미르노프 만난 기분? 할만해 보이던데.
[찢었다!]그런 자막과 함께 한진환이 자신감을 내비치는 장면들이 이어졌다.
톡톡.
김재식은 화면을 두 번 두드려 영상을 추천한 후 영상 댓글들을 확인했다.
그처럼 한진환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댓글을 보면서 울적함을 씻어내고 싶어서였다.
[R.I.P….]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편히 쉬길…!] [전 은퇴한 헌터입니다. A등급 게이트에서 조난했을 때, 한진환 선배님께서 구해주셔서 살아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날 정말로 감사했습니다…]톡, 톡, 톡….
김재식은 댓글을 읽어내려가며 일일이 추천했다.
그와 같은 생각을 하는 이들을 보았기 때문일까?
아까보다 조금 기분이 나아졌다.
물론,
“후우….”
금세 괴로운 현실이 밀려와 그를 괴롭혔다.
한진환은 그가 어렸을 적부터 보고 자란 한국 최강의 헌터였다.
헌터가 되고자 했던 것도 그런 한진환의 모습이 멋져 보여서다.
그랬던 어릴 적의 우상이 죽었으니, 김재식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새어 나오는 것은 당연했다.
또 그와 같이 ‘백운천 새싹들’이라고 불리는 다른 팀원들의 반응도 비슷했다.
천재 마법 소녀 이연지를 제외하고 모두 동갑인 그들은 보고 자란 사람이 똑같았다.
그 탓에, 며칠 전까지만 해도 열의와 열정으로 가득했던 공용 훈련장에는 활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
훈련장에 있는 것이라곤 숨이 턱 막힐 것만 같은 우울한 분위기뿐이었다.
휴게실에 혼자 나와 위드 허니를 뽑아 마시며 왓쳐 캐스트를 보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어…?”
톡.
댓글을 읽어내려가며 추천 버튼을 누르던 김재식의 엄지가 멈췄다.
다른 댓글들의 분위기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내용의 댓글이 올라와 있었다.
[근데 한진환 죽을 때 백도운은 대체 뭐했음?] [정말로 몰라서 궁금한 마음에 물어보는 거.] [서울 하늘이면 얼마든지 도와줄 수 있지 않았나 싶어서.]“…….”
김재식이 눈을 찌푸렸다.
온라인에서 살다시피 하는 사람이라면,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라는 저 말을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게 분명했다.
그리고 꿍꿍이가 무엇인지 김재식은 그 댓글에 달린 대댓글들을 읽고 깨달았다.
[그러게. 백도운은 대체 왜 안 도와준 거?] [혹시 한진환이 싸웠던 곳이 백운천 길드에서 멀었음?] [ㄴㄴ 개가까움. 백운천 건물 바로 위였던 거로 앎.] [아니, 등신들아. 이무기가 있는데 거리가 뭔 상관이야?] [내 말이. 이무기 타면 어디든 금방 갈 수 있는데. 거리가 멀었냐고 쳐 묻고 있네.]짧은 의문이 도운을 향한 비난이 되고 있었다.
허무맹랑한 이유를 근거로.
“후…!”
댓글들을 대충 읽은 김재식이 흥분을 고르고자 콧숨을 내뿜었다.
이어 어깨를 돌리고 손을 턴 후 댓글 작성 버튼을 눌렀다.
“이 사람들이 정말!”
그렇게, 김재식의 외로운 싸움이 시작됐다.
***
김재식이 외로운 싸움을 시작했을 때.
온라인상에서 이상한 말들이 나오고 있는 것을 한재임과 백도희도 알아차렸다.
그 정보를 알아낸 사람은 이성훈 대리였는데, 그는 근무 시간에 딴짓하고 있었다는 말을 쏙 빼고 전했다.
백도희가 미간을 찌푸린 채로 화면을 노려봤다.
그 모습에, 이성훈 대리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리고… 방금 보여드린 사이트에서만 그런 말이 나오고 있는 게 아닙니다.”
“다른 커뮤니티 사이트에도 이런다는 거예요?”
“그렇습니다. 심지어 다른 나라의 커뮤니티 사이트에서조차 그러고 있습니다.”
