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494
제496화
무기는 축소화한 몸으로 원을 그린 듯한 모습이었다.
그저 동그랗게 말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어째서인지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자신의 꼬리까지 꽉 물고 있었다.
지금껏 저런 자세를 취한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갑자기 왜 저러는 건지 모르겠다.
“‘요르문간드(jǫrmungand)’….”
다들 당황스러워하는 가운데, 밀러가 낮게 중얼거린다.
요르문간드….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거대한 괴물 뱀의 이름이다.
정확하지는 않은데, 신화 속에 등장하는 인간 세상인 ‘미드가르드(miðgarðr)’를 휘감은 존재로 기억한다.
또 지금 무기가 그러는 것처럼 제 꼬리를 물고 있는 모습으로 알려져 있다.
뭐, 별로 중요한 정보는 아니다.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을 뿐이었으니까.
“무기야, 뭐해?”
「…….」
질문을 던졌으나 돌아오는 건 침묵이다.
눈동자를 굴려 나를 쳐다보기는 했는데….
“…….”
「…….」
우리의 시선이 마주한 건 정말로 찰나의 순간이었다.
무기는 바로 시선을 돌려 다시 입에 물고 있는 꼬리를 노려봤다.
그것이 굉장히 중요한 작업이라고 말하는 듯했다.
대체 왜 저러는 거람?
그런 생각을 하며 가만히 쳐다본 후에야,
“아….”
현재 무기의 몸속에서 흐르는 마나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평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많았다.
마치, 세계수의 뿌리로 에리크와 오만의 에너지를 흡수했을 때의 나와 비슷한 모습이랄까….
짐작해보건대, 저렇게 꼬리를 물고 끊임없이 순환시키지 않으면 아마도 저 차고 넘치는 마나를 주체하지 못할 거다.
주체하지 못한 마나는 공기 중으로 흩어져 사라지게 될 테고….
그렇게 되는 것은 너무나 아까운 일이었다.
저게 어떤 마나인데.
“기의 흐름이 이상해 보이네만…. 괜찮은 것 맞나?”
“괜찮아요.”
“괜찮은 거라고? 저게?”
“네.”
리롄제의 걱정스러운 질문에 바로 대답했다.
무기는 지금 블랙 드래곤을 살해하고 얻은 순수하고 완전한 마나를 여의주에 전부 담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방해하지 않고 가만히 내버려 두기만 한다면….
분명 우리 무기는 알아서 잘 정제(精製)해 여의주에 담을 거다.
“하지만, 미스터 백. 무기 씨의 모습은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는데요….”
“걱정해줘서 고마워요. 하지만 정말로 괜찮아요. 그냥….”
말끝을 흐리며 무기에게 다가간다.
두 손을 뻗어 원을 그린 듯한 무기를 조심스럽게 붙잡는다.
이어 꽃목걸이를 쓰듯 소중하게 내 목에 걸쳤다.
지금까지 원래 형태로 있었던 무기였다.
그런데 지금 굳이 ‘레이독치온’ 스킬을 써서 축소화한 것은 내가 이렇게 해주길 바랐던 것일 테다.
내 목에 감기자마자 슬며시 눈을 감는 게 바로 그 증거다.
빠지직…!
신경 써야 하는 것이 하나 사라졌기 때문일까?
무기의 몸속에서 흐르는 마나가 아까보다 조금 더 빨라졌다.
손으로 쓰다듬고 싶은 마음을 참으며 밀러에게 말했다.
“그냥 이러고 있으면 돼요.”
“그러고 있으면 된다고요…?”
“네.”
“…….”
“믿어요, 밀러. 내가 언제 허튼소리 하던가요?”
“으음….”
“늘, 노상, 항상, 매번, 언제나, 하잖아요.”
말을 잇지 못하고 곤란한 듯 신음만 흘리던 밀러 대신 도희가 쏘아붙인다.
뭘 또 저렇게까지 표현하는 건지, 원….
누가 들으면 내가 정말로 줄곧 허튼소리만 하는 줄 알겠네.
[세계수가 나뭇가지를 갸웃거립니다.] [도희의 말이 전적으로 옳지 않으냐고 따집니다.]전적으로 옳기는 뭐가 옳아.
내가 도희 마음에 차지 않는 소리를 자주 하는 건 인정.
하지만 매 순간 허튼소리를 해대진 않는다고.
그건 정말 크나큰 오해야.
[세계수가 나뭇가지를 가로젓습니다.] [단언컨대 그렇게 생각하는 건 관리인뿐일 거라고 지적합니다.]…아무튼.
전대 세계수 씨의 안배(按排)가 대단한걸?
