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ve Max Level Luck RAW novel - Chapter 114
서울 상공엔 드높은 신격과의 전투로 생긴 흉터가 남아 있었다. 가로로 길게 찢어진 선. 그 선 안으로 보이는 검은 심연과 그것을 감싸는 황금빛 마력.
밤에 보면 상당히 아름답다.
달과 별을 가로지르는 상흔(傷痕)은 지나가는 누구라도 시선 한 번쯤은 던질 법한 모습. 하지만 그 누군가에겐 마음속 깊이 담아놓은 ‘악몽’을 자극하는 악마이기도 했다.
“아, 한도석 강사님. 이쪽으로.”
이정현 마도사는 멀끔하게 차려입은 한도석 강사를 맞이했다. 그는 그녀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강당으로 올라갔다.
한도석은 강단 위에 섰다.
앞엔 많은 이들이 학사모를 쓰고 서 있었다.
“벌써 3년이 지났군요.”
많은 재앙을 겪으며 생겨난 얼굴의 흉터는 그를 더욱 고풍스럽게 만들었다. 한 마디, 행동 하나에 강인함과 단호함이 보인다.
“이한성 후보생.”
한도석은 가장 앞에 선 이한성 영웅을 바라봤다.
그리고 옆으로 시선을 옮겼다.
“진훈, 한별, 성시연······.”
세상에 내려온 재앙에 맞서 가장 선두에서 싸워온 이들이다.
[한국 영웅 아카데미] 후보생이었으며 학년에 상관없이 상위 50위 안에 들었던 인재들. 몇 명이 죽고 누군가 그 자리를 채우며 싸워왔다.
‘졸업 특별반’이라는 엉성한 이름 아래, 수업 대신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해 왔으며, 그렇기에 더욱 강해졌다.
“그 누구보다 ‘영웅’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행보를 보여왔으며 이미 충분한 자격을 지녔습니다.”
이들은 물러섬이 없었다.
악마, 마족, 신격, 요괴. 말 그대로 마력의 재앙 등등.
그 많은 어려움 속에서 다른 누군가를 지켜야 한다는 일념으로 목숨을 걸고 맞서 싸웠다. 언제는 죽음에 다다랐고, 동료의 죽음을 받아들여야 했으며, 믿었던 이의 배신을 겪어야 하기도 했다.
절망하고, 슬퍼하고, 분노하며 이겨냈다.
쓰러져도 다시 일어섰고.
또 일어섰다.
“그렇기에 이 자리에 당당하게 서 있을 수 있는 겁니다.”
한도석은 강단에서 내려와 한 명씩 손을 잡았다.
그리고 ‘졸업장’을 전달했다.
이날, [한국 영웅 아카데미]에서 걸출한 영웅 50인을 배출했다.
* * *
한성은 허리까지 오는 하얀이의 손을 잡았다.
위이이잉.
하늘에서 내려온 수직이착륙 수송기가 일으킨 바람에 머리칼이 휘날렸다. 그런데도 한성과 하얀은 가만히 그 수송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문이 열리고 익숙한 얼굴이 내렸다.
“들어오세요! 한성님!”
길이현이었다.
그녀는 3년 전보다 훨씬 성숙한 얼굴로 한성과 하얀이를 맞이했다. 한성과 하얀이는 바람을 뚫고 수송기에 올랐다.
“오랜만이네요.”
“아마 3년 만이죠?”
길이현은 하늘에 가른 흉터가 생겼을 때, 어디론가 떠났다. 한성을 바라보며 느꼈던 무력감을 다시 느끼지 않기 위해 필요한 시간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녀는 당당히 돌아왔다.
세계 순위권으로 진입한 제현 그룹을 완전히 가지고 말이다.
운의 영향인지, 한성이라는 사람 그 자체의 영향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한성이 개입하지 않았음에도 그녀는 멋지게 성장했다.
수송기의 문이 닫히고 소음이 사라졌다.
