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495
제497화
콰르르!
베르동 협곡 게이트에서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건물이 와르르 무너지는 듯한 소리였는데, 그 소리와 함께 게이트 입구에서 블랙 드래곤 토벌에 참여했던 헌터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굵은 나뭇가지에 자란 과일처럼 주렁주렁 매달린 모습으로.
“다들 무사한가!”
그들의 출현에 관리소에서 이번 토벌 건에 관련된 모든 이들이 우르르 달려 나왔다.
가장 앞선 사람은 당연히 앨릭스 협회장이었다.
“…….”
앨릭스 협회장의 걱정에 대답하는 이는 없었다.
백운천 길드원도, 리롄제의 제자들도, 밀러의 학생들도, 교황청 사제들도, 모두 가만히 있었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로.
이따금 “백도운 이 개새끼.”라거나 “고소할 거야, 두 번 할 거야….”라고 중얼거리는 이들만 있을 뿐이다.
“…다들 무사해요.”
그들 중 이자벨 성녀가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그녀는 교황청에서 비슷한 경험을 겪었던 덕분에 다른 이들보다 빨리 제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물론, 다른 이들처럼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는 것은 매한가지여서 얼굴을 가리고 싶은 듯이 마른세수를 몇 번 반복했다.
“이자벨 성녀…!”
앨릭스 협회장이 바로 그녀에게로 뛰어갔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설명을 듣기 위해서였다.
그 뜻을 알아차린 이자벨 성녀는 바로 설명했다.
“베르동 협곡 게이트가 소멸하려고 해서, 도운 님이 우리를 먼저 내보낸 거예요. 우리로서는 제시간에 빠져나올 수가 없었거든요.”
“지금 소멸이라고 했소? 브레이크가 아니라?”
“이런 식으로 내보낸 것은 ‘재미있는 생각이 떠올랐기 때문’이었고요….”
“……?”
앨릭스 협회장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몸을 부르르 떠는 그녀의 표정에서 도운이 떠올렸다는 ‘재미있는 생각’이 무엇인지는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과일처럼 나뭇가지에 매달리게 된 모습이 바로 그 생각이었으리라.
하지만 그가 고개를 갸웃거린 이유는 다른 데에 있었다.
바로 도운이 저런 식으로 토벌대원들을 바깥으로 내보냈다는 것이다.
콰르르…!
또 한 번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
그가 게이트를 바라봤다.
브레이크든 소멸이든.
게이트가 무너지려고 하는 상황이라면 빨리 빠져나오는 게 옳았다.
그러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세상에서 가장 빠른 생물인 이무기를 타고 나오는 것이었고.
하지만 도운은 그러지 않았다.
그 이유를,
“설마, 이무기가…?”
그는 짐작해보았다.
당연히 상황이 상황인지라 부정적인 짐작만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의 걱정에 이자벨 성녀가 고개를 가로젓고 차분하게 말했다.
“아뇨. 이무기 님은 무사해요.”
“무사하다고 하셨소?”
“네. 물론, 우리 모두를 태우고 나올 수 없는 상황이긴 하지만요.”
“아….”
앨릭스 협회장이 탄식을 흘렸다.
고개도 두어 번 주억거렸는데, 단순한 오해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
무사하지만 그들을 태울 수는 없는 상황.
그는 그 상황을 무기가 치명상을 입었기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오해가 깊어지던 그때였다.
“앗…! 협회장님! 저기요!”
로미네가 게이트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게이트에서 아직 나오지 않았던 나머지 인원들이 빠져나왔다.
도희와 밀러, 그리고 리롄제와 리우이호였다.
그들은 앞서 나왔던 이들과 달리 굵은 나뭇가지에 매달린 모습이 아니었다.
도희가 밀러의 품에 안겨 있기는 했지만, 다른 이들과 달리 그들 스스로 빠져나온 것처럼 보였다.
앨릭스 협회장이 바로 네 사람에게로 달려갔다.
그러는 와중에 도희가 밀러의 품에서 거칠게 빠져나왔다.
이어 아주 짧게 밀러를 노려봤는데, 밀러는 미안함을 느끼는 듯 시선을 떨어뜨렸다.
무슨 일이 있었군.
앨릭스 협회장이 그리 생각하며 네 사람 앞에 섰다.
“다들-”
“우린 괜찮으니 걱정하지 마시오.”
리롄제가 앨릭스 협회장의 걱정을 차분하게 끊어냈다.
그러고는 아직 빠져나오지 않은 도운과 태천을 보듯 게이트를 돌아봤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으나….
아무리 기다려도 두 사람은 게이트에서 빠져나오지 않았다.
콰르르…!
