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80
제80화
상처받은 동심을 뒤로한 채 성역을 빠져나왔다.
육식주의 엘프들에게 맛있는 고기를 가져다주기 위해서다.
다시 운전석에 앉은 내 눈앞에 이재욱과 김상철이 보인다.
둘은 내 차 앞에서 무언가를 찾는 사람처럼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들이 찾는 게 무엇일지는 매우 뻔했다.
바로 나다.
문을 열고 나가 둘에게 말을 건넸다.
“너네 뭐 하냐?”
“헉!”
“형님!”
두 사람이 화들짝 놀라며 날 쳐다본다.
이재욱은 “헉!” 소리를 내면서 팔짝 뛰기까지 했다.
도마 위에 오른 생선처럼 뛰어오르는 모습을 보니 미안한 마음이 피어오른다.
저렇게까지 놀랄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아마 우리가 있는 곳이 주차장이 아니라 게이트 안이었다면 몬스터가 접근한 줄 알고 무기를 뽑아 휘둘렀을 거다.
“형님? 대체 어디 계셨던 겁니까?”
“맞아요. 저희가 어디 납치라도 당한 줄 알고 얼마나 걱정했는데요.”
“계속 차 안에 있었는데?”
“네? 차 안에요?”
성역에 관해 설명하기 귀찮아서 대충 대답했다.
두 사람은 동시에 뭔 소리를 하냐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찡그린 눈에는 날 믿지 못하는 의심이 담겨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무시하고 배달 어플을 켰다.
[한식, 중식, 일식….]어플을 키자 화면에는 곧바로 음식 메뉴가 떠올랐다.
어떤 메뉴를 배달시켜야 엘프들이 맛있게 먹고 내게 깊은 고마움을 느낄까?
“참. 혹시 나 없어졌다고 도희나 태천이한테 말했냐?”
툭 던지듯 질문을 던졌다.
“아뇨. 아직 보고 안 했어요.”
“하려고 했는데, 재욱이가 상황 파악부터 먼저 하자고 해서….”
“잘했어. 내가 또 눈앞에서 사라진다고 해도 알릴 생각하지 마.”
“…….”
대답이 없다.
화면에서 시선을 떼고 두 사람을 쳐다봤다.
둘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고 있었는데,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는 듯 곤란해 보였다.
그럴 거다.
내 말을 들으면 도희와 태천의 명령을 따르지 않은 게 된다.
이미 나와 내통하고 있는 사이였지만.
그렇다고 보고까지 거짓으로 하고 싶지는 않을 거다.
도희와 태천이가 나를 걱정하는 마음에 미행을 붙인 것을 알고 있는 만큼 더더욱.
그래서 두 사람이 쉽게 결정할 수 있도록 한 마디 덧붙여 주었다.
“내가 스스로 갔다 오는 거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위험한 곳도 아니고.”
“아….”
보고하지 않아도 아무 문제 없는 안전한 곳을 왔다 갔다 하는 것이다.
이름부터 성역인데 무슨 위험이 있겠는가?
굳이 보고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그런 거라면… 그치?”
“으음. 그렇게 하겠습니다.”
“잘 생각했다.”
둘의 대답에 만족스러움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화면에 뜬 메뉴 배달 버튼을 누른다.
도시락통을 등에 짊어진 2등신 사자가 열심히 달리기 시작했다.
아래에는 ‘배달 도착까지 30분 정도 소요됩니다’라는 문구가 떠올랐다.
“배달시켰는데, 너희도 먹을 거지?”
“앗, 그럼요.”
“사 주신다면 거절하지 않겠습니다.”
엘프들을 위해 배달을 시킨 거였지만, 재욱과 상철이 먹을 몫도 포함했다.
당연히 재이네 대장간에서 무료함을 느끼고 있을 세 여자의 몫도 챙겼다.
필요한 양만 딱 시키고 도로 성역으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정이 없었다.
두 사람과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는 사이 배달원들이 도착했다.
그들은 음식을 내려놓고 한시바삐 떠났다.
나는 먹을 입이 많았기 때문에 한 브랜드에서 전부 시키지 않고 여러 군데에서 시켰다.
여러 브랜드에서 시켰지만, 맛은 딱 두 가지로 통일했다.
“…18마리? 웬 치킨을 이렇게 많이 시켰어요?”
“우리나라 전통 음식이잖아.”
“…네? 치킨이요?”
내가 준비한 건 아주 유서 깊은 메뉴다.
후라이드 반 양념 반.
그것도 1인 1닭으로.
이것이라면 분명 육식주의 엘프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 것이다.
기다려라, 내 동심을 깨부순 엘프들아.
