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463
제464화
어두운 방.
커다란 원탁만 덩그러니 놓인 방에 해골이 홀로 앉아 있었다.
평소와 달리 검은 로브를 몸에 두르지 않고 새카만 뼈를 훤히 드러낸 채였다.
“…….”
해골은 가만히 앉아 있었음에도 어쩐지 힘들고 지쳐 보였다.
근육과 살갗이 없어 표정이 드러나지 않았는데도 분위기만으로 그리 보였다.
그때, 굳게 닫혀 있던 문이 벌컥 열리고 원이 들어왔다.
“해골.”
“…….”
원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이 해골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 대신 고개를 들어 올려 시선을 맞추는 행위도 하지 않았다.
그저 앉아 있기만 했다.
빠득….
세상만사 다 귀찮아 보이는 해골의 모습에 원이 이를 악물었다.
그 탓에 원의 입에선 사납게 읊조리는 듯한 목소리가 나왔다.
“얘기 좀 하지, 해골!”
“…….”
그러나 해골은 계속 침묵으로 일관했다.
아까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모습은 마치 어떤 얘기도 하고 싶지 않다고 대답하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여유로운 한때였다면, 원은 그대로 자리를 피해 문을 닫고 나갔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한가하게 피곤함에 찌들어 있을 때가 아니었기에 원은 해골이 바라는 대로 해 줄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품에서 사진을 꺼내 원탁 위로 거칠게 내던진다.
촤라락!
수십 장의 사진이 원탁에서 슬라이딩하듯 미끄러졌고, 해골 앞에 도달해서야 멈췄다.
“…….”
마침 시선을 내리깐 해골의 시야에 사진 중 하나가 들어왔다.
맨 위에 놓인 사진으로 한국 A급 헌터 윤건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사진 속 윤건은 밤하늘을 밝게 비추기라도 할 작정인지 붉은 화염을 사방팔방 거칠게 내뿜었다.
먼 곳에서 찍힌 탓에 표정이 제대로 담기진 않았지만, 분노와 슬픔이 서려 있는 것은 알 수 있었다.
털썩….
원이 해골의 맞은편 빈 의자에 앉으며 사진에 관해 설명했다.
“뇌제의 장례식장 사진이다.”
“…….”
뚜둑….
그제야 해골의 고개가 약간 움직였다.
뇌제.
그 단어가 갈고리처럼 해골의 귓구멍에 걸려 끌어올린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해골이 지칠 대로 지치게 만든 존재의 이름이 바로 그것이었다.
“뇌제는 죽으면서 세계수 관리인과 최희석에게 각각 유산(遺産)을 남긴 것으로 확인됐다.”
“…….”
뚜둑!
유산을 남겼다는 말에 해골의 고개가 완전히 위로 올라왔다.
눈동자 없는 해골의 눈과 로브를 뒤집어쓴 원의 눈이 허공에 맞부딪쳤다.
원은 그것이 마음에 들었는지 미소를 짓듯 입술을 비틀었다.
“지금 뇌제의 유산이라고 했나?”
“그래. 뇌제가 세계수 관리인에게 ‘아스트라페’라는 걸 남겼다는군.”
“아스트라페? 그건, 제우스의 번개 이름이 아닌가.”
“그 이름대로 번개 모양이라더군. 현재 백운천 건물 옥상 정중앙에 박혀 있는 거로 확인됐네.”
“박혀 있다고?”
“피뢰침 같은 모양새라는군. 바로 그걸로 우리를 막아 세웠던 결계를 펼쳐낸 것이고.”
“피뢰침….”
해골이 낮게 중얼거렸다.
머릿속에선 번개 모양의 피뢰침이 건물 옥상에 박힌 모습이 그려졌다.
퍽 웃긴 모습이었으나 웃음은 조금도 나오지 않았다.
그것으로 뇌제가 어떤 일을 했는지, 가장 크게 실감한 이가 바로 해골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유산으로 세계수 관리인에게 남겼다면….
“뇌제…. 이 빌어먹을 놈이 끝까지 날 방해하는구나….”
해골이 한숨을 내쉬는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어젯밤 맞닥뜨렸던 번개의 결계는 감히 그들의 진격을 막아냈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도 파악하지 못했는데, 그 물건이 그들의 영원한 숙적인 세계수 관리인의 손에 들어갔다.
한숨 같은 혼잣말을 할 만도 했다.
심지어 그의 옆엔 크라우드가 재능을 인정해 납치했던 대장장이 ‘유지성’의 딸 유재이가 함께 있지 않던가?
세계수 나뭇가지로 무기를 제작할 수 있는 걸 보면 제 아비의 재능을 그대로 물려받은 것이 분명했다.
