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92
제92화
벌컥!
실험실 문이 열렸다.
공우재를 한심스러운 눈초리로 보던 나는 문을 돌아봤다.
한진환이다.
그가 안으로 들어오면서 내게 씩 웃었다.
“리더를 잡은 거야? 대단한걸?”
“…….”
싸우는 모습 다 지켜보고 있었으면서 모르는 척하기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그리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나도 굳이 아는 척할 생각은 없었다.
지켜보고 있었다는 걸 모른 척할 생각이다?
그럼 나도 지켜봤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한 척할 거다.
“그럴 줄 알았어. 유혜주는?”
“여기가 유혜주 실험실 같기는 한데요.”
“없었어?”
“네.”
현재 다졸의 건물은 결계가 쳐져 있다.
밖으로 나가려고 하면 전기 통구이가 될 것을 각오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곳을 빠져나가는 방법은 몇 가지 없었다.
사람을 통구이로 만들어 버리는 결계의 전격을 버티고 나가거나 순간이동 마법을 써서 나가거나.
같은 이유로 워프 게이트로도 빠져나갈 수 있었다.
“이 녀석뿐이었습니다.”
앞으로 걸어오는 한진환에게 아래를 가리켰다.
공우재가 쓰러져 있는 곳이다.
시선이 마주치자 공우재의 얼굴이 변했다.
눈이 최대한으로 커지고 입이 벌어진다.
또 몸을 버둥거리기 시작했다.
상체를 일으키고 싶은 듯하다.
하지만 고통이 남아 있기 때문인지 일으키지 못하고 쓰러졌다.
아주 잠깐의 버둥거림으로 인해 다시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영-”
“반갑다, 공우재.”
“……!”
공우재의 눈이 커졌다.
아까 커진 게 최대한일 줄 알았는데, 틀렸다.
지금이 훨씬 더 컸다.
그 때문에 눈알이 튀어나올 것처럼 보였다.
몇 초간 입을 벌리고 있더니 천천히 말을 이어 나간다.
“저, 절… 아십니까?”
“당연히 알지. 여기 너 잡으려고 왔는데 모를까.”
“절 잡으러 오셨다니… 영광입니다.”
“영광…?”
“이런 꼴을 보여 민망합니다.”
“…….”
영광, 민망….
말하는 것만 보면 붙잡힌 범죄자 같지가 않다.
한진환도 그리 생각한 걸까?
미간을 찌푸리면서 나를 바라봤다.
나를 보는 얼굴은 마치 “이놈 왜 이래?”라고 묻는 것 같았다.
“…….”
“…….”
나도 그처럼 ‘저놈 왜 저러나’하고 쳐다보고 있었다.
비슷한 기분이었으므로 어깨만 으쓱여 보였다.
그래도… 이용할 수 있을 것 같기는 하다.
존경하던 멘토를 만난 멘티 같은 모습이었으므로.
물어보면 대답해 주지 않을까?
나처럼 생각한 듯 한진환이 공우재에게 질문을 던졌다.
“공우재. 유혜주 여기 있었어?”
“…그렇습니다.”
“…….”
진짜로 대답하네?
내가 물어볼 땐 입을 꾹 다물더니….
“어, 그럼….”
한진환은 어이없다는 얼굴로 말을 덧붙였다.
대답할 거 같아서 물어보긴 했는데, 정말로 대답할 줄은 몰랐던 것 같다.
“지금 어디 있어?”
“모릅니다.”
즉답이다.
생각도 하지 않고 바로 대답했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거짓말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거짓말 같지는 않다.
지금 공우재의 얼굴은 아이돌을 우러러보는 팬의 얼굴이었다.
최희석을 바라보던 지상욱처럼.
모른다, 라….
“결계가 처져 있는 이곳을 빠져나간 걸 보면….”
“응?”
“순간이동 마법이나 워프 게이트를 이용했을 겁니다.”
“그래? 잠깐만 기다려. 확인해 볼 테니.”
그러고는 한진환은 곧바로 바닥으로 전류를 흘려보냈다.
발아래에서 전류가 흐르는 게 느껴졌다.
아프거나 따끔하지는 않았다.
아르카로 만든 푸른 칼날이 베지 않겠다는 의지를 담지 않았을 때 바위와 나무를 베지 않았던 것과 같다.
순수한 마나로 만들어 흘려보낸 전류에는 공격 의지가 담겨 있지 않았다.
곧 한진환이 말했다.
“워프 게이트는 없어.”
“그럼 순간이동 마법을 썼겠군요.”
“하지만 그녀는 마법사가 아니지.”
“네.”
그의 말마따나 유혜주는 아이템 메이커다.
적어도 B급 마법사 정도는 돼야 쓸 수 있는 순간이동 마법을 직접 펼쳤을 리 없다.
그런데도 이곳을 빠져나갔다면, 방법은 하나다.
“순간이동 마법이 저장된 스크롤을 사용했겠네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렇다면….”
나는 공우재를 쳐다봤다.
