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learned alchemy RAW novel - Chapter 1
1화
띠링-
“어서오세요.”
손님이 들어오는 소리를 듣고 수겸은 장애가 있는 왼다리를 절뚝이며 카운터로 돌아갔다.
들어온 이는 이미 탈모가 시작된 듯 깊은 M자 이마가 돋보이는 손님이었다.
탈모인은 수겸의 인사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고 곧장 술이 들어 있는 냉장고로 향했다.
뒤늦게 풍겨오는 술냄새.
‘제발 진상짓만 하지 마라.’
소주 두 병과 육포 하나.
“계산.”
계산대에 물건을 올려놓고 카드를 툭 던진다.
‘이 새끼가. 참자. 참아.’
수겸은 고개를 죽여 표정을 숨겼다.
지금까지의 경험이 알려주고 있었다. 지금 표정을 들킨다면 곱게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수겸이 카드를 집어 단말기에 꽂아 계산을 끝낸 것과 동시에 탈모인이 말했다.
결제 완료 안내음이 나오고, 수겸이 자연스럽게 카운터 위의 물건을 손님 쪽으로 밀었다.
탈모인이 갑자기 버럭하며 소리쳤다.
“야. 봉투에 넣어야지!”
놀랄만한 상황이었지만, 수겸은 프로답게 당황하지 않고 친절한 말투를 유지했다.
“그럼 100원 추가로 결제해야 하는데 괜찮으세요?”
“지랄. 무슨 계산이야. 계산을! 좋은 말로 할 때 봉투에 넣어라.”
“안된다니까요. 저희도 무상으로 드렸다가 신고 먹는다고요.”
“이게 보자 보자 하니까 어른한테 말대꾸를 하네? 야! 사장 어딨어? 사장 데리고 와.”
그러면서 손가락으로 수겸의 어깨를 툭 밀쳤다.
‘선 넘네?’
꼭지가 돌아버린 수겸이 고개를 들고 노려봤다.
“지금 나 친 거지? 내가 사장이다. 이 새끼야.”
“이, 이 새끼가 미쳤나? 딱 봐도 어린 놈이 반말을 해? 그것도 손님한테?”
“뭐래. 미친놈이. 네가 내 민증 봤냐?”
“절름발이 새끼가 겁대가리가 없네. 뒤질라고.”
평생의 트라우마를 언급하자 수겸은 더욱 달아올라 얼굴까지 빨개지기 시작했다.
“아 시발. 머리털도 빠지기 시작한 새끼가. 그래. 칠 걸면 쳐라. 장애인 치면 어? 좋을 것 같지? 이 참에 나도 합의금 좀 받아서 개 같은 편의점 때려치우자. 좋네.”
세게 나가자 탈모인이 오히려 당황하며 말을 더듬었다.
“머, 머리를. 이거 완전 눈깔이 돌아버렸네.”
수겸은 손가락으로 카운터 정면 위쪽을 가르키며 말했다.
“응. 알아. 나 미친 놈인거. 그리고 저기 뒤에 CCTV 있거든? 저거 녹음은 안되고 녹화만 되는거야. 그러니까 다시 와서 시비 걸 생각은 하지 말고.”
“두, 두고 보자.”
수겸은 그 사이 결제한 카드를 뺏어 환불 처리를 마쳤다.
“야, 이거 환불했으니까 꺼져. 너 같은 새끼한테는 안 팔아.”
탈모인은 더 이상의 말대꾸는 못하고 그 길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별 미친 놈을 다 보네.”
계산대 위에 놓인 소주 두 병과 육포를 보며 수겸은 의자에 털썩 앉았다.
“아씨. 갑자기 현타 오네. 그냥 접을까.”
그러면서 손으로 앞머리를 잔뜩 헝클었다.
눈을 감으니 머리 속의 계산기가 빠르게 돌아간다.
탁. 타다다닥.
계산기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고 숫자가 떠오른다.
그 숫자가 의미하는 건 수겸이 편의점을 접었을 때 지불해야하는 계약파기 배상금과 생계비.