게이트가 소멸하는 소리만 더욱 커질 뿐이었다.
결국, 앨릭스 협회장이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대체 어떻게 된 상황입니까?”
“…….”
“리 선생!”
그가 리롄제를 콕 집었다.
다른 이들은 설명해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도희가 그랬다.
그녀는 다시 게이트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듯 하릴없이 바라봤다.
옆에 선 밀러가 지긋이 지켜보고 있지 않았다면, 도희는 분명히 그랬으리라.
리롄제가 고개를 살짝 저으며 말했다.
“…지금, 저 게이트는 소멸하고 있소.”
“네, 들었습니다. 그래서 도운이 토벌대를 먼저 보낸 것이라고….”
“거기까진 좋았는데, 시간이 생각보다 더 촉박하더군.”
“……?”
앨릭스 협회장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시간이 생각보다 촉박했다.
리롄제의 말은 마치 게이트가 지금쯤 소멸했어야 했다는 것처럼 들렸다.
콰르르…!
그런데, 어째서 게이트는 소멸하지 않고 요란한 소리만 내는 걸까.
리롄제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래서, 백도운은 게이트를 완전히 뜯어고치기로 했소.”
“네?”
“이태천과 그위친. 그 두 사람과 함께 말이오.”
“네…?”
앨릭스 협회장은 리롄제의 말을 들으면서 계속 반문했다.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백도운이 다른 두 사람과 뭘 하고 있다고?
콰르르!
또다시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그 소리가 그의 시선을 잡아끈 것처럼 게이트로 향했다.
“지금, ‘리모델링(remodeling)’ 중이라는 겁니까…?”
“…그렇소.”
리롄제의 대답에 앨릭스 협회장이 멍하니 게이트를 바라봤다.
***
질끈.
내 부탁으로 밀러에게 붙들린 도희가 마지못한 얼굴로 건넨 머리끈을 머리에 묶는다.
자연스럽게 순간 이동을 하면서 끊어진 머리띠 대신 새로운 것을 꺼내는 모습이 퍽 당황스러웠다.
대체 마법 주머니에 머리끈이 얼마나 들어있는 걸까.
궁금한 마음이 들었는데, 한편으로는 알고 싶지 않기도 했다.
솔직히 수십 개 이상 들어있으면 좀 무서울 것 같거든.
“흠….”
땅에 갖다 댄 검지를 내려다본다.
검지에서 나온 세계수의 마나가 땅으로 끊임없이 흘러 들어가고 있었다.
그 여파로 인해 날 중심으로 푸른 초목이 우후죽순 자라났다.
[세계수가 나뭇가지를 치켜듭니다.] [베르동 협곡 게이트의 소멸 진행 속도가 더뎌졌다고 전합니다.] [현재 상태라면 몇십 분은 거뜬할 것이라고 설명합니다.]이럴 줄 알았지.
이 게이트란 게 어떻게 구성돼 있는지는 잘 모르지만….
블랙 드래곤의 죽음이 확실시된 이후 갑자기 소멸하기 시작하지 않았나.
그렇다면 유추할 수 있는 것은 한 가지.
바로 블랙 드래곤이 게이트를 유지하기 위한 ‘핵(核)’이라는 것이다.
울릉도 게이트가 소멸했던 것도 마찬가지로 무기라는 핵을 잃게 되어 사라져 버린 것이리라.
그렇다면 그 핵을 만들어 주면 될 일이다.
문제는….
“도운. 그대도 알겠지만, 그것만으로는 무리예요.”
“……”
그위친의 말이 옳았다.
지금 내가 하는 것은 말 그대로 임시방편에 불과했다.
마나를 무한정으로 불어넣어 없어져 버린 핵을 잠깐이나마 대신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에겐 게이트의 핵으로서 마나를 끊임없이 생성할 구심점이 필요했다.
무엇보다,
이런 식으로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속도를 늦춘 것이지 완전히 멈춘 것은 아니었으니까.
마나를 최대한 불어넣은 다음 서둘러 빠져나가는 것도 좋은 수는 되지 못할 거다.
내가 움직일수록 무기가 블랙 드래곤의 마나를 정제하는 작업에 악영향을 미칠 테니까.
그렇다고 겨울철 정전기처럼 벼락을 뿜어내는 무기를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도 없는 노릇이고….
바로 그때였다.
블랙 드래곤 토벌이 인정되면서 얻었던 스킬이 눈에 들어왔다.
[뿌리 내리기 – 세계수 관리인은 뿌리를 내릴 수 있다.]뿌리 내리기….
그 스킬엔 등급이 쓰여 있지 않았다.
설명 또한 한 줄뿐으로 무척 짧고 간단했다.
