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98
제98화
“여기 있어도 되고, 다른 곳을 둘러봐도 좋네.”
그리 말한 후 황 장관은 배 사무관과 떠났다.
장관실에 덩그러니 남은 나와 한진환은 바로 스마트폰을 꺼냈다.
나는 [세계수 키우기]를 하기 위해서였고, 그는 통화하기 위함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창 쪽으로 걸어갔다.
“아, 형님. 방금 장관 만났어요.”
형님이라고 하는 걸 보니 상대는 최희석인 모양이다.
아마 지금까지의 일을 협회에 보고하는 의미도 포함된 것 같다.
그는 방금 황 장관과 나눴던 대화를 일일이 말했다.
굳이?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앞으로 일정을 설명받았을 뿐이다.
톡, 토톡.
소파에 등을 기대며 스마트폰을 두드렸다.
검지와 중지가 빠르게 교차했다.
내 시선은 스마트폰을 향하지 않았다.
시야 한 편을 가리고 떠 있는 퀘스트 알림창을 바라봤다.
[관리인이 “세계수를 키우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에 따라 전대 세계수 퀘스트가 발생합니다.]“…….”
세계수를 키운다고 말했을 뿐인데 퀘스트가 발생할 줄은 몰랐다.
이런 퀘스트 발동 요건이 있을 줄이야.
그나저나 지금에 와서 발동한다는 게 웃기다.
새싹이를 키운 지도 거의 1달이 다 되어 가는데 말이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세계수를 키운다고 말한 적이 없었던가?
도희와 태천이에게는 말했었던 것 같은….
“아.”
생각해 보니 두 사람에게도 세계수를 키운다고 말한 적은 없었다.
“스마트폰에 세계수가 자라났어.”
딱 그렇게만 말했었다.
게임 이름이 [세계수 키우기]인 것을 알고 있으니 내가 세계수를 키워 냈다는 것 자체는 알고 있을 거다.
앞으로 세계수를 성장시킬 거라는 것도.
하지만… 그 사실에 대해서 내가 입 밖으로 직접 말한 적은 없었다.
[B등급 전대 세계수 퀘스트 ‘관리인의 길(초급)’이 발생했습니다.] [퀘스트 내용 – 따스한 손길 10000번 쓰기(435/10000)] [A등급 이상의 비료 1번 주기(0/1)] [알테라-쇼넴 1000번 쓰기(36/1000)] [세계수의 뿌리 1000번 쓰기(0/1000)] [성공 보상 – 전대 세계수의 수액]깨야 하는 조건이 많다.
보통 한 가지 조건만 해결하면 됐는데, 이번엔 네 가지나 되었다.
다행인 것은 어려워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런데… 횟수가 좀 이상하다.
따스한 손길은 지금도 화면을 두드리고 있으니 올라가는 게 당연했다.
방금 435번이었던 횟수는 벌써 548번이 돼 있었다.
이 순간에도 빠르게 550, 551, 552 오르고 있다.
이런 속도라면 1만 번쯤은 오늘 안에라도 끝낼 수 있을 거다.
이상한 건 알테라-쇼넴이었다.
나는 한 번도 알테라-쇼넴을 쓴 적이 없었는데 숫자가 늘어나 있었다.
이건 아마도… 성역에 있는 엘프들 덕분인 거 같다.
화면을 바라봤다.
새싹이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알테라-쇼넴을 쓰는 늙은 엘프가 보인다.
SD 캐릭터로 보이는 엘프들은 다들 비슷한 외형이었지만, 머리카락 길이가 다르다거나 수염이 자랐다거나 하는 식으로 달라서 한 명씩 구분할 수 있었다.
흰 수염이 풍성하게 자란 늙은 엘프는 레디투스가 분명했다.
그의 뒤에는 일렬로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엘프들이 보였다.
금발이 가장 빛나는 외형을 지닌 레지나는 보이지 않았다.
인원 자체도 12명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알테라-쇼넴을 쓰기 위한 쓰레기 따위를 찾고자 동료들과 성역 바깥으로 나선 듯하다.
그리 어렵지는 않을 거다.
성역 바깥은 황폐하고 파괴되어 쓰레기 같은 것들이 아주 많았으니까.
쓰레기 탐색보다 마족의 군세에 들키지 않도록 조심하는 게 더 힘들 테지.
“엘프들이 찾아와 줘서 다행이지….”
그들이 성역을 찾아와 주지 않았더라면 이번 퀘스트는 해결하지 못했을 거다.
알테라-쇼넴의 존재조차 몰랐을 테니까.
관리인의 교본 3권째를 얻어서 어찌어찌 알았다고 해도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거다.
따스한 손길 만 번보다 알테라-쇼넴 천 번이 훨씬 더 수고스럽고 오래 걸릴 테니까.
“방금 뭐라고 했냐? 엘프?”
통화를 끝낸 한진환이 걸어오며 물었다.
내가 중얼거린 것을 들은 모양이다.
맞은편 소파에 앉는 그에게 대답했다.
“게임 얘기예요.”
“게임? 아. 네가 하고 있다는 거?”
“네.”
스마트폰을 들어 화면을 보여 줬다.
