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492
제494화
하늘에 펼쳐진 빛의 성역이 보였다.
저번처럼 태천이가 나를 그림자로부터 끌어올려 준 것이다.
당연히, 왼팔에 연결된 블랙 드래곤도 함께 빠져나왔다.
현재 놈의 상태는 별로 좋지 못했다.
다섯 빛줄기를 정통으로 얻어맞은 흔적이 온몸에 남아 너덜너덜하다.
특히, 두 약점 중 하나였던 왼쪽 다리는 아예 사라졌다.
그새 지혈한 것인지 피는 흐르지 않았다.
[세계수가 안타까움을 전합니다.] [전력을 다한 브레스로 막지 않았다면 목 또한 소멸했을 것이라고 설명합니다.]새싹이가 안타까움을 전해올 때였다.
우뚝.
태천이에게 끌어 올려져 아름다운 포물선을 그리던 몸이 멈췄다.
물론 블랙 드래곤 때문이었다,
땅의 그림자로부터 놈의 몸까지 연결된 검은 줄들이 더 끌려가지 않게 팽팽하게 버티고 있었다.
그 순간,
“…….”
『…….』
나와 놈의 눈이 마주쳤다.
휙! 휘익!
눈을 마주한 것이 신호탄이라도 된 듯이 동시에 행동했다.
브레스를 감당하느라 놓쳐버리고 말았던 놈의 검은 왼손이 심장을 파낼 듯이 날아오고.
따스한 손길로 푸르게 빛나는 나뭇가지 같은 검지는 놈의 목을 꿰뚫고자 나아간다.
꽉! 꽈악…!
당연하게도 서로의 손은 상대에게 닿지 못했다.
여전히 연결된 왼팔과 오른팔에서 각각 나무뿌리와 그림자가 솟아 나와 서로의 손목을 붙잡은 탓이다.
치명상을 입어 그림자로 도망친 주제에 아직도 힘이 넘쳐나는군.
그만 죽는다고 해도 아무도 아쉬워하지 않을 텐데.
『…….』
하긴….
블랙 드래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리라.
여러 공격을 시도했으면서도 우릴 살해하는 데 실패하지 않았나.
끼익….
비틀리는 소리가 들렸다.
놈의 그림자가 내 팔에서 자란 나무뿌리들을 떼어내려고 애쓰는 소리였다.
또한, 내 오른손이 놈의 그림자를 뜯어내려고 힘쓰는 소리기도 했다.
그때였다.
“그렇게 대치하고 있게!”
리롄제가 검지를 내밀고 마나를 끌어 올렸다.
블랙 드래곤을 죽일 좋은 기회라고 여긴 모양이다.
서로 맞서서 버티고 있으니 그리 판단하는 것도 이상하지는 않았다.
밀러도 그리 생각했는지 블랙 드래곤의 마법 봉인이 통하지 않는 정령 마법을 캐스팅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러나 그들이 행동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태천아, 전부 막아!”
“응!”
태천이는 곧바로 대답했다.
이유도 모르는데, 고민도 하지 않고 질문하지도 않았다.
목덜미 뒤를 붙들고 있던 손을 놓고 중력장을 펼친다.
이곳에 있는 모든 이를 평등하게 억누르며 알루키노르의 비늘로 만든 방패를 앞세워 리롄제를 가로막는다.
“지금 뭐 하는 게냐!”
리롄제가 못마땅한 목소리로 호통을 쳤다.
그러면서도 마나를 오른손 검지에 모으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 때문에,
「…….」
무기까지 태천이 옆으로 날아가 리롄제를 막아섰다.
그 어이없는 모습을 본 리롄제가 황망하게 중얼거렸다.
“도대체 어째서….”
“그위친…?”
밀러도 그와 목소리로 그위친을 불렀다.
태천이와 무기가 리롄제를 가로막았듯이, 그위친도 밀러를 막아섰기 때문이다.
밀러 앞에 선 그위친이 싱긋 웃었다.
