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94
제94화
“특히, 너와 함께라면 더욱 쉽게 막을 수 있을 것 같단 말이지.”
“저요? 갑자기?”
“그래. 그래서 말인데. 함께 나가지 않을래?”
툭, 툭….
입보다 손가락이 먼저 움직였다.
오른손 엄지가 다시 화면을 두드린다.
당황의 늪에서 빠져나온 거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릴 잘도 하는 양반이다.
여기에 있는 것도 권한이 없던 탓에 방금 자리를 비켜 달라는 소리를 들은 나다.
그런데 어떻게 내가 그와 함께 나가겠는가.
“말도 안 되는 말씀 좀 하지 마세요! 백도운 헌터는 B급이에요, B급! 거기가 어디라고 함께 가요?”
“배 사무관님 말씀이 맞습니다. 그 자리에 도운 님이 나가기에는 무리입니다. 친구분이라면 모를까.”
“함께 나갈 헌터는 현재 저희가 따로 알아보고 있어요.”
“그렇습니다. 경력이 출중한 헌터로 찾아보고 있으니-”
“딴생각하지 마요. 절대.”
뭐, 이런 반응이 나오는 게 당연하다.
나 자신도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저렇게까지 성을 내니 기분이 조금 그렇다.
“…….”
내 시선을 느낀 걸까?
배 사무관이라고 불린 여성과 김태석이 내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자기들이 생각하기에도 본인을 앞에 두고 너무 열을 냈나 싶은 것이리라.
배 사무관이 고개를 살짝 숙였다.
옆에 있던 김태석도 그녀를 따라 사과를 건네왔다.
“…실례했습니다.”
“미안합니다.”
“으음, 괜찮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니.”
그들 말대로 현재 나는 B급 헌터였다.
내 진짜 실력은 A급 헌터에 해당한다고 자부하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현재 B급에 속해 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다.
S급 헌터를 맞이하러 가는 자리에 내보내기에 급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들에게 있어 나는 한진환과 함께 장관과 협회장을 경호할 수준의 헌터가 아니다.
최희석이 손을 들었다.
커다란 손은 사람들의 시선을 단번에 잡아끌었다.
“나도 반대야.”
“형님?”
한진환이 최희석을 부르며 올려다본다.
최희석이 반대하고 나설 줄은 몰랐던 것 같다.
나처럼.
“나도 너만큼 도운 군이 마음에 들어.”
최희석은 덤덤하게 말했다.
그 덤덤함 말투가 천막 안의 분위기를 지배했다.
나이가 가장 많은 연장자로서.
가장 오랫동안 일을 해 온 선배로서.
“B급으로 랭크돼 있지만 A급 헌터의 실력을 지니고 있다고도 생각하고. 너와 함께 퀘스트를 진행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그것을 증명하지.”
“그럼 왜 반대하는 거요?”
“두 사람이 앞서 말한 대로 자격이 없기 때문에.”
“자격이 없다는 건….”
“그래. 도운 군은 위쪽 양반들을 설득할 만한 업적이 없어.”
자격이 없다…?
굳이 따지자면 있긴 하다.
알레딩 밀러가 오는 원인이 바로 나 때문이었으니까.
화염산 던전을 원래대로 바꾼 사람이 난데 참여할 자격이 없을 리가.
같은 이유로 위쪽 양반들을 설득할 만한 업적도 있는 것이다.
다만.
그 사실을 곧이곧대로 말할 생각은 없었다.
던전을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다…?
엄청나게 귀찮아질 게 뻔하다.
아니, 귀찮아진다는 표현은 애교일 거다.
자기 영토에서 던전을 없애길 바라는 국가는 수두룩하고, 그 국가들은 내게 던전을 없애 달라고 접근해 올 테니까.
특히 중국이나 러시아 같은 경우는 날 납치할 계획을 짤지도 모른다.
땅덩어리가 넓은 만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서 버려두고 있는 곳이 많았으니.
아프리카는 말할 것도 없다.
그곳은 현재 나라보다 게이트와 던전이 더 많은 곳이 돼 버린 지 오래다.
유럽이 세상의 체면을 생각해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광활한 몬스터 서식지가 돼 버렸을 거다.
“이렇게 말해서 미안하네.”
“아뇨, 저도 그렇게 생각은 합니다.”
최희석이 정중하게 사과를 해왔다.
그들의 시점에서 보면, 나는 백도희의 하나밖에 없는 오빠 혹은 이태천의 가장 친한 친구일 뿐이다.
덧붙이자면 스마트폰 게임 중독자였고, 폭주한 김무연을 죽인 인간이었으며, 한진환과 함께 협회 퀘스트를 진행 중인 헌터다.
커리어가 별로 없는 헌터인 것이다.
S급 헌터를 맞이하는 자리에 데리고 갈 수 없다고 말하는 것도 이해는 한다.
