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learned alchemy RAW novel - Chapter 111
111화
수겸이 제시한 첫 번째 조건.
“미국에 입국할 때, 미국에서 활동할 때 절대로 내 신체, 내가 가진 물건에 대해 검열하지 않고 문제 삼지 않을 것.”
여기서부터 난이도가 꽤 높은 요구 조건이었다.
“그건 안 된다. 너도 위험, 나도 위험하다.”
찰리가 서투른 한국말로 난색을 표했다.
“아니, 이건 나를 위해 꼭 필요한 조건이에요. 난 당신들처럼 훈련받은 사람도 아니고, 무기를 다루는 방법도 몰라요. 심지어 총도 못 쏜다고.”
“한국인 남자는 다 총을 쏠 수 있지 않나?”
찰리가 물었다.
“미국인치고는 상당히 편견을 가지고 있네요. 난 다리 때문에 군대도 안 갔다고. 아니, 그건 됐고. 찰리 씨는 내가 중국에서 어떤 일을 겪었는지 알 텐데?”
“그건 알고 있다. 나 기억한다. 전부.”
사실 찰리가 쉽사리 동의하지 못하는 이유 역시 그가 중국에서 수겸을 봤기 때문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수겸이 빠져나온 뒤 펼쳐져 있던 아수라장을 떠올리면 수겸이 어떤 일을 저지를 수 있는지 너무 절실히 알 수밖에 없었다.
“이 정도 신뢰도 없으면 내가 왜 미국에 가야 하죠? 가서 총 한 방이면 난 죽을 텐데.”
“알겠다. 이건 나도 보고해야 한다. 그다음 또 이야기하겠다.”
그리고 두 번째 조건.
“어떻게 구하든지 상관없으니까 지난번 중국에서 내가 사 왔던 것과 동급인 약초 3뿌리는 구해주세요. 아니면 조금 품질이 안 좋아도 괜찮으니까 5뿌리를 구해줘요.”
“좋다. 그건 이미 예상했다.”
찰리의 시원시원한 답변.
한 가지는 일단 보류, 한 가지는 승낙이었지만, 수겸은 첫 번째 조건도 결국은 오케이 사인을 받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제 마지막 조건이에요. 이건 어차피 당연한 건데, 보수를 얼마나 줄 생각이죠?”
데이비드는 찰리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찰리가 손을 들었다.
다섯 손가락.
“손가락 하나에 100억. 미국에 함께 가서 착수만 해도 500억 준다.”
“손가락 하나당 100억…….”
수겸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찰리가 다른 손을 들었다.
“이건 일이 다 끝났을 때 줄 거다.”
손가락이 총 10개.
합이 1,000억이었다.
땅덩어리가 큰 만큼 미국은 마음도 넉넉한 것 같았다.
“거기에 약초는 별도니까.”
‘이걸 안 간다고? 그건 말도 안 되는 거지. 그래도 첫 번째 조건이 통과 안 된다면 안가.’
무엇보다 본인의 안전을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까.
“아! 이걸 빼먹었네.”
“뭡니까?”
옆에서 지켜보던 데이비드가 물었다.
“보수는 세후 금액으로요. 제 통장에 찍히는 돈이 1,000억인 겁니다. 세금은 미국에서 처리하시고요.”
“아……”
데이비드는 질린 듯한 표정이었다.
“하하…하하…….”
이쯤 되니 말한 장본인인 수겸도 멋쩍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우선은 찰리가 본국과 의사소통을 추가로 해보는 것으로 만무리하고 만남이 끝이 났다.
찰리와 데이비드가 떠난 빈자리를 보며 민환이 수겸에게 물었다.
“진짜 가게?”
“응. 가야지.”
“가서 뭘 어쩌려고. 솔직히 네가 간다고 별 수 있겠어?”
“그러면 어쩔 수 없지. 하하. 가기만 하면 500억 준다는데 왜 안가?”
“그런가. 근데 너무 허황되지 않냐? 개인한테 1,000억이나 준다는 이야기 말이야. 아무리 미국이라도 해도 난 그것부터 좀 의심되는데. 무슨 꿍꿍이가 있을 것 같아서.”
민환은 의심스러운 것 같았다.
“야, 잘 나가는 축구 선수 연봉만 해도 그 정도 될 건데 무슨 소리야. 심지어 중동으로 진출하는 선수한테는 1,000억은 가볍지. 안 그래?”
“아아. 그건 맞지. 생각해보니 그렇네. 세계의 부자들은 스케일이 다르긴 하구나. 이렇게 보니 느낌이 확 오네.”
