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79
제79화
“당연히 만나야지!”
인간이 아닌 존재.
그런 존재는 게이트와 던전에서 사는 몬스터밖에 본 적이 없다.
그동안 내가 이 존재들에 대해서 얼마나 궁금함을 느끼고 있었는지 모를 거다.
엘프일까, 드워프일까.
아니. 내가 예상치 못한 다른 종족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수인이나 켄타우로스 같은.
[YES]나는 곧바로 YES를 클릭했다.
그러자 스마트폰에서 바로 흰빛이 뿜어져 나왔다.
빛무리는 내 몸을 감쌌고 순식간에 공간이 바뀌었다.
이동된 곳은 이벤트 던전이 아니었다.
그때와 같은 이동 방식이기에 그곳으로 이동할 줄 알았는데 생전 처음 보는 다른 장소다.
운전석에 앉아 있던 나는 웬 초록의 숲으로 이동돼 있었다.
등에는 여전히 딱딱한 무언가가 닿아 있다.
의자 등받이일 리는 없고.
고개를 들어서 보니 어린나무가 된 새싹이가 등 뒤에 있었다.
내가 고개를 들어 바라봐서일까?
나뭇잎이 무성하게 자란 어린나무가 몸을 흔든다.
나를 향한 인사다.
“안녕?”
인사를 건네자 또 한 번 나뭇가지들을 흔든다.
역시 어린나무 상태가 되어도 귀여운 건 여전하다.
새싹이에게서 시선을 떼고 주변을 돌아본다.
숲은 새롭게 자라난 듯했다.
풀과 나무가 너나 할 것 없이 사이좋게 작았다.
높이가 내 키를 넘는 성체는 한 그루도 보이지 않았다.
딱 하나.
새싹이만 내 키보다 컸다.
예상컨대, 새싹이를 중심으로 숲이 새롭게 자라난 것이리라.
“새싹아, 이곳은 대체 어디야?”
질문을 던지자 푸르스름한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내용을 읽어 보니, 새싹이가 보내온 메시지는 아니었다.
[세계수 관리인 백도운은 차원을 이동했습니다.] [현재 관리인이 있는 곳은 전대 세계수 관리인이 마법으로 만든 성역입니다.] [결계 지역은 지구와 위그드라실 사이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마족도 마족의 권속들도 찾을 수 없는 곳이므로 안심하셔도 좋습니다.]“헐….”
디싱 나 토르.
아무래도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대단한 양반인 모양이다.
적이 찾지 못할 성역을 만든 것도 대단한 일이다.
그런데 그 위치가 지구와 위그드라실 사이에 존재한단다.
위그드라실이 정확히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차원을 이동했다는 말로 생각해 보자면 다른 차원의 지구 같은 곳일 터였다.
한 차원과 한 차원 사이에 있는 성역.
그건 그 성역 또한 또 다른 차원이라는 뜻이다.
즉, 디싱 나 토르는 또 하나의 차원을 만들어 낸 거다.
대체 뭐 하는 양반이야?
[관리인 백도운은 지구 인류 최초로 차원을 이동하는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그 보상으로 ‘차원 이동자’ 타이틀을 얻습니다.] [타이틀 – 차원 이동자.] [보유 효과 – 차원을 이동할 수 있다. 백도운과 어린 세계수의 의사가 일치할 때 지구에서 위그드라실 또는 그 반대의 경우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오오?”
차원 이동자.
어감이 멋있어서 마음에 든다.
[세계수 어린나무가 전방에서 희망에 찬 시선을 느꼈습니다.]타이틀 보유 효과를 읽고 있는데, 새싹이가 메시지를 보내왔다.
바로 전방을 바라본다.
그곳엔 12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빠르게 걸어오고 있었다.
아니. 정정해야겠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은 ‘인간’이 아니었다.
정갈하게 정돈된 금빛의 머리카락.
백옥보다도 하얗게 보이는 피부.
내 귀와는 달리 옆으로 길고 뾰족하게 뻗은 귀.
“그래, 세계수하면 엘프지!”
그리 말하며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생전 처음 보는 엘프를 맞이하는데 화면을 두드리고 있을 수는 없었다.
아무리 내가 막사는 놈이라도 그 정도 매너는 있다.
엘프라니, 정말 두근두근하다.
게이트가 처음 등장했을 땐 이종족의 존재에 대해서도 논해졌었다.
엘프가 썼던 아이템과 드워프제 아이템이 발견됐을 때는 논문이 수백 편이나 쏟아져 나오기도 했었고.
하지만 그 실체를 본 사람은 없었다.
지금까지는.
사실 엘프가 아니라 드워프, 수인, 켄타우로스 같은 종족이 찾아왔어도 좋았을 거다.
