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517
제519화
백운천 옥상, 아스트라페 앞.
그곳에 앉아 스마트폰 화면을 두드렸다.
프랑스 베르동 협곡에서 돌아온 후의 내 생활은 무척 단조로웠다.
물론, 그동안 날 찾는 사람과 단체들은 많았다.
블랙 드래곤을 토벌한 S급 헌터이자 세계수 관리인.
그런 타이틀을 얻게 됐으니 적으려야 적을 수가 없었다.
스마트폰을 손난로처럼 뜨겁게 만들 정도였는데, 난 그 많은 연락을 단 한 통도 받지 않고 모조리 무시해버렸다.
아니지.
완전히 무시하진 않았다.
연락을 전부 도희와 태천이와 한재임에게 넘겨버렸으니….
소통할 수 있는 창구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완전한 무시는 아니라고 할 수 있겠다.
연락한 이들과 연락을 받게 된 세 사람이 바라는 처사는 아니었겠지만.
“오라버니는 바쁜 걸까요? 정말로? 안 바빠 보이던데. 설마 바쁘지 않은 것이라면….”
“죽여버릴 거다. 두 번…. 아니. 계속 죽일 거다…!”
“…지금 당장 확인해야겠어요. 정말 바쁜 건지 안 바쁜 건지. 안 바쁜 거라면…. 하, 하하. 하하하…!”
음….
도희와 한재임의 광기 어린 불평불만이 들리는 듯하다.
뭐, 기분 탓이겠지!
정말로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이 내 귀에 들리는 거겠어?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날 리가 없지 않나.
하하하!
[…….]“…….”
…아무튼.
일주일 동안 모든 일을 그들에게 맡긴 내가 한 행동은 시간대별로 딱 세 가지였다.
아침, 옥상으로 올라와 스마트폰 화면을 두드린다.
점심, 식사한 후 훈련장으로 들어가 각성 훈련을 한다.
밤, 스마트폰 화면을 두드리며 잔다.
자면서도 새싹이를 어루만지는 경지에 오른 내가 왜 옥상까지 올라와서 하느냐….
「…….」
그건 바로 우리 무기 때문이었다.
무기는 여전히 블랙 드래곤의 에너지를 정화하고 흡수하고 있었다.
다만, 아스트라페에 몸을 칭칭 휘감은 채로 그러고 있었다.
빠지직…!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무기는 여전히 에너지를 다 흡수하지 못했다.
그 방대한 에너지는 제멋대로 흘러나오기 일쑤여서, 할 수 없이 무기는 건물 내부로 들어가지 못하고 아스트라페에 휘감긴 상태였다.
저 상태로 건물로 들어갔다간 무기는 자기도 모르게 주변에 손해를 끼쳤을 거다.
앨릭스 협회장이 준 방석으로 어느 정도 방지할 수 있기는 했으나 아스트라페만큼 완벽하진 않았다.
혹시….
아줌마는 이렇게 되는 미래도 봤던 걸지도 모르겠다.
「관리인.」
아.
그래도 시간이 흐르면서 달라진 점이 있었다.
바로 꼬리를 물고 있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이렇게 말을 건넬 수 있게 된 것인데….
“……?”
지금껏 꼬리를 입에서 떨어뜨린 이후로도 무기는 말을 건넨 적이 없었다.
조금이라도 집중을 잃지 않기 위해서였을 테다.
그런데 나를 불렀다는 건….
“…끝난 거야?”
「그렇다. 지금은 마무리 작업 중이지.」
“오오. 드디어…!”
즐거운 마음으로 무기를 바라봤다.
그동안 혼자 고생했을 무기가 아스트라페에 휘감긴 모습은 여전했다.
평소와 전혀 다를 것이 없는 모습이었다.
음.
결국, 드래곤이 되지 못한 건가?
이미 예상했던 바이긴 했지만….
그래도 별다른 변화가 아예 없다는 것이 조금 아쉬웠다.
무려 블랙 드래곤을 죽이고 에너지를 흡수한 것이었는데 말이다.
뭐, 지금 가장 아쉬운 건 무기 자신일 테지.
내색하지 않게 조심해야겠다.
이미 늦은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도움이 필요하다.」
그리 생각하던 내게 무기가 나지막이 말했다.
갑자기 웬 도움이 필요하다는 걸까.
알 수 없었지만, 뭐든 말해보라는 뜻으로 조용히 무기를 마주 봤다.
해줄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 해주리라.
귀찮은 일이 아니라는 가정하에서.
무기가 천천히 말했다.
「관리인이 지켜주었으면 한다.」
“뭘 지켜주면 되는데?”
「이곳.」
“……?”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말이었다.
