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516
제518화
방주 보육원엔 얼마 전부터 새로운 얼굴들이 찾아왔다.
세계 헌터 협회와 교황청이 보낸 사람들로, 최 클라우디아 원장 수녀를 보호 관찰하려고 온 것이다.
원래라면 능력자용 교도소로 이감됐어야 할 그녀가 보육원에 머무를 수 있었던 것은 도운의 협박 때문이었다.
“…….”
“…….”
그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는 보육원 아이들은 하룻밤 사이 갑자기 나타난 어른들에게 깊은 관심과 호기심을 느꼈다.
다만, 관심과 호기심을 드러내는 것이 보통 아이들이 보일 만한 행동으로 하지 않는 점이 문제였다.
아이들은 난생처음 보는 어른들과 마주칠 때마다 모든 행동을 멈추고 빤히 쳐다봤다.
지난해 도운이 오랜만에 보육원에 들렀을 때 보였던 바로 그 행동이었다.
최 클라우디아 수녀를 포함한 다른 수녀들이 그러지 말라고 말려봤지만, 아이들은 기이한 시선으로 어른들을 관찰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더 깊이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기까지 했다.
마치 어떠한 사명감이라도 느끼는 듯이….
그 탓에, 아이러니하게도 최 클라우디아를 감시하러 온 이들이 감시를 당하는 듯한 모양새가 되었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
“…….”
한때 추기경이 보낸 암살자로서 백운천에 숨어들었던 남자는 방주 보육원의 원장실 앞에 서 있었다.
그리고 바로 문 앞에 서 있는 현 방주 보육원의 ‘대장’ 강우혁과 눈이 마주쳤다.
1초, 2초, 3초….
시간이 흘러도 아이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고, 문을 드나들 수 있게 비켜서지도 않았다.
“으음….”
그 시선 때문인 걸까.
남자는 자기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가 당황했다.
내가 왜 애한테 쪼는 거지?
그런 의문이 들면서 사고마저 멈췄다.
다시 사고가 돌아가기 시작한 건, 그가 해야 할 일을 하기 위해서였다.
“…소년.”
“왜요, 아저씨.”
“실례가 안 된다면, 소년의 뒤에 있는 문으로 들어가도 될까?”
“왜 들어가려는 건데요?”
“하하….”
남자는 멋쩍게 웃으며 대답을 피했다.
그러고는 자신의 허리보다 조금 높은 키를 가진 강우혁을 빤히 바라봤다.
강우혁에게서 제법 강렬한 기세를 느꼈기 때문이다.
남자에게 타인의 잠재력을 알아보는 감정 스킬 같은 것은 없었으나, 우혁이 성장했을 경우 대단한 인물이 될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이곳 보육원 출신으로 블랙 드래곤을 토벌해 세상을 구한 백도운과 이태천처럼 말이다.
“소년.”
“왜 자꾸 불러요?”
“혹시 아저씨랑 좋은 데 갈 생각 없니?”
“…뭐요?”
강우혁은 눈을 찡그렸다.
막연하게 ‘좋은 데’에 갈 생각 없냐니….
마치 어린아이를 납치하려는 범죄자 같은 말투여서 어이가 없었다.
그 표정에 남자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깨달았다.
“뭔가 오해한 것 같은 얼굴이군.”
“오해라고요?”
“미안하군. 내가 한국말이 서툴러서…. 아저씨가 말하려던 건-”
그 순간이었다.
끼익!
문이 세차게 열리면서 남자의 말을 끊어냈다.
문을 열고 나온 사람은 정 세실리아 수녀로, 그녀는 남자에게 버럭 소리쳤다.
“이봐요! 우리 애 꼬시지 말아요!”
“이런. 오해이십니다, 정 세실리아 수녀님. 저는 그저 이 소년을 교황청으로 데리고 가고 싶었을 뿐입니다.”
“싶었을 뿐이라니…. 그게 꼬시는 거잖아요!”
파밧!
정 세실리아 수녀가 재빨리 강우혁 앞에 섰다.
우혁이를 데려가려면 날 쓰러뜨려야 할걸!
그렇게 외치는 것 같아서, 남자는 자신도 모르게 하하 웃어버렸다.
“갑자기 왜 웃어요?”
“아. 실례했습니다.”
남자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러든지 말든지.
정 세실리아는 못마땅하다는 듯이 남자를 쳐다봤다.
여전히 강우혁을 지키듯이 앞에 서서.
“…저기, 너희 언제까지 손님을 세워둘 거니?”