새로운 종족을 만났다는 색다른 사실에 놀라움과 즐거움을 느꼈을 테니까.
그래도, 세계수하면 역시 이미지적으로 엘프가 옳지 않겠는가?
“인간?”
“이곳에 인간이…?”
빠른 걸음으로 걸어오던 엘프들이 멈춰 선다.
나를 발견한 그들의 얼굴과 목소리엔 당황스러움이 내비쳤다.
그들은 어린 세계수가 있는 성역을 발견한 후 이곳에 열심히 찾아온 거였다.
힘들게 도착한 곳에 웬 인간이 있으니 그들이 당황하는 것도 당연했다.
그나저나 엘프가 한국말을 다 하네.
아니, 이 장소가 특별하게 언어를 번역해 주고 있다고 생각하는 게 옳으려나.
말은 통하니 인사를 건네 봐야겠다.
근데, 어떻게 인사를 건네야 그들에게 거부감을 주지 않을 수 있을까.
고민하는 찰나 12명의 엘프 중 맨 앞에 서 있던 엘프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맨 앞에 서 있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다른 엘프들보다 나이가 많아 보여서일까.
왠지 그가 그 엘프 무리의 리더 같았다.
“아, 장로님!”
“장로님, 조심하십시오…!”
내 예상이 맞은 듯하다.
앞으로 걸어 나온 엘프는 다른 엘프들에게 장로라고 불렸다.
그중 머리가 긴 여성 엘프 한 명이 불안한 듯한 얼굴로 엘프 장로의 팔을 붙들었다.
엘프 장로가 팔을 붙든 엘프의 손을 톡톡 두드렸다.
“걱정하지 마라, ‘레지나’. 여긴 성역이지 않니.”
“…네.”
팔을 붙들고 있던 엘프가 물러난다.
그러자 다른 엘프들도 한걸음 뒤로 물러났다.
장로라고 불린 엘프가 다시 내게 걸어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도 새싹이에게 등을 떼고 일어났다.
엘프 장로를 맞이해 주기 위해서다.
“…….”
살면서 처음 조우하게 된 종족이다.
그런데 왜일까?
엘프 장로에게서는 어쩐지 친숙함이 느껴졌다.
마치 예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은 감각이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의 냄새를 맡은 기분이기도 했다.
“설마, 당신은…!”
친숙함을 느낀 건 나뿐만이 아니었던 것 같다.
내게 걸어오는 엘프 장로의 얼굴이 시시각각 변했다.
완전히 내 앞에 섰을 때, 그는 오른손을 부들부들 떨며 들어 올렸다.
“혹시, 혹시 그대는, 세계수의…-”
“관리인이냐고요?”
“맞!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제가 바로 이번 세계수의 관리인입니다.”
“오, 오오!”
엘프 장로가 덜덜 떨던 손을 꽉 쥐었다.
주먹이 쥐어진 오른손은 하얗게 변한다.
기쁨, 희열.
그에게선 그런 감정이 느껴졌다.
주먹 쥔 손을 감싸 주기라도 해야 하나 싶었을 때, 엘프 장로가 다시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봤다.
똑바로 바라보는 눈에선 강렬한 의지가 느껴진다.
“세계수의 관리인이라 자칭하는 그대.”
“……?”
“나 ‘레디투스 숲’의 장로 ‘파트리아’, 그대에게 진심으로 권합니다. 세계수 관리인의 증거를 보여 주시겠습니까?”
“증거…말입니까?”
이런, 곤란하게 됐다.
나한테는 관리인을 증명할 수 있는 물건 같은 건 없었다.
“그렇습니다. 그대가 진정한 세계수의 관리인이라면 분명 증거를 갖고 있을 것입니다.”
“…….”
아니, 그렇게 말해도….
그런 거 없는걸?
내가 세계수 관리인이 됐을 때 받은 거라고는 전대 세계수의 열매뿐이다.
그마저도 얻자마자 바로 먹었다.
덕분에 하트 브레이크로 인해 마나도 운용하지 못했던 몸을 치료할 수 있었다.
그다음 받았던 수액, 나뭇가지, 나뭇잎 같은 재료들도 전부 무기나 포션 따위로 만들었다.
인벤토리에 남아 있는 건 비싼 값에 팔기로 한 솔방울뿐.
그걸 내놓는다고 해서 증거 취급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관리인이 아니어도 전대 세계수 재료를 갖고 있을 수 있었으니까.
증거, 증거라….
“아.”
한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딱 하나 있었다.
세계수 관리인이 됐을 때부터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유일한 물건.
가지고 있다 뿐인가?
