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556
제558화
이태천은 캠프파이어에서 멀리 떨어진, 굵은 나무뿌리에 얽매인 거대한 바위가 있는 곳에 있었다.
그가 굳이 이곳까지 온 것은 도희가 내린 벌 때문이었다.
맛있어 보이는 온갖 음식을 앞에 두고서도 먹지 못하니 아예 쳐다보는 것을 포기한 거다.
홀짝….
그런 태천의 옆에는 조용히 병맥주를 홀짝이는 한재임뿐이었다.
한재임의 발밑엔 마시려고 챙겨온 맥주병이 서너 개 놓여 있었다.
“태천아.”
“응?”
“근데 너 아까부터 뭘 그렇게 보는 거냐?”
한재임은 태천의 손에 들린 스마트폰을 보며 물었다.
평소 태천이라면 덤벨을 들 타입이지 스마트폰을 들고 있을 타입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그들이 아는 사람 중에 온종일 스마트폰을 지니고 다니는 인간은 따로 있었다.
그 인간의 얼굴이 머릿속에 떠올라버린 한재임은 눈을 파르르 떨었다.
얼굴을 떠올린 것만으로 술맛이 떨떠름한 것이 영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조금이라도 불편한 마음이 가시지 않을까 싶어 한재임은 자세를 고쳐앉았다.
“아, 문자 보고 있었어.”
“문자?”
“응. 원장님이 문자를 보냈거든.”
“원장님이? 뭐라고 하셨는데?”
“그걸 모르겠어.”
“……?”
태천의 대꾸에 한재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태천이는 똑똑하지 않은 편이지, 한글을 읽지 못할 정도로 멍청이는 아니었을 텐데.
한재임이 그런 걱정을 하는 동안 태천이 말을 덧붙였다.
“내용이 좀 이상해. 무슨 소리인지 영 못 알아듣겠어.”
“어디, 한 번 줘봐.”
툭.
한재임이 맥주병을 바닥에 내려놓고 손을 뻗었다.
조금 전에 했던 걱정을 불식시키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태천에게 건네받은 스마트폰 화면엔 ‘최 클라우디아 수녀님’이라는 이름과 함께 메시지가 떠 있었다.
[태천아.] [보이지 않으니까 괜히 헛수고하지 말라고 전해주렴.] [세계수와 마족.] [그런 격이 높은 존재들의 미래는 일개 수녀가 제대로 볼 수 없다고 말이야.] [추신. 한국 돌아오면 보육원 들러.] [꼭 들러야 해?] [안 들르기만 해봐 ^^] [내가 아주 그냥….]“흠….”
한재임이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을 떨친 듯 마음이 편한 얼굴이었다.
왜냐하면….
“오. 역시 한재임. 대체 무슨 소리 하신 거야?”
“글쎄. 나도 모르겠다만.”
“뭐? 그럼 왜 그런 편안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건데?”
“방금 내 걱정이 불식됐거든.”
“걱정? 갑자기 무슨 소리야?”
“그런 게 있다.”
한재임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얼버무렸다.
네가 더 멍청해졌을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고 솔직하게 말할 순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
“응?”
“이것.”
한재임이 문자의 아랫부분을 가리켰다.
“추신으로 보육원에 들르라는 말을 덧붙이신 이유는 알겠군.”
“오. 그래? 뭔데?”
“뭐긴. 원장 수녀님께서 네가 가르강튀아를 써서 뭘 하려고 했는지 아시는 거지. 그런 미래를 보셨을 테니까.”
“헉!”
태천의 얼굴이 아연실색해졌다.
덥석! 덥석!
이어 두 손으로 머리를 쥐어뜯을 듯이 붙잡았다.
“그래서 평소랑 달리 웃는 이모티콘을 함께 보내신 거구나…!”
“…….”
“어, 어떡하지?”
“어떡하기는 뭘 어떡해? 수녀님 말씀대로 해야지. 평생 원장님 얼굴 안 볼 거 아니면.”
“으윽…. 도희에 이어 원장님한테까지 깨져야 하는 건가….”
태천이 괴로운 신음을 흘렸다.
평소라면 한재임은 그런 태천의 편을 들어주고 위로도 해줬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그러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원의 몸에 현현한 아바돈을 상대하며 태천이 했던 선택은 한재임조차 그냥 넘길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흐음….”
사실 한재임도 그녀들처럼 화를 표출하고 싶었다.
지금까지 태천의 옆에서 맥주를 홀짝이는 동안 머릿속으로는 골백번도 넘게 그랬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은 건, 그저 이태천이라는 남자가 애초에 그런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오늘날까지 태천을 존중해온 것은 다 그래서이지 않았던가….