유혜주가 스크롤을 사용해 이곳을 빠져 나갔다면, 공우재의 “모릅니다”라는 대답은 사실일 거다.
이동한 장소는 스크롤을 쓴 주인만이 알고 있을 테니까.
다른 나라일 수도 있고, 다른 대륙일 수도 있다.
“유혜주는 포기해야겠군요.”
“그래야겠지? 다른 정보를 알아내지 않는 한은.”
“아쉽게 됐네요.”
“내 잘못이야. 너무 느긋했어. 뭐, 놓친 건 어쩔 수 없는 일이고….”
한진환은 공우재를 바라봤다.
공우재는 아까부터 그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아이돌을 보는 팬 같은 얼굴도 여전했다.
그 시선이 부담스러운 걸까?
스리슬쩍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저 친구 넘기고 나서 다음으로 어느 쪽으로 갈래?”
“남은 곳이 어디 어디였죠?”
PDF 파일에 따르면 강원도에는 세 조직이 있었다.
우리는 그중에서 다졸에 제일 먼저 쳐들어왔다.
이유는 유혜주가 있을 가능성이 가장 컸기 때문이다.
가능성대로 그녀가 있기는 했었다.
안타깝게도 도망쳐서 놓쳐 버렸지만….
뭐, 그렇다고 해서 두 손가락 프로젝트를 여기서 그만둘 수는 없었다.
유혜주를 붙잡지 못했더라도 한국에서 바바와 브이피를 소탕하는 일은 계속 진행해야 했다.
이제 남은 건 이곳 강원도를 포함해 경기도와 충청도, 그리고 제주도뿐이다.
얼마 남지 않았다.
“치악산이랑 양양.”
“그럼, 먼저 치악산 쪽부터 처리하는 게 어떨까요?”
“왜?”
“밤에 산 타는 것보단 낮에 산타는 게 좋을 테니까.”
“그렇긴 하네.”
한진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 의견에 동의한 것이다.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낸다.
“그럼 그렇게 하는 거로 하고…. 공우재 붙잡았다고 협회에 연락 좀 하마.”
“그러시죠. 아.”
“……?”
“넘어가기 전에 볼일 좀 보고 오겠습니다.”
“볼일? 무슨 볼일?”
엘프들 밥 챙겨 줘야 돼요.
그 말을 할 수 없었으므로 대충 둘러댔다.
아니,
“아. 한 시간?”
둘러대기도 전에 한진환이 알겠다는 듯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흘 동안 꼬박꼬박 한 시간 동안 자리를 비웠기 때문인가?
이제 자리를 비우는 데에 익숙해진 것 같다.
“대체 뭘 하고 돌아다니는 건지….”
“하하.”
“뭐, 처음부터 그렇게 계약했으니 할 수 없지.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다녀와.”
“네. 이해해 줘서 고맙습니다.”
그리 말한 후 공우재를 바라봤다.
실험실을 빠져나가기 전에 그에게 물어볼 것이 있었다.
한진환을 보고 있던 공우재는 내 시선을 느끼곤 고개를 돌렸다.
“…왜?”
“너한테 물어볼 게 있어서.”
“나한테?”
“어. 별건 아니니까 긴장하지 마.”
“……?”
“강원도 특산물 좀 추천해 주라.”
그동안 나는 전국 각지의 대표 음식을 엘프들에게 갖다 줬다.
부산에서는 흑염소 불고기를 사줬다.
나도 먹을 겸 색다른 고기가 뭐 있을까 검색하다가 찾은 거다.
경상도에서는 울산의 언양 불고기를 사 줬고, 전라도에서는 담양의 떡갈비를 골랐다.
그리고 엘프들은 지금까지 사 준 사람이 보람을 느낄 만큼 맛있게 전부 먹어치웠다.
나흘째 되는 오늘도 실패할 생각은 없었다.
“특산물?”
“어.”
“갑자기?”
“어.”
“…뜬금없긴.”
공우재가 눈을 찌푸린다.
그러면서도 골똘히 생각하기 시작했다.
생각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추천하자면… 치악산 쪽의 복숭아나 양양의 송이 정도겠군.”
“아.”
“정선의 곤드레도 나쁘지는 않겠어.”
“확실히 맛있을 것 같긴 한데….”
설명이 부족했던 것 같다.
복숭아, 송이버섯, 곤드레.
맛있긴 하겠지만 쓸모없는 음식들이다.
우리 엘프들은 과일이나 채소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오늘 저녁은 정선 가서 먹을까….”
한진환이 입맛을 다시며 중얼거렸다.
그의 말마따나 곤드레밥에 비빔장을 비벼 먹을 생각을 하니 침이 고였다.
“근데 내가 원한 건 고기 종류야. 다시 추천해 줘.”
“고기? 바라는 것도 많군.”
“하하. 선물용이라서 말이야.”
“선물용이라….”
“받는 사람들이 육식주의거든.”
정확히 말하자면 사람은 아니었지만.
공우재가 다시 고민에 빠졌다.
이번에도 고민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씩 웃고는 말했다.