함께 나가자고 하는 한진환이 이상한 거다.
물론.
자꾸 실력이 부족하다느니 자격이 없다느니 같은 소리를 들어서 기분이 나쁘기는 했다.
그래서 나는,
“나가겠습니다.”
반발심을 있는 그대로 드러냈다.
왜 자꾸 안 된대?
사람들이 긍정적이지 못하게 말이야.
“오.”
한진환이 감탄사를 내뱉고는 마음에 든다는 듯 씩 웃는다.
내게 함께 나가지 않겠냐고 말한 건 그였다.
자격 같은 게 부족하다는 걸 알고 있을 텐데도 함께 나가자고 제안한 것이다.
그것은 그가 그렇게 할 수 있기 때문일 터였다.
“백도운 헌터! 이 자리는 B급밖에 안 되는 당신이 끼어들 자리가 아닙니다!”
“그렇다는데요?”
“그럼 등급부터 올리지, 뭐.”
“뭐, 뭐라고요?”
배 사무관이 당황스러운 낯으로 한진환을 바라본다.
그는 배 사무관을 뒤로 한 채 스마트폰을 꺼냈다.
곧바로 화면을 터치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통화를 나눈다.
그런데… 그 내용이 심상치 않다.
“어, 나야. 웬일이긴, 부탁 좀 하려고 그러지. 백도운이라고 B급 헌터가 있는데, 안다고? 그럼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되겠네. 그 친구 A급 헌터로 올려 줘. 지금 당장.”
뭐를 올려?
내가 지금 잘못 들었나?
당황한 건 나뿐만이 아니다.
배 사무관이 한진환을 제지하려고 나섰다.
“잠깐, 잠깐만요!”
“…….”
“그렇게 함부로 사람의 등급을 올려 버리는 건 월권-”
“…네가 그 걱정을 왜 해? 어차피 책임은 내가 질 건데.”
한진환이 통화 속 상대방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나 말을 하는 그의 눈은 배 사무관을 향해 있었다.
그렇다.
걱정을 왜 하냐는 말은 통화하는 상대방에게 한 것이었지만, 동시에 시선을 마주친 배 사무관에게 한 것이기도 했다.
이 일로 잘못이 생긴다면 그에 따른 책임은 자기가 지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어, 그래. 고맙다. 밥 한 번 쏠게. 알았어, 인마.”
뚝.
전화를 끊는다.
그러고는 배 사무관을 보던 시선을 옮긴다.
내게로 향하는 건가?
싶었던 두 눈은 내 얼굴이 아니라 오른손에 들린 스마트폰으로 향했다.
우웅.
그의 시선이 닿자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전류라도 흘려보냈나?
그런 생각이 들어 화면을 들여다봤다.
스마트폰이 진동한 것은 메시지가 왔기 때문이었다.
[B급 헌터 백도운님은 금일부로 A급 헌터가 되셨습니다.] [강인재 헌터 관리 2팀장.]메시지는 용건과 발신자만 적혀 있어 아주 간략했다.
전체 내용은 그러나 간략하지 않았다.
B급이었던 등급이 A급으로 올라갔다는 내용이었으니까.
“헐….”
당황스러운 감정이 입으로 흘러나왔다.
전화 한 통으로 헌터의 등급을 바꿔?
테스트를 치르지도 않았는데?
이게 가능한 일인가 싶지만, 의문의 답은 화면에 있었다.
가능한 일이니까 이렇게 메시지가 온 거다.
“자, 이제 백도운은 A급 헌터야. 등급은 문제없는 거다?”
“없긴 왜 없어요! 전 절대 인정 못 해요! 이렇게 A급으로 올리는 법이 세상에 어디 있어요?”
“여기 있지.”
“여기 있지, 라뇨! 이거 정식으로 협회에 항의할 거예요!”
“그러든가.”
배 사무관이 따지지만, 한진환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 태도다.
글쎄, 신경 써야 하지 않나?
그래도 정부 사람인데.
“정말 괜찮겠습니까?”
“뭐?”
“이렇게 막 올렸다가 문제 생기면 어떡하려고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한진환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면서 웃었다.
“괜찮고말고. 네 실력은 내가 직접 확인했으니까.”
“흐음, 그래요?”
“뭐가 아닌 척 ‘그래요?’야. 지도 스스로 A급 헌터 수준은 된다고 자신하고 있으면서.”
“…….”
음, 내가 그렇게 티를 냈었나?
아무래도 난 나도 모르는 사이 자신만만한 얼굴 같은 걸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머쓱해서 목을 긁적였다.
“그럼 이제-”
“업적 문제가 있지.”
“그래요, 그거. 백도운에게는 이렇다 할 경력이 없다, 였죠?”
“음.”
그들 말대로다.
A급으로 올라온 건 출발선에 서게 됐을 뿐이다.