나는 두 사람에게 다섯 마리의 치킨을 건넨 후 다시 성역으로 들어갔다.
***
성역으로 돌아가자 엘프들이 새싹이 앞에 모여 앉아 있었다.
푸른빛을 뿜어내는 어린 세계수와 그것을 중심으로 모여 앉은 엘프들….
그 모습은 마치 성직자들이 모여 기도를 드리는 것처럼 경건함이 느껴졌다.
왜 저러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방해하고 싶지 않아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킁킁.
내 배려는 헛수고로 끝났다.
치킨 13마리의 냄새가 아주 강렬했기 때문이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들은 코를 킁킁거렸고, 곧 12명의 엘프가 눈을 뜨고 나를 바라봤다.
정확히는 내 양손에 들린 네모난 치킨 상자들을.
“으음, 혹시 방해가 됐을까요? 먹을 것을 가져왔는데….”
“방해라니요. 절대로 아닙니다. 그런데 벌써 요리를 해 오신 겁니까?”
“사 온 겁니다.”
“아아.”
“입맛에 맞을지 모르겠네요.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음식 중 하나기는 한데.”
“그렇다면 분명 맛있겠군요.”
파트리아가 일어나 내게 걸어왔다.
다른 엘프들도 그를 따라 내 앞으로 왔다.
가뜩이나 배고팠는데 맛있는 냄새가 나자 참을 수가 없는 듯했다.
엘프들이 입맛을 다시는 모습을 보니 어째 치킨 13마리가 부족할 것 같다.
사실 내 몫까지 챙긴 거였는데 아무래도 그럴 수 없을 듯하다.
일단 나눠 주고 보자.
부족하면 더 시키면 될 일이니까.
“감사합니다, 관리인님.”
“잘 먹겠습니다, 관리인님!”
엘프들은 일렬로 서더니 순서를 지켜 차례차례 치킨을 받아갔다.
치킨 상자를 받으면서 감사 인사를 전해 온다.
마지막으로 치킨 상자를 받은 건 엘프 장로에게 ‘레지나’라고 불렸던 여성 엘프다.
“맛있게 드세요.”
“감사…합니다.”
그녀는 얼굴을 살짝 붉히며 받아갔다.
아무래도 얻어먹는다는 사실이 부끄러운 듯했다.
하긴, 종족도 다른데 처음 만나자마자 음식을 얻어먹고 있었으니 부끄러움을 느낄 만했다.
그들이 민망함을 느끼지 않도록 시선을 좀 피하고 있어야겠다.
“역시! 기름 냄새가 난다 했더니 튀김 요리였군.”
“어떻게 튀김이 황금빛이 날 수가 있는 거지?”
“이 빨간 건… 매콤한걸?”
“맵기만 한 게 아니야. 달콤하기까지 해!”
“이런 닭 요리는 난생처음 먹어 봐…!”
흠….
그들이 민망하지 않도록 시선을 피하려고 했는데,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엘프들이 후라이드 반 양념 반을 맛있게 먹는 모습은 정말로 진기했다.
또 그들은 마치 인터넷 방송인이 과장되게 음식을 먹는 것처럼 맛에 관한 얘기를 해 대니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순살로 사길 잘했군….”
엘프들은 나무젓가락을 포크처럼 사용했다.
단 한 명도 원래 쓰임새인 젓가락으로써 사용하는 엘프가 없었다.
아마도 그들에게 젓가락이라는 개념은 없는 모양이다.
한국인들처럼 젓가락질을 잘할 수 있을지 몰라서 순살을 산 거였는데 그러길 잘했다.
순살이라면 콕 찍어 먹을 수 있었으니까.
“저, 관리인님.”
“네?”
레지나가 오른손을 들며 나를 불렀다.
싱긋 미소 지으며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는 들어 올렸던 손을 내리고 다른 손을 들어 올린다.
희고 가느다란 왼손에는 검은색 액체가 담긴 플라스틱병이 들려 있다.
콜라다.
“이 검은 액체는 뭔가요?”
“아, 그건 콜라….”
엘프가 콜라를 아나?
당연히 모를 거다.
“아니, 탄산음료….”
같은 이유로 탄산음료도 알 리가 없었다.
콜라를 대체 뭐라고 설명해야 하지?
“아하, 이게 음료였군요.”
고민하고 있는데, 레지나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알아서 알아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어 주어 다행이다.
그녀는 콜라를 이리저리 흔들며 살피다가 검은 뚜껑을 열었다.
어라, 이리저리 흔들며?
“앗, 잠깐만-”
치익!
탄산 소리가 내 목소리를 덮을 정도로 크고 경쾌하게 울려 퍼진다.