그런 유재이가 함께 있다는 것은, 피뢰침처럼 옥상 건물에 박혀 있는 아스트라페가 세계수 관리인이 다루는 병기(兵器)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납치할 때 같이 납치할 것을…. 괜히 자비를 베풀어 귀찮아졌구나.”
“뭐라고?”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
원이 고개를 갸웃거렸으나 해골은 입술이 없는 입을 다물었다.
알맞게 맞물려 틈이 없는 이는 다음 말이 흘러나오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원은 해골에게 들을 생각을 치우고 제 할 말을 이었다.
“그리고… 최희석에겐 자신의 정수(精髓)를 맡겼다고 한다.”
“최희석이 누구… 아니. 그보다 ‘뇌제의 정수’라고? 그게 대체 뭐지?”
“협회에 잠입시켜 놓은 놈이 전하기를, 그 정수를 사용하면 번개의 마나를 얻을 수 있다고 하더군.”
“…호오?”
해골의 입에서 흥미를 느낀 듯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소리를 듣자마자, 원은 관심사에 온 신경을 쏟아붓는 해골의 좋지 못한 버릇이 튀어나오려는 것을 알아차렸다.
타앙!
곧바로 해골의 버릇이 고개를 들이밀지 못하게 오른손을 활짝 펼쳐 원탁을 세게 내리쳤다.
“안 되네.”
“…뭐가 말인가?”
“우린 이번 자네의 작전으로 인해 헤미스파이리움을 다 써버렸네. 그뿐인가? 풍뎅이와 늑대도 잃었지.”
“호오. 말에 가시가 돋아나 있군그래? 내 몸에 구멍이 숭숭 뚫려있지 않았다면 찔리고도 남았겠어.”
해골의 새카만 입에서 흥미를 느낀 소리가 나왔다.
그러나 이번엔 소리만 흘러나온 것이 아니라 녹색 연기가 함께 몽개몽개 흘러나왔다.
녹연(綠煙)은 연기답지 않게 무거운 듯 원탁으로 떨어졌고 파도처럼 빠르게 원을 향해 나아갔다.
파아아… 팍!
그러나 원에게 닿지 못했다.
어느새 원탁 위에 소환된 륜이 회전하면서 녹연을 끌어당겼다.
“지금 해보자는 건가, 해골?”
“먼저 그럴 뜻을 내비친 건 자네 같은데.”
뚜둑.
해골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자 검은 뼈들이 서로 부딪쳐 둔탁한 소리를 냈다.
“이번 작전은 자네도 동의했던 것이지. 직접 확인까지 하지 않았던가?”
“…….”
원은 대답하지 않았다.
해골의 말대로였기 때문에 할 말이 없었다.
방금 “자네의 작전으로 인해”라는 말을 굳이 붙였던 것도 책임을 회피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 사실을 잘 아는 해골이 우쭐거리며 말을 이어나갔다.
“게다가, 늑대와 풍뎅이가 죽은 것도 내 탓은 아니지.”
“…….”
“설마 늑대가 뇌제의 공격에 그리 쉽게 절명(絶命)할 줄 내가 어떻게 알았겠나? 물론….”
해골이 말끝을 흐렸다.
머릿속에 한진환이 번개 그 자체가 된 오른팔로 늑대를 살해하던 모습이 떠오른 탓이다.
아바돈의 무저갱.
그들이 숭배하는 존재의 힘이 가득 차 있던 곳에서 늑대의 회복 속도가 쫓아가지 못할 정도로 강한 공격을 끊임없이 쏟아내던 한진환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실제로 보고 겪었음에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해골이 말끝을 흐렸던 것도 그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서였다.
또,
“그리고. 풍뎅이가 죽은 것은 우리가 버렸기 때문이지 않나.”
화제를 돌리는 말을 한 것도 같은 이유였다.
“우리라고?”
“설마 버리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은 건가? 내가 풍뎅이의 심장을 건드렸을 때, 자네가 보여준 행동이 떠오르지 않나 보지?”
“…….”
원이 또다시 대답하지 못하고 이를 악물었다.
그 모습이 웃긴다는 듯 해골은 검은 이를 딱딱 부딪치며 웃었다.
달, 달달… 달달달…!
원탁 위에 있던 륜의 돌아가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달달 거리던 소리 대신 바람을 일으키는 소리가 날 때, 해골이 웃음기가 묻어난 목소리로 물었다.
“끝까지 하자는 건가. 원?”
“이미 자네가 그러기로 결정한 줄 알았는데?”
