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ve Max Level Luck RAW novel - Chapter 74
눈앞에 또렷이 보이는 얼굴은 엘 포른이 맞았다. 한성이 신화의 태동을 시작했다고 해도 아직 [역사] 등급의 격에 불과하다.
게다가 그녀를 경매장에 끌어들이려고 정보를 흘렸으며, 그녀가 훔치려던 물건을 모조리 빼돌리지 않았는가. 잘 못 걸리면 그냥 훅 가는 거다.
한성은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전 나가는 길입니다. 들어가시지요.”
“······흐음. 어디서 본 얼굴인데.”
다행인 건, 5일째 명계에서 구른 덕분에 몰골이 말이 아니라는 거다. 게다가 그때와는 다르게 매력이 한껏 높아져 ‘잘생긴 거지’ 느낌이 난다는 것일까.
게다가 최근 몇 주일 사이에 격이 급격히 높아졌다.
잘만 한다면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럴 리가요. 저는 처음 봅니다.”
“······육체가 지닌 힘에 비해 격도 상당하고······ 그 눈빛도 왠지 마음에 안 들어.”
“하하. 그러신가요. 저는 급해서 이만.”
한성은 시간을 끌지 않기 위해 몸을 옆으로 슬쩍 뺐다. 엘 포른은 그런 한성을 의심해 손목을 잡으려 했다. 하지만 그때.
키잉.
명계 안쪽에서 전투가 일어났고 그 강한 격이 엘 포른의 전신을 그대로 때렸다. 그러자 그녀는 악귀처럼 일그러진 얼굴로 명계로 쏙 들어가 버렸다.
“아놔, 큰일 날 뻔했네.”
여긴 왜 왔을까.
하긴, 명계를 노리는 영웅은 많다. 그동안 작은 구멍 정도만 열렸던 명계가 이렇게 크게 열려버렸으니 탐낼 물건은 많다.
그중에 엘 포른이 노리는 건 [흑청]일 거다.
최근 며칠 사이에도 많은 영웅이 명계로 들어왔다. 한성과 일행은 쉽게 찾지 못할 곳에 숨어 있었고, 그들이 들어와 무얼 하는지도 모두 목격했다.
‘일행이 함부로 움직이지만 않으면 들킬 일은······ 없겠지.’
이 시기에 한성보다 명계를 더 잘 아는 캐릭터는 없다고 확신한다. 물론, 명계 안에 사는 놈들은 제외하고 말이다. 일행은 다른 이들이 찾을 수 없는 위치에 있었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게다가 한성은 뒤를 생각할 처지가 아니었다.
그는 31번 구역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그곳에서 게이트를 타고 한국으로 워프한다.
엘 포른은 명계로 들어오면서도 앞에서 만난 소년이 계속 떠올랐다. 어디서 본 것 같다. 아주 익숙한 얼굴. 아니, 사진을 본 건가?
그것도 굉장히 죽이고 싶은 느낌이었다.
원수였나? 아니······ 맞다!
이한성이라는 후보생.
그놈이었다!
‘경매장에서!’
이제야 기억났다. 씹어 먹어도 시원치 않을 놈이다. 마기 정화의 비약을 힘들게 빼돌렸더니, 그걸 중간에서 다시 빼돌리지 않았는가.
“저 개자식을!”
당장이라도 쫓아가 죽이고 싶었다.
하지만 엘 포른은 생각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앞에서 격을 앞세워 전투하는 사람들이 보였기 때문이다. 이곳에 들어온 이들의 목표는 같다. 영혼을 정화할 때 필요한 [흑청]이라는 물건.
아직은 확정되지 않은 ‘정보’일 뿐이다. 하지만 세계의 모든 정보를 열람할 수 있다는 [세계의 대도서관]이라 불리는 이에게 비싼 값을 치르고 얻은 정보였으니 확실할 거다.
‘마기는······ 비약이 있으니 천천히 사면 돼.’