원래 그런 인간이 평소와 같은 짓을 했을 뿐이건만,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화를 내는 것이 옳을까?
한재임은 스스로 던진 질문에 답을 하지 못했다.
그 대신이라고 해야 할까?
다음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겠다고, 강렬하게 다짐했다.
“재임아. 그럼 위의 내용은 전혀 모르겠어? 이 말을 누구한테 전해야 하는지도?”
“그래. 아쉽게도 말이지.”
한재임은 대답하면서 스마트폰을 돌려주었다.
스마트폰을 돌려받은 태천은 화면을 끄고 바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가 알기에 가장 똑똑한 사람 중 한 명인 한재임이 알아차리지 못했다.
자신으로서는 몇 시간을 더 들여다본다고 한들 파악하지 못하리라 판단한 거다.
그때, 한재임이 바닥에 내려놓은 맥주병을 집어 들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응?”
“누구한테 전해야 하는지 말씀하시지 않은 이유를, 알 것도 같군.”
“어? 이유가 뭔데?”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지.”
휙.
한재임은 맥주병 바닥 부분으로 태천의 뒤쪽을 가리켰다.
“말을 전해줘야 할 사람이 직접 찾아올 테니.”
“직접…?”
태천은 한재임이 가리킨 방향을 돌아봤다.
그곳엔 평소보다 조금 피곤해 보이는 앨릭스 협회장이 서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마자 앨릭스 협회장이 숨을 몰아쉬었다.
“후우…! 자네들 여기 있었군.”
“우릴 찾아온 거예요? 왜요?”
“묻고 싶은 게 있어서 말이네. 정확히는 자네들이 아니라 최 클라우디아 수녀에게지만.”
“아?”
“버섯이 언제쯤 아바돈을 우리 세상으로 넘어오게 할지 알고 싶은데….”
“아.”
“혹시 물어봐 줄 수 있겠나? 물어보기 껄끄럽다면 자리만 만들어주게. 내가 직접 찾아가서 물어봐도 좋으니.”
“아!”
태천은 대답 대신 깨달음을 얻은 듯한 소리를 냈다.
탄성 소리를 듣고 앨릭스 협회장은 그가 왜 그러는 것인지 의아함을 느꼈다.
또 의아함은 이어진 태천의 말로 인해서 더욱 커졌다.
“협회장님이었군요! 헛수고할 사람!”
“뭐?”
앨릭스 협화장의 입에서 반문이 튀어나왔다.
대뜸 헛수고할 사람이라는 말은 기분이 나쁠 만했다.
그러나 앨릭스 협회장은 이상하게도 불쾌함 대신 불길함을 강하게 느꼈다.
앞으로 정말 헛수고를 하게 될 것 같았던 거다.
동시에 직감했다.
그 헛수고가 전부 꽁지머리를 한 남자 때문일 것 같다고.
“이런 빌어먹을….”
그 불길한 직감에, 앨릭스 협회장은 욕을 내뱉었다.
***
[세계수가 관리인의 복귀를 확인했습니다.] [생각보다 빠른 복귀에 의구심을 느낍니다.]아프리카 대륙으로 돌아오니 새벽이었다.
새싹이의 말마따나 나는 금방 돌아왔다.
재이가 “수정이 마주치기 전에 돌아가.”라며 보냈기 때문이다.
마주치면 좀 어때서?
그런 의문이 들었지만….
어쩐지 그녀의 얼굴이 붉게 물들어 있어서 굳이 따지지 않고 시키는 대로 했다.
귀여운 거 봤으니 됐지, 뭐.
흐흐.
“와…. 쟤 저런 표정 처음 봐.”
“나만 그래? 막 단전에서부터 불쾌함이 스멀스멀 올라오는데.”
“둘 다 나보다 낫군. 난 표정이고 뭐고 그냥 보기만 해도 그런데.”
최준석과 김보민과 한재임이 날 보자마자 지껄여댔다.
이 새끼들은 왜 남 얼굴 보자마자 지랄이야?
눈을 찌푸리며 놈들을 노려보는 내게 태천이 인사를 건네왔다.
“좋은 아침. 아니. 새벽인가? 어쨌든. 생각보다 빨리 왔네? 도운아.”
“아침부터 저따위로 구는 데 좋은 아침이겠냐?”
“솔직히 말해도 돼? 방금은 나도 네 표정이 문제였다고 생각해.”
“뭐, 인마?”
“그렇게 눈 부라려도 정말 그랬는걸?”
녀석이 느긋한 태도로 반박했다.
후우, 정말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흠….”
내가 지금 서 있는 곳은 원과 싸웠던 장소였다.
크라우드의 역대 수장들의 마나를 세계수의 뿌리로 흡수한 그곳 말이다.
