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462
제463화
앨릭스 협회장은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의 오른손엔 스마트폰이 쥐어져 있었는데, 화면에는 조우민 협회장의 이름이 떠올라 있었다.
책상 맞은편에 떨어져 서 있던 일리스가 이상함을 느끼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다가갔다.
“협회장님. 왜 그러십니까?”
“…….”
“협회장님…?”
일리스의 부름에도 앨릭스 협회장은 요지부동이다.
손에 들린 스마트폰만 내려다보는 모습은 너무 큰 충격을 받아 넋을 잃어버린 사람 같았다.
일리스는 그와 알고 지낸 지 한 손으로 셀 수 없을 정도가 됐으나 지금 같이 제정신이 아닌 모습은 처음 보았다.
그렇기에 대체 그가 왜 그러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다시 부르고자 입을 여는데, 앨릭스 협회장이 혼란과 경악으로 물든 목소리로 말했다.
“질 나쁜 농담을 들은 것 같군….”
“농담, 입니까?”
“…….”
“…대체 조우민 협회장이 뭐라고 했기에 그러시는 겁니까?”
“한진환…. 그 친구가….”
앨릭스 협회장이 말하던 도중 입을 다물었다.
다음으로 내뱉을 말을 자기 자신조차 믿을 수 없는 듯했다.
그 때문에 일리스의 궁금증은 더욱 커졌다.
대체 무슨 말을 들은 거냐고 재촉하고 싶었으나 자신의 상사인지라 그럴 수 없어 꾹 참고 기다렸다.
“죽었다는군….”
“네…?”
일리스는 듣자마자 바로 되물었다.
한진환이 죽었다.
그 말을 들은 일리스는 그가 했던 것처럼 “그게 무슨 질 나쁜 농담이냐”고 덧붙일 뻔했다.
하지만 앨릭스 협회장의 딱딱하게 굳은 얼굴이 두 입술이 떨어지지 않도록 막았다.
설마, 정말로…?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을 때, 앨릭스 협회장이 중얼거렸다.
“상황이, 나빠도 너무 나쁘군….”
“…….”
일리스는 그 중얼거림에 조용히 동의했다.
일주일 후, 그들은 세계를 구하기 위해 ‘블랙 드래곤 토벌’을 계획하고 있었다.
그런데 토벌의 핵심이 될 전력을 잃어버린 것이다.
심지어 이 짧은 사이 하나도 아닌 둘이나.
에디탓 그위친은 정령이 됐으니 한진환처럼 죽었다고 볼 수는 없었지만, 토벌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일리스가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들고 침울하게 말했다.
“그위친의 숲에 연락하겠습니다.”
“…뭐 하러?”
“네?”
“거기에 왜 연락을 하느냐고.”
“그곳에 있는 밀러에게 한진환이 죽었다는 사실을 전달하기 위해서지요…?”
“전달…? 하….”
앨릭스 협회장이 중얼거리더니 웃음을 짧게 흘렸다.
그 황당하다는 듯한 반응에 일리스는 자신이 무슨 실수라도 했나 싶었다.
하지만 짧은 사이 아무리 생각해봐도 제 실수를 찾지 못했다.
“그러니까, 자네 말은 지금 한진환 장례식장에라도 가자는 건가?”
“그야…-”
“현재 그위친에게 가르침을 받아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밀러를 데리고 말인가?”
“아….”
일리스가 짧게 탄식했다.
정이 많은 밀러는 한진환의 부고를 듣는 순간 곧바로 한국으로 떠날 터였다.
그렇게 되면, 앨릭스 협회장의 말대로 그녀의 성장은 그 시간만큼 멈추게 되는 것이었다.
블랙 드래곤 토벌을 위해 아주 조금이라도 더 성장해야 하는 지금 상황에서 말이다.
앨릭스 협회장이 손을 휘저었다.
“알아들었으면 내버려 둬. 지금… 밀러의 성장을 방해할 수는 없어.”
“…….”
일리스는 그 말에 동의했다.
그러나 밀러를 위해서 한 마디 덧붙였다.
“그렇지만, 밀러가 크게 후회할 겁니다. 협회장님을 원망할 거고요.”
“…그렇다면 다행이지.”
“다행이라고요?”
“그래. 밀러가 후회하고 나를 원망하려면… 어쨌든 블랙 드래곤을 토벌해야지 가능할 테니까.”
“…….”
일리스는 그의 말에 대꾸할 말이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이번 토벌에 성공하지 못한다면 인류는 멸망할지도 몰랐다.
후회도 원망도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일리스는 동의했다.
“…….”