하지만 반절 이상 마기에 침식된 이들은 영혼까지 물들어 버린다. 그리고 그 영혼을 치료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물건이 바로 [흑청]인 거다.
엘 포른의 딸은 오랜 시간 마기에 고통받았고, 드디어 그녀를 치료할 기회가 온 거다.
다른 건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이한성이라는 후보생?
됐다. 다음에 죽이면 된다.
일단은 딸이 먼저다.
그녀는 격을 방출했다.
* * *
진훈은 멀리 튕겨 나갔다. 뒤로 콘크리트와 유리창이 수십 개는 부서진 감각. 정신이 희미해지고 전신이 끊어질 듯한 고통이 느껴진다.
하지만 진훈은 곧바로 일어섰다.
그대로 달렸다.
그의 몸은 달리면서 치료되었다. 부러진 쇄골, 팔뚝, 갈비 몇 개. 찢어지고 타버린 피부는 순식간에 재생된다.
화아악!
진훈의 몸에서 황금빛 마력이 뿜어졌다.
압도적인 신격이었다. 시선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공포에 의식이 흐려지고 납덩이를 맨 것처럼 몸이 축 처진다. 하지만 진훈은 달리고 또 달렸다.
그는 더욱 빨라졌고, 어느새 소닉 붐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러다 게이트 앞에 선 신격의 화신체가 눈에 보였을 때 바닥을 박찼다.
둑. 푸콰!
그가 있던 바닥은 움푹 파였으며 그의 몸은 한 마리의 나비처럼 날아올랐다.
쏴아아아!
거대한 신격이 그를 짓눌렀다.
견딜 수 없는 압박감이었다. 하지만 그는 보았다. 진훈을 제외하고 가장 가까이 있었기에 숨만 겨우 붙어 있는 세르게이와 나디아.
방금 마법 수십 개를 쏟아내고 쓰러진 길성현. 아무런 반항 한 번 해보지도 못하고 훨훨 날아가 버린 얜 샤를, 안혜림까지.
겨우 버티고 있는 건 한별이었고, 그도 쓰러지기 직전이었다.
“으아아아아!”
진훈은 악을 쓰며 화신체에 접근했다. 온몸을 짓누르는 압도적인 격이 전신의 뼈를 으스러뜨리고 장기를 찢는 것 같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지금 움직이지 않으면, 친구들이 죽는다. 뒤에서 방어선을 형성하는 용병들과 군인들도 마찬가지다. 저 화신체의 신격이라면 이 지역 자체를 날려 버리는 것은 일도 아닐 터.
쾅!
진훈의 첫 번째 과부하가 터졌다.
쾅!
두 번째.
지금 진훈의 몸은 한계를 돌파했다. 하지만 지속되는 시간은 수 분 남짓. 그 전에 화신체에 도달해야 한다.
하지만 화신체는 손을 들어 올렸다. 그 손은 진훈의 머리를 향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진훈은 몸이 아래로 쏟아지는 것을 느꼈다.
거부할 수 없는 힘이었다.
콰아아앙!
그의 몸은 바닥에 떨어졌다.
진훈은 괜히 눈물이 났다. 무력함에 억울함이라는 감정이 올라온다.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 지금까지 노력해 왔던 세월이 얼마나 허무한가.
콰과과과.
진훈은 죽지 않았다. 그에 화가 난 것인지 화신체는 진훈에게 다가가며 더 강하게 짓눌렀다. 진훈은 일어설 수 없었다. 당장 죽지 않고 부서지는 뼈가 다시 회복된다는 것만으로도 천운이었다.
화신체는 한 발, 한 발 다가온다.
그때, 진훈의 눈이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 [쓰러지지 않는 투지]가 개화되었습니다!
– [육체 강화]가 한계를 돌파합니다!
– [과부하]가 성장 조건을 만족하였습니다.
– [육체 강화(A)]가 [잠재 폭발(S)]로 성장하였습니다!
– [과부하(S)]가 [초월(SS)]로 성장하였습니다.
