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531
제533화
쾅, 쾅!
검지로 제바달다의 머리를 연신 내리쳤다.
힘주어 때리느라 폭탄이 터진 것 같은 소리가 울리는데도 머리는 멀쩡했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는 거지?
그런 의문을 저절로 떠오를 때 새싹이가 메시지를 보내왔다.
[세계수가 흥미로운 마나의 흐름을 느꼈습니다.] [관리인이 제바달다의 머리를 어루만질 때마다 마나가 흡수되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또 흡수된 마나는 이곳 ‘심상의 세계’를 유지하는 데 쓰이고 있다고 전합니다.]메시지를 읽자마자 제바달다의 머리를 때리던 손을 멈췄다.
따스한 손길에서 흡수한 마나를 심상 세계를 유지하는 데 쓴다?
그 말인즉슨….
“눈치채셨나 보네요?”
버섯이 밉살스럽게 지껄이며 다가왔다.
“그렇게 제바달다 님을 공격하시면, 이곳이 유지되는 시간만 늘어나게 될 거예요.”
“그렇단 말이지….”
“아. 그렇다고 절 먼저 죽이시려고 해도 헛수고예요. 똑같은 일이 벌어질 뿐이거든요.”
“…….”
어떻게 알았지?
심상 세계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기 전에 일단 저놈부터 죽이고 볼 생각이었는데….
휙.
버섯이 팔을 뻗어 제바달다를 가리켰다.
“제바달다 님은 평화로운 세상을 원하셨어요. 그 어떤 싸움도 분쟁도 전투도 없는 평온한 세상을.”
“그래서?”
“그래서. 그런 마음이 구현된 세상이기에, 이곳에서는 아무리 막강한 공격이라도 통하지 않는다는 소리예요. 설령 그게 드래곤을 살해할 수 있는 공격이라고 해도 무(無)로 돌아가 버리거든요.”
“과연….”
버섯이 날 앞에 두고 왜 이렇게 여유를 부릴 수 있나 싶더라니….
자신의 안전이 보장돼 있어서 그럴 수 있었던 것이었다.
다른 크라우드가 으레 그래왔던 것처럼 말이다.
그래. 조금 똑똑하다고 한들 놈도 크라우드란 거지.
“후후…. 도운 씨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이곳 심상 세계의 유지 시간이 끝나길 기다리는 것뿐이에요!”
“글쎄. 난 그러기 싫은걸.”
“싫다고 해도 달라질 건 없어요. 받아들이시는 게 도운 씨한테도 좋아요.”
“그래? 확신할 수 있어?”
“확신할 수 있고 말고요. 이 심상 세계에서는, 원과 해골도 아무것도 하지 못했거든요.”
“푸흐흐….”
웃음이 절로 새어 나오는 말이었다.
원과 해골?
그따위 놈들이 내가 해내지 못할 거라는 근거라니….
버섯은 생각을 잘못해도 너무 잘못했다.
“뭐가 우습죠?”
“응?”
“혹시 제주도의 폭식 때처럼 마나를 끊임없이 불어넣으면 된다고 생각하시나요? 자폭하게 될 거라고?”
얘는 크라우드가 될 게 아니라 점집을 차렸어야 했을 것 같다.
대체 어떻게 알았지?
딱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버섯이 내 생각을 부정했다.
“안타깝게도 그건 통하지 않을 거예요! 이곳은 심상의 세계…. 폭식의 위장 따위와 달리 무한에 가까운 곳이거든요.”
“무한에 가깝다? 즉, 무한한 건 아니란 뜻이네.”
“네? 지금 그게 포인트가 아니잖아요.”
“아니. 그게 포인트야. 이쪽은 무한에 가까운 게 아니라 무한 그 자체라서 말이야.”
“……!”
“세계수란 그런 거라고.”
그리 말하고 마나를 끌어 올렸다.
이곳 심상 세계에 마나를 충만하게 채워주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효과적으로 채울 수 있을까.
그리 고민하는데, 버섯이 발악을 해댔다.
“아니, 아니, 아니!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잖아요! 이곳만 더 오래 유지될 뿐이라고요! 그만둬요!”
“흐응.”
버섯을 말없이 물끄러미 바라봤다.
저렇게 발악해대는 놈에겐 별다른 말을 해주는 것보다 그저 바라보는 게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었다.
씨익, 해맑은 미소를 지어주면서 말이다.
내 순도 100%짜리 진심이 담긴 미소에 버섯이 멱살을 붙잡을 기세로 소리쳤다.
“그만두라고, 백도운! 너 이딴 곳에서 나랑 영원히 있을 생각이야?”
“그럴 일 없을 테니 걱정하지 마. 근데, 설령 그렇게 된다고 해도 그게 내 잘못은 아니잖아?”
“뭐?”
“누가 너 보고 나 여기 가두라고 칼 들고 협박하디? 아니잖아.”
“……!”
“영원히 갇히게 되면, 그건 날 건드린 네 잘못이야. 알았지? 너 자신을 탓하라구.”