“큭큭…. 내 말이 심했음을 인정하니, 오늘은 이 정도만 하는 게 어떻겠나.”
“…….”
“지금 싸워 그분의 유일한 종을 정하는 것도 큰 즐거움이라 생각하네. 하지만 우린 아직 함께 이뤄야 하는 대업이 있지 않나.”
“후우….”
달달달, 달달….
원의 한숨과 함께 륜의 회전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졌다.
곧 회전을 완전히 멈춘 륜이 사라졌고, 해골 입에서 계속 흘러나오던 녹연도 그쳤다.
이미 내뿜어졌던 연기도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해골이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말했다.
“자네 말대로, 내가 계획했던 세계수 관리인을 가두는 작전이 실패하긴 했네. 하나 뇌제를 죽이지 않았나.”
“뇌제의 죽음 따위 사소한 일. 늑대와 풍뎅이를 잃은 것이 훨씬 더 뼈아프네.”
“그래, 인정하는 바네. 장기적으로 보면 말일세.”
“장기적?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겐가?”
“우리가 본래 세계수 관리인을 그분의 무저갱에 가두려고 했던 이유가 뭐였나?”
“그야… 아!”
해골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완벽히 이해한 원이 탄식을 흘렸다.
크라우드의 본래 목적은 블랙 드래곤 토벌의 핵심인 세계수 관리인을 무저갱에 가둬 전력을 손실시키는 것이었다.
그리하면 블랙 드래곤이 인류를 훨씬 더 수월하게 학살할 수 있다고 판단했으므로.
한진환이 중간에 끼어드는 바람에 해골의 계획대로 척척 흘러가진 않았으나, 그래도 문제 될 건 없었다.
이번에 죽인 한진환도 블랙 드래곤 토벌에 중요한 전력이었기에.
“어쨌든 우린 놈들의 전력을 손실시켰네. 정령이 된 그위친도 숲에서 나올 수 없는 상황이고.”
“그래. 그랬지….”
“이것만으로도, 블랙 드래곤은 우리가 바라던 대로 인류를 적당히 학살시켜줄 걸세.”
“음…. 과연, 자네 말이 다 옳군….”
해골이 의기양양하게 말하고, 원도 수긍하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토벌대가 토벌에 성공하는 가능성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는 듯했다.
그때,
“그래, 그래….”
원이 중얼거리면서 원탁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어 뒤쪽 문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는 모습을 해골이 물끄러미 지켜보다가 물었다.
“어디 가나…?”
“자네 덕분에 좋은 생각이 떠올랐네.”
“좋은 생각?”
“불안. 초조. 긴장. 상실. 혼돈. 혼란. 공포…. 그걸 세상에 널리 퍼뜨려줄 셈일세.”
원이 조금 전의 해골처럼 득의양양한 모습으로 대답하더니 방을 나갔다.
해골이 “어떻게?”라고 물을 새도 없었다.
탁….
네모난 문이 닫히고, 해골은 다시 방에 홀로 남게 됐다.
“후우….”
해골이 닫힌 문을 바라보다가 이내 한숨을 내뱉었다.
아까처럼 근육과 살갗이 없는 얼굴에 피로가 다시 묻어났다.
그러나 그뿐.
피곤함에 짓눌린 것처럼 앉아 있는 대신 의자를 뒤로 빼며 일어났다.
그러면서,
“…세계수 관리인이여.”
이곳에 없는 백도운을 불렀다.
해골의 검은 이가 대답이 없는 허공을 향해 딱딱 부딪치며 질문을 던졌다.
“네놈은 아느냐?”
딱딱…!
질문을 뱉은 이후 말이 이어지지 않았는데도 검은 이들이 부딪쳤다.
오히려 아까 전보다 훨씬 더 요란했다.
그것은 새카만 해골의 웃음소리였다.
이곳에 없는 이를 향한 야유와 조롱이 담긴….
“블랙 드래곤, 하르모니아…. 그것은, 그분께서도 죽이는 것이 곤란하기에… 이곳 세상으로 치워버린 존재….”
스윽.
해골이 오른팔을 높이 들어 올리고 천천히 아래로 내렸다.
그러자 새카만 뼈에서 어둠이 흘러나오더니 검은 로브처럼 변했다.
평소처럼 로브를 둘러 몸을 가린 해골이 불길한 예언을 읊조렸다.
“그 이유를 깨닫지 못한다면, 네놈은 머지않아 후회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텅 빈 원탁에 듣는 귀는 아무도 없었다.
곧 딱딱거리던 소리가 그쳤고, 동시에 말하던 이도 사라졌다.
원탁엔 오로지 침묵만이 내려앉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