결국, 일리스는 말을 더 덧붙이지 못하고 스마트폰을 도로 집어넣었다.
무사히 밀러에게 원망의 눈초리를 받을 수 있길 바라면서….
***
중국 화산의 밤하늘.
리롄제는 뒷짐을 진 채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가파른 화산의 가장 높은 곳엔 평지가 있고, 수십 명에 달하는 그의 제자들이 그곳에서 기를 뿜어내어 투명한 막을 만들고 있었다.
그들이 ‘기막(氣幕)’을 펼치고 서 있는 것은 블랙 드래곤의 공격으로부터 교황청 사제들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훈련을 하기 위해서였다.
“흠….”
하늘에서 뒷짐 지고 서 있던 리롄제가 오른손을 슬쩍 들어 올렸다.
그와 동시에 기를 끌어모았는데, 막대한 양의 기가 곧 용의 머리처럼 변했다.
검지부터 소지까지가 용의 머리가 되었고, 엄지는 아래턱이 되었다.
“자. 이번엔 막아낼 수 있는지 보도록 하자꾸나.”
그리 말하면서 리롄제는 오른손을 아래로 누르듯 뻗었다.
그러자 입을 벌린 용의 머리에서부터 불을 뿜는 듯한 소리가 났다.
“……!”
“후웁…!”
소리가 난 후 벌어질 일을 알고 있던 수십 명의 제자가 긴장한 모습을 보였다.
각자 눈을 부릅뜨고 침을 삼키는데, 리롄제의 작게 읊조리는 목소리가 가까이에서 말하는 것처럼 잘 들렸다.
“이번에도 막지 못한다면, 너희는 오늘부터 지옥이 차라리 편하다 느끼게 될… 음?”
리롄제가 말하다 말고 고개를 돌렸다.
이번에 S급 헌터가 된 수제자 리우이호가 그가 있는 곳까지 다급하게 달려 올라오고 있었다.
수제자의 얼굴은 어쩐 일인지 소스라치게 놀란 듯했다.
“스승님…!”
“왜 이리 부산스러운 게냐. 누가 죽기라도 했더냐?”
“그, 그렇습니다!”
“정말 누가 죽었다고?”
리롄제는 수제자를 빤히 쳐다봤다.
실없이 던진 농에 긍정이 되돌아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설마 제자 놈이 발칙하게 농을 농으로 되받아치는 것인가?
그런 생각이 고개를 들이밀었지만, 그는 그 생각을 곧바로 짓밟아버렸다.
설령 매사에 진지하고 완고한 리우이호가 갑자기 자신의 융통성 없는 성격을 바꾸고 싶어졌다고 해도, ‘사람의 죽음’을 갖고 농담을 할 리가 없었다.
이 화산의 하늘에서 그런 것으로 농담을 건넬만한 이는 리롄제 그뿐이었다.
“도대체 누가 죽었기에 그러는 게냐?”
“그것이-”
“답지 않게 허둥지둥하는 것이 꼭 한진환 그 애송이가 죽은 것 같구나.”
“헉…!”
리우이호가 깜짝 놀라선 입을 떡 벌렸다.
끔뻑끔뻑….
제자의 반응에, 리롄제는 눈을 감았다가 뜨길 수차례 반복했다.
방금 한 말 또한 별 뜻 없이 한 농에 불과했다.
그가 생각하기에 이 세상에서 가장 죽을 일이 없는 인간이 바로 한진환이었으므로.
설령 본인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S급 헌터를 다 포함한다고 해도 말이다.
그런데 평소 그리 생각하던 한진환이 죽었다?
리롄제는 믿을 수가 없어 자신이 들은 것이 맞는지 다시 확인했다.
“한진환이 죽었다. 지금 그리 말하는 것이 맞느냐?”
“그렇습니다….”
“도대체 누가? 러시아 놈? 아니. 그 무식하기만 한 놈으로서는 무리일 터… 설마, 또 그 마족 권속 놈들인 게냐?”
“네. 그렇다고 합니다.”
“허!”
노인의 어처구니가 없어 혀를 차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족 권속들은 얼마 전에 ‘마족’이란 존재의 힘을 빌려 그위친을 죽였다.
세상엔 그위친이 정령이 된 것으로만 알려졌지만, 리롄제는 그가 그런 선택을 한 게 궁여지책(窮餘之策)이었음을 알고 있었다.
백도운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사실도.
“그위친을 죽인 지 얼마나 됐다고 한진환까지 죽였단 말이냐….”
“당국이 전한 바에 따르면 한진환도 그위친처럼 그냥 당하진 않았습니다.”
“하면? 저승길 길동무 삼아 같이 죽기라도 했다더냐?”