“그렇지. 아마도 조건은 다 될 거니까 미리 준비를 해야겠다.”
* * *
수겸은 하루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
불이 꺼진 거실, 냉기만이 가득한 방, 잘 다녀왔냐며 맞이해주는 사람 없는 외로운 집.
‘이제 그건 옛날 말이지.’
수겸은 현관문을 열자마자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를 맡았다.
“수겸이 왔니? 오늘도 힘들었지?”
마른행주로 손을 닦으며 수겸의 할머니, 김옥례가 현관으로 나와 수겸을 맞이했다.
김옥례는 몇 차례 마나 스트림으로 치료를 한 이후에는 더 이상 요양원에 있을 필요가 없어졌다.
‘이게 진짜 집이지.’
“잘 다녀왔습니다.”
지금 김옥례의 상태를 설명하자면, 이제는 치매 증상은 완전히 없어진 상태.
적어도 최근 일주일 동안 한 차례도 없었다.
이제는 원래도 있던 건망증 정도가 되었고, 신체는 원래도 노환으로 인해 체력이 떨어졌을 뿐 질병은 없던 터라 몸을 움직이는 것에는 전혀 제약이 없었다.
“할머니는 하루 어떠셨어요?”
“무척이나 즐거웠단다. 오랜만에 동네 마트에 가서 장을 보는 일도, 장바구니를 들고 집에 오는 길도, 너 주려고 음식을 만드는 일도 하나 같이 즐거움뿐이란다.”
“하하. 그래도 너무 무리하지는 마세요. 도우미 선생님은 퇴근하셨죠?”
“응. 고맙게도 청소도 다 해주시고, 내가 깜빡하고 약을 안 챙겨 먹었더니 그것도 챙겨 주시더구나.”
“감사하네요. 아, 배고프다! 할머니 저 빨리 씻고 올게요. 같이 밥 먹어요.”
“그러자꾸나.”
수겸은 씻고 나와서 식탁에 앉았다.
보글보글 끓고 있는 뚝배기에 담긴 된장찌개, 뒷맛만 살짝 매콤한 어묵볶음, 청양고추와 함께 볶은 멸치까지 어느 것 하나 거를 타선이 없었다.
“어우, 오늘은 두 그릇 먹어야겠네.”
“천천히 먹어.”
수저를 열심히 움직이며 밥을 먹다가 수겸이 김옥례를 보며 말했다.
“할머니, 저 잠깐 미국에 다녀올 일이 생길 것 같아요.”
“미국?”
“예, 미국에서 저한테 도움을 달라고 오늘 찾아왔네요. 언제 또 이런 일이 있을까 싶기도 하고, 돈도 많이 준대요. 그래서 다녀올까 해요.”
“위험한 일은 아니지?”
“전혀요. 전혀.”
수겸은 젓가락을 내려놓고 손사래를 쳤다.
‘거짓말은 죄송해요. 아시면 너무 걱정하실 것 같아서요.’
마약과 관련된 일 중에 어디 안전한 일이 있을까.
수겸은 알지만 사실대로 말하지 못했다.
“네가 좋다면 무엇이든 하렴.”
“네. 근데 그사이에 할머니가 혼자 계실까 봐 걱정이에요. 물론, 계시던 요양원에서 잠시 거주하셔도 돼요.”
“아니다. 이제는 여기에서 계속 지내고 싶구나. 도움 주시는 분도 계시니까 어렵지 않을 것 같아.”
수겸은 이야기를 하다 보니 할머니가 더 마음에 쓰여 떠나기 힘들어지는 것을 느꼈다.
“수겸아.”
“네.”
“할머니 때문에 안간다고 생각하지는 말거라. 그게 오히려 이 할미 속을 상하게 하는 거야. 걱정할 것 없다.”
“진짜 괜찮으시겠어요? 집에 모신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제가 떠나는 게.”
“괜찮대두.”
“알겠어요. 근데 내일 바로 가는 건 아니고 대충 한 달? 그쯤 뒤에 갈 거예요. 그사이에 재밌는 것도 많이 하고 해요.”
“그러자꾸나. 찌개 식을라. 어서 먹으렴.”
수겸은 한결 편해진 마음으로 숟가락을 들었다.
* * *
수겸은 아직 찰리에게서 어떠한 답변도 듣지 않았건만 미리 준비를 시작했다.
그 첫 시작을 위해서는 김철수가 필요했다.
김철수를 만나기 위해 노고산동을 찾은 수겸은 한 카페에 앉아 있었다.
“여기요!”
두리번거리는 김철수를 먼저 발견하고는 수겸이 손을 번쩍 들어 흔들었다.