이곳이라고 말한 걸 보면, 백운천 빌딩을 지켜주라는 말 같은데….
여긴 도희의 결계와 세계수의 나무껍질이 씌어 있었다.
이미 보호받고 있었으므로 굳이 또 지키라고 말할 필요도 없는 곳이었다.
그렇지만, 무기의 말이지 않나.
괜히 한 소리가 아닐 테니 허투루 들을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므로 무기에게 질문을 던졌다.
지키겠다는 의미를 담아서.
“그런데 무엇으로부터 지키면 돼?”
「…여로부터.」
“……!”
탁!
무심코 스마트폰 화면을 때리듯이 두드렸다.
방금 무기가 한 말 때문에 너무 놀란 탓이다.
여.
지금까지 자신을 그리 지칭한 이들은 딱 셋뿐이었다.
세상의 모든 존재가 ‘왕’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천외천의 존재들, 드래곤.
그들만이 사용하던 표현을 방금 무기가 사용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했다.
된 것이다.
우리 무기가-
「시작한다.」
잡념을 끊어내듯 무기가 말했다.
우르르 쾅!
동시에 무기와 아스트라페로부터 벼락이 솟구쳤다.
하늘 높이 솟아오른 푸른 벼락은 사방팔방 뻗어 나갔다.
크라우드가 쳐들어왔을 때 한진환이 펼쳤던 그 결계와 같은 모습이었다.
“얼씨구….”
아무래도, 내가 착각을 했던 것 같다.
무기가 말한 이곳은 백운천을 가리킨 게 아니었다.
그보다 훨씬 더 넓은 곳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바로, ‘한국’ 말이다.
***
우르르 쾅!
벼락 치는 소리가 울렸다.
그 소리를 들은 배수현 국장은 기분이 조금 가라앉았다.
평소 천둥소리와 함께 갑자기 찾아오곤 하던 남자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남을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페이스대로만 행동하던 남자는 빈말로라도 존경한다거나 공경한다고 말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싫어하고 질색할 인물은 또 아니었다.
자기 자신에 강한 확신이 있고 그로 인해 언제나 느긋했던 남자는 인간으로서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우르르 쾅…!
또다시 벼락이 쳤다.
그러나 천둥소리가 동반하던 남자는 없었다.
마치 다시는 만날 수 없음을 확인받은 듯해서 배수현 국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내쉬려다가 못했다.
그녀의 부하 직원인 허동휘가 벌컥 소리가 날 정도로 거칠게 문을 열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국장님…! 큰일 났습니다!”
“왜. 뭔데?”
“번개입니다!”
“…….”
배수현 국장은 허동휘를 째려봤다.
저 바보는 귀가 안 달려 있나?
곧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허동휘가 손을 마구 휘저어대면서 말을 정정했다.
“결계! 번개 결계입니다!”
“번개 결계…?”
“아스트라페! 백운천 옥상에 있는 거 말입니다!”
“……!”
허동휘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깨달은 배수현 국장이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는 창문의 버티칼 블라인드를 빠르게 걷어 창밖을 바라봤다.
우르르…!
벼락 치는 소리와 함께 하늘에 수놓듯 펼쳐진 결계가 보였다.
푸른 번개의 결계는 그 끝이 가늠되지 않을 정도로 광활했다.
서울쯤은 간단히 덮어버릴 것 같은 거대한 결계를 보면서 그녀가 바로 질문을 던졌다.
얼마 전 겪었던 사건으로 인해서 자연히 떠오른 질문이었다.
“또 크라우드가 쳐들어온 거야?”
“그건 아닙니다. 크라우드는 전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아니라고? 그럼 저 결계는 왜 발동된 건데?”
“이유는 불분명합니다. 그런데….”
“그런데?”
“확인된 바에 따르면 이무기가 발동한 것처럼 보인다고 합니다.”
“선생님이 결계를 발동했다고?”
“네…?”
허동휘가 당황해 반문했다.
갑자기 선생님이라는 말이 나와 놀란 것이었다.
휙, 휙.
배수현은 신경 쓰지 말라는 듯 손을 휘저었다.
안성평야에서 백도운에 관한 가르침을 받았던 일 때문에 선생님이라고 부르던 것이었지만, 그런 걸 일일이 설명해줄 때가 아니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계속 말해.”
“아, 네. 저 결계가 발동된 이후 백도운도 세계수를 소환했다고 합니다.”
“세계수는 또 왜?”
“그게….”
허동휘가 머뭇거렸다.
짧고 간결하게 보고해야 할 판에 자꾸 망설이는 그를 보고 배수현 국장은 답답해졌다.
어서 대답하라고 호통을 치려는 순간, 허동휘가 대답했다.
