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493
제495화
휙.
오른팔을 잡아당긴다.
그러자 블랙 드래곤의 목에 꽂아 넣은 검지가 늘어났다.
마치 나뭇가지가 빠른 속도로 자라나는 모양새였다.
뚝!
세계수의 나무껍질을 잠시 끄고 길게 자라난 나뭇가지 같은 손가락을 부러뜨렸다.
『……!』
놈은 내 몸을 보호하던 실드가 사라진 것을 바로 눈치챘다.
거칠게 오른팔을 잡아당겨 놈의 팔을 붙들고 있던 나뭇가지들을 뚝뚝 끊어냈다.
이제 놈은 하늘로 날아가든 그림자로 숨든 할 터였다.
그전에,
“무기야!”
무기를 부른다.
우르르…!
「쳐라.」
요동치던 하늘에서 푸른 벼락이 떨어졌다.
블랙 드래곤이 하늘로 날아가는 것보다도, 그림자로 숨어드는 것보다도, 훨씬 빨랐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다.
그리고 그 푸른 벼락은,
「쳐라!」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블랙 드래곤의 목에 꽂아 넣은 나뭇가지가 피뢰침이라도 되는 양 계속해서 떨어져 내렸다.
피뢰침은 원래 건물 위에 설치해 구조물을 보호하는 것이지만….
『크으…!』
목을 꿰뚫고 있는 저것은 달랐다.
저 나뭇가지의 역할은 입구(入口)였다.
벼락이 블랙 드래곤의 목으로 타고 들어가서 온몸 구석구석 흐르게 하는 입구 말이다.
치익…!
놈의 전신이 불타기 시작했다.
『여는, 여는 죽지 않는다…!』
블랙 드래곤이 최후의 발악을 시작했다.
목에 꽂힌 나뭇가지를 뽑아내고자 두 손으로 붙들고 잡아당긴 거다.
하지만 그리 쉽게 빼낼 수는 없을 터였다.
저놈은 눈치채지 못한 듯하지만, 저것은 그저 길게 늘이기만 한 게 아니었다.
나뭇가지는 원래 자라면서 새로운 가지들을 자라게 하는 법 아닌가.
「막 쳐라!」
무기가 울부짖듯이 소리쳤다.
쳐라, 쳐라, 막 쳐라.
최후의 발악을 하는 블랙 드래곤에게 벼락이 연신 떨어졌다.
그런데… 기분 탓인가?
하늘에서부터 떨어지는 푸른 벼락이 어째선지 눈물이 흐르는 것처럼 보인다.
그저 단순한 착각인 것은… 아마도 아닐 것이다.
무기는 세계수 관리인의 친구가 되는 것을 소망했다.
관리인 그 자체에 관심이 있었던 걸까?
아니.
전대 세계수 관리인인 디싱 나 토르와 친구가 되고 싶었던 걸 거다.
블랙 드래곤은 그 디싱을 살해한 놈이었고….
마음에 들지 않는 놈인 데다가 겸사겸사 인류도 구할 겸 이번 토벌에 나선 나와 다르다.
무기는 진심으로 저놈에게 복수심을 품고 있었다.
『크아악…!』
이내 블랙 드래곤이 단말마의 비명을 질렀다.
동시에 하나뿐인 다리가 전신을 지탱하지 못해 풀썩 쓰러졌다.
죽음에 이르는 모든 존재가 그렇듯이 블랙 드래곤의 몸이 바닥에 축 널브러진다.
드디어….
“드디어 죽었구만….”
홱, 홱.
그리 중얼거리자마자 모두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날 보지 않고 있는 건 블랙 드래곤의 시체를 노려보는 무기가 유일했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그들에게서 나를 나무라는 듯한 감정을 느꼈다.
심지어 태천이한테까지 느껴졌는데….
[세계수는 기분 탓이 아니라고 전합니다.]기분 탓이 아니야?
그러니까….
이 사람들 진심으로 나를 나무라고 있는 거라고?
정말 어이가 없네.
죽은 줄 알았던 놈이 살아 돌아오는 게 아무리 클리셰라지만, 저 꼴이 된 놈이 살아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황당한 마음에 블랙 드래곤의 시체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봐요들. 저 꼴로 살아있을 리가-”
「…피해라!」
“없잖… 허?”
피하라고?
설마, 그럴 리가?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부정하며 블랙 드래곤을 바라봤다.
“……!”
기가 막히게도, 놈은 온몸에서 암흑의 안개를 뿜어냈다.
그와 동시에 풍선을 분 듯이 몸이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간 거다.
그것에 휘말리지 않고자 우린 빠르게 거리를 벌렸다.
거리를 벌리는 동안, 나는 모두의 얼굴에 한마음 한뜻이 담겼음을 깨달았다.
탁….
방패를 들고 내 앞에 선 태천이 나를 불렀다.
“도운아.”
“응?”
“내가 오늘에야말로 네 입을 꼭 꿰매버릴 거야.”
“…….”
억울하다.
굉장히 억울하다.
살아있는 게 말이나 되냐고?
