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ve Max Level Luck RAW novel - Chapter 85
한성은 앞에 놓인 찻잔을 들었다. 코끝으로 말려 올라오는 하얀 수증기에선 달면서 향긋한 향이 풍겼다. 이윽고 뜨거운 차가 식도를 타고 몸을 따듯하게 달군다.
“맛은 어때요?”
“괜찮네요.”
정면엔 길이현이 다리를 꼰 상태로 차를 마시고 있었다.
한동안 검은 땅에서 지냈더니 얼굴이 건강하게 탄 후였다. 전 회차에서도 이런 얼굴은 본 적이 없었는데, 환하게 웃는 모습과 상당히 잘 어울렸다.
“이번에도 한바탕 하셨더라구요.”
“고생 좀 했죠.”
“어떻게 가는 곳마다 그렇게 사건이 일어날 수 있어요?”
길이현은 웃으며 물었다.
한성은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어쩔 수 없다. 플레이어를 중심으로 사건이 일어나는 게 이 게임이니까. 뭐, 이제는 게임 같지도 않은 세상이지만.
돌아갈 현실이 없다는 것이, 한성에게 현실과 가상의 결계를 무너뜨렸다. 이곳에서 죽을 수 있다는 것이, 한성에게 이 세계에 대한 애착을 만든 계기였다.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이렇게까지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삶의 가치는 어디에서 오는가. 순간순간 살아가는 현실에 가치가 있는 건 모두 ‘죽음’ 때문은 아닐까.
한성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아니에요. 그것보다 마계의 탑 공략 팀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어요?”
“일단은······ 말씀하신 대로 우전 그룹이랑 마틴사가 탑 경계를 맡고 모든 장비와 PMC 지원을 할 거예요. 영웅 협회는 아직 접촉을 안 했는데, 말씀대로 지원할 길드를 찾는다고만 공지해 뒀습니다.”
한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길이현은 아직도 확실히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이 좋은 ‘유산’을 왜 다른 경쟁 기업에 넘기는지 말이다. 하지만 굳이 토를 달지 않았다. 이젠 정말 한성이 해가 서쪽에서 뜬다고 해도 믿을 정도였으니까.
길이현은 보고서를 꺼내 천천히 읽었다.
“블랙 키리윰 수출 건은 하반기 예상 매출 32조 원으로 집계되었고 말씀하신 지역 몇 군데는 필수로. 그리고 다른 곳에는 줄 세우기로 골라 보내고 있습니다.”
역시 돈이 된다.
그리고 권력도 된다.
“지금 제현 그룹 총 매출이 얼마나 되죠?”
“작년 320조. 올해는······ 저희 PMC 덕분에 2배는 될 것 같습니다.”
“그렇다는 건 제현 그룹과 PMC 매출이 비슷하다는 거군요.”
“······그렇게 되죠.”
한성은 계속 생각해 왔다.
길성현을 악에서 구할 방법. 그러면서 악마보다 더 악한 길장현을 어떻게 묶어야 할까. 그러다 생각한 게, 길이현으로 하여금 제현 그룹을 삼키게 하는 것이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것보다 좋은 방법이 있을까?
“길이현씨.”
“네.”
“제현 그룹 회장, 어떠세요?”
“······.”
길이현의 꿈은 항상 회장이었다. 야망이 있었기에 길장현이 길이현을 경계하며 PMC에 박아 둔 것이기도 하다.
길이현은 침을 삼켰다.
“지금까지 제가 길이현씨를 도운 이유는.”
“······.”
“제현 그룹의 힘이 필요했기 때문이에요.”
“······PMC가 아닌 그룹이군요.”
“네, 한국에서 그룹이 재벌인 이유는, 단순한 부자가 아니기 때문이죠.”
길이현은 손에서 땀이 났다.
지금까지 이한성이 자신을 도운 이유는 뭘까. 그러면서 PMC의 지분 하나 원하지 않은 이유는 뭐였을까. 이건 기회인가 함정인가.
분명한 것은 이한성이 아니면 자신은 평생 PMC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제가 뭘 하면 됩니까.”
길이현은 꼬았던 다리를 풀고 손을 무릎에 올렸다. 상체를 세우고 한성을 바라본다.
“구울 검투 팀을 만들 거예요. 단기간에 월드 리그까지 키울 거고요.”
“제현 그룹도 전국 리그 팀 하나와 월드 리그 팀 하나가 있습니다.”
“거기서부터 시작하죠.”
한성이 길이현을 키워 제현 그룹을 하나씩 잡아먹는다. 외부에서 ‘한국의 그룹’을 삼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지만, 내부에서는 불가능하진 않다.
“구울부터 구해야겠군요.”
“비상 전력, 경제적 이득, 인지도. 모두 생각해야 합니다.”
한성은 길이현이 자신의 성을 찌를 창과 방패를 모두 주어줄 거다. 그 정도면 길이현은 자신의 능력으로 그룹을 삼키겠지.
그렇다면 길장현은 어떻게 될까.
궁지에 몰린 길장현은 악마가 될까.
인간으로 쓰러질까.
한 번 두고 봐야 할 문제다.