“연락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야말로 시간 또 내주셔서 감사하죠.”
수겸은 먼저 주문을 하고 진동벨을 들고서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이번엔 부탁을 좀 드리려고 연락드렸어요. 아무래도 저 혼자서는 한계가 있어서요. 혹시 시간이 되신다면서요.”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나요? 저 회사까지 관뒀다고. 지금 제 시간은 전부 사장님 것이라고 보셔도 무방합니다. 하하.”
“그렇게 말씀하시니 상당히 부담스럽네요. 일단 본론으로 그냥 넘어가면.”
지이잉― 지이잉―
그때 진동벨이 울렸다.
“아이고, 타이밍이 참.”
수겸은 아이스 아메리카노, 김철수는 쿠키앤크림 프라푸치노.
각자의 앞에 음료를 두고서 다시 대화를 시작했다.
“제가 이번에 미국을 가게 되었습니다.”
“오! 출장입니까?”
“예, 출장 비슷한 거죠. 일종의 프리랜서라고나 할까. 하여튼 그래도 외국이라 마음이 좀 놓이질 않네요.”
“그래서 절 부르신 겁니까?”
“네. 호신용 장비를 만들려고 했는데 제가 머릿속으로 구상이 잘 안되네요. 만드는 것 자체는 뚝딱하면 나오는데…….”
수겸은 지난 이틀 동안 머리를 꽁꽁 싸맸던 기억을 떠올렸다.
파앗―
마법진에서 푸른 빛이 터져 나왔다.
“이번엔 어떻게 됐나?”
이번에 수겸이 만들고자 하는 건 시약을 보다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장치였다.
‘게다가 남들 눈에는 띄지 않으면 더 좋고.’
깨지긴 쉬운 앰플은 소재 측면에서 일단은 탈락이었다.
가벼운 알루미늄, 플라스틱이 좋고 그것도 아니면 철이라도 상관은 없었다.
형태는 작고, 손쉽게 먹을 수 있는 형태.
“모든 시약을 같은 형태로 들고 다닐 필요는 없으니까 비상시에 쓸 수 있도록 힐링 포션 정도라도 넣으면 좋을 텐데.”
일전에 목걸이 형태로 만들었던 기억을 되살려 이번엔 팔찌 형태로 만들려고 했다.
내부가 텅 빈 팔찌에 시약을 넣고 유사시에 흡입할 수 있도록 어떤 버튼을 누르면 분사가 되거나 빨대가 튀어나오는 모양.
수겸은 마법진 위의 물건을 살펴봤다.
“일단은 팔찌 모양은 됐는데.”
수겸은 팔찌를 집어 들고 가운데에 난 구멍으로 시약을 넣었다.
조르륵.
시약은 원하는 대로 잘 들어갔다.
이제 문제는 이걸 먹을 수 있냐는 것.
“내가 생각한 건 여기 이 버튼인데. 이걸 누르면!”
픽!
놀랍도록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에라이. 아무래도 작동 원리를 내가 모르니까 제대로 안 되나 본데. 내가 공부를 한다고 해서 할 수 있을까?”
고민의 밤은 점점 깊어져만 갔다.
수겸은 지난 밤 겪었던 실패 경험에서 전문가의 중요성을 배웠다.
“전문가 옆에 두고 혼자 왜 고생을 하겠습니까? 혼자 고생하느니 철수 씨의 실력을 사겠습니다.”
자칫하면 건방져 보일 수 있는 멘트였다.
“아시다시피 제 몸값은 곧 하루가 다르게 올라갈 게 뻔하니 지금이 제일 저렴한 건 아시죠?”
아직 마나 스트림에 대한 언론 보도가 나가기 전이기 때문이었다.
정인섭의 발표가 나간 후에는 아마 ‘마나 스트림의 개발자’ 타이틀로 김철수가 소개가 나갈 텐데 그러면 김철수의 말처럼 하루가 다르게 몸값이 올라갈 것이었다.
“그럼요. 제가 구상한 아이디어를 설계하시고 도면까지만 그려주시면 됩니다. 만드는 건 제가 하겠습니다.”
수겸이 살짝 야비한 표정으로 김철수에게 부탁했다.
“그런 표정 지으실 것까지야. 당연히 사장님 부탁이면 들어 드려야죠.”
“하하. 너무 갔나요?”
“네……. 만들고 싶으신 장비는 몇 종류가 되시나요?”
“일단은 세 종류인데 하다 보면 더 늘지도 모르겠어요.”
어찌 됐건 수겸의 미국 출장 준비는 차곡차곡 진행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