진훈은 상체를 세웠고, 다리를 뻗었으며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화신체는 그 모습에 더 강하게 눌렀지만, 진훈은 무너지지 않았다.
그의 눈은 찬란한 황금빛으로 물들어 있었으며, 그의 표정은 고통 따위는 없다는 듯 평온했다. 하지만 더 이상 나아가는 건 불가능했다.
그때, 옆으로 한별이 다가왔다.
반절은 투명했으며 끝은 검게 불타는 기묘한 오라. 한별의 전신을 감싸는 [염력]이 [왕명]으로 성장하여 폭발하기 시작한 거다.
둘은 함께 했다.
홀로는 다가가는 것조차 불가능했지만, 둘은 가능했다.
히죽.
화신체는 미소를 지었다. 인공적이며, 괴이할 정도로 어색하고 차가운 웃음. 하지만 그 안에 미묘한 따듯함이 존재하는 듯 보였다.
진훈과 한별은 인상을 찌푸렸다.
갑자기 공기의 흐름이 변했다.
– 잘 컸구나.
화신체. 아니, 신격이 처음으로 말을 했다. 소름이 돋는 기이한 목소리였지만, 한별은 ‘그녀’의 목소리를 정확하게 들었다.
“······?”
진훈은 고개를 갸웃했다.
– 강하게······ 잘······ 컸구나.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신격의 말은 뚝뚝 끊겼고 화신체는 괴로운 듯 몸부림쳤으니까. 진훈은 뒤로 한 발 물렀고 한별은 그런 진훈의 앞을 막았다.
한별은 머릿속에 스치는 기억이 하나 있었다.
“진훈 뒤로······!”
그는 말을 마치지 못했다. 앞에 선 화신체가 한별에게 손을 뻗었고 항거할 수 없는 막대한 격이 한별을 저만치 날려 버렸다.
“······.”
진훈의 눈동자가 하얗게 변했다. 괴로운 듯 미간이 좁아졌으며 황금빛 눈동자는 검게 돌아왔다.
한별이 다쳤다.
화가 나고 앞의 화신체와 싸워야 맞다.
하지만 진훈은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뭐지?’
머릿속에 떠오르는 알 수 없는 그림들. 사방을 울리는 폭음과 귀를 찌르는 비명. 사람들의 다급한 목소리와 눈앞에서 무너지는 화염.
진훈은 다리에 힘이 빠졌고 검었던 눈동자는 하얗게 변해갔다.
‘도대체······ 뭐지?’
– 으히히히히. 죽어라!
아까와는 다른 목소리가 울리는 동시에.
푸욱.
화신체는 손을 뻗었고 진훈의 등으로 기다란 손톱이 삐져나왔다. 붉은 피가 손톱을 타고 흘렀다. 진훈은······ 그대로 무릎이 접혔다.
한별이 달려들었다.
하지만 눈을 깜빡이기도 전 한별의 눈앞은 하얗게 변했다. 동시에, 극한의 통증이 전신을 엄습했으며 세상이 반쯤 돌아갔다. 머리가 땅바닥에 처박힌 것이었다.
사실 자신감이 붙었었다.
불과 몇 분 전에는 상상도 못 했던 힘이 가슴 깊은 곳에서 솟아나고 있었으니까. 신격은 강하다.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드높았다.
하지만 저항 정도는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진훈의 배에 꽂힌 기다란 손톱 정도는 빼낼 수 있었다. 진훈을 저 화신체에서 멀리 던져버리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한별은 속에서 올라오는 무력감에 치를 떨었다.
‘안 돼.’
한별의 눈엔 진훈의 얼굴이 그대로 보였다. 텅 빈 눈동자. 총명하던 초점도 황금빛 마력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는 깊은 어둠.
아주 오래전의 과거로 빠져버린 것이다.
한별이 그토록 막고 싶었던 일. 그가 과거의 악마에 삼켜지는 일이었으며, 잃었던 기억을 되찾는 일이었다.
