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93
제93화
파트리아의 부탁은 당연히 들어주기로 했다.
자급자족하고 싶다는데 기쁜 마음으로 들어줘야지.
또 새싹이의 잎이 전대 세계수의 것과 얼마나 다를지도 궁금하다.
아직 어린 세계수니까 상급 포션을 만들기엔 무리일지도 모른다.
이번 프로젝트를 끝내고 나면 바로 퀘스트를 깨야겠다.
살아 있는 동물이면 된다고 했으니 구할 수 있는 대로 다 구해 가면 되겠지.
“어라?”
성역을 빠져나온 후 바로 다졸 건물로 돌아왔다.
한진환과 다시 합류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돌아온 날 맞이한 건 헌터 협회 사람들과 경찰들이다.
그들이 이곳에 있는 것 자체는 이상하지 않았다.
다졸 길드원들을 데려가라고 한진환이 연락했었으니까.
협회와 경찰들이 통행 저지선을 설치하고 구경하러 온 사람들을 막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내가 고개를 갸웃거린 건, 협회와 경찰 중에서 간부로 보이는 사람들이 몇 명 정도 끼어 있어서다.
“한진환 구경이라도 온 건가…?”
얼굴 보기 쉬운 양반은 아니니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경찰에게나 해당한다.
협회 사람은 다른 사람들보다는 쉽게 그를 볼 수 있었다.
협회 소속 헌터인 최희석과 친하기 때문이다.
남의 사무실을 제방처럼 쓰는 모습에서 알 수 있듯 한진환은 A급 헌터치고 협회에 자주 들락날락한다.
“더는 접근하시면 안 됩니다.”
“네? 아.”
젊은 경찰이 손바닥을 내밀며 나를 막아섰다.
아마도 나를 구경꾼쯤으로 착각한 것 같다.
현재 나는 장을 보고 성역에도 다녀오느라 갑옷이 아니라 평상복을 입고 있었다.
오른손에는 무기 대신 새싹이와 엘프가 표시된 스마트폰이 쥐어져 있었고.
헌터로 보이지 않으니 착각할 만도 하다.
요즘 들어 김무연 일로 유명해지긴 했지만, 그것도 나보다 도희와 태천이가 더 시선을 잡아끌었다.
나를 못 알아보는 건 당연하다.
“저는-”
“앗, 괜찮아! 그분 보내 드려.”
3m 정도 떨어져 있던 경찰이 끼어든다.
날 가로막던 경찰이 당황해서 동료를 쳐다본다.
나이대가 다른 걸 보니 동료보다는 선후배 사이 같다.
“네? 하지만….”
“괜찮다고. 사전에 연락받았어.”
“아….”
“백도운 님이시죠?”
선배 경찰이 빙긋 웃으며 물었다.
고개를 끄덕이자 지나가라는 듯 저지선을 들어 올렸다.
“진환 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저기, 간이 천막으로 가시면 됩니다.”
“고맙습니다.”
천막까지 세웠어? 왜?
다졸 길드원들만 데리고 가면 이곳에서의 일은 전부 끝난다.
치악산 쪽으로 바로 넘어가자고 말한 것도 그래서였다.
그런데도 천막을 세우고 간부들이 왔다는 건,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우재가 도망이라도 쳤나?”
피식.
중얼거렸던 입에서 절로 웃음이 나왔다.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내게 모든 힘을 빼앗겨 무능력자가 된 공우재가 한진환에게서 도망친다?
차라리 스마트폰에서 세계수가 자라났다는 말이 더 가능성 있는 얘기일 것이다.
뭐, 그에게 직접 물어보면 될 일이다.
“…응?”
경찰의 말대로 한진환은 천막 안에 있었다.
다만, 그의 바로 옆에 최희석이 함께였다.
2m가 넘는 덩치 때문에 천막에 가려 얼굴이 보이지 않았지만 확실하다.
한국에 저런 큰 바위 같은 덩치의 소유자는 얼마 없었다.
한진환은 답지 않게 진중한 얼굴로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나눴다.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점잖은 얼굴이었다.
저런 얼굴도 할 줄 알았군?
그리 생각했을 때, 한진환이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언제 그랬냐는 듯 무게감이 느껴지던 얼굴이 사라지고 미소가 피어올랐다.
“백도운! 여기야, 여기!”
나를 발견한 한진환이 손을 흔들어 보였다.
내 이름을 들은 최희석도 상체를 옆으로 기울여 나를 바라봤다.
한진환처럼 손을 흔드는데, 키 큰 게 마냥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왠지 벌집을 헤집는 곰처럼 보이기도 했고….
“일은 잘 끝내고 왔냐?”
“네, 덕분에요.”
“한 것도 없는데 덕분은 무슨.”
“여긴 왜 오신 겁니까?”
“아, 그게-”
천막 안으로 들어가며 최희석에게 물었다.
최희석이 대답하려고 하는데, 한진환이 먼저 끼어들었다.
내게 코를 들이밀며 킁킁거린다.
“뭐야. 너 밥 먹고 온 거?”
