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510
제512화
“아하하….”
도희는 작게 웃으며 내 시선을 피했다.
아무래도 멋쩍고 민망한 모양이었다.
그야 당연히 그렇겠지.
새싹이가 말해준 거냐니.
내가 그리 생각을 했을 리 없다고 단정을 지은 것과 마찬가지가 아닌가….
너무하게시리.
“네 생각이든 아니든 관심 없고.”
어색해하는 도희를 빤히 보고 있는데, 한재임이 퉁명스럽게 지껄이며 끼어들었다.
관심이 없다니.
저놈도 너무하네.
“하던 얘기나 마저 하지.”
“하던 얘기?”
“벌써 까먹은 거냐?”
“……?”
“네가 아까 그랬잖아. 이번 일로 위그드라실로 진입할 수 있게 됐다고.”
“아.”
그랬었다.
원래 오늘 회의에서 그것에 대해 말하려고 했었다.
갑자기 새싹이가 재이와 앨릭스 협회장이 만났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면, 우린 아마 그 얘기를 계속 이어나가고 있었을 거다.
그러니까, 내가….
“어디까지 얘기했더라…?”
“네가 레지나라는 엘프 공주님과 함께 위그드라실로 진입했다고 말했었어.”
기억이 나지 않아 중얼거리자 서인철이 바로 가르쳐주었다.
대답하는 속도가 엄청나게 빨랐다.
마치 그 말을 하길 지금까지 준비하고 기다렸던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심지어, 날 보는 녀석의 두 눈이 초롱초롱 빛나기까지 했다.
거, 더럽게 부담스럽네.
왜 이래?
“어떤데.”
“뭐가?”
“예뻐? 귀여워?”
“뭐?”
“아, 왜 못 알아들어. 엘프 공주님 말이야. 어떻게 생겼냐고.”
“…….”
이 어처구니없는 놈 보소?
설마 준비하고 있던 느낌이 든 것이 저런 질문을 하려고 했었기 때문이었던 건가….
김보민이 눈을 찌푸리고는 녀석에게 따졌다.
“야. 넌 지금 그게 중요해?”
“그럼 뭐가 중요해?”
“뭐?”
“엘프라잖아. 심지어 공주님. 궁금한 게 당연한 거 아니야?”
서인철은 뻔뻔하게 대답했다.
엘프 공주님이니까 궁금한 건 당연하다, 라….
그래. 그 말도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내가 위그드라실에 넘어갔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면 말이다.
“당연하긴. 지금 저게 다른 차원으로 건너갔다는데 외모에 관해 묻는 게 당연해?”
“나한텐 그것보다 이게 더 중요해. 무려 엘프 공주의 외모니까.”
“어휴…. 꼭 그렇게 말하는 놈들이 못생겼… 큭!”
김보민을 말하다가 말고 아차! 싶은 얼굴로 신음을 흘렸다.
또 분한 듯이 눈을 질끈 감았는데, 그럴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내가 못생겼다고? 너 안경 쓸 때 된 거 아니냐?”
서인철은 외모가 출중했다.
날티가 조금 나긴 하지만, 어디 가서도 꿇리지 않는 얼굴이란 건 변하지 않는다.
아마 백운천 내에서도 태천이 바로 다음일 거다.
“…….”
“…….”
“…….”
그 때문에, 저 녀석의 잘난 척에도 반박이 돌아오지 않았다.
말실수한 김보민을 포함해 다들 외모로는 저놈을 깎아내릴 수가 없었던 거다.
짐작건대, 저 경망스럽고 경박스러운 이미지만 아니었다면 서인철은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인기를 누렸을 거다.
다른 녀석들이 반박할 수 없는 현실에 분통을 터뜨리지도 않았을 거고.
그때, 수아가 김보민 대신 한마디 거들었다.
“하지만 인철아. 넌 제수씨가 있잖아.”
“윽…!”