길이현은 흐트러진 머리칼을 만지며 물었다.
“친구들하고는 인사했어요?”
“했죠.”
“어때요? 항상 붙어 있었잖아요.”
“잘 아네요?”
“어떻게 몰라요. 튜브에 계속 올라오고······ 이젠 뉴스에도 항상 등장하면서.”
한성은 잠시 아카데미 방향을 바라봤다.
그리곤 입을 열었다.
“다시 만나면 절 이기겠다네요.”
“호호. 한성님 친구답네요.”
길이현은 수송기 조종사에게 출발하라고 외쳤다.
그리곤 한성에게 물었다.
“어디로 갈까요!”
“북극이요.”
“북극? 그렇군요. 북극이랍니다!”
북극은 워프 게이트가 없다. 한성과 이하얀. 그리고 길이현이 마력엔진으로 가는 수송기를 탄 이유다. 그들은 구름 위로 올라가 북극으로 향했다.
* * *
성시연은 [검은 땅]으로 돌아갔다.
아쉬움에 마음이 공허했다. 그를 보지 못하고 그의 옆에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하지만 안다. 그는 지금 평화롭게 누굴 만나고 있을 시간이 없다는 걸.
그건 성시연도 마찬가지다.
아직 검은 땅에는 성시연이 필요하다. 한성이 맡긴 31번 구역. 그리고 더 깊은 곳에 죽음과 싸우는 검은 땅이 아이들을 위해서.
또한, 한 명의 마왕으로서 마계화가 된 땅에 자리를 잡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악의 신격’에 영향을 받지 않는 ‘마왕’이라.
나중에 한성에게 없어선 안 될 존재가 될 거다.
그의 곁에서 싸우는 그 날을 위해, 성시연은 검은 땅으로 향했다.
최이명은 제임스 딘과 이창석을 만나 팀을 이뤘다.
그들은 [베일리스 용병단]이라는 이름으로 팀을 창설하고 미국으로 떠났다. 이미 만들어진 용병단이나 길드에 들어가기엔, 그들은 너무 강해진 상태. 당연히 그런 것들이 눈에 찰 리가 없었다.
그들은 강해지고 명성을 얻기 위해 미국의 중부 대평원으로 향했다. 그곳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분쟁하는 ‘수인족’들 사이에서 싸우기 위해.
그들은 한성과 친구들에게 말했다.
나중엔 반드시 이겨 주겠다고.
그리고 그때가 되면 같이 싸우자고.
한별은 가문으로 돌아갔다.
막내지만, 마법이 아닌 요괴의 신격과 계약한 이능의 천재. 한별은 마법의 한계를 봤기에 가문을 변화시키고자 했다. 전 세계 수만의 마법사를 품고 있는 [정연]이다.
불가능한 일.
하지만 지금의 한별은 다르다.
어둑시니와 완벽에 가까운 콤비를 보이며 ‘전설’을 걷기 시작했으니까. 이미 그의 형을 따라잡고 아버지의 턱밑을 쫓고 있었다.
한별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는 확신한 게 아니다. 반드시 하겠다고 결심한 거다.
그래야, 한성이 준비하는 이 ‘세계의 멸망’을 막을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소중한 사람을 지켜줄 수 있을 테니까.
한별은 정연의 가주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진훈은 스스로를 단련하기 위해 중국에 위치한 [투신의 탑]으로 갔다.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탑’이며 인간의 과학과 마법으로 설명할 수 없는 기이한 힘이 작용하는 곳.
모든 도전자는 1층에서부터 시작한다.
다른 참여자와 싸워 이기면 승점을 얻고 지면 잃는다. 일정 승점이 되면 다음 층으로 올라갈 수 있다. 올라가면 돈을 얻고 명예를 얻는다.
하지만 진훈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더 높은 층의 강자.
그리고 최상층에서 기다릴 자신의 형과 싸우기 위해.
