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461
제462화
한진환의 장례식장 앞은 혼잡하지 않았다.
순수한 조문객들만 있고, 기자는커녕 흥미 본위의 구경꾼들 하나 보이지 않았다.
이게 가능했던 건, 헌터 협회장이 직접 나선 협회의 경고 때문이다.
조우민 협회장이 직접 얼굴까지 비추며 “첫째 날은 조용히 조문객들만 받을 생각이니 자중하라”라고 엄포를 놓았다.
그걸 어길 경우엔 뒷감당할 생각조차 하지 못 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이면서.
그 살벌한 경고 덕분에, 우리는 순수하게 조문하러 온 사람들로 가득 찬 장례식장으로 수월하게 들어올 수 있었다.
그런데….
“첫 만남 때 한진환이 그러더군. 그렇게 느려서 몬스터를 잡을 수는 있겠냐고 말이야. 참나! 지랑 비교해서 안 느린 놈이 어디 있냐고?”
“아, 나한테도 비슷하게 말했었다….”
“정말로? 뭐라고 했는데?”
“그런 위력으로 귀수산 등껍질을 뚫어낼 수 있겠냐고 했었지, 아마.”
“뭐? 귀수산 등껍질? 정말 그렇게 말했단 말이야?”
“그렇다니까. 그 말 듣고 난 못 뚫는 내가 이상한 건 줄 알았어!”
“푸하하!”
장례식장 분위기가 내 생각과 크게 달랐다.
한 사람의 죽음으로 모였으니 조용히 슬픔과 그리움을 곱씹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하지만 이곳 분위기는 그렇지 않았다.
조용히 슬픔을 곱씹는 사람들도 있긴 했으나 그보다도 왁자지껄 떠들어대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살면서 장례식장에 참석한 적이 손에 꼽다 보니, 이래도 괜찮은 건지 아닌지 모르겠다.
“도운아, 뭐해?”
툭.
부조금을 내고 온 태천이 내 어깨를 짚는다.
태천이 눈에도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보일 텐데 별말 하지 않는 걸 보면 아마 괜찮은 건가 보다.
이런 분위기면 스마트폰 꺼내서 [세계수 키우기] 해도 괜찮은 거 아닌가?
“스마트폰은 잠시 넣어 둬.”
“…누가 뭐래?”
“치켜뜬 왼쪽 눈썹부터 내리고 말해. 내가 널 몰라?”
그리 말하고는 태천이는 앞서 들어갔다.
독심술사가 따로 없구만.
“……?”
속으로 중얼거리며 오른발을 내딛는데, 어째서인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갑자기 다른 장소에 뚝 떨어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달까?
“오….”
그런 느낌을 받은 이유는 장례식장 분위기가 순식간에 변했기 때문이었다.
방금까지 왁자지껄 떠들어대던 게 착각이었나 싶을 정도로 조용했다.
어느새 모든 사람이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흥미와 관찰이 뒤섞인 시선들이었다.
“…….”
“…….”
“…….”
그 시선들을 보며, 난 도희 말을 듣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내가 지금 [세계수 키우기]를 켠 채로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있었으면, 좋지 못한 말이 무조건 나왔을 거다.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어떻게 떠들 건 알 바 아니지만, 그렇다고 굳이 일부러 안 좋은 말이 나오게 할 필요는 없지 않겠나.
“…아. 두 분 오셨군요.”
아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보니, 최희석이 후임으로 점찍은 헌터로 알려진 안지민이 우리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갑자기 조용해진 것을 이상하게 여기고 무슨 문제라도 생겼나 싶어 나와 본 듯하다.
“…….”
앞에 선 그가 조용히 우릴 바라봤다.
입이 살짝 벌어졌다 닫히는 것이 잠시 이어졌다.
우리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고민스러운 모양이었다.
아마도 헌터 협회 소속 헌터인 그는 나와 달리 지인의 죽음을 더 많이 겪었을 것이다.
이런 자리에 참석한 경험도 많을 테고.
그렇지만 존경하던 선배의 죽음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일 정도로 익숙해졌을 리는 없었다.
결국, 안지민은 대화하는 걸 포기하고 힘없이 자기가 나왔던 곳을 가리켰다.
저곳이 빈소일 것이다.
“…저쪽으로 가시면 됩니다.”
그리 말하며 그가 우리가 지나갈 수 있게 비켜선다.
무표정하게 우릴 바라보는 그에게 위로의 말을 건넬까 하다가 그만뒀다.
최희석처럼 함께 지낸 시간이 길었다면 모를까.
별로 친하지도 않은 내 말은 그에게 와닿지 못할 터였다.