“광, 광운…! 이 미친 새끼가…!”
그 말을 시작으로 버섯은 내게 욕을 마구 쏟아내기 시작했다.
놈의 욕설에 담긴 감정은 분노가 아니라 두려움이었다.
이곳에서 나와 영원히 함께 갇히게 되면 어떡하나.
그것이 진심으로 무서운 것이었다.
쟤도 참 쟤다.
그럴 일 없을 거라고 말했는데 왜 믿질 않는 거지?
뭐, 그래도 저렇게 공포에 떠는 놈을 보고 있으니….
“고맙다.”
“뭐? 갑자기 무슨-”
“네 덕분에 방금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어.”
“……!”
“그리고 난 그걸 당장 시도할 거야!”
“아냐, 아니야! 하지 마! 하지 말라고, 광운 이 개새끼야. 하지 마!”
“히히!”
해맑게 웃으면서 머릿속에 떠오른 아이디어를 시도했다.
사실, 엄청나게 기발하고 색다른 아이디어는 아니었다.
세계수의 꽃을 여러 송이 소환해 솔라빔을 쏴대려고 한 것뿐이었으니까.
[세계수 관리인이 세계수에게 솔라빔을 제안합니다.] [세계수가 세계수 관리인의 제안을 거절합니다.]“엥?”
이건 생각지도 못한 일인걸?
***
도운이 희고 매끄러운 것을 한창 후려치고 있을 무렵.
유재이와 이현욱은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방금 막 원이 천장을 뚫고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달달….
회전하는 륜 위에 앉아 있던 원은 재이와 이현욱이 있는 곳까지 내려와 여유롭게 인사를 건넨다.
“반갑다. 유지성의 딸, 유재이.”
“반갑다고? 어떡하지. 난 그쪽이 하나도 반갑지 않은데. 여긴 뭐하러 왔어?”
“후후후….”
재이의 퉁명스러운 대꾸에 원이 웃음을 흘렸다.
그 느긋한 웃음이 재이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금 이곳엔 알레딩 밀러와 에디탓 그위친이 있었다.
그뿐인가?
이현욱이 땅에 심은 씨앗을 통해서 곧 원의 숙적이자 천적인 백도운이 건너올 터였다.
뭘 하는 것인지 여태 나타나지 않고 있었지만.
힐끔….
그러나 그녀가 내려다본 땅엔 푸른 꽃은커녕 초록의 싹도 자라지 않았다.
원이 재이의 시선을 따라 땅을 내려다보고는 질문했다.
“세계수 관리인을 기다리는 게냐?”
“…….”
“이루어질 수 없는 기다림이다.”
“뭐?”
“너의 바람과 달리, 놈은 오지 못할 것이거든. 최소한… 30분 동안은 말이다. 물론 어리석은 짓을 하면 더 오래 걸릴 수도 있겠지….”
“……!”
원의 말에 재이는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아주 당연하게도 도운의 안전을 걱정한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정말로 걱정스러운 것은 도운이라면 저지를지도 모르는 ‘어리석은 짓’이었다.
세계수 관리인이라는 것을 알려진 상황에서도 괜히 ‘광운’이라고 더 불리겠는가.
그렇기에, 재이는 한 발자국 앞으로 나아가며 따지듯 물었다.
“대체 그 사람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
그녀를 지켜야 하는 이현욱도 따라서 발을 앞으로 내디뎠다.
아니, 아주 조금 미세하게 앞에 섰다.
원이 어깨를 으쓱 올렸다.
“제바달다의 절에 처박았다.”
“뭐? 무슨 절?”
“……?”
“모르나? 하긴…. 모르는 것이 당연하겠지….”
제바달다의 절.
그것이 뭔지 전혀 감도 잡지 못하는 재이와 이현욱을 보고 원이 중얼거렸다.
그 목소리엔 후회 어린 허탈함이 담겨 있었다.
“아무리 세계수 관리인이라고 해도, 그곳에서 빠져나오려거든 시간을 허비해야만 한다….”
“그런 곳이 있다고? 말도 안 돼….”
“믿지 못하는 마음도 이해는 한다. 하지만 너도 진실이라는 사실을 알 것이다. 놈이 바로 오지 않는 것이 그 증거지.”
툭.
천천히 돌아가는 륜 위의 원이 바닥을 가리켰다.
무언가를 심어놓은 것 같은 울퉁불퉁한 바닥엔 여전히 꽃이 자라나지 않았다.
“즉, 무사하다는 거네. 그럼 됐어.”
“후후…. 지금 세계수 관리인을 걱정하는 건가? 나를 앞에 두고?”
“그러면 안 돼?”
“안 되는 건 아니지. 다만… 지금은 자기 자신을 먼저 걱정해야 하지 않겠느냐? 기대도 버려야 할 테고. 놈이 당장 나타나 날 쫓아내 주지 못할 테니.”
“…….”