“예측하신 대로입니다.”
“…….”
“서울에 쳐들어왔던 권속 넷 중 둘을 죽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그래도 죽였다는 점에서 그위친보다는 낫구나.”
리롄제는 그리 말하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한진환이 선택해야 했던 것은 권속 둘을 죽이고 죽는 게 아니었다.
어떻게 해서든 본인이 살아남아야 했다.
블랙 드래곤을 토벌 날까지 이레도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잠깐. 그놈들이 서울에 쳐들어왔다고?”
“그렇습니다.”
“그럼 백도운과 이태천은 뭘 했다더냐? 백도운이 도왔다면 마족 권속이란 작자들은 제대로 된 힘을 쓰지 못했을진저.”
“정확하진 않습니다만, 당국이 알아본 바로는… 한진환이 그자들의 봉인에 끌려가는 바람에 도울 수 없었다고 합니다.”
“봉인…. 과연….”
리롄제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봉인 마법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그조차 하지 못 하는 일이었다.
봉인에서 빠져나온 것이 확인된 사람도 딱 두 명뿐이었다.
바로 그와 같은 S급 헌터인 백도운과 알레딩 밀러였다.
밀러는 대마법사답게 봉인을 해석하고 무효로 만들어 빠져나왔고, 백도운은 무식하게 힘으로 때려 부수고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생각에 빠져 있을 때, 리우이호가 품에서 사진을 꺼냈다.
“그리고… 당국이 이 사진을 보내왔습니다.”
“사진?”
“네.”
“어디 보자꾸나.”
리롄제는 용머리가 둘린 오른손 대신 왼손으로 사진을 건네받았다.
바로 들여다본 사진 속엔 크라우드와 대치하는 한진환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그런데,
“……?”
한진환의 오른팔이 번개처럼 변해 있었다.
S급 헌터로 산 삶이 그렇지 못했던 삶보다 긴 리롄제조차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허…. 한진환의 이 모습은 대체 무엇이라더냐?”
“당국도 모르겠답니다. 오히려 스승님께서 가르쳐주길 바라는 눈치였습니다.”
“흠….”
“스승님께서도 모르십니까?”
“모르겠구나.”
“그렇군요….”
리롄제의 즉답에 리우이호는 실망한 듯했다.
제자의 실망에 관심이 없는 리롄제는 감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한진환…. 이놈이 세상에 큰 것을 남기고 떠났구나….”
“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이놈의 오른팔을 보고서도 모르겠느냐?”
“오른팔…?”
리우이호는 사진 속 한진환의 오른팔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그러나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리우이호는 깨닫지 못했고, 결국 리롄제의 한탄을 듣고 말았다.
“이 우둔한 놈이 어찌 나의 수제자가 되었을꼬. 대체 바둑만 잘 두면 뭐 하느냐?”
“…….”
“저놈들 기막 훈련은 네놈이 시키거라.”
“예?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나는 연구를 좀 해야겠다.”
그리 말하고는 리롄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허공을 답보하는 스승을 리우이호가 목청 높여 불렀으나 소용없었다.
당황에 빠진 목소리만 퍼질 뿐이었다.
리롄제는 하늘에 있는 제자와 땅에 있는 제자들을 거들떠보지 않고 순식간에 그 모습을 감췄다.
그렇게, 화산에는 리롄제의 제자들만 남게 됐다.
“…….”
리우이호는 아래를 내려다봤다.
수십이 넘는 사제(師弟)들이 기막을 유지한 채로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딱 한 명, 진지우만이 꿈나라에 빠져 바닥에 드러누워 있었다.
어느새 이불에 몸을 돌돌 만 채로.
“스승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내가 직접 하도록 하마….”
리우이호는 그리 말하며 오른손에 기를 모았다.
곧 막대한 양의 기가 모이고 용의 머리처럼 변했다.
그 모습을 본 진호우가 조용히 제안했다.
“리 대사형. 잠시만 쉬는 게 어떨까요? 저희는 계속 기막을 펼치고 있어 지쳤는데요….”
“차라리 잘된 셈이지 않니, 진 사매.”
“네?”
“흑룡과 싸우는 것은 오래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니, 그걸 대비했다고 생각하자.”
“…….”
리우이호를 올려다보는 진호우의 눈매가 살짝 가늘어졌다.
스승과 제자가 어쩜 저렇게 똑같을까?
마음속으로 그리 중얼거린 진호우는 한동안 깨닫지 못했다.
그녀 자신도 같은 노인을 스승으로 둔 제자라는 것.
그리고 굳이 비교해 보면 그녀도 그 스승 쪽으로 추가 기우는 성격의 소유자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