태천이도 나처럼 생각했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
아무 행동도 안 하지는 않았다.
태천이는 나주평야같이 드넓은 제 품에 안지민을 꽉 안았다.
또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등까지 힘차게 팡팡 두드린 후 떨어졌다.
“……?”
안지민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태천이를 바라본다.
나도 그랬고, 주변에서 지켜보던 다른 사람들도 그랬다.
지금 뭘 한 거야?
그런 의문이 향하는 가운데, 태천이는 두 팔을 벌리고는 말했다.
“음. 한 번 더 할까요?”
“네? 아, 아니. 괜찮습니다…!”
안지민이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당황스러운 마음이 제법 컸는지 말 어미가 살짝 갈라졌다.
그제야 태천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까 안지민이 가리켰던 빈소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세계수가 나뭇가지로 기둥을 긁적입니다.] [방금 태천의 위로는 너무 뜬금없지 않았냐고 질문합니다.]뜬금없었지.
뭐, 태천이 성격으로 추측해 보자면….
말로 위로해봤자 와닿지 않을 테니 행동으로 한 것 같아.
[…….]태천이잖아.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받아들여.
그럼 편해.
“…….”
아, 참.
방금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녀석이 하나 더 있었지.
안지민은 멍하니 서서 태천이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러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는데, 태천이의 품에 폭 안겼던 게 뒤늦게 민망해졌는지 얼굴을 붉혔다.
장난치고 싶어지는 얼굴인걸.
“나도 안아줄까요?”
“…감사한 말씀입니다만, 정중하게 사양하겠습니다.”
안지민이 한 걸음 더 뒤로 물러났다.
다행이네.
나도 말만 그런 거지 정말로 안아줄 생각은 없었는데.
“그래요, 그럼.”
가볍게 말한 후 그를 남겨두고 발걸음을 옮겼다.
태천이에 이어 나까지 멀어지자 다시 사람들의 입에서 말소리가 하나둘씩 흘러나왔다.
빈소에 들어가니, 아는 얼굴이 있었다.
바로 최희석이었다.
그러고 보니, 한진환은 보육원 출신인 데다 결혼을 한 적도 없다.
가장 친한 사이인 그가 상주 자리에 있는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옆에 방석이 몇 개 더 놓여 있는 걸 보면, 최희석 말고도 또 있는 것 같다.
아마 한진환이 자랐던 보육원 사람과 안지민의 자리겠지.
“…….”
나와 태천이는 그에게 목례한 후 한진환의 영정을 봤다.
영정 속 한진환은 평소처럼 덥수룩한 머리에 웃는 얼굴이었다.
가만 보고 있으면 느긋한 목소리로 농담을 건넬 것 같기도 했다.
짧은 감상을 뒤로 한 채, 할 일을 했다.
분향(焚香)하고 영정에 두 번 반 절을 하고 이어 상주와 맞절한다.
“…도운.”
서로 맞절한 후 고개를 들었을 때 최희석이 나를 불렀다.
대답하기 전에 그가 말을 잇는다.
“진환이 내게 유언장을 남겼네.”
한진환은 자신이 죽을 줄 알고 있었다.
내게 죽어 선구자가 될 거라던 말까지 했었으니, 유언장을 남긴 게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그런데 그걸 굳이 나한테 말한다는 것은….
“…저한테 남긴 말이라도 있습니까?”
“그렇네.”
“뭐라고 하던가요?”
“미안하다더군.”
“네?”
대체 뭐가?
한진환은 나를 아바돈의 무저갱에 가두려던 크라우드의 계획을 저지했다.
내가 무저갱에 갇혀 크라우드와 죽고 죽이는 싸움을 오랫동안 반복했다면, 블랙 드래곤 토벌에 큰 문제가 발생했을 거다.
한진환은 나를 구함으로써 세상을 구할 확률을 올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오히려 내가 고맙다고 말해야 할 판인데, 대체 뭐가 미안해서 유언장에 사과를 남긴 걸까.
이해하지 못한 듯 고개를 갸웃거리자, 최희석이 설명해주었다.
“자네들과 시합을 못 하게 돼서 미안하다더군.”
“허…?”
나도 모르게 헛웃음을 흘렸다.
못하게 된 시합이란, 나와 태천이 와 한진환 셋이서 헌터 랭킹 1위를 결정짓기로 한 것을 의미했다.
블랙 드래곤 토벌이 끝난 후 이벤트식으로 진행하려던 거였기에, 유언장에까지 남겨가며 사과할 일이 절대로 아니었다.
그렇기에 다른 말이 있겠지 싶어 최희석을 바라봤다.
그러나….