퀘스트를 통해서 무기의 여의주가 될 ‘전대 세계수의 호박’을 건네준 것은 전부 이 순간을 위해서였을 테지.
무기가 블랙 드래곤의 마나를 모두 정제하고 나면 어떻게 될까?
드래곤으로 진화할 수도 있지 않으려나?
[세계수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전합니다.] [현재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는다고 털어놓습니다.]새싹이 네가 아무 느낌도 들지 않는다고?
그럼 드래곤이 될 가능성이 크진 않겠네.
뭐….
그래도 기대는 해볼래.
혹시 또 모르는 거니까.
[세계수는 나뭇가지를 끄덕여 관리인의 생각에 동의합니다.]새싹이의 동의를 받으며, 블랙 드래곤의 사체를 가리켰다.
내 목에 걸린 무기를 쳐다보던 그들이 검지를 따라 고개를 돌린다.
“저건 어떡할까요?”
“음. 어떡하냐는 질문이 분배(分配)를 뜻하는 거라면, 일단 가지고 나간 후 여러 논의를 거쳐 결정해야겠지.”
이런 일에 가장 경험이 많은 리롄제가 즉시 대답했다.
여러 논의를 거쳐 분배한다, 라….
즉, 공동의 적과 한마음 한뜻으로 싸웠던 우리가 다시 찢어져야 한다는 뜻이다.
각자의 이익을 위해 다퉈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안타깝긴 하지만 당연한 일이다.
무려 블랙 드래곤의 사체이지 않은가.
머리의 뿔부터 꼬리 끝까지 희귀한 재료로써 버릴 데가 하나도 없으리라.
예상컨대, 하얀 손톱 끝을 조금만 떼어가도 웬만한 A등급 아이템은 혀를 내두르게 만들 수 있을 거다.
당연히 귀수산 등껍질의 명성도 한 단계 하락하게 되겠지.
이제 세계 최고의 방어구 재료는 블랙 드래곤의 비늘이 될 테니까.
물론 무기는 논외로 해야 했다.
이미 내 인벤토리 속에 있기 때문이다.
아르보르 카풀루스라는 이름의 무기가.
“그럼, 저거 제가 옮기도록 할게요.”
“자네가 옮기겠다고?”
블랙 드래곤 사체로 걸어가는 내게 리롄제가 탐탁지 않은 듯 물었다.
뭐가 또 불만이라서 저러는 걸까.
설마 내가 챙긴 다음 모르는 척 꺼내놓지 않을까 봐 그러나?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서 물어본 거라면 좀 기분 나쁠 것 같은데….
그리 생각하는 나를 보며 리롄제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자네가 왜 그런 허드렛일까지 하려고 하나?”
“…네?”
“저걸 옮기는 일 같은 건 이번 토벌에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한 놈들에게나 시키게.”
“아….”
다행히 내가 생각한 이유로 불만을 드러낸 게 아니었다.
하마터면 오해해서 비아냥거릴 뻔했네.
“간단한 일인데요, 뭐.”
“세상이 보기에 좋지 않다는 걸세. 토벌에 핵심이었던 자네가 블랙 드래곤의 사체를 짊어지고 나가는 모습은….”
리롄제가 한창 말하던 도중에 입을 다물었다.
톡.
내가 블랙 드래곤의 사체에 검지를 갖다 댄 직후였는데….
거대한 사체가 눈 깜빡할 사이에 사라졌으니 놀라지 않고선 배길 수가 없겠지.
당황에 물든 리롄제의 얼굴을 보며 검지를 흔들었다.
“짜잔.”
“…방금 뭘 한 건가?”
“인벤토리에 넣은 건데요.”
“인벤…? 그러니까, 아공간(異空間)에 넣었단 뜻인가? 그만한 크기를?”
리롄제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되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세상엔 블랙 드래곤의 사체만큼 거대한 것을 담을 수 있는 아공간 마법이 알려지지 않았다.
그럴 수 있는 마법 주머니도 당연히 개발되지 않았고.
“놀라시기는. 별것도 아닌데… 오.”
“음? 왜 그러나?”
“잠시만요.”
“……?”
고개를 갸웃거리는 리롄제에게서 눈을 돌렸다.
방금 떠오른 메시지창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전대 세계수 퀘스트를 클리어했습니다!] [퀘스트 내용 – 관리인 백도운이 블랙 드래곤 ‘하르모니아 카무스’ 토벌에 성공했습니다.] [완료 보상 – 스킬 ‘뿌리 내리기’.] [획득 보상은 우편함으로 보내집니다.] [보상을 받으시겠습니까?] [(YES / NO)]예상했던 대로 토벌 성공을 알리는 메시지였다.