원장실에서 최 클라우디아 수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제야 정 세실리아가 “아, 맞다!”하고 소리치고는 문에서 비켜섰다.
“…….”
“…….”
하지만 강우혁은 비켜서지 않았다.
아까처럼 문 앞에 남자를 가로막듯이 섰다.
휙.
남자는 보란 듯이 턱짓으로 원장실 안을 가리켰다.
방금 허락을 받은 것 같은데?
그리 말하는 듯한 행동이었다.
강우혁은 남자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입으로만 질문을 던졌다.
“원장님. 정말로 괜찮아요?”
“괜찮아. 걱정해줘서 고마워, 우혁아.”
“…아저씨.”
“음?”
“이상한 짓 하면 도운 아저씨한테 이를 거예요.”
“윽! 으으윽….”
남자가 신음을 토하듯이 흘렸다.
얼굴도 와락 일그러뜨렸는데, 그것을 보고 강우혁과 정 세실리아는 남자가 도운에게 어떤 일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도운이 바로 남자의 약점이라는 사실도.
그 때문에 두 사람은 남자가 이상한 짓을 하면 바로 일러바쳐야겠다고 생각했다.
“명심하마, 소년….”
“좋아요.”
강우혁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문에서 비켜섰다.
반면 남자는 불편한 얼굴을 한 채 원장실로 터덜터덜 들어갔다.
끼익, 탁….
곧이어 바깥에 서 있던 정 세실리아에 의해 원장실 문이 닫혔다.
원장실엔 남자와 최 클라우디아 수녀만이 있게 됐다.
“어서 와요.”
그녀가 포근한 미소로 남자를 반겼다.
남자는 문 앞에서 그랬던 것처럼 아주 잠깐 사고가 멈췄다.
미소가 아름답기 때문은 아니다.
눈앞에 있는 여자가 어느 보육원에서나 볼 법한 수녀처럼 보였기 때문에 당황한 것이었다.
미리 전해 듣지 못했다면, 남자는 그녀를 설마 칠죄종 중 한 명일 것으로 생각하지 못했으리라.
“…안녕하십니까. 저는-”
“이름은 됐어요. 어차피 진짜 이름도 아니잖아요?”
“그렇기는 합니다….”
남자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진짜 이름을 말할 수 없는 신세라는 것을, 그녀는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과연….
남자는 그녀가 평범한 수녀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갈까요?”
“아.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제가 이렇게 원장 수녀님을 찾아뵌 것은 전달 사항이 몇 가지 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먼저-”
“우리 아이들이 오늘 돌아오죠. 이유는 프랑스 음식이 물린 태천이 때문이고요.”
“…이유까지는 몰랐습니다. 그런 황당한 이유였군요?”
“몰랐다고요? 하여간 백도운….”
최 클라우디아 수녀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남자는 갑자기 왜 백도운의 이름을 중얼거린 것인지 몰라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방금 말은 비밀로 해줘요.”
“네, 뭐. 어려운 일은 아니니…. 그리고 다음 전달 사항은-”
“며칠 내로 앨릭스 매그너스 협회장이 대외비로 날 찾아온다는 거죠?”
“허헛….”
남자는 자기도 모르게 쓴웃음을 흘렸다.
자신이 전달하려던 사항을 최 클라우디아 수녀가 먼저 말했기 때문에 당황스러웠다.
그녀는 거침없이 말을 이었다.
“협회장의 목적은 당연히 나와 단둘이 대면하는 거고요.”
“하하…. 미래를 보는 사람에게 정보를 전달한다는 게 이렇게 힘 빠지는 일인지 몰랐군요….”
“오지 말라고 해줄래요?”
“네…?”
그녀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어 남자의 당황스러운 반문에 곧바로 대답했다.
“어차피 와봐야 그가 원하는 것은 얻지 못할 테니, 굳이 힘 빼지 말라고 전해줘요.”
“아. 설마, 그렇게 되는 미래를 보신 겁니까?”
“…….”
최 클라우디아 수녀는 그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싱긋 웃기만 했는데, 남자는 그 웃음에서 답을 얻을 수 있었다.
앨릭스 협회장은 한국까지 와서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하고 돌아가게 되리란 것을 말이다.
물론, 남자는 교황청 사람이었기에 앨릭스 협회장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남자가 이곳에 전달자로 온 것은 교황청과 헌터 협회에서 나온 사람 중 가장 높은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원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당연한 것을 묻네요.”
“역시 미래를 물으려는 거군요.”
“그리고 전 그에게 미래를 가르쳐 줄 생각이 없죠.”
