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91
제91화
꽝!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쳤다.
천둥소리를 듣자마자 다졸 길드원들은 곧장 단 하나의 행동을 취했다.
어디로든 멀리 도망치는 것.
뿔뿔이 흩어져 도주하는 것.
그러나… 그들은 곧 깨달았다.
그들이 있는 건물은 빠져나갈 수 없는 감옥이 되어 있었다는 걸.
문을 열기 위해 문고리를 붙잡은 동료 한 명이 전기에 감전되어 쓰러졌기 때문이다.
문으로는 나갈 수 없다.
아니, 건물에서 나갈 수 없다.
그 사실을 깨닫고서도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건물 안에 있는 모든 이들이 건물 꼭대기 층으로 올라갔다.
몰이를 당하고 있음을 알면서도 그렇게 행동했다.
꼭대기 층에 순간이동 마법진이나 워프 게이트 같은 탈출로가 준비돼 있지는 않았다.
그들은 그저 자신들을 미끼로 삼은 거였다.
다졸 길드의 리더인 공우재가 지하로 내려갔음을 알고 있기에, 조금이라도 더 시간을 벌고자 위로 올라간 것이다.
“대, 대장이 도망칠 수 있을까?”
“…….”
한 사내가 질문을 던졌다.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질문에 대한 대답은 너무나 명백했다.
도망칠 수 없다.
그들이 하는 행위는 그저 1분에서 2분 정도 시간을 버는 행위밖에 되지 못했다.
뚜벅, 뚜벅.
계단을 올라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꼭대기 층에 있는 모든 시선이 소리가 들려온 곳을 향했다.
부스스한 머리의 남자.
“한진환…!”
이름을 불린 남자, 진환은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저희끼리 삼삼오오 모여 있는 이들을 바라봤다.
오른손을 들어 올린다.
검지와 중기를 펼친 채.
“너희에겐 두 가지 선택권이 있어.”
“그게… 뭡니까?”
“가만히 잡히는 거. 아프게 잡히는 거.”
그리 말하면서 진환은 다졸 길드원들 사이를 걸었다.
다졸의 구성원들은 가만히 서서 자신들 사이를 걷는 그를 바라봤다.
그가 제안한 두 가지 중에서 선택할 것은 당연히 하나였다.
너 나 할 것 없이 손을 들어 올린다.
“가만히! 가만히 잡히겠습니다!”
“저도! 저도 그냥 잡혀가겠습니다!”
“저흴 제발 붙잡아 가 주십시오!”
그들은 한진환에게서 도망칠 수 없음을 너무나 잘 알았다.
어차피 잡힐 것이라면, 아프지 않게 잡히는 게 가장 현명한 판단이었다.
한진환이 그들을 돌아보며 웃었다.
“잘 생각했어들.”
마치 아이를 타이르는 듯한 목소리와 함께,
꽝!
또다시 벼락이 떨어져 내렸다.
건물이 울릴 정도로 우렁찬 소리였다.
그 소리에 다졸 길드원들은 귀에서 이명 현상을 느꼈다.
삐 하고 울리는 소리가 점점 작아질 때, 그들은 자신들의 두 팔이 묶여 있음을 깨달았다.
한진환이 그들을 포박한 거다.
한 명도 아니고 스무 명 가까이 되는 인원을 한순간에 묶은 것이다.
그 순간 그들은 하나의 감정을 동시에 느꼈다.
바로 안도감이었다.
한진환이 포박하는 게 아니라 죽이려고 했었다면?
그들은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숨이 끊겼으리라.
털썩, 털썩….
한숨을 몰아쉬며 주저앉는 사람들을 돌아보면서 한진환은 머리를 긁적였다.
“여기 없군….”
중얼거린 후 눈을 감는다.
그의 발에서 빠직거리며 마나가 빠져나왔다.
전류를 흘려 주변을 탐색하는 스킬이었다.
곧 지하층에 두 존재가 서로를 바라보고 있음을 확인했다.
다만, 감지된 존재의 크기가 조금 이상했다.
인간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거대했다.
마치 게이트에서 몬스터를 감지한 듯한 느낌이었다.
설마….
한진환이 눈을 뜨고 주저앉아 있는 남자를 불렀다.
“이봐.”
“네, 네? 저 부르셨습니까?”
“혹시 공우재 괴물화할 줄 알아?”
“그! 그렇습니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잘됐군….”
“네?”
오른손을 휘저으면서 진환은 눈을 감았다.
그러고는 지하층을 향해 마나를 흘려보냈다.
그의 발에서부터 흘러나온 마나가 순식간에 지하층에 다다랐다.
마나는 지하층의 모습을 그에게 보여 줬다.
백도운과 트롤처럼 변한 공우재가 서로를 쳐다보고 있었다.
“백도운은 괴물처럼 변한 인간을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다.”
진환의 머릿속에 최희석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최희석은 그 정보를 말하면서 관련 보고서를 주었다.