“답도 없다. 누굴 탓하리오.”
오늘도 변함없이 수겸에게 너무나 고된 밤이었다.
그리고 고된 밤이 끝나기까지는 너무나도 많은 시간이 남았다.
***
수겸은 편의점 점주다. 이제 30살이 되었으니, 꽤나 젊은 축에 속하는 편.
남들보다 빨리 사장님, 점주님 소리를 듣는 게 어찌나 뿌듯하던지 처음에 일이 고된 줄도 모르고 신이 나서 일했다.
어릴 적 홀로 수겸을 키워주신 할머니에게 드디어 은혜를 갚을 수 있다는 것도 그를 움직이는 원동력 중 하나였다.
“그것도 한 때였지만.”
수겸의 지옥이 시작된 건 개점을 하고 고작 6개월이 겨우 지났을 시점이었다.
예상치 못한 재개발 지역 선정.
거기에 수겸의 편의점 위치가 포함되면 보상금만 받고 그냥 털었으면 좋겠지만, 세상 일이 그리 스무스하게 넘어가던가.
‘아니, 왜 딱 이 앞에서 구역이 끝나는거냐고.’
편의점 앞 도로를 기준으로 구역이 나눠지고 재개발이 시작되었다.
‘재개발이니 머니 해도 보통은 몇 년씩 걸리고 하지 않나. 다른 동네는 진행되다가도 어그러지기도 하던데 말이야.’
하늘이 수겸을 버린 것인지 보란듯이 재개발은 차질없이 착착 진행이 되었다.
그러길 다시 1년.
이주가 시작되었다. 손님이 줄어드는 게 느껴진다.
다시 1년.
철거가 시작되었다. 손님이 아예 없다고 봐도 될 정도다. 밤에는 주변에 불 켜진 곳도 잘 없어서 수겸의 편의점이 일종의 동네의 등대 역할까지 맡게 되었다.
그런데 왜 편의점을 그만 두지 않냐고?
“망할 영업 직원 같으니라고. 하∙∙∙∙∙∙내가 왜 그 계약서에 서명했을까. 무려 의무 기간이 6년인 계약인데.”
계약서를 작성한 그 순간을 얼마나 많이 곱씹었으면 아직까지도 그 때가 생생하게 떠올랐다.
CV 리테일 본사 직원 이승준 대리가 팔을 쫙 펼치며 도로 앞을 가르켰다.
“점주님. 여기 위치 보세요. 여기는 그냥 두기만 하셔도 절로 돈을 버는 곳이라니까요. 제가 돈만 있었으면 직접 차리죠. 저도 진짜 아깝다 이 말입니다.”
“그래도. 5년은 너무 긴 것 아닙니까?”
“어우. 그러면 하지 마세요. 여기 들어오고 싶다고 지금도 전화가 와요. 통화목록 여기 좀 보세요. 저 전화 걸어요?”
수겸이 이승준 대리의 팔을 잡았다.
“에이. 대리님. 섭섭하게 왜 그러십니까. 저는 걱정이 되니까 하는 말이죠.”
“이해하죠. 이해합니다. 에라이. 좋다. 그러면 제가 특별히 점주님한테 파격 제안 하나 드립니다!”
“오. 뭡니까? 그 조건이.”
이승준 대리가 오른손을 쫙 펼친 후 왼손가락 하나를 추가로 들었다.
“5년에 1년 더 추가하시면 내부 인테리어 지원에다가 가맹비 면제 얹고.”
“얹고?”
“영업 활성화 장려금 지원까지!”
“그, 그게 뭐죠?”
“뭐긴 뭡니까. 점주님 추가 수익률 올려드리는거죠. 그것도 무려 1% 입니다. 엄청나죠?”
수겸은 기쁜 마음에 짝짝 박수를 쳤다.
“와! 1% 면 엄청나긴 나네요. 달에 10만원 추가면 1년에 120만, 5년에 600만원이니까∙∙∙. 좋습니다. 하시죠. 6년.”
“지금 하신 결정 절대로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아니, 저한테 고맙다고 전화까지 하실걸요?”