원의 덤덤한 태도에 재이는 도운이 당장 나타나지 못하리란 것을 다시금 느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두려움을 느끼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건 아마도 이현욱의 손에 들린 스카가 만들어낸 실드 덕분일 터였다.
실드에 도운의 마나가 가득 차 있는 덕분에 그녀는 도운과 함께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자신을 앞에 두고서도 차분한 것이 마음에 들지 않은 걸까.
원이 캐물었다.
“아니면, 에디탓 그위친과 알레딩 밀러를 믿는 건가?”
“그 둘이라면 믿을 만도 하지 않아? 금방 이곳으로 날아와 당신을 쫓아 내줄 것 같은데.”
“후후…. 정말 그리 생각한다면 지금이라도 걱정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해주고 싶군.”
“웃기고 있네. 너희들이 그위친을 감당할 수 있어?”
“그위친의 강함은 인정한다. 세계수 관리인의 후손이니 당연히 강할 수밖에….”
“……?”
재이는 미간을 찌푸렸다.
방금 원이 한 말에서 그위친을 향한 열등감을 느낀 탓이다.
원은 자기가 한 말과 달리 그위친을 인정하고 있지 않았다.
정말로 인정하고 있었다면, ‘세계수 관리인의 후손이기 때문’이라는 사족 따위 덧붙이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알레딩 밀러는 약하지.”
“하? 누가 약하다고?”
재이가 헛웃음을 흘리며 따져 물었다.
타인의 강함을 온전히 인정하지 못하는 주제에 다른 타인의 약함을 무시하는 꼴이 우스웠다.
역시, 마족의 권속 중엔 정상이 없네.
속으로 그리 중얼거리는 재이에게 원이 대답했다.
“밀러는 그위친의 힘을 감당할 수 없다는 뜻이다.”
“……!”
“그위친이 전력을 다하면 소환이 풀리게 될 것이 자명한 일…. 그러므로 그위친과 밀러는 해골과 그의 군세를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여의치 않을 게다.”
“군세라고?”
“음? 아…. 세계수 관리인이 말해주지 않은 건가? 세계 헌터 협회장을 시켜 우리를 뒷조사하기에 이미 말한 줄 알았는데….”
“……?”
“해골은 세계 최고의 네크로맨서다. 그가 곧 수천수만을 아우르는 군단인 셈이지.”
“군단….”
재이는 중얼거리며 이현욱을 바라봤다.
이현욱은 고개를 끄덕여 원의 말이 옳다는 것을 인정했다.
지금 그위친과 밀러는 건물 바깥에서 해골과 해골이 소환한 언데드 군대로부터 이곳을 지키는 데 힘쓰고 있었다.
그위친 또한 길들인 몬스터들을 소환할 수 있었지만, 원의 말마따나 소환된 상태였기에 전력을 낼 수 없다는 점이 문제였다.
힘을 조절해야 하니 제대로 싸울 수가 없었던 거다.
“그러니, 유지성의 딸이여…. 너는 지금 너를 걱정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나를 걱정하라고?”
“그래. 쓸데없는 개죽음은 피해야 하지 않겠느냐?”
“흥! 어차피 그러려고 온 거였으면서 아닌 척은….”
재이는 코웃음을 쳤다.
그럴 생각이 없는 척하는 크라우드가 우스웠고, 그 때문에 입에서는 비아냥이 절로 튀어나왔다.
“맞잖아? 그 사람은 감히 건드리지 못하겠으니, 나를 죽여 그를 괴롭히고 싶은 거 아냐?”
“……!”
“할 수 있으면 어디 해봐. 난 너한테 살려 달라는 구걸 따위 할 생각 없으니까!”
휙!
재이는 망치를 앞으로 내밀었다.
그 모습을 보고, 원이 풋 웃음을 흘렸다.
이어 고개를 살살 저은 후 재이가 당황할 말을 했다.
“이거 생각지도 못한 오해를 하고 있었군그래. 우리가 겨우 너 따위를 죽이려고 이런 수고를 벌였다고 생각했나?”
“날 죽이러 온 게 아니라고?”
“그래. 우리가 바라는 건 다른 것이다. 물론, 너도 잘 아는 것이지.”
“내가 잘 아는 것? 그게 대체…!”
그 순간, 재이는 깨달았다.
원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면 당연했다.
크라우드는 처음 찾아왔을 때부터 그녀에게 한 가지 물건을 원했다.
그건 바로….
“헤미스파이리움의 열쇠….”
“그렇다…!”
원이 두 팔을 크게 벌렸다.
그 격한 동작에 반응하듯이 륜이 빠르게 회전했다.
달달달…!
“우리는 바로 그것을 취하러 온 것이다! 네가 저것을 개조한 것을 보고, 드디어 열쇠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았거든…!”
이어 원은 오른손을 재이에게로 향했다.
텅 빈 손바닥엔 욕망이 그득하게 담겨 있었다.
“자! 이제 열쇠를 내놓아라, 유지성의 딸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