“네가 다른 여자를 궁금해했다는 사실을 알면, 제수씨 기분이 몹시 나빠지지 않을까?”
“이를 거예요, 누님…?”
“글쎄. 난 우리 제수씨가 마음에 들어서 말이야. 불쾌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네.”
톡, 톡….
그리 말하며 수아는 검지를 입술에 갖다 댔다.
입 다물고 조용히 있으라는 경고였다.
그러지 않으면 여자친구에게 모두 일러버릴 테니까.
서인철은 싱긋 웃으며 날 쳐다봤다.
그러고는 굴복하기로 한 듯이 마음에도 없는 질문을 던졌다.
“백도운. 위그드라실은 어떤 모습이었냐?”
황당한 시선들이 서인철에게 꽂혔다.
하지만 다른 말을 덧붙이지는 않았다.
어쨌거나 원래 하고자 하던 얘기로 돌아왔기 때문인 것 같다.
날 보는 눈에 담긴 호기심으로 짐작건대 그들도 궁금했던 것 같고.
그나저나….
위그드라실이 어떤 모습이었냐고?
“황폐한 황무지. 그 말을 그려낸 듯한 모습이었지.”
“아….”
백운천 녀석들이 안타까운지 탄식을 흘렸다.
자기들 일도 아닌데, 저렇게 바로 애가 타는 반응을 보이는 것이 참 신기하다.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아마 도희와 태천이 그리고 원장 아줌마의 영향을 받아서일 테지….
“살아 숨 쉬는 것은 전혀 보이지 않았고, 이미 죽은 것들도 더 죽어가는 것처럼 보였어.”
“저런….”
“듣기만 해도 끔찍한걸?”
“엘프들은 그런 곳을 정처 없이 돌아다녔던 건가….”
“새싹이가 있는 성역을 발견해서 진짜 다행-”
“그리고.”
녀석들의 말을 끊었다.
저러다가 한 명씩 돌아가면서 말할 때까지 기다려야 할까 봐 걱정돼서였다.
입을 다물고 나를 쳐다본다.
“위그드라실은 ‘아바돈의 권세’라는 것 때문에 모든 능력이 하락하더라고.”
“모든 능력이? 설마, 블랙 드래곤처럼 말이냐?”
“그래, 맞아.”
한재임의 질문에 긍정해주었다.
머리가 좋아서 그런지, 녀석은 단박에 능력 하락치를 파악해냈다.
또한,
“상승치 또한 비슷하겠지….”
능력 상승치도 함께.
한재임의 추측대로, 아바돈은 블랙 드래곤과 같은 짓을 할 수 있을 터였다.
제 능력은 10배 상승시키고, 적의 능력은 10배 하락시키는 짓 말이다.
그렇게 가정한다면….
새싹이를 소환한다고 해도 도희와 이자벨 성녀의 빛의 성역 없이도 싸울 수 있을지 모르겠다.
“또 블랙 드래곤 토벌 퀘스트를 깨고 얻었던 스킬을 쓸 수 있던데.”
“뿌리 내리기 말이지? 그위친을 저기에 눌러 앉힐 수 있었던 거.”
휙.
태천이가 창밖의 베르동 협곡 게이트를 가리켰다.
그러고 보니, 이젠 그렇게 부르면 안 되겠구나.
이번 일을 통해서 저곳은 이름이 바뀔 예정이었다.
‘정령의 정원’ 같이 귀엽고 친숙한 이름으로 말이다.
마나 압박 같은 것도 느껴지지 않았기에, 프랑스 정부와 세계 헌터 협회는 저곳을 관광 명소로 탈바꿈할 생각이었다.
블랙 드래곤이 살았던 곳인 데다가 격렬하게 싸웠던 격전지가 그대로 남아 있었으니, 그런 계획을 짤 만도 했다.
아마 ‘운이 좋으면 정령이 된 그위친을 만날 수 있어요!’ 등의 캐치프레이즈도 써넣겠지….