“…누가 일부러 이런 짓을 하고 있다는 거네요.”
“네. 그렇게 생각해서 바로 두 분께 알린 겁니다.”
“잘했어요.”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인 것을요. 하하….”
이성훈 대리는 머쓱하게 웃었다.
일하기가 싫어 딴짓하다 얻어걸린 것이기 때문일까?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간다는 걸 빨리 알아차려 칭찬을 받았는데도 당당하게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도희가 맞은편에 앉은 한재임을 응시했다.
곧 그 시선의 저의를 알아차린 한재임이 부정했다.
“…나 아니다.”
“정말로 아니에요?”
도희는 한재임의 반박을 바로 믿지 않았다.
지금은 사장된 도운을 비하하는 별명 ‘낙하산’과 ‘여동생 등골 브레이커’가 바로 그의 솜씨였다.
도희의 믿지 못하는 시선에서 한재임은 자신의 업보를 느꼈다.
실제로 이번엔 그가 벌인 짓이 아니었으므로 좀 억울하기도 했다.
그간 저질러놓은 짓이 있어 억울하다고 말할 수는 없었지만.
“솔직하게 말하면, 원장 수녀님께 듣고서 별호를 ‘광운’으로 바꾸려는 시도는 했었어.”
“오라버니가 하지 말랬잖아요.”
“태천이가 따로 부탁한 것도 아닌데 내가 들을 필요 있나?”
“…….”
도희의 미간에 파인 골이 더 깊어졌다.
예상했던 일이었는데도 직접 듣고 나니 질렸다.
그녀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재임은 화면을 가리켰다.
“저 짓을 한 건 분명 크라우드겠지.”
“네. 그럴 거예요.”
도희는 바로 동의했다.
이런 짓을 할만한 도운의 적이 그자들밖에 없었기에 머리를 써가며 따로 추측할 필요도 없었다.
사실, 그녀의 오빠 백도운은 자기 마음대로 사는 사람 치고 적이 그리 많지 않았다.
누군가를 적으로 두려면 그만큼 관심이 있어야 하는데, 도운은 타인에 관한 관심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설령 운이 좋아 그의 관심을 끌어 적이 됐다고 해도, 제 오빠는 적을 오래 두고 보는 성격이 아니다.
지금껏 그의 적이 되고 살아남은 이가 손에 꼽는다는 것이 바로 그 증거다.
그러니 크라우드를 제외하고 나면 지금 같은 짓을 벌일 만한 적이 없었다.
굳이 하나 꼽으면 러시아의 S급 헌터 스미르노프 정도가 있는데….
그자는 이런 귀찮고 번거로운 짓을 저지를 성격이 못됐다.
아마 편승할 생각조차 하지 못할 거다.
“그런데… 하는 짓이 좀 가소롭네요.”
“음. 확실히….”
이번엔 한재임이 바로 동의했다.
마족의 권속이라면서 인간을 무시하던 놈들 주제에 하는 짓이 너무 같잖고 얄팍했다.
헛웃음이 나올 정도다.
“뭐, 대중 심리를 이용하려고 했다는 점에선 놈들다운 짓이긴 하지만요.”
“여론을 휘어잡는 건, 큰 여파로 다가올 수 있는 심각한 문제이기도 하고.”
“그래도 우리 오라버니한테 통할 짓은 아니에요. 이런 짓이 효과가 있을 거로 생각했나?”
“그건 내가 잘 알지….”
한재임이 질린다는 듯 중얼거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도운에게 멸칭을 붙였던 이유는 괴로워하는 꼴을 보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도운은 괴로워하지 않았고 남이 뭐라고 떠들던 신경 쓰지도 않았다.
도운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도희와 태천이만 그리 생각하지 않으면 된다는 식이었다.
아마 도운은 전 국민이 자신을 욕한다고 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터였다.
그 때문일까?
한재임이 그런 별명을 도운에게 붙었을 때 오히려 두 사람이 더 괴로워했었다.
이번에도 그럴 것이다.
“태천이가 좀 힘들어하겠군….”
“그래도 이런 여론전이라면 재임 오빠가 금방 뒤집을 수 있잖아요? 워낙 전문가이시니까.”