그것을 넘어 이 탑의 주인이 되었던 아버지를 따라잡기 위해.
진훈은 [투신의 탑]으로 들어갔다.
안혜림은 갤러해드의 후예라는 이름을 등에 업고 아마존으로 향했다. 그곳에 잠들어 있는 갤러해드의 [유물]과 아서 왕의 [신화]를 찾기 위해서였다.
얜 샤를은 ‘오딘’의 유산을 찾기 위해 북유럽으로 향했고 세르게이는 ‘검’의 끝을 보기 위해 아버지를 찾아갔다. 또한, 나디아는 ‘창’으로 세르게이를 꺾기 위해 가문으로 돌아갔다.
다들 졸업과 동시에 ‘영웅’이 되었고.
모두 스스로를 단련하기 위해, 그리고 누군가를 돕기 위해 움직였다. 언젠가 다시 모일 그 날을 위해 각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이다.
* * *
길성현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도 졸업하며 영웅이 되었다.
하지만 그의 고민은 그것과는 괴리가 있었다.
어느 순간 누나인 길이현이 변하며 제현 그룹을 급성장시켰다. 그 과정에 형인 길장현이 실각(失脚)했고 길이현이 ‘회장’ 자리에 올랐다.
이해는 한다.
부모님도 장남과 장녀라는 경계에 상관없이 능력 있는 사람이 회장이 되길 바랐으니까. 게다가 길이현은 이례적인 속도로 제현 그룹은 세계적인 그룹으로 성장시켜 놓았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길장현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좋을 수가 없었다.
“마음 있으면 와.”
길장현은 길성현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는 이번에 영국으로 떠난다.
어떤 기업에서 그의 힘이 필요하다고 했다. 어떤 거래가 오갔는지 모르겠지만, 자존심 하나만큼은 하늘을 찌르는 길장현이 다른 기업 아래로 들어간다는 것은 충격적이었다.
그래서 더 궁금했고 걱정되기도 했다.
“······가서 뭘 하려고?”
“내가 잘하는 거.”
“나한테도 말할 수 없는 거구나.”
“같이 간다면 다 말해줄게. 절대로 후회하지 않을 거야.”
길성현은 몰랐다.
형이 이런 얼굴을 하고 있었다는 걸.
언제나 온화한 표정. 그리고 웃음.
하지만 이제는 보인다.
그건 인위적인 모습이었다. 연기였고 남들에게 스스로를 숨기기 위한 발버둥이었다. 이걸 왜 몰랐을까. 소름이 돋을 정도로 딱딱한 웃음인데.
형이 망가진 것일까?
아니다. 조금 위축되긴 했어도 예전 그대로다.
그저 길성현이 모르고 있었던 것일 뿐.
“난 아직 약해.”
사실 그것과 상관없다.
하지만 형의 제안을 냉정하게 거절할 수 없었다.
“더 강해질 거야.”
이건 사실이다.
졸업반 50명과 지내면서. 그들과 함께 재앙과 싸우면서 스스로의 나약함에 좌절했다. 하지만 다시 일어나 싸우며 강해졌다.
그런데도 그들은 한참 앞서 나간다.
그 누구보다 월등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자신했지만, 이곳에서는 중간을 가기도 힘들었다. 전 세계에서 가장 강한 이들이 모인 곳이었으니까 어쩔 수 없다고 위안할 수 있다.
길성현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형도 강해져.”
“나는 원래 강해.”
길장현이 웃었다.
인위적인 웃음과 다를 바 없었지만, 조금은 다른 느낌이었다.
“난 더 강해질 거야.”
“기대하지.”
길장현은 그 말을 끝으로 몸을 돌렸다.
길성현은 그를 바라보다 밖을 바라봤다.
어디로 가야 할까.
친구들처럼 전장으로 가는 게 맞을까. 비슷한 곳으로 가서 그들을 이길 수 있을까. 그들은 말도 안 되는 천재들인데, 같은 노력으로 따라잡을 수 있을까.