“냄새납니까?”
“나냐고? 완전 진동을 한다. 한우?”
“네.”
“밥 먹으러 가는 거였으면 같이 가지 그랬냐.”
“같이 먹을 사람들이 있었어요.”
“아, 그러고 보니 선물이라고 했었지?”
“네. 그보다….”
한진환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주변 사람들이 하나의 얼굴이 되어서는 우릴 보고 있다.
마치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본론이나 얘기하자’라고 말하는 듯했다.
정말이지, 저 얼굴들을 이런 곳에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내게 있어 그들의 얼굴은 굉장히 익숙한 것이었다.
얼굴에 담겨 있는 생각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다.
이를테면, 백운천 회의 시간에 수다를 떠는 나와 태천이를 바라보는 도희와 한재임에게서 봐왔던 얼굴이랄까?
스마트폰 화면을 두드리며 물었다.
“무슨 일 있습니까?”
“있었지. 미국에서-”
“잠깐만요.”
젊은 여성이 최희석이 말하려는 걸 제지했다.
다른 사람들이 당황하며 여성을 쳐다본다.
바로 옆에 있는 남자의 얼굴에는 불안함이 피어올라 “사, 사무관님…”하고 부르기까지 했다.
그럴 거다.
헌터들에게 최희석은 평범한 A급 헌터가 아니다.
선망의 대상이며 우상의 대상이다.
여기에 지상욱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지상욱은 “감히 선배님이 말씀하시는데…!”라면서 분개했으리라.
“백도운 헌터는 이 정보를 들은 권한이 없습니다.”
하지만 여성은 그러거나 말거나 개의치 않았다.
마치 자기가 윗사람이라는 듯한 고압적인 태도였다.
사무관이라고 불린 걸 보면 협회 소속이 아니라 정부 쪽 사람인 게 분명하다.
그녀의 말마따나 이 천막 아래에는 그만한 권한이 있는 사람들만 모여 있으리라.
“…떨어져 있을까요?”
“부탁드립니다.”
“뭐? 아니야, 괜찮아.”
내 질문에 여성과 한진환이 동시에 대답했다.
동시에 말한 두 사람이 서로를 쳐다본다.
한쪽 눈을 치켜뜨는 한진환.
무표정하게 그를 바라보는 여성.
둘이 사이 안 좋나?
최희석도 말릴 생각은 하지 않고 고개만 저었다.
과거에 이런 상황이 비일비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저기, 전 아무래도 상관없는데요?”
정말이다.
무슨 일인지 딱히 궁금하지도 않다.
내게는 파트리아가 부탁한 퀘스트가 더 중요하다.
더군다나 미국에서 뭔가 했다면 그야말로 나하고는 상관없는 일이다.
여성이 나를 가리키며 의기양양한 태도로 말했다.
“본인이 괜찮다고 하네요.”
“내가 안 괜찮아서 안 돼.”
“그게 무슨 억지에요?”
여성이 눈을 찌푸리며 말한다.
그러게. 내가 괜찮다는데 자기가 안 괜찮다는 건 뭔 소리일까.
한진환이 씩 웃으며 날 쳐다본다.
양쪽 입꼬리가 한껏 올라간 미소.
저 미소 또한 내게 굉장히 낯익은 것이었다.
태천이가 도희의 조언을 따를 생각이 눈곱만치도 없을 때 짓는 미소기 때문이다.
따라서 같은 이유와 같은 상황으로 내가 태천에게 자주 짓는 미소이기도 했다.
한진환은 여성의 의견에 따라 줄 생각이 1도 없었다.
“미국에서 내일 사람이 도착한대.”
“진환 님!”
“내일? 사람이요?”
“그렇다니까.”
“그만 말씀하세요! 더 말씀하시면 그냥 넘어가지 않을 거예요!”
대체 누가 오길래 이러는 거야?
들을 권한이 없다고 하지 않나.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고 하지 않나.
“‘알레딩 밀러’.”
익숙한 이름이었다.
실물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사진이나 영상으로는 수도 없이 봐왔다.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 중 한 명이었으니까.
그래, 지명도만으로는 눈앞의 한진환보다도 위였다.
알레딩 밀러.
세계에서 네 명밖에 없다는 S급 헌터의 이름이다.
“정말…입니까?”
최희석에게 물었다.
질문을 받은 그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눈치를 살폈다.
한진환의 입을 막으려고 했던 여성이다.
여성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말하지 말라는 뜻이다.
최희석의 얼굴에서 연민이 느껴지는 건 그저 착각인 걸까.
아무래도 한진환에게 휘둘리는 사람으로서 동질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정말이야.”
대답한 건 한진환이다.
최희석은 여성의 부탁대로 말하지 않았지만, 소용없었다.
한진환은 제 입을 틀어막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정말로 알레딩 밀러가 한국에 오고 있다고?
왜?
이건 정말 보통 일이 아니었다.
나한테 들을 권한이 없다고 말한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존재하는 것만으로 전쟁의 억지력이 되는 핵.