“어째 말에 뼈가 있는 듯한데…. 착각이겠지?”
“그럼요. 순수한 칭찬이었는걸요.”
“흥….”
“…어, 저기.”
이성훈 대리가 손을 들며 끼어들었다.
도희와 한재임의 시선이 이성훈 대리에게로 향했다.
“김재식 군도 힘들어하는 것 같습니다.”
네 개의 눈동자를 마주한 이성훈 대리가 모니터에 뉴스 기사를 띄웠다.
김재식 사진과 왓쳐 캐스트 영상 댓글 스크린샷이 눈에 들어왔다.
한재임이 기사 제목을 빠르게 훑었다.
“백운천 헌터 김재식, 귀여운 얼굴 속에 숨겨둔 살벌한 본성? 뭡니까, 이 말도 안 되는 기사 제목?”
“하아…? 김재식이 익명성을 이용해 스트레스를 풀었다…?”
두 사람이 황당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동안, 이성훈 대리는 다른 기사를 찾아 모니터에 띄웠다.
처음 띄웠던 기사는 너무 악의적이고 편파적이어서 진실 여부를 확신할 수 없었다.
이성훈 대리가 아는 김재식은 그런 비열한 짓을 저지를 만한 인물이 절대로 아니었다.
도희와 한재임이 바로 기사를 훑었다.
[‘김재식 헌터’, 익명 뒤에 숨은 네티즌에 쓴소리!] [S급 헌터 ‘백도운’을 향한 악성 게시글에 같은 “백운천 길드” 소속의 A급 헌터 김재식이 발 벗고 나섰다.] [김재식 헌터는 게시글이 올라온 이후 30분이 넘게 설전을 벌였으며….]“아아…. 악플러와 싸운 거네요.”
“그리고 지금도 현재 진행 중이다….”
기사의 마지막 문장을 읽은 한재임이 스마트폰을 꺼냈다.
김재식에게 연락해 현재 진행형인 외로운 싸움을 말리기 위해서였다.
한재임은 이런 일의 전문가로서 감성적으로 구는 것이 별로 좋은 방법이 아니라는 걸 잘 알았다.
“…여보세요? 재식 씨. 이제 그만하십시오.”
한재임이 김재식과의 통화가 연결됐을 때,
“이성훈 대리.”
도희가 작은 목소리로 이성훈 대리를 불렀다.
그녀의 목소리를 따라 그의 목소리도 작아졌다.
“네, 부길마님.”
“재식 씨 연봉 재협상하도록 해요.”
“연봉을요?”
“네. 잘했으니 연봉 올려줘야죠.”
“…….”
이성훈 대리는 멍하니 도희를 바라봤다.
악플러와 잘 싸웠다고 연봉을 올려주라니.
잘못 들었나 싶어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왜 대답이 없어요?”
“아무래도 제가 잘못 들은 것 같아서요.”
“제대로 들었을걸요.”
“네?”
“올려주라고요. 연봉.”
“…네. 알겠습…!”
대답하던 이성훈 대리의 입이 멈췄다.
그 모습을 보고 도희는 눈을 찌푸렸다.
설마 다른 사람 연봉이 올라가는 것이 배 아픈 걸까?
하지만 곧 이성훈 대리가 노트북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것을 보고 연봉 때문에 그러는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놀랄 만한 새로운 기사가 올라온 모양이었다.
“저, 저기…!”
충격에서 헤어나오려는 듯 이성훈 대리의 입이 힘겹게 움직였다.
한재임은 아직 김재식과 통화 중이었던 탓에 듣지 못했지만,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던 도희는 들었다.
“왜 그래요?”
“이거…! 이거 빨리 보셔야 할 것 같은데요…!”
이성훈 대리가 모니터에 새로운 기사를 띄웠다.
기사를 보자마자 도희의 눈이 부릅떠졌고, 통화 중이던 한재임도 경악에 찬 얼굴이 됐다.
모니터에 뜬 기사는 세계 헌터 협회가 열심히 비밀로 하고 있던 것이었다.
[세헌협, ‘블랙 드래곤 토벌’ 나선다…“무리한 계획, 이래도 괜찮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