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512
제514화
“나는 천재(天才)라네.”
어이가 없어서 리롄제를 멍하니 바라봤다.
물어볼 것이 있다더니만 대뜸 자기 자랑을 해댈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무슨 노망이 이딴 식으로 나지?
“그런 나와 견줄 재능은… 세상에 딱 두 명뿐이지.”
내가 속으로 생각하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리롄제가 덤덤하게 말을 잇는다.
그 차분하고 침착한 태도 때문일까?
그가 한 말이 퍽 진정성 있게 들렸다.
단순한 사실을 담백하게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아니, 리롄제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것이 진실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자신을 세상에서 최고라고 생각하는 양반이었으니까.
그런 리롄제가 자신과 견줄 만하다고 평가를 한 비범한 재능이라면….
고민하자마자, 머릿속에 두 개의 이름이 떠올랐다.
그 이름 중 하나를,
“에디탓 그위친…. 바로 그 친구지.”
리롄제가 먼저 말했다.
아마 다른 이름도 내가 짐작한 이름일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솔직히 그 이름을 확신하고 있기도 하다.
예전에 이 녀석의 재능을 무기가 증명해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차원을 달리하는 재능을 지녔다.」
「수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재능….」
-이라고, 말이다.
그러니 의심의 여지 없이 말했다.
“다른 한 명은 태천이죠?”
“끌끌….”
리롄제가 웃음을 흘린다.
그 조용한 웃음이 그렇다는 긍정의 대답이 되었다.
“…제법이로구나.”
“갑자기 뭐가요?”
“노부는 사실 네놈 자신이라고 말할 줄 알았거든.”
“…….”
그럴 리가 있나.
나는 나를 잘 안다.
내겐 태천이나 그위친 그리고 눈앞의 리롄제와 같은 재능은 없었다.
그런 게 있었다면, 단언컨대 지금의 나하고는 조금 다른 모습이 되어있었을 거다.
“…네놈은 흑룡과 혼자서 싸울 수 있을 정도로 강하다. 하지만 그것은 오롯이 너의 재능이 특출난 덕분에 그리된 것이 아니지.”
“…….”
그 말이 옳았다.
내가 이만큼 강해질 수 있었던 것은 내 재능과는 상관없었다.
전부 [세계수 키우기]를 통해 우리 새싹이와 만나게 된 덕분에 강해질 수 있었으니까.
따스한 손길, 세계수의 나무껍질과 뿌리, 솔라빔 등등….
그런 스킬들을 얻고 쓸 수 있었던 것도 다 세계수 관리인이 된 덕분이었다.
“네놈이 세계수 관리인이기 때문인지, 네놈만의 수련 방법이 따로 있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 둘 다인지….”
그리 말하고는 리롄제는 혀로 핥듯이 나를 훑어봤다.
아무래도 정정해야겠다.
아까 쳐다보면 인내심이 닳는다고 했던가?
아니, 리롄제의 시선이라면 진짜로 신체가 닳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 와중에 정답을 맞힌 것도 그렇고.
징그러워 죽겠네, 정말….
“잘은 모르겠으나 네놈에게 우리와 견줄 만한 재능이 없다는 것은 확실하지.”
“…그래서요? 어쩌라는 겁니까?”
퉁명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리롄제의 말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 진실이었다.
하지만 저런 말을 하는 저의를 알 수가 없어서 불쾌했다.
저 영감은 분명히 좋은 뜻으로 한 말은 아닐 것이다.
굳이 ‘우리’라는 말에만 힘주어서 말한 것도 재수 없었고.
선 긋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이것 말이다.”
슥.
리롄제가 대답 대신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나이가 묻어나는 주름진 손가락을 보고 있으니….
뭐 어쩌라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바로 그때였다.
[세계수가 순수하고 완전한 마나가 거세게 요동치는 것을 느꼈습니다.]새싹이가 메시지를 보내왔다.
순수하고 완전한 마나의 요동(搖動)….
그제야 리롄제가 손가락을 들어 올렸던 이유를 깨달았다.
자신이 천재라면서 자랑하는 듯한 말을 내뱉었던 이유도.
그러니까, 저 영감탱이는 지금 인정할 수가 없었던 거다.
세계 최고의 재능이라고 자부하는 자신조차 겨우 집게손가락 하나에밖에 바꾸지 못했는데, 내가 두 팔 전체에 썼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게 그렇게 궁금했습니까?”
휙, 휙.
턱으로 투명하게 변한 검지를 가리키며 질문을 던졌다.
리롄제는 당연한 것 아니냐고 말하는 듯한 얼굴로 대답했다.
“나조차 손가락 하나를 각성시키는 게 전부였다.”