“…….”
“…설마 그게 답니까?”
“그게 다네.”
이 인간이?
“그럼 이만 가보게.”
“네…?”
“자네들은 해야 할 일이 있지 않나.”
“…….”
역시 최희석이다.
우리가 얼마 후 블랙 드래곤을 토벌하러 떠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오늘 시간을 내어 와준 것만으로 족해.”
“우린 괜찮아요. 더 있어도.”
태천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 말대로였다.
이제 남은 시간은 겨우 일주일.
뭘 하든 새싹이를 성장시키는 등의 큰 변화를 꾀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니다.
나뭇가지 하나 자라는 정도야 가능하겠지만… 그보다는 지금까지 준비한 걸 확인하고 확인하는 시간을 반복하는 게 낫다.
그걸 모를 리 없는 최희석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실, 방금 한 말은 진환을 위해 한 것이기도 했네.”
“…아.”
“네? 그게 무슨-”
덥석.
되묻는 태천이의 어깨를 붙든다.
한진환을 위해서라는 최희석의 말을 이해했다.
도희가 우리보고 서두르라고 했던 말도 다시금 이해했고.
“…이만 가보겠습니다.”
“고맙네. 그리고 미안하네.”
“아뇨. 이해합니다.”
그리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와 최희석이 대화를 마무리하는 동안에도 태천이는 영문을 모르는 얼굴이었다.
그래도 군말 없이 따라 나왔고, 장례식장 밖까지 나왔을 때 조용히 물었다.
“도운아. 왜 그러는 거야?”
주위를 살펴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후 가르쳐주었다.
“우리가 불편하단 뜻이야.”
“우리가? 왜? 우리 뭐 실수했나?”
태천이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좌우로 왔다 갔다 하는 머릿속엔 자신이 한 행동들이 재생되고 있을 터였다.
실수한 게 있나 싶어서 말이다.
하지만 태천이는 실수한 게 없었으므로 아무리 찾으려고 해도 찾을 수 없을 거다.
최희석이 불편하게 여긴 건 그런 게 아니었다.
태천이의 머리가 진자운동 하는 것을 멈춰주고자 설명을 이었다.
“우리 이제 S급 헌터잖아.”
“그게 왜…?”
“조문객들이 우리에게 너무 많은 신경을 쓸지도 모른다는 뜻이야. 한진환의 장례식장인데도.”
“에이, 설마. 그럴 것 같지는 않은데?”
그럴 것 같지 않기는.
‘설마’의 취미가 원래 사람 잡는 건데.
난 태천이에게 방금 있었던 일을 상기시켜주었다.
“우리 들어갈 때 사람들이 다 쳐다봤던 거 기억 안 나냐?”
“앗….”
그제야 태천이는 깨달음의 탄성을 내뱉었다.
사람들은 슬픔을 곱씹던 것을 멈추고 왁자지껄 떠들던 것을 멈추고 우리를 흥미롭게 관찰했었다.
뒤이어 올 조문객들도 별반 다르지 않은 반응을 보이리라.
주객이 전도된 꼴이니, 한진환의 유족으로 있던 최희석으로서는 불편할 수밖에.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태천이가 머리를 벅벅 긁었다.
우리 태천이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긴 했다.
그때, 새싹이가 메시지를 보냈다.
[세계수가 하늘에서 순수한 화염의 마나를 느꼈습니다.] [이어 화염의 마나에서는 비탄이 느껴진다고 덧붙입니다.]비탄의 감정이 느껴지는 순수한 화염….
우리나라에서 그런 마나를 가진 사람은 딱 한 명뿐이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예상한 대로 윤건이 붉고 거대한 불길을 마구 뿜어내고 있었다.
덕분에 밤인데도 태양이 떠오른 것처럼 세상이 밝아졌다.
고개를 쳐든 태천이 안절부절못하며 말했다.
“도운아. 말려야 되는 거 아냐?”
“…내버려 둬.”
“내버려 두라고? 저러면 문제 생길 거 같은데? 우리도 그래서 나온 거였다며.”
“아니. 저 양반은 괜찮아.”
윤건은 거기 있는 것만으로도 문제가 되는 우리와는 달랐다.
욕먹을 짓을 해도, 심각한 문제로까지 번지지는 않을 거다.
지금 그의 행동은 한진환을 떠나보내는 비통과 비애에 찬 순수한 행위가 될 테니까.
한진환과 윤건 사이엔 십여 년이 훌쩍 넘는 세월이 있었으므로.
우리가 다 알지 못하는 여러 사건 사고와 함께.
“참, 잘 타오르네….”
윤건의 불길은 오랜 시간 솟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