평소였다면 무슨 소리인지 이해할 수 없었어야 했는데….
어쩐 일인지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이 스킬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스킬이 설명한 대로, 관리인인 나는 뿌리를 내릴 수 있을 터였다.
세계수 관리인이 내릴 수 있는 뿌리….
그건 당연히 ‘세계수의 뿌리’이지 않겠는가.
즉, 난 새싹이를 이식(移植)할 수 있다는 뜻이다.
성역에서부터 다른 곳으로 말이다.
그런데….
[뿌리 내리기 – 세계수 관리인은 뿌리를 내릴 수 있다.]전대 세계수가 그것을 바라고 있을까?
진정 그것을 원해서 블랙 드래곤을 토벌한 보상으로 준 것일까?
미루어 짐작해보건대, 아닐 거다.
전대 세계수가 새싹이를 이식하길 바라는 곳은 이곳 베르동 협곡 게이트가 아닐 테다.
그럼, 전대 세계수는 어째서 지금 뿌리 내리기를 배울 수 있도록 한 걸까.
도대체 어떤 뿌리를 내리길 바라기에….
“……!”
문득 떠올랐다.
이곳에 새싹이 말고도 나무가 한 그루 더 있다는걸.
그것도 세계수 만큼이나 아주 대단한 나무가.
바로,
“그위친….”
에디탓 그위친이라는 이름의 나무 정령이.
나와 눈이 마주친 그가 싱긋 미소를 짓는다.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한 태도다.
“정령이 됐기 때문일까요?”
“네?”
“인간일 때와는 보는 눈이 달라지더군요.”
“아아….”
정말로 알고 있었나 보다….
정령이 된 이후 새싹이처럼 미래를 예지할 수 있게 된 거겠지.
슥.
그위친이 왼팔을 내민다.
자신이 이곳 베르동 협곡 게이트의 핵이 되겠다는 뜻이었다.
묵묵히 지켜보던 태천이 질문을 던졌다.
“그위친. 괜찮겠습니까?”
“괜찮겠냐고? 내겐 오히려 좋은 일이란다.”
“네? 좋은 일이라고요?”
“그래. 나는 정령이지 않니?”
“아…!”
태천이가 깨달음의 탄성을 흘렸다.
나 또한 그랬다.
핵이 되고 나면 이곳과 미국에 있는 숲을 왔다 갔다 할 수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즉, 그의 활동 범위가 더 넓어지는 거다.
이거였구나….
굳이 전대 세계수가 뿌리 내리기 스킬을 지금 배울 수 있게 안배한 이유가.
마음에 드네.
탁.
왼손을 뻗어 그위친의 손을 맞잡았다.
그런 후 바로 스킬을 썼다.
“뿌리 내리기.”
***
콰르릉!
벼락같은 소리가 세차게 울렸다.
모두의 시선이 베르동 협곡 게이트로 향했다.
그 게이트엔,
“헉…!”
“입, 입구가…!”
입구가 사라진 상태였다.
게이트를 보던 이들의 눈이 경악으로 휘둥그레진다.
소멸하던 게이트의 입구가 사라졌다.
그들은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지 않았다.
제때 나오지 못한 백도운과 이태천은 분명….
“하여간….”
그 순간이었다.
사람들 머릿속에 공통으로 떠오른 생각을 끊어내듯이 백도희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었다.
평소와 같은 냉소적인 목소리와 별일 없는 듯한 태도에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당황스러움을 느꼈다.
특히, 그녀가 다시 게이트 속으로 들어갈까 봐 걱정하고 있던 밀러는 눈을 끔벅거리기까지 했다.
백도희가 누구인가.
세상에서 백도운을 가장 끔찍이 여기는 사람 중 하나다.
그녀는 이런 순간 절대로 평온함을 유지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었다.
때문에,
“백도희…?”
한재임이 불안한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설마 너무 큰 충격을 받아서 미쳐버린 건가?
그런 생각이 든 탓이었다.
도희가 한재임을 퉁명스럽게 흘깃 바라봤다.
“왜요?”
“너, 괜찮은 거냐…?”
“안 괜찮을 게 뭐가 있는데요?”
“뭐가 있냐니. 지금 게이트 입구가-”
콰르릉!
한재임의 목소리를 끊어내듯 우렁찬 소리가 울렸다.
입구가 사라질 때와 같은 소리에 사람들의 시선이 게이트로 향했다.
“……!”
게이트에 새로 생겨난 입구를 발견했다.
사라질 때하고는 전혀 다른 모양의 입구는,
“새싹…?”
새싹의 형태였다.
두 이파리가 팔을 높이 쳐든 것처럼 보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