“그렇다면 역시 하나밖에 없지.”
“오?”
“바로-”
***
강원도. 고기.
그 두 단어를 합쳤을 때 공우재는 딱 하나의 음식을 생각해 냈다.
치이익.
고기 굽는 소리가 빗소리처럼 울려 퍼진다.
그렇다.
공우재가 추천해 준 것은 바로 횡성 한우다.
흰 꽃이 아름답게 피어난 고깃덩이를 가스버너 위에 얹는다.
성역은 바람이 세게 불지도 않고 춥지도 않다.
새싹이를 비롯한 어린나무와 풀숲이 자라나고 있어 풍경도 좋다.
고기 구워 먹기 딱 알맞은 장소라는 소리다.
다 구운 고기를 접시에 덜어 냈다.
“레지나 님. 여기 있어요.”
“우와….”
레지나는 접시를 건네받으면서 입맛을 다셨다.
기다리는 동안 몇 번을 다셨는지, 분홍빛 입술이 반들반들해 보인다.
소고기 구워지는 냄새를 오랫동안 맡았을 테니 그럴 수밖에.
그녀는 다른 엘프들이 받아간 뒤 맨 마지막으로 고기를 받았다.
리더로서 마지막까지 참은 것이었다.
나이가 가장 어렸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 모습이 대견스러워 다른 엘프들보다 한 점 더 구워줬다.
“잘 먹을게요!”
“네, 맛있게 먹어요.”
횡성 한우를 받아들자마자 자리에 가 앉는다.
그러고는 곧바로 손에 쥐고 있던 포크로 한우를 찍어 먹었다.
포크를 쥔 손이 마구 흔들렸다.
“으으응! 맛있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다른 엘프들도 마찬가지였다.
기름기가 잔뜩 묻은 입술을 혀로 닦으며 한우를 포크로 찍어 먹었다.
맛있게 잘 먹는 모습이 보기 참 좋다.
저런 모습 보려고 고기를 구워 준다는 사람들의 말이 이해가 갈 정도다.
그래도… 역시 고기는 먹는 게 최고지.
나도 이제 좀 구워 먹어 볼까?
고기 구워 주느라 내 걸 먹지 못했다.
아마 내 입술도 레지나처럼 반들반들할 것이다.
“관리인님.”
“아, 네. 파트리아 님.”
“오늘도 덕분에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맛있었다니, 다행이네요.”
진심이었다.
이게 얼마짜리인데.
엘프들이 맛있게 먹지 않았더라면 굉장히 슬펐을 거다.
“혹시 너무 무리하시는 건 아닙니까?”
파트리아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무리하긴 했지.
한우란 게 원래 내 돈 주고 사서 먹기엔 아까운 음식이니까.
비싼 만큼 맛있긴 하지만.
“고기의 빛깔로 예상하건대… 귀한 재료 같아 보입니다.”
“음. 비싼 고기긴 하죠.”
“역시나! 다음부턴 이러지 말아 주십시오. 저희를 위해 주시는 건 감사합니다만….”
“…….”
아무래도 파트리아가 오해를 좀 한 것 같다.
내가 맛있는 음식들을 구해 온 건 오로지 엘프들만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나를 위해서이기도 했다.
우리나라 음식을 맛있게 먹는 엘프들을 보고 있으니 흐뭇함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뿐인가?
엘프들은 배부르게 먹고 나면 열심히 새싹이를 보살폈다.
온종일 알테라-쇼넴을 써 가면서 말이다.
그 덕분인지 새싹이한테서 뿜어지던 은은한 빛이 더욱 세지기도 했다.
새로운 이파리가 자라나지는 않았지만, 영양 상태가 좋아졌음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뭐, 그래도 일단 맞장구쳐 줘야겠다.
내게 고마움을 느끼는 건 좋지만, 미안함을 느끼게 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파트리아는 고개를 숙였다.
들어줄 생각도 없는데 감사까지야.
“저, 관리인님….”
“네.”
“한 가지 부탁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부탁이요?”
“이렇게 매번 음식을 얻는 게 죄송스러워서요. 목장을 만들어 볼까 합니다.”
“목장…이요?”
“네. 그래서 말인데, 혹시 동물들을 구해 와 주실 수 있겠습니까?”
목장을 만들게 동물들을 구해 와 달라.
파트리아의 입에서 부탁이 나오자 이어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E등급 세계수 퀘스트가 발생했습니다.] [퀘스트 내용 – 엘프들이 목장을 만들고자 한다.] [목장을 위한 각종 살아 있는 동물을 구해오자.] [성공 보상 – 어린 세계수의 나뭇잎.] [실패 시 어린 세계수와 엘프에게 실망을 받게 됩니다.]오, 퀘스트라면 언제든 환영이지!
“어라?”
성공 보상이….
어린 세계수의 나뭇잎?
전대 세계수의 나뭇잎이 아니라?
나는 의문을 느끼며 고개를 들었다.
은은한 빛을 흩뿌리는 이파리들이 보였다.
내 손바닥보다 큰 이파리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