한진환은 고개를 내밀어 화면을 들여다봤다.
어린나무와 엘프들을 보고는 짧게 감탄사를 흘린다.
입꼬리도 살짝 올라간다.
귀여운 걸 본 사람들이 흔히 보이는 미소였다.
“오…. 생긴 거 아기자기하니 귀엽네. 생긴 거 보면 인기 많을 거 같은데?”
“이번에 업데이트된 거예요. 그전에는 이런 거 없었어요.”
“그랬구만. 이 캐릭터들은 엘프지?”
그러면서 손을 내뻗는다.
이런. 안 되지.
앞으로 내민 스마트폰을 거둔다.
손이 화면에 닿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번개의 마나가 화면을 통해 새싹이에게 전달될 테니까.
예전에 도희가 화면을 건드렸을 때도 마나가 옮겨졌었다.
한진환도 그럴 것이 분명하니 손가락이 화면에 직접 닿는 것은 피해야 했다.
[세계수 키우기]가 평범한 스마트폰 게임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리게 될지도 모른다.“치사하긴.”
“하하.”
어색하게 웃으며 상황을 얼버무렸다.
한진환도 피식 웃은 후 물었다.
“대기 시간 동안 뭐 할 거냐?”
“우선… 밥 먹어야죠?”
물론, 같이 먹을 사람은 한진환이 아니다.
성역에서 열심히 알테라-쇼넴을 쓰고 있는 엘프들이다.
며칠 동안 들르지 못할 것도 생각해서 며칠 분량의 음식을 갖다 줄 생각이다.
같이 먹자고 하면 거절해야지.
그런 생각을 하는데, 한진환은 다행히 밥 생각이 없는지 딴소리를 했다.
“얼마나 걸릴 것 같아?”
“음. 바깥으로 나가지 말라고 했으니까, 얼마 걸리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황 장관은 건물 안에 있어 달라고 했었다.
아무리 자유시간이라고 해도 제멋대로 행동하는 건 피해야 할 듯하다.
이 안에도 편의점이나 마트 같은 것은 있었으니 문제는 없었다.
충분히 음식을 구할 수 있었으니까.
“그럼 밥 먹고 나서 몸이나 좀 풀까?”
“몸이요?”
“정확히는, 실험을 좀 하고 싶네?”
“실험이라면…?”
“내 전력을 네가 버틸 수 있는지 없는지.”
“…갑자기요?”
“그럴 일이야 없겠지만… 일이란 게 또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
어떻게 될지 모를 일.
한진환이 전력을 내야 하는 일.
두 정보를 취합하면 하나의 결과를 도출해 낼 수 있다.
알레딩 밀러와 싸워야 하는 상황.
그것을 말하는 것이리라.
물론, 그의 말마따나 그럴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유가 없으니까.
“…그렇게 하죠.”
“좋아. 그럼 밥 먹고 지하 1층으로 와. 거기 전체가 훈련장 겸 대련장이니까.”
“네. 알겠습니다.”
내가 대답하자 한진환이 장관실을 빠져나갔다.
아마 바로 지하 1층에 가려는 듯했다.
나도 내 할 일 하러 가야겠다.
우선… 마트에 가서 육류 위주로 음식을 사야겠다.
***
짐을 양손에 한가득 짊어지고 성역에 들어왔다.
며칠 동안 자리를 비울지도 모르기 때문에 냉동 음식을 주로 구매했다.
성역에는 여러 고기를 구워 먹었던 불판 따위들이 구비돼 있었다.
재료만 있다면 내가 없어도 알아서 요리해 먹을 수 있을 거다.
신선함을 유지하는 마법도 쓸 줄 알았으니, 신선도에 관해서도 걱정할 필요 없었다.
나를 발견한 엘프들이 인사를 해왔다.
“오! 안녕하세요!”
“관리인님! 오셨습니까!”
엘프들은 처음 만났을 때와 달리 힘이 넘쳐 보였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충분한 휴식을 취한 덕분인 것 같다.
규칙적인 생활을 이어 나갔으니 건강함을 되찾은 것이다.
활력이 넘치는 그들을 보니 내가 다 흐뭇하다.
수염을 깔끔하게 정리한 파트리아가 다가왔다.
“오늘도 이렇게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엘프 중 날 직접 맞이하는 건 언제나 레지나나 파트리아였다.
다른 엘프들과도 친해지긴 했지만, 날 직접 상대하는 건 늘 그 두 엘프였다.
아무래도 장로나 여왕같이 자격을 따지는 듯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런 거 안 따져도 상관없었지만….
엘프들은 그들 나름대로 규율 같은 게 있을 것이었다.
내가 함부로 왈가왈부할 문제는 아니다.
“레지나 님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나 보죠?”
“네. 위그드라실에 계십니다.”
“고생이 많네요.”
“마음 같아선 제가 나가고 싶습니다만, 열쇠를 다룰 수가 없는지라….”
“어, 그런 거였어요?”
나는 파트리아가 나이가 많기 때문에 레지나가 배려해 주는 건 줄로만 알았다.
열쇠를 다룰 수 없다고 말하는 걸 보면 그게 아닌 모양이다.