“그거 맞아. 그런데 안 썼어.”
“안 썼다구?”
“왜지?”
한재임이 끼어들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전대 세계수가 바라던 게 바로 그것이었을 텐데?”
“그렇긴 한데…. 아직 좋은 시기가 아니었거든.”
“좋은 시기…?”
설명을 들은 녀석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말한 ‘좋은 시기’가 뭘 의미하는지 궁금한 눈초리였다.
그 시기란 나와 새싹이가 각각 한 가지씩 어떠한 일을 해낼 수 있을 때를 의미했다.
내가 해내야 하는 것은, 아바돈과 혼자 싸워서 이기는 거다.
다 함께 위그드라실로 건너가는 방법을 찾지 못하는 한, 나 혼자서 놈을 상대해야 할 테니까.
엘프들이 있긴 하지만, 그들은 아마 아바돈의 부하들과 싸워야 할 거다.
또 새싹이는 명제 마법을 쓸 수 있을 때까지 더 성장해야 했다.
내 짐작으로는 우리 새싹이가 그걸 쓸 수 있게 되는 것이 전대 세계수가 그토록 바라던 일이었다.
“그리고 내가 새싹이를 뿌리 내리면 아바돈이 알아차릴 거 아니냐.”
“그렇겠지. 아. 당장 전면전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다…?”
아바돈….
그놈의 실력은 완전히 미지수다.
블랙 드래곤과 비슷한 짓을 하는 걸 보면, 비슷한 수준 같은데….
그렇게 추정한다면 새싹이를 뿌리내리는 것은 완전히 시기상조다.
“그래. 그걸 걱정해서 뿌리 안 내리고 돌아온 거야.”
“호오. 너답지 않게 잘 생각했군.”
“야. 칭찬할 거면 칭찬만 하지? 군소리 덧붙이지 말고.”
“…….”
한재임은 어깨를 으쓱했다.
기분 탓인 건지….
어쩐지 “싫은데?”라고 퉁명스럽게 대꾸하는 듯한 얄미운 목소리가 들렸다.
“오라버니.”
“응?”
“정말 그냥 돌아왔어요?”
“……?”
날 바라보는 도희의 눈에 의심이 묻어났다.
이번엔 내 말을 믿지 못하겠는 모양이다.
정말 너무하는구만.
속고만 살았나….
[세계수가 나뭇가지를 으쓱입니다.] [다 관리인의 자업자득이라고 나무랍니다.] [또 도희의 의심이 딱히 틀리지도 않았다고 전합니다.] [관리인은 위그드라실에서 그냥 돌아오려고 하지 않았다는 걸 상기시킵니다.]…뭐, 그렇기는 했지.
“정말 아무것도 안 한 거죠? 솔라빔을 써서 인사를 남겼다거나 하지 않은 거죠?”
“…….”
하여간 귀신이라니까.
그러려고 했었다는 걸 어떻게 알았담.
“…걱정하지 마. 아무것도 안 했어.”
“그럼 방금 그 침묵은 뭔데요?”
“정말이래도. 사실, 하려고 했었는데 도중에 그만뒀어.”
“도중에? 오라버니가요?”
도희는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되물었다.
내가 한 번 마음을 정하면 잘 바꾸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도희의 협박이나 태천이의 부탁이 있지 않은 한 말이다.
그리고 이번에 생각을 고쳐먹은 건 넓은 의미로 봤을 때 전자에 해당했다.
“레지나가 네 이름을 들먹이며 날 협박했거든.”
“협박이라고요? 내 이름으로?”
“참 멍청했지…. 둘은 서로 만날 수조차 없는 사이인데, 대체 어떻게 일러바친다고….”
“잠깐만요.”
도희가 혼란스러운 듯 내 입을 막는다.