“어째서입니까? 앨릭스 협회장은 우리 교황청 내에서도 공정(公正)하기로 유명한 사람입니다. 수녀님께 들은 미래를 사적 이익을 위해서만 쓰지 않을 겁니다.”
“알아요.”
그녀는 남자의 말에 동의했다.
앨릭스 매그너스가 공정하지 않았다면.
오직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인간이었다면….
오늘까지 전 세계 헌터 협회가 모여 만들어진 조직의 장(長)으로서 제 역할을 톡톡히 해냈을 리가 없었다.
“……?”
남자는 그녀가 동의하자 의문을 느꼈다.
그렇다면 왜 미래를 가르쳐 줄 생각이 없는 걸까.
대의(代議)를 위해서도 그게 더 좋을 텐데 말이다.
“이유를 말씀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이유….”
“앨릭스 협회장을 납득시키기 위해서입니다. 타당한 근거가 없다면, 그는 수녀님께서 하신 ‘오지 말라’는 말씀을 따르지 않을 겁니다.”
“그렇겠죠.”
“아….”
그녀의 대답에 남자는 탄식을 흘렸다.
미래를 보는 그녀이지 않은가.
분명히 이 대화도 보았을 것이다.
또 그 미래에 벌어나게 될 일까지도.
“…….”
그 사실을 새삼스럽게 알아차린 남자는 말을 아꼈다.
어떤 말을 덧붙인들 그녀의 결정을 바꿀 수는 없을 터였다.
남자가 앞으로 뱉어내려고 하는 말들을 이미 보았을 테니까.
“…미래를 안다는 건 위험한 일이에요.”
이내 최 클라우디아 수녀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위험한 폭탄을 다루는 듯이 조심스러운 모습이었다.
당장이라도 내려놓고 싶은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 미래에 대해 논하는 건 더 위험하고요.”
“위험하다고 하셨습니까…?”
“네.”
짧은 대답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강경한 대답이기도 했다.
더는 말하지 않겠다.
그렇게 말한 것처럼 보일 정도로, 남자는 결국 두 손을 들어 올렸다.
“아무래도 제 손을 떠난 일 같군요….”
미래를 보는 최 클라우디아 수녀.
그녀와 대화를 나누는 것은 자신이 감당할만한 일이 아니다.
아마 대화를 이어나간다고 해도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휘둘리기만 하리라.
남자는 그렇게 판단했고, 그래서 깔끔하게 포기했다.
이어 자신의 본래 역할이나 제대로 해내기로 했다.
전달자의 역할을 말이다.
“일단, 수녀님께서 하신 말씀을 앨릭스 협회장에게 그대로 전달하겠습니다.”
“그걸로 충분해요. 고마워요.”
“…….”
그걸로 충분하다….
남자는 그녀의 대답에 대해 잠깐 생각했다.
말을 전달하기만 하면 앨릭스 협회장이 알아듣고 찾아오지 않는 걸까….
고민하다가,
“후우….”
한숨을 폭 내쉬었다.
본인이 말한 대로 제 손을 떠난 일….
더 고민해 봐야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남자는 생각을 전환할 겸 보육원에 오고서부터 쭉 궁금했던 것에 관한 얘기를 꺼냈다.
“보육원 아이들 말입니다.”
“귀엽죠?”
“헛….”
남자는 하마터면 실소를 터뜨릴 뻔했다.
마주칠 때마다 모든 행동을 멈추고 쳐다보는 아이들이 귀여울 리 없었다.
오히려 아이들 같지 않아서 소름이 돋기 일쑤였다.
물론, 그 감상을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는 없었다.
“…아이들이 왜 그렇게 쳐다보는 건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그야 처음 보는 어른들을 경계하는 거죠.”
“그게 경계라고요…. 요즘 아이들은 경계를 퍽 무서운 방식으로 하는군요?”
“아. 그건 요즘 아이들이라서 그러는 게 아니에요.”
“네?”
남자는 반문했다.
반문하면서, 방주 보육원이 어떤 곳인지를 새삼 깨달았다.
이곳은 백도운과 이태천이 백운천 길드의 다른 간부들과 함께 자란 곳이었다.
전 칠죄종, 최 클라우디아 수녀에 의해 모여서.
즉….
“평범한 아이들이 아니라서 그러는 거지.”
그리 말하면서 최 클라우디아 수녀는 또다시 포근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남자는 더는 그녀가 어느 보육원에서나 볼 법한 수녀처럼 보이지 않았다.
이곳 방주 보육원 또한 마찬가지다.
그저 평범한 보육원으로만 바라볼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