* * *
한성은 가짜지만 전쟁의 신 아레스를 쓰러뜨리면서 신화 등급 업적 하나와 전설 등급 업적 하나를 얻었다. 동시에 30만 포인트라는 어마어마한 인지도 포인트까지.
– [세상의 관심으로 신격에 닿은 자.(전설)] – [전쟁의 신, 아레스를 벤 자.(신화)]
관종은 관종이다.
세상의 관심으로 신격에 닿는다는 업적은 듣도 보도 못했다. 그래도 덕분에 [신화의 태동]에 더 가까워졌다.
– [신화의 태동]
– 아주 먼 과거에서부터 내려온 거대한 신화의 태동이 시작됩니다! 그 중심에는 플레이어 ‘이한성’이 존재하며 앞으로 모든 행보에 [신화]가 깃들 것입니다.
– 업적 :
* 역사 등급 : 8/20
* 전설 등급 : 6/7
* 신화 등급 : 3/5
“나쁘지 않은데.”
이 세계관에서 이 정도로 빠른 진행을 이뤘던 사람은 없었다. 역사와 전설을 뛰어넘고 신화에 도전한 사람은······ 한 명 정도가 있었을 뿐이다.
한성은 그 정도로 어려운 길을 해냈다.
하지만 이것은 첫 발걸음에 불과할 뿐이었다.
“할 일이 태산인데.”
한성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멀리 순위 변동 시험을 치르고 있는 친구들을 바라봤다.
이번에 가상 현실이 테러당하면서 시험 방법을 바꿨다.
전공별 능력 시험, 마력 컨트롤 시험, 몬스터 실전 시험, 친선 대련 시험, 각종 이론 시험 등등. 여러 과목으로 나눠 객관적이면서 안전한 시험을 치르게 되었다.
게다가 수백 명에 이르는 시간 강사가 추가되었다.
말은 강사지만, 실상은 다른 한국 내에 인증된 길드에서 충원된 도우미다. 딱히 페이가 높은 건 아니지만, 아카데미 후보생을 직접 볼 수 있다는 사실에 온 스카우터랄까.
한성은 일단 시험에 집중했다.
무조건 1위는 아니더라도 상위권은 차지해야 한다.
“이한성 후보생, 다음 차례입니다.”
한성은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 터덜터덜 걸어갔다. 다른 후보생과 강사들이 한성을 바라본다.
이번 가상 현실 테러 사건으로 모두 한성의 힘을 알았다. 그가 신격과 대적하고 종국에는 거대 석상을 세 등분으로 나눠 버렸으니까.
‘이러면 재미없는데.’
왜 만화 주인공들이 힘을 숨기는지 알겠다.
주변 사람들이 멋모르고 덤벼야 그림이 사는 거다. 그런 걸 극적인 연출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이미 한성은 너무 유명해져 버려서 그런 연출이 나올 수가 없다.
이럴 땐 어쩔 수 없다.
양학이다.
한성은 중앙의 홀로그램 순위표를 바라봤다.
1위는 이하얀이 기록 갱신 중이었고, 2위부터 8위까지는 4학년이었다. 아는 이름이 없어서 생각 외였는데, 아래서 진훈과 한별이 빠르게 치고 올라오고 있었다.
어차피 이 시험은 시작한 시간이 다르기에, 모두 끝나봐야 기록을 알 수 있다.
한성도 시험을 시작했다.
* * *
이종칠은 길이현에게 한성의 말을 듣고 구울 팀을 만들기 위해 움직였다.
일단은 월드 리그가 목표다.
그곳에서 경제적 이득과 인지도. 그리고 제현 그룹의 구울 팀을 씹어 먹을 수 있는 강함을 인증하고, 언제든 검은 땅으로 와서 비상 전력이 될 수 있는 팀을 만드는 것.
이종칠은 그런 대단한 팀을 만들 수 있다는 것에 작게 흥분했다. 어떤 DNA를 사용하고 어떤 부산물을 사용해야 완벽한 팀을 만들 수 있을까.
모든 구울 제작자들이 고민하는 문제다.
그리고 대부분 그 고민은 고민으로 끝난다.
돈이 없고, 구할 수 없는 재료이며, 가성비가 안 맞고, 잠재력이 기대치에 못 미칠 것 같고. 별의별 이유에 도전조차 못 하는 거다.
이종칠은?
이한성과 길이현이라는 엄청난 배경이 있다.
“이번에 성시연님이 가져오신 재료 중에 바실리스크 뿔이 있어.”
한예슬이 검고 굵은 뿔을 파장 분석기에 넣고 조사 중이었다. 그래프에선 뿔의 마력 보유량, 변환 속성 비중, 브레스 사용 여부와 종류, 업적이 새긴 흉터 등등. 많은 정보가 흘러나온다.
“바실리스크 사체는?”
“그건 아직 못 구했다는데. 일단은 알 구하는 게 먼저라서······.”
“어쩔 수 없지. 거기 엘프의 피 샘플 좀 줄래?”
“여기, 정령사였던 엘프의 피라 속성 적응률이 높을 거야. 검도 썼던 엘프라 육체 동조율도 높여 줄 거고.”