이런 식으로 그 ‘악마’가 이곳에 올 줄은 몰랐다.
어쩌면 막을 수 없는 일 일지도 몰랐다. 그가 영웅이 되어 이 땅의 악(惡)들과 싸우는 한은 언젠가는 마주쳐 이겨내야 할 테니까.
만약, 만약 그렇다 해도 지금은 아니어야 했다.
‘안 돼······.’
한별은 진훈에게 손을 뻗었다.
어렸을 때, 그가 한별에게 했던 것처럼 한별도 그를 지켜주고 싶었다. 그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 자신보다 남을 생각했던 진훈처럼 말이다.
한별은 위로 드리우는 그림자를 보며 죽음을 직감했다.
콰아아앙!
귀를 찢는 듯한 폭음과 몸을 뒤흔드는 충격파가 그들을 휩쓸었다.
그런데.
“······?”
하지만 예상하던 고통은 없었다.
대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늦어서 미안하다.”
* * *
한별은 오래전 진훈을 처음 봤을 때가 떠올랐다.
추적 임무를 맡아 [정연]의 [특전마법사단]과 함께 강원도 원주로 갔을 때였다. 폐허가 된 저택에서 도주한 ‘악마’의 흔적을 찾는 도중이었다.
“으으으.”
어디선가 작은 신음이 들려왔다.
한별은 홀로 그 소리를 따라갔고, 그곳엔 또래의 작은 소년이 두려움에 벌벌 떨고 있었다. 하지만 한별은 봤다. 그의 눈에 비치는 검은 악마를.
깊숙한 곳에서 당장이라도 터져 나올 것만 같은, 그 안의 지독한 악마를 말이다.
그런데 그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어떤 것 때문인지 사지를 부들부들 떨며 머리를 땅에 박고 아무것도 보지 않으려 했다.
한별은 조심스럽게 그에게 다가갔다.
조금이라도 위협이 된다면 곧바로 죽여야겠다는 생각을 하곤 말이다.
그런데, 그는 한별의 움직임을 눈치챈 것인지 신음을 뚝 멈췄다. 그리고 그의 눈 속의 악마는 사라진 상태였다. 한별은 당장 단검을 뽑아 마력을 끌어 올리려 했다.
하지만 그가 더 빨랐다.
한별의 입을 막고 구석으로 몰고 갔다.
동시에.
콰과과과!
창밖에서 쏟아지는 시커먼 마기가 한별이 서 있던 자리를 쓸어버렸다. 2층의 저택은 지하까지 전소한 상태였다. 한별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 아이는 조용하고 안정된 목소리로 말했다.
“조용히 해. 여기에 악마가 있어!”
“읍?”
“조용히 할 거지? 소리 지르면 정말 큰일 나.”
한별은 또 다른 의미로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놈은 무엇인가. 그 눈동자 속 악마는? 두려움에 떨던 소년은 어디로 가 버린 것일까.
그는 한별의 입을 천천히 놓았다.
“악마는 떠나지 않았어······ 악마는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 거야.”
한별은 그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대충 알았다. 한별과 특전마법사단이 여기에 온 이유도 ‘악마’가 된 여인을 잡으러 온 것이었으니까.
그때, 한별의 눈엔 하나의 가족사진이 보였다.
그것은 한별이 찾던 ‘악마가 된 여인’. 그리고 그 아래 사랑스럽게 안겨 있는 아이는······ 바로 이 옆에 이상한 아이였다. 한별이 찾던 ‘악마’는 이 아이의 어머니였던 것이다.
한별은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으로 아이를 바라봤다.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그 고통에 눈을 감았다.
세상이 검게 변했다.
그리고 천천히 눈을 떴을 땐, 동공이 텅빈 17살의 진훈의 얼굴이 보였다. 그것은 오래전 한별이 기억하는 진훈의 ‘기억을 잃은 시점’이었다.
끝
ⓒ [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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