다만, 보고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도운이 이정근을 원래대로 되돌리던 작업이 묘사돼 있었는데, 말 그대로 작업 묘사만 돼 있었다.
어떻게 그런 작용을 하는 것인지까지는 설명이 되지 않았다.
반쪽짜리 보고서.
그 때문에 진환은 그것을 읽고 나서 그리 생각했다.
또 보고서를 작성한 사람이 서류 작업에 익숙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헐…?”
그런데 도운이 그 보고서와 똑같은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오른손을 나무뿌리처럼 바꾼 것이다.
나무뿌리처럼 변한 오른손은 트롤을 붙잡고는 모든 에너지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트롤의 몸이 작아졌을 때, 도운은 이어 왼손을 나무뿌리로 바꾸고는 공우재의 이마에 쑤셔 박았다.
진환이 보기에 도운은 그의 마나를 공우재에게 억지로 주입하고 있었다.
저런 짓을 하면 죽어 버릴 텐데?
그런 생각이 진환의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공우재는 죽지 않았다.
고통으로 울부짖을 뿐 죽지는 않았다.
이내, 공우재의 몸이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트롤처럼 변했던 몸 대신 인간의 몸이 나타났다.
“……?”
대체 어떻게?
진환은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도로 인간의 몸이 된 공우재만 보일 뿐이었다.
“허, 이제 보니…. 그 보고서가, 아주 완벽한 보고서였구먼?”
진환은 헛웃음이 나왔다.
***
“굵은 나뭇가지라니…”
어이없는 마음에 속마음이 밖으로 나왔다.
아르카의 전신이 됐던 통나무가 굵은 나뭇가지가 아니라는 건데….
그 통나무가 가는 나뭇가지라거나 보통 크기의 나뭇가지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하아, 하윽! 하….”
퀘스트 알림 창을 바라보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굵은 나뭇가지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긴 하다.
궁금하긴 하지만, 지금에 와서 퀘스트를 완료하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족의 권속과 싸워 승리했습니다. (7/10명)]퀘스트 완료까지 앞으로 3명 남았다.
3번만 더 하면 퀘스트 조건을 모두 채우게 된다.
1명씩 쓰러뜨릴 때마다 완료 보상이 좋아지는 것을 보면, 조건을 모두 채웠을 땐 굵은 나뭇가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좋은 무언가를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예상을 한번 해 보자면,
전대 세계수의 열매
같은 거라든가.
“하아, 하….”
“…아까부터 정신 사납게시리.”
아까부터 들려오던 숨소리의 주인은 공우재다.
그는 엄청난 고통을 느꼈을 텐데도 지상욱과 달리 기절하지 않았다.
의식을 잃지 않고, 제정신으로 날 쳐다보기까지 한다.
다만, 비를 맞은 듯 온몸이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거칠게 숨을 연신 헐떡여 댔고, 팔과 다리도 덜덜 떨렸다.
그런 와중에도 시선은 계속 나를 향했다.
힘을 빼앗길 때처럼 눈을 빛내고 있는 채로.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날 저렇게 쳐다보는 걸까.
사냥감을 노리는 사냥꾼의 눈빛과는 조금 다르다.
불법 약물을 제조하는 길드의 리더라서 그런가?
“후, 후우….”
“…대단하네. 기절할 줄 알았는데.”
“고통은, 익수욱흐읍…!”
그는 말을 하다 말고 이를 악물었다.
아직 몸에 고통스러운 감각이 남아 있는 듯했다.
그래도 말하고자 했던 게 무엇인지는 알겠다.
아마 “고통은 익숙하다”라고 말하고 싶었으리라.
말했던 대로 고통은 익숙한 덕분일까?
곧 공우재의 입에서 흘러나오던 거친 숨소리가 줄어들었다.
“방금… 뭐라고…?”
“방금? 뭘?”
모르는 척 되물었다.
공우재가 물어본 건 뻔하다.
내가 “굵은 나뭇가지”라고 중얼거린 걸 들은 거다.
가르쳐 줄 생각이 없어서 빤히 쳐다보기만 했다.
“…….”
“…….”
피식.
힘없이 웃는다.
그러고는 내게서 시선을 떼고 제 몸을 살펴보기 시작한다.
나와 싸우기 전에 보였던 덤덤한 얼굴로.
대단한 놈이다.
몇 초 후, 공우재가 눈을 감았다.
“심장을, 건드렸나….”
“맞아.”
“…….”
“넌 이제 다시는 트롤로 변신하지 못할 거야.”
그뿐만이 아니다.
공우재는 원래 지니고 있던 힘도 쓰지 못할 거다.
이정근처럼 모든 힘을 잃은 것이다.
하트 브레이크를 쓴 사람처럼 심장이 고장 났으니까.
그 사실을 안 공우재는,
“흠….”
무덤덤했다.
가만히 누워서는 천장만을 올려다봤다.