격이 높은 브레스를 다섯 개나 동시에 얻어맞고,
따스한 손길로 약점인 목이 꿰뚫린 데다가,
무기가 전신이 익을 때까지 벼락 찜질을 해줬는데!
이 정도 했으면, 예의상으로라도 죽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정말이지 답답해서 가슴을 퍽퍽 때리고 싶다.
할 수 없지.
이 답답함을 해소하기 위해서 저놈의 대가리를 후려갈겨… 응?
어라?
“…저거, 죽은 거 맞는 것 같은데?”
“도운아….”
“아니! 야, 저거 봐봐! 가만히 있잖아!”
“그야 치명상을 입었으니 지켜보는… 얼씨구?”
태천이가 블랙 드래곤을 빤히 쳐다봤다.
어둠보다도 더 어두워 보이는 드래곤의 육체는 축 늘어져 있었다.
죽은 척을 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죽은 것이다.
그러니까, 어떻게 된 거냐면….
“죽어서 폴리모프가 풀린 거네요.”
밀러가 간단하지만 정확하게 설명했다.
그 말대로 죽었으니 폴리모프가 유지될 리가 없었다.
그리고, 뿜어져 나왔던 암흑의 안개는….
“저주일 거예요. 아마 죽으면 발동하는 식이었던 것 같고요.”
이번에도 밀러가 설명해주었다.
죽으면 발동하는 저주라고?
정말이지, 죽으면서까지 민폐 끼치고 가는 놈이로구만….
이미 내가 만난 놈 중에서 가장 징글징글한 놈이었는데, 놀랍게도 방금 새로이 경신했다.
부르르!
으, 진저리가 절로 나는군.
“정말 끝까지 끔찍한 놈이었네요….”
“아하하, 그러게 말입니다.”
“후후후.”
“끌끌….”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은 기분을 느낀 모양이다.
밀러가 중얼거리자 다들 헛웃음을 흘리며 몸을 으스스 떨었다.
세계 최고의 용 오타쿠로 손꼽힐 리롄제조차도 그랬다.
[세계수가 블랙 드래곤의 데메르고 마법도 소멸했다고 전합니다.] [따라서 검은 구슬로 변했던 모든 인간이 원래 모습을 되찾았다고 설명합니다.]오, 잘됐네.
기쁜 소식이니 바로 전해줘야겠다.
“새싹이가 그러는데, 방금 다른 토벌대원들 원래대로 돌아왔대요.”
“아아. 다행이네요!”
“음. 잘됐구먼.”
전해주자 밀러와 리롄제가 기뻐했다.
밀러는 감정을 그대로 드러낸 데 반해 리롄제는 점잖게 대답했다.
하지만 입꼬리가 평소보다 살짝 올라가 있어 기뻐하고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엄하게 굴어도 스승은 스승이군.
[세계수가 순수한 빛의 마나를 느꼈습니다.]뚝!
새싹이가 도희 마나를 느꼈을 때, 뒷머리를 묶은 머리끈이 끊어졌다.
마법이 담긴 끈이 끊어졌다는 건….
“오라버니!”
도희가 순간이동 해서 왔다는 뜻이었다.
바로 뒤를 돌아 도희를 반겨주었다.
“왔어? 우리 이겼-”
“웃어?”
“…….”
도희의 얼굴은 험악했다.
갑자기 왜 저래?
“뭐예요?”
“어?”
“내가 왜 화났는지 모르겠다는 그 얼굴 뭐냐고.”
“으음….”
“정말로 모르겠어요?”
“…….”
우선 묵비권을 행사했다.
오늘날까지 겪어왔던 여러 경험을 토대로 생각해보면….
여기에서 섣부르게 아는 척을 하면 큰일이 날 게 분명했다.
톡, 톡.
도희가 천천히 제 목을 두 번 두드린다.
“아.”
그렇군.
도희는 지금 블랙 드래곤이 죽음을 반사할 줄 알고 있었으면서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거냐고 묻는 거였다.
그거에 대해선 나도 할 말이 있었다.
첫째….
“말해봐야 달라질 거 없잖아.”
“…….”
말하든 말하지 않든.
내가 블랙 드래곤의 반사 마법을 당해야 했다는 건 달라지지 않는다.
“걱정했다고요…!”
그랬겠지.
우리 똑똑한 도희라면, 블랙 드래곤의 몸에 있던 상처가 내게 옮겨졌을 때 그 이유를 바로 알아차렸을 거다.
내가 그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것과 최 클라우디아 수녀가 말해줬을 거라는 것까지.
그러니 걱정하지 않도록 사전에 말해줬을 수도 있었다.
여기에서, 둘째….
“블랙 드래곤이 알아차릴 가능성 때문에 말할 수 없었어.”
사실, 블랙 드래곤이 내게 목을 찔린 건 단순히 힘에 밀린 것 때문이 아니었다.
내게 죽음을 반사할 생각으로 일부러 당한 점도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다른 이들이 그 정보를 알고 있었다면?
만에 하나, 이지만….
놈은 내 목적을 알아차리고 대비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 생각했던 근거는,
“아줌마가 왜 내게만 그걸 가르쳐줬겠어?”