그런 무기와도 같은 존재가 한국에 오고 있다는 소리였으니까.
“그 사람이… 갑자기 한국엔 왜 오는 건데요?”
“그게, 나도 방금 들었는데 던전 때문이라네?”
“던전이요?”
“정확히는 서울월드컵경기장 때문입니다. 백도운 님.”
한 남성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는 여성 옆에서 안절부절못하던 남성이었다.
여성이 홱 고개를 돌린다.
날카로운 시선이 닿자 남성은 어색하게 웃었다.
마음을 가라앉히라는 듯 두 손을 아래쪽으로 눌렀다.
“태석 씨!”
“자자, 진정하십시오. 이미 얼버무리기엔 늦었어요.”
“…….”
“진환 님께 설명 듣는 것보다 우리한테 듣는 게 나을 겁니다.”
“…그러네요. 맞는 말씀이세요.”
“그럼 설명하겠습니다?”
“…….”
여성은 대답하지 않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마를 짚지 않은 손을 거칠게 휘젓는다.
설명해도 좋다는 뜻이다.
“오랜만입니다. 백도운 님.”
“…응? 절 아세요?”
“이런, 저 기억 안 나십니까? 홍제천 근처에서 한번 뵀었는데요.”
“홍제천 근처요? 거기라면….”
재이네 대장간이 있는 곳이다.
그 근처에서 한번 본 사람.
그런 말을 들어서 그런가?
왠지 어디선가 본 것 같기도 하다.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얼굴.
비쩍 말라 도드라져 보이는 광대.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선 저렇게 광대가 튀어나온 사람이….
어?
“……아!”
“오, 기억나셨습니까?”
“네, 네. 기억났습니다. 분명 화염산 조사팀의… 그러니까….”
“김태석입니다.”
그러면서 고개를 숙인다.
나도 미안한 체를 하며 고개를 숙였다.
김태석.
정장을 입은 채로 재이네 대장간 앞 골목을 내달렸던 사람이다.
화염산 조사팀인 동시에 구청 소속 헌터였지 아마?
그런 사람이 이곳에 있다면….
알레딩 밀러가 한국에 오고 있는 이유를 알겠다.
“화염산 던전 조사… 때문이군요?”
“네, 맞습니다. 던전이 원래대로 되돌아온 사건….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던 일이니까요.”
“…그렇죠.”
“그래서, 미국에서 조사팀을 꾸려 우리나라에 보냈습니다. 그 조사팀의 호위로-”
“알레딩 밀러가 선택됐다…?”
“그렇습니다. 아. 알려진 바로는 선택된 게 아니라 자원했다는 것 같습니다. S급 헌터라도 처음 겪는 일일 테니 궁금한 거겠죠.”
“그, 그렇군요….”
즉, 나 때문이라는 거다.
S급 헌터가 우리나라에 오고 있는 이유가.
화염산 던전을 원래대로 되돌린 사람이 바로 나였으니까.
일이 이렇게 커질 줄이야….
“…….”
“응? 왜 그러십니까? 표정이 안 좋으신데….”
“아무, 아무것도 아닙니다.”
“……?”
김태석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옆에서 지켜보던 한진환과 최희석도 내게 이상함을 느낀 듯하다.
“…언제 도착한답니까?”
“내일 오후 5시쯤 도착한다는 것 같습니다. 평택에 있는 미군기지를 통해 비밀리에 들어올 계획이고요.”
빨리도 오네.
언제 출발했길래 벌써 도착하는 거람?
그나저나 비밀리에라고…?
하긴, S급 헌터의 현 위치를 공개적으로 떠들어 댈 수는 없으리라.
정치적으로도, 군사적으로도.
“진환을 다급하게 찾아온 것도 그래서였어.”
“맞이하러 나갈 때 나한테 경호를 맡아 달래.”
“경호요?”
“어.”
“…….”
D급 헌터가 C급 헌터를 이길 수 없듯.
B급 헌터와 A급 헌터의 실력이 다르듯.
A+급 헌터도 S급 헌터하고는 명백한 차이가 있었다.
과연, 한진환이 알레딩 밀러를 막을 수 있을까.
“야. 너 지금 내가 그 여자 못 막을 거라고 생각했지?”
“그야… 알레딩 밀러잖습니까.”
“흐음. 그렇긴 한데….”
한진환이 씩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싸우면 내가 진다고 생각 안 해.”
“…….”
이 양반 자신감 보소?
저 말을 한 게 한진환이 아니었다면 개소리하지 말라고 했을 거다.
그런데…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했던가?
왠지 그라면 그럴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생각한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이들도 살포시 미소를 지었다.
심지어 한진환을 고깝게 보던 여성조차도 그랬다.
“특히, 너와 함께라면 더욱 쉽게 막을 수 있을 것 같단 말이지.”
“네? 저요? 갑자기?”
“그래. 그래서 말인데. 너도 함께 나가지 않을래?”
너무 뜬금없는 말이었다.
그 탓에 스마트폰 화면을 두드리던 내 엄지가 처음으로 멈췄다.
나를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