우리나라에 A급 헌터는 몇 백 명 단위로 있다.
그들이 아니라 내가 나가게 된다면,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
지켜보는 사람들이 인정하고 납득할 만한 이유가.
괜히 김태석이 경력 출중한 사람을 찾아보고 있다고 말한 게 아니다.
별다른 말이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서도 눈에 띌 만한 경력이 있어야 했다.
“너 뭐 한 거 없냐?”
“한 거요?”
“어. 여기 있는 사람들이 인정할 만한 거. 특히….”
한진환이 고개를 까딱여 배 사무관을 가리켰다.
그것 본 그녀는 눈을 찌푸리더니 나를 사납게 노려봤다.
고갯짓으로 자길 가리킨 건 한진환인데 왜 날 노려봐?
“흠. 인정할 만한 거라…. 헌터 사냥꾼인 김정철 일당이랑 수배범인 이정근을 붙잡았죠.”
“덧붙이자면 김정철은 크라우드 소속이었다. 이정근은 크라우드에 조종당하고 있었고.”
“크라우드? 이번 일도 그렇고, 너 게네랑 사이 엄청 나쁘구나?”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그래. 그리고?”
“그리고….”
용두식 건은 얘기하지 말아야겠다.
크라우드와 본격적으로 사이가 틀어지게 된 이유였지만, 나 혼자만의 일은 아니었다.
유재이와 우연후에 관해서 말해야 할지도 모른다.
“아! 보육원 연쇄 살인마를 처리한 적이 있습니다.”
“보육원? 혹시 보육원 연쇄 방화범을 말하는 건가?”
“맞아요, 그놈. 아니, 년이라고 해야 하나? 여자였으니까.”
“그게 정말인가? 보고 받은 적 없는데?”
“보고하지 않았으니까요.”
“아니, 왜 그랬나? 보고했으면 포상을 받았을 텐데? 헌터 평가도 좋아졌을 거고.”
“그야… 처리한 거라서?”
딱!
최희석이 제 이마를 쳤다.
처리했다.
그 말에 담긴 속뜻이 좋지 않다는 걸 알아차린 것이다.
한진환이 손을 휘저었다.
“그놈 얘긴 됐고. 또?”
“현재 두 손가락 프로젝트를 하고 있죠.”
“…끝이야?”
“네.”
“흐으음.”
한진환과 최희석이 생각에 빠져 들었다.
팔짱을 끼거나 자기가 때렸던 이마를 긁적였다.
역시 이 정도로는 부족한가?
옆에 서서 우릴 바라보던 배 사무관이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마치 ‘흥, 그럴 줄 알았지!’하고 말하는 듯했다.
방금까지만 해도 내가 한 일들을 듣고 놀랐던 주제에….
확 그냥 화염산 던전을 원래대로 되돌린 사람이 나라고 말해 버려?
아니, 관두자.
말해 봤자 귀찮아지는 건 나다.
내가 정말 그럴 수 있는지도 이들에게 증명해 줘야 할 것이다.
둘 중에 먼저 입을 연 건 최희석이었다.
“설득… 할 수 있을 것 같군.”
“어, 정말입니까?”
“음.”
최희석이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웃음을 보고 두 사람이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한진환은 씩 웃었고, 배 사무관은 혀를 찼다.
“형님이 그럴 수 있을 것 같다면, 할 수 있는 거야.”
“…….”
“그럼 이제 다 된 거지?”
질문이 던져졌다.
모든 이들의 시선이 배 사무관을 향했다.
그녀는 질문에 바로 대답하지 않고 잠깐 나를 바라봤다.
3초 정도 흐른 후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뇨. 실력을 확인해야겠어요.”
“끈질기네. 안 해도 된다니까? 내가 확인했다고.”
“제 눈으로, 직접, 확인하겠습니다.”
“…굳이 하고 싶다면야 말리지는 않겠는데.”
아니, 내가 동의를 안 했는데?
왜 자기들 멋대로 얘기를 진행하지?
“어떻게 할 건데?”
“당연히 대련이죠.”
“그거 물어본 거 아닌데.”
“……?”
무슨 소리냐고 묻듯 고개를 갸웃거린다.
나도 그런 건 줄 알았기 때문에 한진환을 쳐다봤다.
그는 날 향해 검지를 내밀었다.
“나랑 형님 빼면 여기서 저놈이 제일 강한데.”
“……!”
“그런 놈 실력을 너희가 확인할 수나 있겠어?”
그 순간,
천막 아래에 있던 모든 눈동자가 내게 모였다.
이 시선은,
[세계수 어린나무가 아니꼬운 시선들을 느꼈습니다.]새싹이가 느낀 것처럼, 아니꼬운 시선들이었다.
마치 ‘저놈 따위가?’라고 말하는 듯한.
하하, 오랜만에 느껴 보는 시선인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