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learned alchemy RAW novel - Chapter 110
110화
같은 시각, 조태규와 이찬수가 서울 한복판 종로의 한 빌딩을 올려다 보고 있었다.
2층에 콜라텍 글씨가 수백 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보일만큼 커다랗게 적힌 간판에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허름한 외관이 인상적이었다.
고개를 들어 창문을 쳐다보면 건물을 세운 이래로 단 한 번도 외벽 청소를 하지 않은 것이 분명한 듯 창문에 때가 잔뜩 껴 있었다.
“이 건물이 매물로 나왔다는 말씀이세요?”
조태규가 ‘설마 진짜?’ 라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예. 지나가면서도 보신 건물일 텐데?”
“본 적이야 있죠. 그럴리야 없겠지만 전 주인도 없는 버려진 건물인 줄 알았지 뭡니까.”
“아아. 그런 뜻이라면 물어보실만 하네요. 그 동안 계속 건물주가 팔려고 하긴 했는데, 인수를 하게 되면 수리비나 청소비가 엄청날테니 아무도 안샀나보더군요.”
“그래요? 그 정도는 할만한데요? 우리는 어차피 전체를 뜯어고치는 공사를 해야 하니까요.”
웬만한 자본력 가지고는 엄두도 못 낼 작업이지만 수겸은 이미 웬만한 이라는 단계를 넘어선 지 오래.
“서울 가운데라 입지도 좋고, 평수도 너무 좋네요.”
조태규는 흡족한 마음이 들었다.
“대한 제약 공장으로 계속 시약을 날라야 할 텐데 그건 괜찮나요?”
“차가 좀 막힐 수는 있지만 그런 쪽으로는 문제 없습니다. 서울이야 어디에 있든 좋죠. 오히려 저희 본사와 가까우니 저도 쉽게 오고갈 수 있을거에요.”
이찬수 역시 긍정적인 것 같았다.
이미 수겸의 계획을 전부 들은 조태규는 눈을 감아 상상했다.
층별로 작업 공정을 나누고, 내부에 설치된 설비를 이용해 연금술에 사용될 재료들을 옮기는 모습을.
“아, 그리고 그거 혹시 들어보셨습니까?”
이찬수가 물었다.
“어떤거죠?”
“요새는 기술도 좋고, 장비도 좋아져서 실내에 수경재배기를 설치할 수 있다고 하더라구요? 최신 기술을 모두 접목시킨 스마트팜!”
“스마트팜이요?”
“예. 보통은 집에서 먹는 쌈 채소 정도를 키우기는 하는데 이거 조금만 손 보면 이 건물 지하에 아예 밭을 만들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조태규와 마찬가지로 이찬수도 이 건물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상상했다.
“오! 보입니다. 재배하고, 가공하고, 연금술 제품까지! 원라인으로 만드는 시스템이 되겠는데요?”
마침내 둘이 그리는 미래의 모습이 하나로 겹쳐지기 시작했다.
“우리 이 건물로 합시다.”
이천을 비롯해 지방의 땅도 모두 살펴 봤지만 여기가 최고였다.
지하 4층, 지상 12층. 종로와 종각 사이의 건물은 이제 연금술 타워가 될 것이었다.
* * *
“외국인?”
고개를 갸웃거리는 민환과는 다르게 수겸은 외국인을 들어오는 사람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찰리!”
중국에서 만난 미국 정보국 소속의 찰리였다.
중국에 간 이유였던 산삼을 수겸의 손에 쥐어줬던 도움을 받았던터라 내적 친밀감이 어느정도는 쌓여 있었다.
“수겸!”
둘은 악수까지는 기세좋게 나눴지만 문제는 수겸은 영어가 되지 않는다는 것.
민환 역시 마찬가지여서 더 이상의 대화가 사실상 불가능했다.
통역사를 데리고 온 것도 아니기 때문이었다.
“나, 한국어 배웠다.”
전혀 뜻밖의 일. 찰리가 서툴지만 한국어로 수겸에게 말을 걸었다.
“오! 대박. 나 보러 온거에요?”
수겸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자기를 가르키며 물었다.
“맞다. 나 한국 왔다. 수겸 때문에.”
“왜요?”
수겸은 한 단어라도 일부러 천천히 말을 하며 찰리와의 대화를 이어나갔다.
“수겸이 미국에서 할 일 있다. 우리를 위해. 도움이다.”