둘은 이렇게 작업한다.
이종칠이 설계하면 한예슬이 공수한 재료를 고르고 분석하고 정리하고. 이종칠이 그 재료로 제작을 시작하는 거다. 그러면서 둘은 성장하고 있었다.
이종칠은 잠재력 폭발 가능성을 높이는 이능을 얻었고, 한예슬은 재료를 만지는 순간에 어떤 면이 발달했는지 감각적으로 알 수 있게 되는 이능을 얻었다.
모두 한성이 [대상 개화]를 사용한 덕분이었다.
“참 이상한 게, 구울이 한성님의 손을 거치면 성장이 무지하게 빠르단 말이야. 잠재력 알아보는 것도 대단한데, 성장까지.”
“······그건 정말 말도 안 되는 능력인데. 그런 이능이 있을까?”
“이능 아니고는 설명이 안 되잖아.”
참고로 한성이 [대상 개화]를 가졌다는 것은 성시연과 얜 샤를 정도만 아는 사실이다. 한성은 그 이후로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으니까.
이종칠은 그러다 문득 밖에서 나는 큰 소리에 창밖을 바라봤다. 검은 하늘 아래 무언가 내려오고 있었는데, 그것은 성시연과 헤일렌이었다.
성시연은 품에 큼지막한 알을 안고 있었다.
“저거 한성님이 구한다는 바실리스크의 무정란인가?”
“그, 그런 거 같은데. 저걸 벌써 구했다고?”
둘은 급하게 나갔다.
비록 자기들이 직접 사용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구울 제작자로서 한 번쯤은 보고 싶었던 알이었으니까.
“아, 마침 나오셨네요.”
성시연이 반갑게 인사했다. 예전에 성시연을 알았던 사람이라면 기겁했을 정도로 밝은 인사였다. 언제부턴가 성시연은 변해가고 있었다.
그게 화신체가 된 덕분인지, 한성 덕분인지는 모르겠다.
“이, 이게 바실리스크의 알인가요?”
이종칠은 벌벌 떨리는 손으로 알을 건드려 보았다. 단단한 검은 비늘로 이루어진 알이다. 마치 자신은 용혈(龍血)이고 드래곤이라는 포스를 풍기는 듯했다.
근처에 있는 것만으로 검은 마력이 진하게 느껴진다. 블랙 바실리스크는 마기를 마력에 가까운 순수한 에너지로 정화하는 힘이 있다.
검은 마력과 마기는 다르다.
그리고 그 검은 마력과 명계의 어둠의 마력은 또 다르다.
어떻게 보면 마력의 한 갈래라고 하지만, 불의 마력과 물의 마력이 다른 것과 같은 이치다. 뿌리는 같지만, 섞일 수 없는 것이랄까.
“대단한 힘이네요.”
이종칠은 그저 감탄했고, 한예슬은 손을 얹고 힘을 가늠하는 듯했다.
“대박입니다. 마력 전도율 99%, 용혈은 5%, 마력 재능과 육체 재능들이 모두 80% 이상. 최고의 알입니다.”
“그 정도나요? 역시. 그거 잡느라 뒤지게 고생했거든요.”
용혈이 5%라면 바실리스크 치고 엄청난 비율이었다.
하얀이는 50%가 넘어간다고 하지만, 워낙 차원이 다른 ‘종’이었고 현재 드래고니안을 제외한 용족 중에 용혈이 5%가 넘어가는 게 거의 없었다.
“바실리스크에 발록의 ‘백’이라니, 도대체 어떤 게 만들어질지 예상할 수가 없네요.”
발록이라는 개체는 그 자체로도 완벽한 종이다.
상상을 뛰어넘는 육체적 능력. 마력화가 가능한 육체이기에 물리적으로 머리가 깨지고 온몸이 터져 나가도 살아남는 기이한 재생능력. 게다가 말도 안 되는 마법 저항 능력까지.
마계에서는 마왕도 쉽게 못 건드는 투신(鬪神)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그런 발록과 바실리스크의 조합.”
이종칠은 계속 그 얘기를 중얼거렸다.
어떤 개체가 나올지 상상하다가 문득, 한성이 원하는 구울 팀에 어떤 개체들이 들어가야 할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비상 전력]
월드 리그로 출전하는 건 어렵지 않다.
우승? 어렵긴 하지만, 시간과 지원만 이대로라면 어렵지 않다.
하지만 검은 땅에서 사용할 수 있는 비상 전력?
사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지금 헤일렌이 이끄는 [용의 기사단]도 헤일렌이 있으니 이 정도이며 경비대 역할을 하는 게 전부다. 일단은 ‘격’이라는 게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격이 아니라 특정 개체 사냥을 목표로 만들면 어떨까.
용혈을 지닌 개체를 잡는 구울 팀.
[드래곤 슬레이어]
이종칠은 지금까지 평범하지 않은 배경을 지녔으면서 평범하게만 생각했다. 이종칠은 당장 한성에게 연락하기로 했다. 그가 아니면 구할 수 없는 재료를 구할 필요가 있었다.
끝
ⓒ [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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