“밀러. 이 장면, 어쩐지 익숙한 것 같지 않니?”
“…….”
밀러의 눈이 살짝 커진다.
그위친의 말대로 친숙한 기시감을 느낀 게 분명했다.
지난해 울릉도에서 그위친은 내 부탁으로 밀러를 막아섰었다.
“후우…. 알았어요.”
밀러가 한숨을 짧게 내쉰 후 입을 열었다.
이제 남은 건 리롄제뿐이다.
[세계수는 리롄제의 아니꼬운 시선을 느꼈습니다.] [관리인을 향해서 질 나쁜 오해를 한 것 같다고 추측합니다.]질 나쁜 오해?
아, 설마….
지금 내가 블랙 드래곤의 숨통을 직접 끊고 싶어서 이러는 거라고 생각하나?
생각지도 못한 오해인걸.
난 그런 것 따위엔 관심 없는데.
뭐….
지금으로서는 그런 오해를 받는 게 썩 나쁜 상황은 아니다.
오해한들 리롄제가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태천이와 무기 둘을 제지고 블랙 드래곤을 공격하는 것은 불가능했으니까.
그렇게 일단락이 났을 때,
콱.
톡.
블랙 드래곤의 수고와 나의 노력이 결실을 보았다.
놈의 왼손과 내 오른손이 각각 내 가슴과 놈의 목에 닿은 것이다.
됐다….
내 가슴은 현재 세계수의 나무껍질로 보호받고 있다.
새싹이까지 소환된 상태니, 놈의 손가락은 가슴을 꿰뚫을 수 없다.
톡!
대신 내 따스한 손길은 다르다.
이렇게 닿고만 있어도 연달아 두드린 것 같은 효과를 주는 데다가, 새싹이가 밝힌 약점에 데미지를 더 입히는 특성까지 있다.
또 밀러의 스카디 아이 마법 효과도 아직 유효하지 않은가.
파삭…!
블랙 드래곤의 비늘이 아무리 단단하다고 한들, 꿰뚫리는 건 시간문제에 불과했다.
『하지 마라…!』
블랙 드래곤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깨달은 모양이다.
내 공격은 통하고 놈의 공격은 통하지 않고 있다는 걸.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나는 살고 자신은 죽게 된다는 걸.
“싫어.”
『후회할 것이다, 관리인…!』
“글쎄….”
후회, 라….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가 후회할 일이 있을 것 같지 않다.
놈이 후회한다면 모를까.
그래서 코웃음을 치며 말해줬다.
“네가 할 것 같은데?”
퍼억!
친절하게 말해줬을 때였다.
『쿨럭…!』
따스한 손길이 결국 놈의 목을 꿰뚫었다.
자연스럽게 놈의 아가리와 목에서 검은 피가 뿜어져 나왔다.
『관리인….』
블랙 드래곤이 허망하게 나를 부른다.
목을 꿰뚫린 놈의 얼굴은 잔뜩 일그러져 있었는데, 분노와 고통 때문에 그리된 것처럼 보였다.
“…….”
눈앞에 있는 존재가 블랙 드래곤이 아니었다면….
진심으로 분노와 고통과 절망을 느끼고 있다고 생각했으리라.
그 순간,
『흥….』
블랙 드래곤이 코웃음을 쳤다.
바로 조금 전 내가 놈에게 그랬던 것을 따라 한 것이 분명했다.
『여가 분명 말했을 텐데. ‘하지 말라’고….』
놈이 목을 꿰뚫린 놈답지 않게 태평스럽게 말했다.
곧 죽을 사람 특유의 절망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승리를 손에 쥔 자의 기쁨과 우월감만 느껴졌다.
“……?”
“무슨…?”
그 모습에 지켜보던 모두의 표정에 당혹감이 서렸다.
곧 죽을 줄 알았던 놈이 갑자기 이긴 듯이 떠들어대니, 이해가 가지 않는 거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쿨럭…!”
그들은 내가 피를 토하는 것도 이해하지 못했다.