당연히 아니다.
길성현은 한성을 따라가기로 했다.
그는 북극.
자신은 남극.
지구에서 가장 극한의 환경이라는 두 ‘극지’. 그만큼 강한 몬스터와 신격이 존재하는 현세의 지옥과 같은 곳.
누가 이기나 해보자.
* * *
길장현은 그 길로 워프 게이트를 통해 영국으로 향했다. 그를 맞이한 건 ‘줄리아 마틴’이었다.
“반갑습니다. 길장현씨.”
“직접 나와줬군. 반가워요.”
“그럼요. 저희 최고의 손님이지 않습니까.”
줄리아는 마력엔진으로 만들어진 롤스로이스로 그를 안내했다. 둘은 많은 이야기를 하며 외진 곳에 숨겨진 ‘연구소’로 향했다.
“이곳인가요?”
길장현은 초등학교 정도 크기로 올라온 돔 형상의 연구소를 바라봤다. 생각보다 규모가 작아 인상을 찌푸렸다. 겨우 이런 곳에 오려고 줄리아의 제안을 받아들인 게 아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표면적으로만 [마력 연구소]라는 흔하디 흔한 연구소니까요.”
줄리아는 길장현을 안으로 안내했다.
안내 데스크를 지나 엘리베이터를 한 번 더 지났다. 그러자 안쪽에 보안 절차를 밟고 들어가는 엘리베이터가 한 대 더 있었다.
“지하로 25층. 위로 3층이죠.”
줄리아는 지하 25층을 눌렀다.
그제야 길장현의 얼굴이 풀렸다.
빠르게 내려간 엘리베이터가 멈추자, 문이 열렸다.
그곳엔 천장 높이만 5층 높이의 거대한 연구실이 보였다. 온 세상의 모든 첨단 기술이 모인 것처럼 보이는 최첨단 연구 시설이었다.
수백 명의 연구원이 바쁘게 돌아다녔고 줄리아와 길장현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빨리 본론으로 들어가죠.”
“알겠습니다.”
줄리아도 안다. 이런 겉치레에 기분이 나쁠 수 있는 사람이지만, 이게 또 중요한 건 아니다. 그는 본론을 원했다.
“4년 전이 정확히 ‘포자’가 떨어지고 100년 된 해였죠.”
줄리아는 중앙으로 걸으며 설명했다.
“이상 기후, 재앙의 도래, 검은 땅의 유동, 아마존의 전쟁, 북극의 재앙까지······ 그때를 기점으로 지구의 뭔가가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
“······변한 건 재앙뿐이 아니었죠. 어린 후보생. 그리고 영웅. 말도 안 되는 강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죠.”
“그거야······.”
“대격변으로 신격이 해방되었고.”
줄리아는 최고 등급의 보안 시설 앞에 섰다.
“드높은 신격이 출현하기까지 했죠.”
망막, 마력, 지문 등을 확인하고.
신분증을 댔다.
“서울 상공엔 하늘엔 지워지지 않는 ‘상흔’이 생겼죠.”
푸쉬-
두께만 2m가 넘을 것 같은 문이 열렸다. 안쪽엔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길게 늘어선 원통에 무언가 들어있는······.
“그것은 인간과 하늘의 ‘경계’라는 게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뜻하는 거였습니다.”
탁.
타다다다닥.
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앞에서부터 뒤로 하나씩.
“이게······?”
“맞습니다. 4년 전. 그 이후로 태어난 아이 중 재능이 있는 친구들입니다. 마치 드래곤처럼 태어나면서부터 ‘격’과 ‘격’ 사이의 경계가 희미하죠.”
“대단하군.”
길장현은 바로 이해했다.
“이들은 미래를······.”
“잡아먹을 ‘것’들이군.”
“맞습니다.”
길장현은 정말 오랜만에 진심으로 웃었다.
기대 이상이었다.
끝
ⓒ [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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