“내가 미국에서 해줬으면 하는 일이 있다는거죠? 도움 요청하는거에요?”
‘무슨 일이지? 미국이 외국인에게 도움을 청하기 위해 요원을 파견하기도 하나?’
“맞다. 그래서 나 한국어 배웠다. 그게 매너다.”
비록 서툴지만 찰리를 중국에서 본 것이 불과 몇 개월 전.
기간을 생각하면 꽤 열심히 공부를 한 것이 틀림없었다.
“맞아요. 그게 예의에 맞죠. 무슨 일인지도 설명할 수 있어요? 아니면 그건 통역사를 부를까요?”
“통역 준비했다. 조금만 기다려달라.”
찰리의 말대로 잠시 후 건장한 체격의 남성이 나타났다.
“안녕하세요. 미 CIA소속 데이비드 차 입니다.”
“억양이? 혹시 한국계세요?”
“예. 저희 부모님이 한국분이십니다. 전 미국에서 나고 자랐지만 한국어는 반드시 할 줄 알아야 한다며 교육시키셨죠.”
“아아. 전 덕분에 편하고 좋네요. 근데 그럴거면 애초에 같이 들어오시지. 찰리는 왜 굳이 혼자 들어와서 그랬대요?”
“제가 한국인은 예의를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했더니 작전 준비하면서부터 한국어 공부를 하더군요. 그래도 안면이 있는 자기가 먼저 인사를 해야한다고.”
“우리도 그정도 융통성은 있는데. 하하.”
“그러게요. 굳이 저는 밖에서 대기하라고 해서 기다리고 있던 참입니다.”
“찰리는 그런 성격이군요.”
“예, 그런 성격이죠.”
둘은 말하지 않아도 통하기 시작했다.
수겸은 모두를 2층, 아르케의 사무실로 안내했다.
1층은 긴 이야기를 나누기엔 부적합하기 때문.
회의실 테이블에 수겸, 민환, 찰리, 데이비드가 앉은 후 찰리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미안해요. 이제부터는 영어로 해야 한다.”
찰리가 사죄를 하는 듯 두 손을 모아 모두에게 양해를 구했다.
“지금부터는 공식적인 미국의 입장을 전하기 때문에 영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음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찰리가 영어로 말하고 데이비드가 한국어로 번역을 해서 수겸에게 알려주었다.
“현재 미국은 마약 중독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는바, 이에 대한 새로운 대처로 연금술을 채택하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연금술사가 직접 미국 본토에 방문하여 현지 조사 후 해결 방안을 내어주기를 요청합니다.”
생각지도 못한 내용이었다.
‘기껏 해봐야 힐링 포션 정도만 내어달라고 할 줄 알았더니.’
수겸은 데이비드의 통역을 듣고 생각에 잠겼다.
“이런 내용을 부탁하기에는 미국의 자존심이 상할 것 같은데요? 조금 말씀드리리가 뭐하지만, 제가 움직이면 아마 우리나라에서는 기사까지 날 겁니다. 왜 움직이는 지에 대한 기사요.”
이번엔 거꾸로 데이비드는 수겸의 말을 번역하여 찰리에게 말했다.
“언론은 통제가 될 겁니다. 추측만 나올 뿐 정확한 내용은 외부에서는 전혀 알 수 없어요.”
“쉽네요.”
미국에서 한국 언론을 통제한다고 하니 기분이 영 좋진 않았다.
“저, 질문 있습니다.”
민환이 손을 들었다.
“Yes. Mr. choi.”
찰리가 발언권을 허락했다.
“저희, 아니 수겸이가 만든 것 중 디톡시라는 제품이 있습니다. 이건 몸에 있는 모든 중독 증상을 없애는 효과가 있는데 이걸 사용하면 중독 문제는 해결되는 것이 아닌지요?”
“그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아닙니다.”
“아, 이건 제가 바로 설명드릴 수 있겠군요.”
이번엔 데이비드가 찰리에게 발언권을 얻어 설명을 시작했다.
“이 말씀을 드리기 전에 미국의 상황을 말씀드려야 이해가 쉬울 것 같습니다. 연금술에 대한 입장이요.”
“네.”
무미건조한 수겸의 대답.
“연금술이 세상에 공개된 지도 벌써 꽤 시간이 지났음에도 이제서야 저희가 접촉한 건 아직 미국은 한국처럼 연금술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미국인도 아니고 오직 한국인 한 명만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까?”