“사실, 그분께서 주신 열쇠는 주인을 선택합니다.”
“주인을요?”
“네. 아쉽게도 저와 다른 이들로서는 열쇠를 다루기에 역부족이었습니다.”
파트리아는 고개를 돌려 숲길을 바라봤다.
레지나의 안내를 받았었던, 위그드라실로 향하는 길이었다.
“오로지 레지나 님만이 다룰 수 있었지요.”
“…….”
즉, 성역과 위그드라실을 왕래할 수 있는 건 레지나뿐이라는 소리다.
굳이 더 포함하자면 그녀와 접촉한 이들 정도?
하지만 리더인 레지나와 장로인 파트리아 둘 다 자리를 비울 수는 없을 것이다.
관리자가 없어지면 제멋대로 하는 이들이 나타나기 마련이니까.
아무리 12명밖에 되지 않는 적은 인원이라고 해도.
외적으로 보기에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파트리아 님.”
“네.”
“급한 일이 생겨서 동물들을 구해 오는 건 며칠 걸릴 것 같습니다.”
“괜찮습니다. 부담 갖지 말아 주십시오.”
“같은 이유로, 성역에 며칠 못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죄송합니다.”
“아니, 아닙니다. 여러모로 부탁하는 처지로서 항상 감사할 따름입니다. 무엇보다… 성역 바깥에서도 온종일 세계수 님을 관리하신다는 것을 저희는 잘 알고 있습니다.”
“……?”
알고 있다고?
말하는 걸 보니 내가 따스한 손길로 새싹이에게 마나를 전달하는 걸 알고 있는 눈치다.
직접 본 적도 없을 텐데 어떻게 아는 걸까?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파트리아를 쳐다보는데, 그는 웃기만 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다른 엘프들도 마찬가지였다.
포근한 미소를 지으면서 날 바라본다.
뭐야, 새싹이한테 들었나?
***
성역에서 빠져나와 바로 지하 1층으로 향했다.
지하 1층엔 복도에서부터 사람들로 득시글했다.
훈련장이나 대련장이나, 오는 사람만 오는 곳이다.
헬스장에 나갔을 때 매일 보는 얼굴만 보는 것과 같다.
그러니 이렇게 많은 인원이 모여 있는 것은 다른 이유가 있다는 소리다.
이유는 뻔했다.
한진환.
내 예상대로 그가 대련장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정좌하고 앉아 눈을 감은 채로.
“하, 포스 봐라.”
“가만히 앉아 있는데도 멋있네.”
“나도 언젠간….”
“그런데 훈련장도 아니고 왜 대련장? 상대될 만한 사람이 있기는 해?”
그를 구경하러 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다만, 구경꾼들은 섣불리 다가가지 못하고 멀찍이 떨어져 바라보기만 했다.
그에게서 다가오지 말라는 아우라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기 때문…은 아니다.
단순히 대련장 타임란에 ‘한진환 대 백도운’이라고 쓰여 있어서다.
자유 대련이 아니라, 상대가 있는 대련이니 다가가지 않는 거다.
방해가 되지 않도록.
“백도운이 누구야?”
“몰라.”
“들어본 거 같긴 한데….”
“아. 기억났다!”
“누군데?”
“그, 왜, 있잖아. 그… 김무연 죽인 놈!”
“아, 아아!”
오. 나에게 붙은 꼬리표가 달라졌다.
원래는 백도희 오빠나 이태천 친구가 대부분이었다.
날 안 좋게 떠드는 사람들 사이에선 친구 잘 만난 낙하산이나 여동생 등골 브레이커 정도로 불렸고.
그런데… 이제는 김무연 죽인 놈으로 불렸다.
확실히 김무연이 A급 헌터로서 이름이 높았던 만큼 나도 유명해진 것 같다.
그래 봐야 누군가를 죽인 놈이라는 점에서 악명이라는 것은 똑같았다.
“실례합니다.”
“아, 밀지 좀- 앗! 백도운!”
어깨를 툭 치자 상대방이 신경질적으로 날 돌아봤다.
나를 알아봤는지 끝까지 신경질을 부리지는 않았다.
대신 내가 지나갈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줬다.
한 명이 비켜 주자 옆에 있던 다른 이들도 비켜섰다.
고개를 숙여 고마움을 전하며 그들을 지나쳤다.
대련장에 올라섰을 때, 한진환이 눈을 떴다.
“왔어?”
“오래 기다렸습니까?”
“아니, 나도 밥 먹고 방금 왔어.”
밥 먹자는 말 안 하길래 안 먹을 줄 알았더니?
아마도 곧 대련할 사람이랑 함께 밥 먹기가 조금 그랬나 보다.
그가 정좌를 풀고 일어나며 물었다.
“준비 필요해?”
“아뇨. 괜찮습니다.”
“그럼 바로 시작하자.”
“네.”
한진환이 오른손가락 세 개를 펼쳤다.
다 접은 후 시작하겠다는 뜻이었다.
고개를 끄덕이자 약지를 접는다.
중지를 접고, 마지막으로 검지를 접는 순간,
꽝!
천장에서 내 몸을 향해 벼락이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