“우와! 우와와와!”
이어 레지나가 숨이 막힐 듯이 겁을 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콜라병을 열던 모습 그대로 멈춘 채 덜덜 떨며 나를 바라봤다.
흰 손에서 검은 콜라가 뚝뚝 떨어졌다.
당황의 늪에서 완전히 빠져나오지 못한 그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 어…. 이거, 제가 뭘 잘못한 건가요?”
“아니, 아니에요. 그건, 그러니까, 원래 그런 겁니다.”
“네…? 원래요?”
레지나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호기심을 느끼고 콜라병을 살펴보던 다른 엘프들이 조심스레 콜라를 내려놓았다.
아무래도 그들에게 콜라는 위험한 물건이 된 모양이다.
이런, 치킨엔 콜란데!
“관리인님은 이렇게 위험한 걸 먹는 건가요…?”
“위험한….”
어서 빨리 오해를 풀어야겠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그들에게 세계수 관리인인 동시에 ‘위험한 음료수를 마시는 인간’으로 낙인찍힐지도 모른다.
치킨 상자에 담긴 새 콜라병을 집어 들었다.
“속에 탄산이란 게 담겨 있어서 그런 건데, 흔들지만 않으면 멀쩡해요. 자, 이렇게요.”
조심스럽게 뚜껑을 연다.
레지나가 열 때와 달리 칙! 하는 소리만 들려올 뿐 콜라는 넘쳐흐르지 않았다.
병에 입을 대지 않고 콜라를 마셨다.
시원하고 달콤한 맛이 입안 가득 퍼졌다.
“오….”
엘프들이 탄성을 흘렸다.
넘쳐 흐르지 않는 모습을 보고는 다시 흥미가 동한 듯했다.
파트리아가 치킨 상자에 담긴 콜라병을 집으며 말했다.
“제가 한번 마셔 보겠습니다.”
장로라는 직책을 가진 엘프로서 본을 보이려는 것이다.
엘프 장로는 조심스레 내 행동을 따라 했다.
콜라병이 칙 소리가 나고 열렸고, 그는 곧바로 콜라를 마셨다.
“……!”
파트리아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한껏 밝아진 얼굴로 나를 쳐다본다.
“오. 이거 정말 엄청나군요!”
“그렇죠? 맛있죠?”
“뿐입니까? 마치 입안에서 폭발 마법이 연달아 터진 듯합니다!”
그 모습 덕분일까?
다른 엘프들이 조심스럽게 뚜껑을 열고 콜라를 마셨다.
콜라를 맛본 이들은 파트리아처럼 놀라서는 서로 얼굴을 쳐다봤다.
“오오! 장로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런 뜻이었군!”
“정말로 폭발 마법이 일어난 것 같아!”
“검은색이라 끔찍한 맛이 날 줄 알았는데….”
“살면서 이 정도로 단 음료는 처음 마셔 봐.”
휴, 다행이다.
다들 콜라가 마음에 든 것 같다.
나는 레지나에게 걸어가 한 모금 마신 콜라를 쥐여 주었다.
“여기요.”
“아… 괜, 괜찮아요!”
“내가 안 괜찮아서 그래요.”
레지나가 들고 있는 콜라병에는 콜라가 반 정도가 사라진 상태였다.
내가 미리 말해 줬더라면 그녀는 시원한 콜라 한 병을 마실 수 있었을 거다.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이며 고마움을 전해 왔다.
“…감사합니다.”
“맛있게 드세요.”
그리 말하고는 엘프들에게서 멀리 떨어졌다.
날 신경 쓰지 말고 편하게 음식을 먹으라는 뜻이었다.
내가 새싹이 기둥에 의지해 비스듬히 앉아 있는 동안, 엘프들은 치킨과 콜라를 빠르게 먹어치웠다.
치킨을 깔끔하게 먹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엘프들에게 우리나라의 음식을 전했다는 사실 때문인지 뿌듯함이 느껴졌다.
밀려오는 뿌듯함과 함께 퀘스트에 떠 있던 굶주린 엘프의 숫자도 빠르게 줄어들었다.
곧 눈앞에 퀘스트 알림창이 떠올랐다.
[D등급 세계수 퀘스트 완료!] [엘프들은 세계수 관리인에게 고마움을 느낍니다!] [그들은 현재 세계수 관리인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에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습니다.]“역시 치킨은 늘 옳다니까.”
[세계수 어린나무가 자기도 치킨과 콜라라는 것을 먹고 싶다고 전합니다.]“…….”
나무에 치킨과 콜라를?
음…. 아무래도 그건 좀 무리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