붉은 피는 목구멍에서만 올라오는 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무언가에 꿰뚫린 듯 보일 목의 상처에서도 뿜어져 나왔다.
그 무언가가 무엇일지는 뻔했다.
따스한 손길을 쓰고 있는 나뭇가지 같은 내 손가락이리라.
즉.
블랙 드래곤의 상처가 내게로 옮겨진 것이다.
“도운, 도운아!”
태천이가 다급하게 내 이름을 불렀다.
그러면서 내게로 달려오려고 했지만,
『멈춰라.』
블랙 드래곤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바닥에 닿은 두 발이 그림자에 사로잡힌 것이다.
발이 사로잡힌 것은 태천이뿐만이 아니었다.
이 자리에서 땅에 발을 디디고 서 있던 모두의 발이 사로잡혔다.
유일하게 그림자에 사로잡히지 않은 것은 허공에 떠 있던 무기뿐이었다.
「…….」
무기는 그러나 가만히 있었다.
잠자코 블랙 드래곤을 바라보기만 했다.
무표정하게, 묵묵히.
『여가….』
블랙 드래곤이 히죽 웃었다.
아연실색한 표정들 가운데 유일하게 피어난 미소였다.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느냐?』
“…….”
그 물음에도 난 입을 열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아마 놈도 대답을 듣고 싶어서 질문한 것은 아닐 거다.
잘난 척하고 싶어 입을 턴 것에 불과하다.
『자. 이제 여에게서 떨어져라.』
턱.
블랙 드래곤이 나를 밀친다.
제 목을 꿰뚫은 내 검지를 빼내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내 몸은 밀려나지 않았다.
『……?』
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의아함을 느끼는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푸흐흐….”
웃음이 절로 흘러나왔다.
사실 내가 입을 열지 않았던 건 놈이 날 속였던 것과 비슷한 행동이었다.
큰 충격을 받아서가 아니라, 오로지 웃음을 참기 위해서다.
끝내 참지 못하고 터뜨리고 말았지만 말이다.
당혹스러운 시선이 모여드는 가운데, 블랙 드래곤이 질문을 던졌다.
『방금, 웃은 것이냐?』
“그런데.”
『미친 것이냐? 큰 충격을 받아서?』
놈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나를 조롱하기 위해서였으나….
아주 살짝 올라간 입꼬리로는 날 조롱할 수 없었다.
불안함을 느끼고 있는 것이 아주 잘 드러났으니까.
“나도… 말했던 것, 같은데….”
『……?』
“네가, 할 거라고…. 후회.”
『웃기는 소리 하지 마라! 지금 여가 후회할 일이 뭐가 있다고!』
블랙 드래곤이 소리쳤다.
그 소리를 들으니 내 입가엔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편치 않고, 뒤숭숭하며, 조마조마한 마음이 여실히 느껴진 탓이다.
[세계수가 나뭇가지를 가늘게 떱니다.] [이 순간을 기다린 것은….] [우리도 마찬가지라고 신나게 소리칩니다!]새싹이 말대로다.
내가 왜 굳이 다른 사람들이 놈을 마무리하지 못하도록 막았겠는가.
우리 무기가 어째서 이런 꼴이 된 나를 멀뚱히 지켜보고만 있겠는가?
“다, 알고 있었거든….”
『알고 있었다고?』
“네놈이 이럴 것을….”
그리 말하며, 나는 웃었다.
놈과는 달리 조금의 불안함도 없었다.
마음 또한 아주 편했다.
그런 내 머릿속에,
“이번 블랙 드래곤 토벌 건에 관해 말하고 싶은 게 있었어.”
아줌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이 순간을 봤다고 말했던 그녀의 목소리가.
***
“내가 본 미래에서….”
미래를 누설하는 것이기 때문일까?
아줌마는 어쩐지 무척 조심스러워 보였다.
하긴.
생각해 보면 드래곤들도 그랬다.
앞으로 벌어질 일에 관해 말할 때 정확하게 끝마무리를 짓지 않는 등 말을 고르지 않았던가.