당연히 아줌마였다.
그날 협회 옥상엔 도희와 태천이도 달려오고 있었다.
그걸 알면서도 그녀는 두 사람을 기다리지 않고 내게만 말해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나.
미래의 경고를 굳이 나한테만 말한다는 것이.
당연히 어떠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해하지?”
“흥….”
도희는 콧방귀를 끼곤 입을 샐쭉 내밀었다.
그 사이 밀러가 평소처럼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질문을 던졌다.
“미스터 백은 왜 무사할 수 있었던 거예요?”
“명제 마법 덕분에요.”
“네? 그거 아직 못 쓴다면서요?”
“네. 못써요.”
“……?”
밀러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녀에게 말했듯이, 우리는 아직 명제 마법을 못 쓴다.
내게 걸린 명제 마법은 전대 세계수가 걸어놓은 것뿐이다.
“이해가 가지 않는데요.”
도희가 밀러처럼 호기심이 담긴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오라버니에게 걸린 명제 마법은 세계수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잖아요.”
“그런 줄 알았지.”
“네?”
“근데 생각해보니 이상하더라고.”
“뭐가요?”
“새싹이는 ‘성역’에 있잖아.”
“그게 뭐가… 어?”
도희의 눈이 조금씩 커진다.
전대 세계수가 만든 차원인 성역.
아무나 발을 들일 수 있는 장소가 아니다.
열쇠를 지닌 나와 레지나 정도만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다.
그런 성역에 있는 새싹이를 누가 어떻게 해할 수 있겠는가?
‘세계수 관리인을 죽이기 전까지 세계수를 공격할 수 없다’라는 명제 따위는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나와 새싹이는 명제 마법으로 맺어져 있었다.
즉.
“새싹이가 아니라 나를 보호하는 거였어.”
“오라버니를요? 설, 설마…?”
“응. ‘세계수를 해하기 전까지 세계수 관리인을 죽일 수 없다.’ 그게, 우리에게 걸린 명제 마법이야.”
“……!”
도희가 아연한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는데, 특히 리롄제가 심했다.
날 절대로 죽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은 것이다.
물론, 이 명제 마법에도 허점은 있었다.
홍유릉 게이트에 처음 진입했을 때 너무 어려운 난이도라면서 전대 세계수의 도움을 받지 않았던가?
명제 마법이 걸려 있어 죽지 않는데도 퀘스트까지 발주해 날 도왔던 건, 스켈레톤 로드의 ‘인간을 스켈레톤으로 바꾸는 마법’ 때문이었다.
그건 죽는 게 아니라 스켈레톤이 되는 것이기에 명제 마법이 통하지 않았다.
뭐, 그 허점을 굳이 말해줄 필요는 없겠지.
“그래서였던 건가….”
리롄제가 읊조리듯 조용조용 말했다.
“자네가 흑룡조차 다리를 잃은 숨결들을 받고도 멀쩡했던 것이….”
“아뇨. 그건 명제 마법과는 상관없는데요.”
“뭐라고? 그럼, 자넨 그걸 그냥 버텨냈다는 건가? 흑룡조차 그러지 못했는데?”
“설마요.”
그가 말한 대로 블랙 드래곤조차 버텨내지 못한 공격이다.
세계수의 나무껍질이 대단하긴 하지만, 그걸 상처 하나 없이 버텨낼 수 있을 정도는 아니다.
내가 그걸 맞고도 말끔했던 건….
“그위친 덕분이에요.”
그리 말하면서 그위친을 가리켰다.
리롄제의 시선이 팔짱을 낀 채로 조용히 서 있던 그위친에게로 향했다.
“이 친구 덕분이라고?”
“네.”
“무슨 뜻인지 이해가 가지 않네만….”
“간단해요. 그위친이 뭐죠?”
“정령이지 않나.”
“네. 정령이죠. 근데, 어디에 깃든 정령이죠?”
“…아.”
리롄제가 탄성을 흘린다.
새삼 기억해낸 것이다.
그위친이 ‘나무에 깃든 정령’이라는 사실을.
나무 정령의 브레스가 세계수 관리인에게 데미지를 입힐 수 있을 리 없었다.
같은 이유로, 헤미스 캐논 또한 내겐 통하지 않았다.
세계수의 마나로 채워 넣어 발사한 것이 내게 데미지를 준다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오히려 날 강하게 만들고 치료를 해준다면 모를까.
“과연…. 자넨 흑룡과는 상황이 달랐군.”
리롄제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조금 다행스러워하는 마음이 느껴졌는데….
아마도 경쟁심리 때문인 것 같다.
하여간 저 영감탱이….
나이에 걸맞지 않게 참 열정적이라니까.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질문이 있네만.”
“또 뭔데요?”
“청룡은 갑자기 왜 저러는 건가?”
“네?”
생각지도 못한 질문이었다.
무기가 어떻기에 그러지?
바로 무기를 돌아봤다.
그리고,
“……?”
정말로 이상한 모습을 하고 있는 무기를 발견했다.
쟤 왜 저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