1년 전 게임을 다운받고 나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손에서 거의 놓지 않다시피 했다.
심지어 지금 이 순간에도 지니고 있었다.
난 주머니에 넣었던 스마트폰을 도로 꺼냈다.
반신반의하며 엘프 장로에게 내민다.
“혹시 이겁니까?”
엘프 장로의 눈이 커진다.
금색 눈동자가 마치 보석처럼 빛난다.
“오오! 맞습니다, 바로 그겁니다!”
“…정말 이게 맞습니까?”
맞는다는 말을 들었는데도 믿을 수가 없어 되물었다.
엘프가 스마트폰을 보고는 그것이 증거라고 하는 이 상황을 믿을 수 없었다.
엘프 장로는 확신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내 물음에 대답했다.
“네. 그것에서 전대 세계수 님의 기운이 느껴집니다!”
“어, 그래요?”
“이곳에서 그분의 기운을 다시 느끼게 될 줄은…….”
그리 말하면서 엘프 장로는 두 손을 뻗었다.
주름이 살짝 진 손바닥에는 공손함이 묻어나 있었다.
“혹시 제가 그걸 확실하게 확인해 봐도 되겠습니까?”
“아, 네. 그러시죠.”
엘프 장로에게 스마트폰을 건넸다.
그는 공손함이 묻어난 두 손을 유지한 채 스마트폰을 건네받는다.
뭐랄까.
그 모습은 마치 성물을 건네받는 성직자처럼 보였다.
내가 무슨 바티칸 교황이라도 된 듯했다.
직접 종교의식을 체험해 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오오…!”
스마트폰을 건네받은 엘프 장로가 크게 감격스러워했다.
그가 방금 말했던 대로 기운을 다시 느끼게 될 줄 몰랐기 때문에 감동한 것이다.
그런 엘프 장로의 모습을 봤기 때문일까?
옅은 미소를 짓거나 눈물을 흘리는 사람, 아니. 엘프들도 있었다.
“…….”
하지만 나는 그들과 달랐다.
웃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아서 아랫입술을 깨물며 꾹 참았다.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경건함마저 느껴졌지만, 그 분위기를 빼놓고 본다면 결국 나이 지긋한 엘프 한 명이 스마트폰을 소중히 들고 서 있는 모습이었다.
다른 엘프들은 그걸 지켜보며 눈시울을 훔치고 있었고.
이 모습을 직접 보고 웃지 않을 수 있는 현대인이 과연 있을까?
단언컨대 없을 것이다.
“여기, 확인되었습니다. 다시 가져가십시오. 관리인님.”
“아, 네.”
엘프 장로가 스마트폰을 돌려주고자 손을 뻗었다.
받아들기 위해 손을 뻗는데,
꼬르륵.
배 속에서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다만, 내 뱃속이 아니라 엘프 장로의 배 속이었다.
배가 고픈 건가?
엘프 장로가 부끄러운지 얼굴을 숙여 시선을 피한다.
“이, 이런…. 관리인님께 부끄러운 꼴을 보여 드리는군요.”
“괜찮습니다. 세계수가 무척 반가우셨던 거겠죠.”
“…네, 그렇습니다. 서둘러서 오다 보니 식사도 못 했지요.”
“아, 그럼-”
[D등급 세계수 퀘스트가 발생했습니다.]“…응?”
갑자기 퀘스트 창이 왜 떠?
[퀘스트 내용 – 돌아갈 숲의 엘프 12명이 굶주리고 있다.] [공복을 해결할 음식을 구해 주자.] [굶주린 엘프 (12명/12명)] [성공 보상 – 엘프의 호의.] [실패 시 어린 세계수와 엘프에게 실망을 받게 됩니다.]굶주림을 해결할 음식들?
그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주변을 돌아보면 여러 종류의 풀들이 잔뜩 자라나 있다.
나무들은 어려서 아직 열매를 맺지 않았지만, 풀이라면 충분히 캐서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굳이 구해다 줄 필요가 있나 싶다.
설마 아닌가?
“저기, 장로님.”
“파트리아 레디투스입니다. 파트리아라고 불러 주십시오.”
“아, 네. 파트리아 님. 뭐 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네. 뭐든 물어보십시오.”
“여러분 주로 뭘 드십니까?”
“네?”
엘프 장로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의 표정은 “무슨 그런 질문을 하냐”라고 말하는 듯했다.
그래도 엘프 장로는 내 질문에 순순히 대답해 주었다.
“당연히 고기를 주로 먹지요.”
“아, 그러시군요.”
그렇구나….
엘프가, 주로, 고기를 먹는구나.
우씨. 내 동심 돌려줘, 이 귀 긴 양반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