뿌리 내리기….
예전에도 생각했었던 건데, 이름만 봐서는 도대체 어떤 스킬인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세계수의 뿌리와 연계할 수 있는 스킬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짐작만 살짝 해볼 뿐이다.
뭐….
무려 블랙 드래곤을 토벌하고 얻은 스킬이지 않은가.
별 시답잖은 스킬일 리는 없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말이다.
그리 생각하며 YES 버튼을 눌렀다.
그와 동시에,
[경고! 경고!]뜬금없이 경고 메시지가 떠올랐다.
획득한 보상이 우편함이 잘 전달됐다는 메시지가 뜰 줄 알았더니….
갑자기 웬 경고란 말인가?
블랙 드래곤의 사체를 인벤토리에 넣기까지 한 지금 상황에서 경고를 보낼 일이 뭐가 있다고.
[세계수는 관리인에게 도피하라고 경고합니다!] [현재 ‘S등급 베르동 협곡 게이트’가 소멸(消滅)하기 시작했다고 다급하게 전합니다!]…뭐라고?
뭐가 소멸하기 시작해?
[S등급 베르동 협곡 게이트.] [세계수는 관리인에게 다급하지만 친절하게 되풀이하여 전합니다.]아니….
갑자기 왜?
***
베르동 협곡 게이트 관리소장실.
세계 헌터 협회장 앨릭스는 창문 앞에 서서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게이트에 진입한 블랙 드래곤 토벌대원들이 걱정스럽기 때문이다.
백도운이 ‘세계수 관리인’이라는 사실을 밝히며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게이트의 주인이 주인인지라 근심이 다시 빠르게 자라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우르릉….
심지어 게이트는 곧 브레이크할 것처럼 불길한 소리를 내고 있었던 탓에 걱정스러운 마음이 갈수록 심해졌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소리가 규칙적으로 울리고 있다는 점이었는데….
우르릉!
방금, 그 소리의 주기가 짧아졌다.
마치 당장이라도 브레이크할 것처럼.
“협회장님!”
관리소장실 문이 벌컥 열리며 로미네가 들어왔다.
그녀 또한 베르동 협곡 게이트의 변화를 알아차린 것이었다.
“게이트가-”
“알고 있네.”
“그럼 어서-”
“괜찮네.”
“괜찮다뇨! 게이트가 브레이크 하면…! 하면…. 아….”
로미네는 다급하게 말하다가 이내 입을 다물었다.
도중에 깨달은 것이다.
저 게이트가 브레이크한 이후 블랙 드래곤이 튀어나온다면, 어차피 끝이라는 것을.
어디로 도망친다고 한들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로미네는 창밖을 바라보는 앨릭스 협회장의 뒷모습을 멀거니 바라봤다.
우르릉!
불길한 소리가 짧아진 주기로 울렸다.
“게이트는 아직 브레이크하지 않았어. 그러니, 조금 더 그들을 믿어보자고….”
앨릭스 협회장이 덤덤하게 말했다.
그 말은 그러나 자기 자신을 향한 짐과도 같아 보였다.
로미네도 그걸 느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그를 지켜보았다.
“하지만, 그래. 각오는 해야겠지….”
“…….”
“로미네. 그를 데려와라.”
“…알겠어요. 그런데, 그가 부름에 응할까요?”
“응할 거다. 아마 지금이 유일한 기회일 테니까.”
“기회… 아.”
반문하던 로미네는 유일한 기회라는 말을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베르동 협곡 게이트에 진입한 토벌대원들은 세계 최고의 헌터들로 구성돼 있었다.
그들이라면….
설령 토벌에 실패했다고 한들 분명히 블랙 드래곤에게 큰 데미지를 입혔을 터였다.
우르릉!
또다시 게이트에서부터 소리가 울렸다.
그 소리에 앨릭스 협회장과 로미네가 다시 게이트의 입구를 바라봤다.
그리고,
“으음….”
“어머….”
두 사람은 생경한 광경을 목도(目睹)했다.
게이트 입구에서는 사람들이 차례차례 빠져나오고 있었다.
다만, 그들 중 누구도 자신의 두 발로 직접 걸어서 나오는 사람이 없었다.
굵은 나뭇가지에 주렁주렁 자란 과일처럼 매달린 모습으로 나왔다.
어째서 저런 꼴들인 걸까….
앨릭스 협회장과 로미네의 머릿속에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물론, 이유는 알 수 없어도 저 광경을 벌인 범인이 누구인지는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백도운.
분명 그가 저지른 짓이리라.
평소와 같이.
허튼소리를 해대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