“…….”
“그런데 그걸 네놈이 어떻게 겨우 며칠 사이에 두 팔 전체를 각성한단 말이냐?”
“…허, 참.”
한심해서 한숨이 다 나오는걸.
설마 이딴 거 물어보려고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아침 댓바람부터 부랴부랴 찾아온 것이었다니….
“궁금해서 직접 찾아온 사람치곤 태도가 참 불손하네요?”
“껄껄…! 그래 보이느냐?”
“네. 그래 보이는데요.”
“이만하면 충분히 네놈을 존중하고 있는 것이니라. 끌끌….”
그리 말하고는 리롄제가 혀를 차듯 웃었다.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리롄제는 그 성격상 말로 질문하기 전에 몸의 대화를 충분히 나누고도 남을 위인이었다.
문제는 저 존중 같지 않은 존중을 보이는 이유가 순수하지 못하다는 데에 있었다.
그가 그답지 않게 존중하는 것은 단순히 내게 폭력이 통하지 않기 때문에 저러는 것에 불과했다.
“…이러면 어떻겠느냐?”
“……?”
“네놈이 두 팔을 각성할 수 있었던 이유를 말한다면, 대신 노부는 협회장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있겠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우리 청룡이 진정으로 용이 되려고 한다는 사실을 비밀로 하겠다는 말이다.”
“누가 우리 청룡입니까, 누가.”
“누구긴. 바로 아름다운 저 친구지….”
리롄제는 예의 핥는 듯한 시선으로 무기를 쳐다봤다.
저러다 비늘 닳게 될라….
황급히 사이에 끼어들어 그의 시선을 차단했다.
그게 웃긴다는 듯이 리롄제가 큭큭 웃어댔다.
그러고는 여유롭게 물었다.
“자. 어찌하겠나?”
“…….”
그 물음에 잠시 고민에 빠졌다.
가장 먼저 협박한다는 선택지가 떠올랐는데….
상대는 그 리롄제였다.
내게 협박과 폭력이 통하지 않는 것처럼, 리롄제 또한 마찬가지로 통하지 않을 터였다.
그렇다고 리롄제가 앨릭스 협회장에 다 털어놓게 내버려 둘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안 그래도 ‘현재의 최악’이라느니 뭐라느니 하면서 나를 견제하려고 하는 양반인데….
무기가 블루 드래곤이 되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휴….
견제의 강도가 지금보다 심하면 심해졌지 덜해지진 않을 거다.
그렇게 될 바엔, 차라리 영감탱이의 태도가 고깝더라도 말해주고 비밀을 지키도록 하는 것이 더 나으리라.
[세계수가 나뭇가지를 갸웃거립니다.] [관리인이라면 그런 견제 정도는 충분히 감수할….]새싹이는 메시지를 보내오다 말았다.
아마 도중에 깨달은 것 같다.
웬만한 불편을 감수하는 내가 굳이 리롄제의 꿍꿍이에 넘어가 주기로 한 이유를.
새싹이의 말마따나 나는 상대가 불편하다면 불편을 감수한다.
얼마든지 만족스럽게 비웃어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로 인해 도희와 태천이가 불편해진다면 얘기는 다르다.
나 때문에 두 사람이 갑갑해지는 것을 두고 볼 리 없지 않나.
크라우드를 상대하는 것처럼 피할 길이 없어서 나아가야만 한다면 또 모를까.
“…그럴 수 있었던 원인은 두 가지입니다.”
“두 가지라고?”
“네.”
-라고, 대답했지만 사실 거짓말이다.
내가 겨우 며칠 만에 두 팔을 각성할 수 있게 된 원인은 총 세 가지였다.
그런데도 두 가지만 있다고 말한 것은 솔직하게 다 말해주기가 싫어서였다.
태도가 고깝잖아.
먼저….
리롄제에게 말하지 않을 첫 번째 원인은 ‘광합성 각성 모드 훈련장’이었다.
전대 세계수가 여러 업적, 타이틀, 스킬 등을 획득한 보상으로 줬던 바로 그 스킬 말이다.
***
훈련장은 어두웠다.
새싹이에게서 흘러나온 듯한 푸른 빛의 구들이 떠 있지 않았다면, 완연한 어둠 속에 파묻힌 모습이었을 거다.
들끓는 어둠에 파묻혔던 밀러처럼 말이다.
“응…?”
그런데 주변을 돌아보니, 훈련장의 모습이 몇 번 본 것처럼 낯이 익었다.
내가 이런 곳을 어디에서 봤더라…?
“…아.”
의문을 중얼거린 것과 동시에 바로 깨달았다.
이곳은 이벤트 던전과 유사했다.