천천히 생각을 정리하면서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나한테 일러바치겠다는 식으로… 오라버니를 협박했다는 거예요? 그, 레지나라는 엘프 공주가?”
“응. 그 소리 맞아.”
“…….”
“네 이름을 거론해서 당황했지 뭐야? 그것만 아니었어도 인사 거나하게 남기고 오는 건데 말이야….”
“하….”
도희가 한숨을 토해내듯 내쉰다.
그런데 그 한숨이 “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닌 거예요!”하고 따지는 것처럼 들렸다.
“…언제 돌아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다행히 도희는 그리 따지는 대신 다음 회의 안건으로 넘어갔다.
아마 더 얘기하기도 싫은 모양이었다.
도희의 마음이야 어쨌건, 나한텐 잘된 일이다.
휴, 안 혼났다….
그때 레지나 말 듣지 않았으면 방금 엄청 혼났겠지…?
“역시 블랙 드래곤 정리를 빨리 끝낸 후에-”
“내일.”
태천이가 도희의 말을 끊어내듯이 대답했다.
그 진지한 목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우리가 내일 꼭 돌아가야 하는 이유가 있던가?
아니, 생각해 봐도 없는데….
[세계수가 나뭇가지를 끄덕입니다.] [서둘러 돌아가야 할 이유는 없다고 전합니다.]“태천아. 내일 당장은 좀 그런데.”
한재임이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휙.
이어 팔을 뻗어 창밖에서 한창 진행 중인 파티를 가리킨다.
블랙 드래곤 토벌 성공 파티는 이제 놀랍게도 2교대로 진행되고 있었다.
끝이 나긴 하는 건가 모르겠네.
“프랑스 정부는 저 파티를 며칠 더 끌 속셈이거든.”
“뭐? 벌써 사흘째인데?”
“전 세계의 관심이 여전히 집중되고 있으니까. 정부와 협회는 언제나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싶고.”
“아아….”
“그런데 우리, 정확히는 백도운과 세계수가 돌아가면 파티 주인공이 빠지는 것과 같잖아. 그걸 정부와 협회가 좋아할 리 없지.”
“무슨 얘긴지는 알겠어. 알겠는데…. 나 더는 못 참을 것 같아서 그래.”
“……?”
한재임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못 참을 것 같다니….
파티가 진행되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나?
걱정이 솟아오르는 가운데, 태천이 말했다.
“김치 먹고 싶어.”
“…뭐?”
“된장찌개에 밥 말아 먹고 싶고, 제육볶음이랑 불고기랑 족발 보쌈도 먹고 싶어…!”
“…….”
으음….
아무래도 거의 일주일 동안 프랑스 음식만 먹었더니 물린 모양이다.
새삼 느끼는 거지만, 저놈은 걱정하면 할수록 손해를 보는 것 같다니까.
나와 같은 생각을 했을 도희가 태천이를 잠시 한심하게 바라보다가 책상을 내리쳤다.
탕!
“회의는 이것으로 끝낼게요!”
“음…. 수고했다.”
“수고들 했어!”
우리 남매만 그리 느낀 건 아닌가 보다.
도희의 해산 선언에 다들 태천이를 깔끔하게 무시했다.
그러고는 하나둘 회의실을 거침없이 빠져나갔다.
“앗, 잠깐만…! 애들아, 나 진짜 먹고 싶다고!”
태천이가 당황한 듯 소리쳤다.
하지만 회의실을 빠져나가는 것을 멈추는 녀석은 한 명도 없었다.
나도 포함해서 말이다.
그렇게, 회의실엔 태천이만 앉아 있게 됐다.
“나 진짜 더 못 먹겠단 말이야….”
-라는 말을 허망한 얼굴로 중얼거리면서.
그러게 왜 보통 사람이 보름 동안 먹을 양을 사흘 만에 처먹는단 말인가.
자업자득인 태천이는 버려두고, 열심히 에너지를 정화 중인 무기나 보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