“그, 백도운과 선생님이 서로 대치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뭐?”
“선생님이 힘을 뿜어내고, 백도운이 그걸 억누르는 것처럼 말입니다.”
“아니, 선생님이랑 백도운이 갑자기 왜?”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
배수현은 눈을 찌푸렸다.
그녀는 정부 사람으로서 의무처럼 도운을 지켜봐 왔다.
도운은 프랑스에서 돌아온 이후 일주일 동안 백운천 옥상에서 무기와 함께 지냈다.
둘이 같이 있는 모습은 마치 평화를 그려낸 듯이 평온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 둘이 대치하고 있다고 하니, 이해가 가지 않고 의아했다.
“이게 그렇게 판단한 이유입니다.”
허동휘가 그녀에게 스마트 패드를 건넸다.
배수현 국장은 그것을 건네받은 후 바로 영상을 확인했다.
영상에는 현재의 한국이 촬영돼 있었는데, 아스트라페가 뿜어낸 결계가 독도와 제주도까지 전부 뒤덮은 모습이었다.
“한국 전체를 뒤덮었다고?”
“그렇습니다. 그리고 영상을 더 보시면 아시겠지만, 잠시 후 결계의 크기가 빠르게 줄어들었습니다.”
“이게 백도운이 억눌러서 그런 거고?”
“그렇게 보입니다.”
“…….”
슥.
그녀는 손가락으로 화면을 쓸어 넘겼다.
곧바로 보고 있던 과거의 영상 대신 현재의 실시간 영상이 떠올랐다.
한국 전체를 덮었던 번개의 결계는 작아져 백운천 옥상만 덮은 채였다.
그 덕분에 옥상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현재 백운천의 옥상에는 정수리에 세계수가 소환된 백도운과 아스트라페에 휘감긴 채로 푸른 번개를 발산하는 무기가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확인한 배수현 국장은,
“어어…?”
이상한 소리를 냈다.
생각지도 못한 것을 본 사람처럼.
***
우르르…!
빠직, 빠지직…!
푸른 번개가 사방팔방 마구 튀어댄다.
아스트라페가 무기에게서 뿜어진 힘을 흡수해 결계로 바꾸지 않았다면.
또 내가 새싹이를 즉시 소환해서 무기의 힘을 힘껏 억누르지 않았더라면….
한국 전체를 뒤덮었던 결계의 크기로 짐작해보건대 분명히 큰 사달이 났으리라.
아니….
“무기야. 이런 일은 더 빨리… 어라?”
당황스러움이 내 투덜거림을 끊어낸다.
무기의 모습이 조금 전과 다른 탓이다.
물론, 그가 자신을 ‘여’라고 지칭했을 때부터 모습이 달라질 것이라고 이미 생각했었다.
내가 놀라지 않고 당황한 건, 무기의 현재 모습이 내가 예상했던 모습과 달라서다.
「…….」
또르르….
나와 눈을 마주하고 있던 무기가 눈동자를 굴려 피한다.
그 태도를 보아하니….
무기 자신도 설마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느낌이다.
그야 그렇겠지.
블랙 드래곤의 에너지를 전부 흡수해서 블루 드래곤이 될 줄 알았는데, 설마….
“무기야.”
「…….」
“왜 팔만 자라난 거야?”
「…….」
무기는 대답하지 않았다.
시선을 피한 채로 두 손만 연신 꼼지락거렸다.
이번에 새로 자라나게 된 손가락을 생각보다 잘 다루는걸….
시답잖은 것으로 감탄을 느끼는 동안, 무기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팔만 자라나게 된 이유를.
「아무래도 에너지가 부족했던 것 같다.」
“아, 그래?”
「나의 계산 실수다. 미안하다, 관리인.」
“허헛…!”
헛웃음이 흘러나온다.
나.
웃기게도 자신을 지칭하는 표현이 원래대로 되돌아왔다.
아마 드래곤이 되지 못했기에 그런 것 같다.
「으음….」
무기가 민망한 듯이 신음만 흘린다.
그야말로 유구무언을 느끼고 있는 듯했다.
그래, 그래….
사람을 잔뜩 기대하게 만들어놓고서는 이렇게 배신했으니 할 말이 없어야지.
이,
“개구리 같은 녀석….”
오늘부터 무기의 별명은 ‘개구리’라고 해야겠다.
뒷다리가 아니라 팔이 먼저 자라나긴 했지만… 알게 뭔가?
「…….」
무기가 못마땅한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하지만 뭐라고 반박하지는 않았다.
아니, 못했다.
그야 염치가 있으면 받아들여야겠지.
지금 자기가 얼마나 큰 기대를 짓밟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