음…. 좀 이상한걸?
힘을 전부 잃었는데 어떻게 저렇게 덤덤할 수 있는 걸까.
이정근은 힘을 잃은 것을 알게 된 순간 발악을 해 댔었다.
아니, 비단 이정근뿐만이 아니다.
힘을 잃는 사람들은 누구나 지랄발광을 해 대곤 한다.
나도 그랬다.
2년 전 하트 브레이크를 쓰고 모든 힘을 잃었을 때….
이정근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었다.
내 인생에 있어 최고의 흑역사를 꼽는다면 그때를 고를 정도로 심했다.
그런데… 공우재는 마치 이렇게 될 거라는 걸 각오한 사람처럼 보였다.
“예상과 다른가 보지?”
“응?”
“내가 절망하거나, 절규할 거로 생각한 것 같은데.”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럴 거로 생각했지. 너 왜 무덤덤하냐?”
그리 묻자 돌아온 건 미소였다.
웃어?
제힘 빼앗는 놈을 보고?
“이미 전부 포기했으니까.”
“……?”
“한진환이라는 이름엔 그만한 힘이 있거든….”
“아.”
“어제 그 이름을 들었을 때 죽음을 각오했다. 힘을 잃는 것만으로 끝난다면… 저렴하게 값 치른 거지.”
“…….”
“그리고 무엇보다….”
“무엇보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더니 입을 다문다.
다시 천장을 올려다본다.
대체 뭐야, 이 모든 일에 달관한 거 같은 놈은?
전부 포기했다고 해서,
죽음도 각오했었다고 해서,
이렇게 무덤덤할 수가 있나?
“야. 한 가지 묻자.”
천장을 올려다보던 공우재가 시선을 돌린다.
나를 바라보는 눈에는 적의가 없다.
이정근조차 날 바라볼 때 비굴한 적의가 있었는데….
공우재의 얼굴에는 나른한 감정만이 담겨 있었다.
그가 말했던 대로 각오했기 때문일까.
“…너 같이 몬스터화 할 수 있는 놈. 길드에 또 있어?”
“있긴 했지. 네 명 정도.”
“오. 그래? 지금 어디 있어?”
완전 대박이었다.
네 명 정도나 있다니.
그놈들에게서 에너지를 빼앗는다면….
첫 번째 결실이란 걸 이룰 수 있을 거고, 퀘스트도 완료할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전부… 처리한 지 오래다.”
공우재의 입에서 나온 말이 속을 쓰리게 만들었다.
있긴 했고, 정도였고.
생각해 보면 그가 한 말은 전부 과거형이었다.
“전부? 한 명도 남김없이?”
“할 수 없었어.”
그가 변명하듯 덧붙였다.
“녀석들은 더는 ‘인간’이라고 부를 수 없었으니까….”
“이런….”
그야 그럴 것이다.
지상욱도 그랬다.
만티코어처럼 변했을 때 제정신을 유지하지 못했다.
몬스터처럼 다른 헌터들을 먹이로 생각하고 공격했을 뿐.
하지만… 정신을 차리게 할 방법은 있었다.
그것도 두 가지나.
새싹이의 아침이슬을 먹이는 것.
세계수의 뿌리로 힘을 빼앗는 것.
지상욱과 이정근을 각각 그 방법들로 제정신을 차리게 했었다.
“…….”
하지만 그 사실은 말하지 않기로 했다.
공우재의 목소리에서 쓸쓸함이 묻어났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가 말한 ‘녀석들’은 부하나 동료들이 아니었을까 싶다.
동료를 처리해야 했을 그의 심정이 이해가 되었다.
“넌 대체 유혜주의 뭘 믿고 그것들을 복용한 거야?”
“음? 아니, 나는 바바와 브이피를 복용하지 않았어.”
“……?”
“나도 약물 제조의 프로다. 마약 같은 걸 복용할 리 없지.”
“그럼 너 트롤로 변신은 어떻게 한 건데?”
공우재는 크라우드가 아니다.
마족의 권속들은 변신했을 때 인간형을 유지했었다.
박쥐 인간, 지네 인간, 벌 인간 같은 식으로.
그럼 공우재는 어떤 방법으로 V 물질에 노출된 걸까.
“몸을 몬스터로 바꾸는 물질…. 그것만 빼내서 체내에 주입했다.”
“무, 뭐 이 미친놈아?”
동정심이 생기려다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V 물질을 직접 주입했다?
그러니까, 공우재는 괴물로 변하리라는 걸 알고서 주입했다는 거다.
제 몸에도, 동료의 몸에도.
힘을 얻기 위해서 말이다.
아니, 그건 좀 아니잖아….
[세계수 어린나무가 경악을 금치 못합니다.] [눈앞의 인간의 어리석음에 나뭇잎을 휘휘 젓습니다.]새싹이가 내 의견에 동의한다는 듯 메시지를 보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