여러 몬스터에게서 새싹이를 지키고, 잡초랍시고 자란 여러 식물을 뽑았던 바로 그 이벤트 던전 말이다.
다만, 이벤트 던전과 달리 이곳 훈련장엔 아무것도 없었다.
푸르스름한 빛과 어둠뿐….
이곳이 훈련장이 맞는 건지, 내가 제대로 들어온 것은 맞는 건지 의심이 될 정도였다.
훈련장이라면서 이렇게 아무것도 없어도 되는 걸까.
휙, 휙.
머리를 휘저어 떠오르는 고민을 치워버렸다.
어떻게 생겼든 이곳은 광합성 각성 모드 훈련장이다.
그럼 그걸 훈련하면 그만인 일이었다.
“광합성 모드.”
먼저 광합성 모드를 발동했다.
푸른 세계수의 마나가 뒤덮은 몸을 내려다본다.
이어 한진환이 제 팔을 번개 그 자체로 바꿨던 모습을 떠올렸다.
그처럼 나도 팔부터 바꿔야겠다.
꽉….
오른팔에 집중하고자 주먹을 쥔다.
그 순간,
“……?”
오른손이 이상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주먹이 평소처럼 쥐어지지 않았다.
정확히는, 주먹이 쥐어지기는 하는데 그 속도가 굉장히 더뎠다.
마치 동영상의 재생 속도를 아주 느리게 설정한 것처럼….
그 덕분에 주먹을 쥘 때 어떤 근육이 움직이고 어떻게 움직이는지까지 살필 수 있었다.
이거, 설마….
시간이 더디게 흐르는 건가?
“…….”
아니.
다시 생각해 보면 그것과는 조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훈련장이 그저 바깥보다 시간이 더디게 흐를 뿐이라면….
생각하는 것은 같은데 주먹을 쥘 때만 느린 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
“…….”
오른팔을 뻗었다.
빠르게 뻗으려고 한 것이었지만, 역시 주먹을 쥘 때처럼 팔은 느리게 움직였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솔직히 모르겠다.
모르겠지만, 전대 세계수가 보상 스킬로 준비해준 장소인 만큼 분명 그 이유가 있을 터였다.
각성 모드를 훈련할 내게 도움이 될만한 이유가.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선….
한진환이 번개 그 자체로 팔을 바꿨던 그 각성을,
“시도해보는 수밖에 없겠지….”
어라?
희한하게 말은 또 제대로 나오네?
***
“두 가지라….”
내가 리롄제보다 앞설 수 있었던 첫 번째 원인….
훈련장을 떠올리던 내 귓가에 리롄제의 목소리가 들렸다.
“자. 어서 말해 보거라.”
“…….”
저 고압적인 태도는 뭐람?
알고 싶어서 설명 듣는 주제에.
하여간 싹수도 없고 제멋대로라니까.
[세계수가 나뭇가지를 절레절레 흔듭니다.] [관리인이 그리 말하니 참 어울리지 않지만, 리롄제의 태도를 보니 공감이 된다고 전합니다.] [관리인에게 그런 말을 듣는 리롄제의 인성을 안타까워합니다.]새싹이의 공감을 받으며 입을 열었다.
“첫 번째 원인은….”
사실 두 번째 원인이지만.
“한 선배가 각성한 모습을 눈앞에서 직접 봤다는 겁니다.”
“직접? 즉, 영상으로 본 나와 달리 제대로 관찰할 수 있었다는 뜻이냐?”
“네.”
“그게 네놈이 나보다 앞서 나간 원인이었다고….”
“못 믿겠습니까?”
“네놈이라면 믿을 수 있겠느냐? 그 말을?”
“글쎄요….”
대충 대꾸하며 어깨를 으쓱였다.
나야 장본인이다 보니 믿을 수밖에 없었다.
뭐, 리롄제가 믿지 못하는 것도 이해는 한다.
내게 뒤처진 이유가 그것뿐이라면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테지.
훈련장을 말했다면 받아들일 수 있었겠지만 말이다.
자….
“그리고 두 번째 원인입니다, 만. 사실은 별거 없어요.”
“별거 없다고?”
“네. 그냥, 단순하게….”
말끝을 흐렸다.
이 원인을 말했을 때, 저 영감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
리롄제가 어서 말하기를 재촉했다.
“백도운…! 그만 뜸 들이고-”
“단순하게, 내가 천재(天才)기 때문이거든요.”
“……뭐라고?”
리롄제가 황당한 듯이 바로 되물었다.
아까 본인이 한 말이랑 별반 다를 것도 없건만.
뭘 저렇게 어처구니없어하는 걸까.
내가 천재라는 말이 그렇게 황당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