이승준 대리가 활짝 웃으며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수겸은 이승준 대리의 손을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 마냥 꼭 쥐었다.
“감사합니다!”
수겸은 회상을 끝내고 고개를 절래 절래 저었다.
“그래. 빌어먹을 이승준 대리야. 내가 전화를 하긴 하지. 너한테. 감사 전화는 아니지만. 손님도 없으니 혼잣말만 주구장창 하네. 미친 놈도 아니고.”
빌어먹을 옛날 생각을 하면서도 수겸은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절뚝 절뚝
왼쪽 다리를 절뚝이며 그 새 들어온 발주품목을 정리하고 있을 때
다시 한번 편의점 문이 열리며 맑고 경쾌하게 종소리가 울렸다.
띠링-
“어서오세요.”
아저씨인지 할아버지인지 헷갈리는 남자였다.
머리가 하얗게 새어버린 걸 봐서 첫인상에서는 할아버지인데, 서 있는 자세나 전체적인 인상은 아저씨에 가까운 느낌이랄까.
거기다가 더 특이한 건 다 헤져버린 낡은 코트를 걸친 딱 봐도 노숙자 느낌인데 은은하게 아우라가 느껴지는 점이었다.
‘할아버지건 아저씨건, 노숙자던 아니던 그게 나랑 먼 상관이냐.’
수겸은 관심을 끄고 시선을 돌려 휴대폰 게임 화면을 쳐다봤다.
탁.
할아버지, 아니 아저씨, 아니 중년의 사내가 크림빵을 하나 집어 와서는 계산대에 올렸다.
‘이걸 사먹네? 잘됐다. 곧 폐기였는데.’
수겸은 속마음을 숨기고 바코드를 삑- 하고 찍었다.
“1,200원입니다.”
중년의 사내는 코트 주머니에서 짤그랑 소리를 내며 동전을 꺼내 건냈다.
“여깄소.”
어울리지 않게 중저음의 목소리로 짧게 말했다.
목소리는 좋았으나, 말투가 영 아니올시다였다. 책에서나 문장으로 읽어봤을법한 말을 실제로 내뱉다니.
“크, 크흠.”
순간 웃음 참기에 실패해 풉 하고 웃을 뻔 했다. 아니 사실 실패했다. 이미 입꼬리는 저만치 올라갔으니까.
남자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수겸을 봤다.
본인이 이상한지조차 모르니 왜 웃는지도, 왜 사과하는지도 알아채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돈을 건네 주며 남자가 고개를 들어 수겸을 쳐다보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공중에서 얽혀 들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손님의 눈동자는 까맣다라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뭐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빨려 들어가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둘의 눈빛 교환 시간이 끝이 나고, 손님은 아무런 일이 없었다는 듯 말 없이 빵을 집어 편의점을 나섰다.
“휴우. 왠지 소름끼치는 사람이었어.”
순간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해서 수겸은 숨을 깊게 내쉬고는 자리에 털썩 앉았다.
아주 간만에 인상 깊은 수겸의 하루가 지났다.
***
다음 날 할저씨는 또 다시 찾아왔다.
‘또 오셨네.’
“어서오세요.”
어제와 마찬가지로 남자가 집은 건 1,200원짜리 크림빵 하나.
“여깄소.”
“예. 1,200원 받았습니다. 결제 되셨습니다.”
“고맙소.”
돈을 주고, 받고, 빵을 집어가는 일련의 과정에서 수겸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할저씨가 일부러 수겸의 눈을 보기 위해 애쓰고 있는 것 같았다.
“안녕히 가세요.”
수겸은 끝까지 할저씨를 똑바로 쳐다보지 않고 결제까지 마쳤다.
할저씨는 내심 아쉽다는 듯 1초 정도 머뭇거리다가 빵을 집어 들고는 나갔다.
“이러면 크림빵 발주를 넣어야 하는거야? 아닌거야?”
방금 퇴장한 남자 덕분에 폐기 직전에 크림빵을 겨우 다 팔았다.