아까와는 다르게 수겸은 감정이 섞인 목소리로 답했다. 물론 그 감정이 좋은 쪽은 아니었다.
“솔직히 말씀드리죠. 그 부분도 분명 작용하고 있다고 봅니다. 게다가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니 더욱 어렵죠.”
“그러면 왜 저를 찾아오신거죠? 인정할 수 없는 잡지식, 사이비 종교랑 같은 취급이신 것 같은데. 알아서 해결하시지 먼 한국까지 찾아온 이유를 알 수가 없네요.”
수겸은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어차피 아쉬운 건 저들이니까.’
“한국 속담을 인용하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경인 겁니다. 이제 현대 과학과 미국의 법으로 마약과의 전쟁에서 이기는 방법은 없다는 판단입니다.”
“그건 아니지 않나요? 미국 정부에서 제대로만 나서면 간단할 것 같은데요?”
민환이 끼어들어 물었다.
“다 죽일 생각으로 한다면 가능하겠죠. 근데 그걸 시행하는 대통령은 학살자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채 정치계에서 퇴출될 겁니다. 아니면 전부 감옥에 집어넣는다? 감옥 안에서도 마약을 하고 있는 판입니다. 그것도 옵션이 되지 않습니다.”
“그, 그렇군요.”
학살이라는 제법 강한 워딩에 민환은 수그러들었다.
“이 상황에서 직접 중국에서 수겸 씨를 만나고 온 찰리가 나서서 마지막으로 연금술을 활용해보자는 의견을 낸 겁니다. 이 친구는 직접 봤으니까요. 연금술의 위력을요”
“아, 이야기가 그렇게 된 거군요?”
수겸이 찰리를 스윽 쳐다봤다.
찰리 역시 한국어지만 자기의 이름이 나왔다는 건 알아듣고는 수겸을 마주 보았다.
“아까 또 디톡시 말씀하셨지요? 먹는 해독제, 우리도 역시나 그걸 생각했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뭐죠?”
수겸이 고개를 돌려 데이비드를 쳐다봤다.
“일단 모든 마약 중독자에게 공급할 정도의 양을 확보할 수 없습니다.”
실제로 아직 단 한 건도 수겸이 만든 연금술 제품이 해외로 수출된 경우는 없었다.
“내수용으로도 부족한 양이라 그렇죠.”
“예. 대한 제약 측과도 이야기를 했지만 역시나 정부에서 통제를 하는 바람에…….”
‘분명 그런 부분에서는 통제를 하지 말라고 했는데.’
수겸이 처음 연금술을 공인 받았을 때 했던 약속. 그건 수겸이 연금술 제품을 누구에게, 어느 나라에 팔던 그것에 대한 통제는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수겸은 데이비드의와의 대화를 통해 자신이 모든 상황을 컨트롤하고 있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하여튼 그건 알겠습니다.”
“그리고 만약 디톡시를 공급받는다고 쳐도 한 사람이 디톡시를 통해 중독 증상에서 벗어난다고 해도 같은 시간에 두 사람이 마약에 빠져드는게 미국의 현실입니다.”
“총체적 난국이네요.”
수겸의 말대로 현재로서는 답이 보이지 않았다.
“총체적?”
그 와중에 찰리는 처음 듣는 단어를 캐치해서 뜻을 물었다.
“모든 면에서 어렵다는 이야기에요.”
“어떻게 할거야?”
민환이 수겸에게 물었다.
“음… 개고생할 건 뻔한데 그렇다고 안갈 수 있겠어? 천하의 미국이 이렇게 부탁을 하는데?”
한국어를 다 알아듣는 데이비드가 듣던 말던 수겸은 할 말을 다 하는 편.
“그러면 제가 하던 일도 있으니 그것만 정리하고 한 달 뒤에 출발하는 것으로 합시다.”
“한 달? One month 맞지? 너무 길다.”
찰리가 난색을 표했다.
“안 돼, 찰리. 이 게임의 주도권은 내가 쥐고 있어. 이제는 너희가 내게 맞춰야 해. 싫으면 어쩔 수 없지.”
“수겸…….”
“게다가 난 아직 조건을 전부 말하지도 않았는데, 여기서부터 이럴거야?”
“No, man.”
“한국어를 배웠으니 이건 알겠지. 내가 갑이고, 너희가 을이야. 오케이?”
찰리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이제 다른 조건도 좀 맞춰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