정화 작업이 다 끝났을 테니, 조용히 새싹이에게 비료를 건네줄 생각이었는데….
웬걸?
저 거대한 비료 앞에서 작은 파티가 벌어지고 있었다.
파티의 주동자는 당연히 태천이다.
도희가 내린 벌 때문에 음식을 피해 이곳으로 온 태천이를 저 세 녀석이 쫓아왔을 테니까.
아마 한재임은 태천이를 처음부터 따라왔을 테고, 최준석과 김보민이 뒤늦게 태천이에게 줄 음식을 바리바리 싸 들고 합류했겠지.
그런데 이 장소에서 내가 이해하지 못하겠는 건,
“으으…. 나는, 나는 헛수고하지 않을 것이다….”
술에 취해서 주사를 부리고 있는 앨릭스 협회장이었다.
내 살다 살다 결연하게 다짐하는 주사는 또 처음 보네.
스마트폰 화면을 두드리던 검지로 그를 가리키며 물었다.
“저 양반 여기서 왜 저러고 있어?”
“왜 저러고 있기는. 너 때문이지.”
“나 때문이라고?”
“그래.”
한재임이 당연한 일이라는 듯이 대꾸했다.
시비도 참 가지가지로 거네.
“야. 대체 내가 뭘 했다고 나 때문이야?”
“존재.”
“…….”
이 새롭고 놀라운 개소리는 뭐지?
황당해서 태천이를 바라봤다.
한소리 좀 해달라는 거였는데,
“음. 그렇게 쳐다봐도 정말 그런걸?”
태천이는 아까와 같은 소리만 해댔다.
최준석과 김보민은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연신 끄덕여댔고.
이놈들이 진짜….
누가 보면 내가 저 양반이 계속 헛수고하게끔 최선을 다하는 줄 알겠네.
이 억울한 마음을 어떻게 해갈해야 잘했다고 소문이 날까.
비딱하게 마음을 먹으려는 순간,
[세계수가 관리인을 바라봅니다.]새싹이가 메시지를 보내왔다.
역시 너는 나의 억울함을 이해해-
주기는커녕 무시했다.
너무하네.
너까지 이러기야?
[세계수는 나뭇가지를 갸웃거립니다.] [애초에 관리인이 억울해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전합니다.] [저들의 말대로 어차피 관리인은 앞으로 앨릭스 협회장을 고생시킬 것 아니냐고 질문합니다.]뭐? 내가 왜?
난 그럴 생각 전혀 없어.
멋대로 오해하지 말라고.
[세계수가 나뭇가지를 으쓱입니다.] [그렇다면 참 다행인 일이라고 전합니다.]얼씨구.
메시지에서는 새싹이의 진심이 느껴지지 않았다.
내 말을 믿지 않고 대충 넘길 셈이 분명하다.
[세계수가 나뭇가지를 절레절레 가로젓습니다.] [관리인의 말을 진심으로 믿고 있으니, 멋대로 오해하지 말라고 전합니다.] [이어 어서 빨리 비료를 달라고 요구합니다.]내 마음보다 비료를 더 중히 여기는 새싹이를 보니 마음이 참 속상하다.
그러나… 이게 부모의 마음일까?
속상함을 느끼면서도 새싹이에게 비료를 주기 위해 다가가는 내가 있었다.
톡, 톡.
왼손 검지로 비료와 스마트폰 화면을 차례차례 두드렸다.
쿠구구….
퍽!
역대 최고급 크기인 비료가 서서히 움직이더니 화면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와, 저게 저기에 들어간다고?”
“저건 봐도 봐도 이해가 안 돼. 저게 왜 들어가는 거지?”
“흠….”
최준석과 김보민이 감탄을 흘렸다.
솔직한 두 사람과 달리 한재임은 평정을 가장했다.
그래 봐야 당황한 낯짝이 그대로 드러났지만 말이다.
화아악!
그 순간, 스마트폰 화면에서 흰빛이 뿜어졌다.
S등급 비료가 전부 전달된 거다.
이제 흰빛이 사라지고 화면에서 다시 새싹이의 모습이….
“아. 맞다.”
깜빡 잊고 있었는데, 새싹이는 지금 소환된 상태였다.
그것도 원래 크기로.
그런 상태에서 성장하게 되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되는 걸까?
설마 크기가 곧바로 반영된다거나 하는 건 아니겠지?
[세계수가 ‘S등급을 초월한 비료’를 얻어 성장했습니다!]내가 당황스러운 가정을 했을 때였다.
드디어 나뭇잎 하나 자라지 않았던 새싹이가 성장했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굉장히 바라 마지않던 일이었으나….
“오. 이런….”
순수하게 기뻐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렇다.
소환된 새싹이가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었던 거다.
진심으로 궁금하다.
어째서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