자기도 모르게 어떤 미래가 일어날 확률을 상승시킬지도 모르니 조심하는 것이리라.
“블랙 드래곤은 아주 비겁하고 비열한 데다가 교활하고 저열한 짓을 해.”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신랄한 비난이 이어졌다.
고르고 골라서 말한 것이 저 말이라니.
내가 황당함을 느끼고 있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는 말을 이었다.
“놈은 치명상을 입으면 그림자로 숨어들어.”
“숨는다고요?”
“황당하지? 나도 그랬어.”
“흠….”
그림자로 숨어든다, 라….
즉, 그녀는 우리가 블랙 드래곤에게 치명상을 입히는 모습을 봤다는 뜻이다.
놈이 치명상을 입은 미래를 순순히 말하는 것은 그리되길 바라는 마음에서겠지.
“참. 공간 이동과 비슷한 거라서 그림자가 닿지 않는 곳이라고 해도 막을 순 없어.”
“꼭 거쳐야 하는 과정이란 거네.”
“그런 셈이지.”
내 말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꼭 거쳐야 한다면….
놈이 그림자로 숨어들 때 따라 들어가는 것도 생각해봐야겠다.
그림자에 숨은 놈을 강제로 꺼내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마지막으로 블랙 드래곤은 죽음을 반사(反射)하는 그림자 마법을 써.”
“네? 뭘 한다고요?”
“죽음을 반사한다고.”
“…….”
황당하기 그지없는 말이었다.
죽음을 반사한다니… 아.
이제 알겠다.
전대 세계수까지 죽인 아바돈이 굳이 블랙 드래곤을 이곳으로 날려 보낸 이유를.
죽일 방법이 없었던 거다.
블랙 드래곤을 죽이기 위해선 목숨을 바쳐야 했으니까.
그런데 과연 아바돈의 부하 중에서 목숨 바쳐 블랙 드래곤을 살해하려고 하는 놈이 있었을까?
글쎄, 크라우드만 봐도 알 수 있지 않나.
남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자신만 소중히 여기는 쓰레기들….
희생을 감수할 리 없었다.
설령 충성심이 있는 놈이 하나쯤 있다고 한들 블랙 드래곤과 싸워 이길 수 있는 건 또 다른 얘기다.
“다행히 내가 본 미래에서는 딱 한 번밖에 못 쓰긴 했어.”
“제한이 있는 거겠죠.”
무려 죽음을 반사하는 마법이다.
어떤 제한이 없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이다.
그나저나….
“난리 났네. 이거 말하면 태천이는 자신이 죽겠다고 할 텐데.”
“…….”
아줌마는 동의한다는 듯 쓴웃음을 지었다.
그녀가 생각하기에도 태천이라면 듣자마자 “내가 죽일게.”라고 말할 놈이다.
괜히 별호가 ‘천공의 기사’겠는가.
“괜찮아. 내가 방법을 찾았거든.”
“오….”
다 생각이 있어서 말을 꺼낸 것이었구나.
길을 보여주는 모습이 수녀 같아서 보기 좋구만.
“방법이 뭔데요?”
“네가 죽이면 돼!”
“…….”
…이게 뭔 소리지?
방금 수녀 같아서 보기 좋다고 말한 거 취소해야겠다.
해맑게 웃으며 “죽이면 돼!”라고 말하는 모습은 어떻게 봐도 마녀 같았다.
내가 죽이면 된다니….
“나보고 죽으라고?”
“뭐? 내가 언제 그랬어?”
“내가 죽이면 나 죽게 되는 거잖아요.”
“응? 아아! 아니, 너는 괜찮아. 안 죽어.”
“안 죽는다고?”
“응.”
뭐지….
지금 이 옥상에서 나만 이해를 못 하는 건가?
그런 생각으로 주변을 돌아보자, 다들 내 얼굴과 비슷했다.
그들도 이해하지 못한 거다.
나는 안 죽는다, 라.
“왜요?”
“그야….”
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