“까딱하다가는 악성 재고인데 말이지.”
수겸이 턱을 매만지며 고민했다.
“오케이. 못 먹어도 고!”
야간 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지하철역까지는 걸어서 15분이 걸린다.
수겸은 이제는 철거촌이 되어 버린 마을을 쳐다보며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퇴근 중이었다.
그 때 철거촌으로 들어가는 골목길 어귀에서 눈에 익은 인영 하나가 보였다.
지지난 밤에도, 지난 밤에도 크림빵을 사갔던 할저씨였다.
그런데 어제 밤까지만 멀쩡했던 사람이 지금은 무척이나 위태롭게 걷고 있었다.
한 걸음을 옮기는 것조차 힘이 든 지 벽에 손을 짚은 채 움직이는 걸 보니 도움이 필요한 상태 같았다.
수겸은 이상하다 싶어 가던 길을 다시 되돌아 도로 건너편으로 가기 위해 횡단보도로 향했다.
마음만 급할 뿐 한 쪽 다리를 절면서 가다 보니 속도가 빠르지 않았다.
“할, 아저씨! 잠깐 기다리세요. 제가 도와 드릴게요.”
할저씨가 소리를 못 들은 듯 했다.
“아저씨! 거기 있으라구요! 그러다 넘어져요.”
이제서야 수겸의 목소리가 닿은 듯 했다.
할저씨가 뒤돌아 수겸을 쳐다보고는 손을 들어 알아들었다는 표시를 했다.
그런데 잠깐 미소를 지은 듯 한 건 수겸의 착각이었을까.
초록 신호로 바뀌고 수겸은 최대한 빨리 걸어 할저씨에게 다가갔다.
“맨날 빵만 드시니까 기력이 없으시죠. 제 어깨에 손 올리세요. 제가 부축해드릴게요.”
절름발이가 노인을 돕는다.
남들이 볼 때는 도움이 필요한 이가 또 다른 도움이 필요한 이를 돕는 모양새였다.
“고맙네. 덕분에 살았어.”
“뭘요. 근데 댁이 어디세요. 제가 안까지 모셔드릴게요.”
“아닐세. 저기 언덕까지만 부탁함세. 충분해.”
수겸은 경험 상 과한 친절이 되레 불편함을 줄 수 있단 걸 잘 알았다. 그래서 더 권하지 않고 답했다.
“알겠습니다. 무리하지 마시고. 오늘은 밥 드세요. 밥!”
“알겠네. 자네 정말 친절하구만.”
“다 돕고 사는거죠. 그럼 전 갑니다?”
끝을 올려 한번 더 떠봤지만, 할저씨는 별 다른 답 없이 고개를 숙여 감사를 전할 뿐 더 이상 도움을 청하지 않았다.
다시 밤.
시계를 보니 할저씨가 편의점에 오던 시간이 다되었다.
수겸은 고민 끝에 발주를 넣은 크림빵을 챙기고, 상품 진열대로 가 폐기 처리가 된 도시락 두 개를 집어 봉투에 담았다.
띠링-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 누가 들어오는 확인했다.
역시 할저씨였다.
“어서오세요. 몸은 좀 어떠시구요?”
“이제는 괜찮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아침엔 정말 고마웠어.”
“네네. 오늘도 빵 사실거에요? 여기 도시락도 챙겨놨으니 이것도 가져가세요. 어차피 폐기라서 팔지도 못하는거에요. 그러니까 부담 가지지 마시고∙∙∙∙∙∙.”
수겸은 뒷 말을 잇지 못했다.
할저씨가 대뜸 수겸의 손을 집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노인의 말.
“오해하지 말고 듣게나.”
“뭘요?”
“자네 눈을 보니 참 좋은 기운이 느껴져. 잠깐 시간을 내어줄 수 있겠나?”
수겸은 당황하여 할저씨가 잡은 손을 재빨리 뒤로 뺐다.
‘사이비였네. 시발.’
그리고 짜증을 내며 말했다.
“저한테 이러지 마세요. 안그래도 살기 힘들어요. 제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