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learned alchemy RAW novel - Chapter 134
134화
“그럼 다음으로는 교장 선생님 훈화 말씀이 있겠습니다.”
사회자의 안내에 따라 운동장 단상으로 한 남자가 올라갔다.
하늘색 트레이닝복을 위아래로 맞춰 입은 남자는 인화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이었다.
삐익―
교장 선생님이 마이크의 전원을 켜자 고막을 꿰뚫는 듯한 소리가 운동장에 울려 퍼진다.
운동장에 열을 맞춰 서 있는 학생들은 하나같이 인상을 찌푸렸다.
“아아. 청명한 가을입니다. 오늘만큼은 모두가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를 모두 잊고…….”
훈화 말씀은 끝날 듯하면서 끝나지 않는 것이 제맛.
학생들은 그러거나 말거나 저마다 눈빛 교환을 하며 뭐가 그리 재밌는지 킥킥대며 떠들기 시작했다.
5학년 2반 이지원도 여타 다른 아이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다리 아파. 언제 끝나는 거지?”
이지원이 발끝을 바닥에 대고 발목을 돌리는 스트레칭을 했다.
“야, 이지원. 인제 그만 인정하시지? 너 거짓말했지?”
이지원에 옆에 서 있던 단짝 친구 박상필이었다.
“거짓말 아니거든?”
이지원이 매서운 눈빛으로 박상필을 꼬나 봤다.
“그러면 진짜로 네가 말한 대로 강수겸이 연금술 시약을 만들어 준다고? 크크. 그 강수겸이?”
“맞다니까. 내가 너튜브 영상 올라온 것도 보여줬잖아.”
“그거야 조작했을 수도 있지. 아니면 그리고 내가 어제 집에서 생각해봤는데 아이디 대조도 안해본 것 같아. 그냥 네 아이디라고 뻥 친거 같은데.”
“내가 왜 그런 거짓말을 하냐? 관종도 아니고.”
“너 관종 맞는데?”
박상필이 마치 ‘너 그거 몰랐어?’라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때 학생들 대열 끝에 서 있던 수학 선생님이 조용히 다가왔다.
“너희 조용히 안 해? 교장 선생님 말씀하시니까 잘 들어.”
이지원과 박상필, 둘 모두 뜨끔해서 입을 꾹 닫았다.
“모두 즐겁고, 활기차게 뛰놀고 오늘 하루 다치지 말자. 알겠지요? 이상.”
때마침 훈화 말씀이 끝났다.
“그럼 제49회 인화초등학교 가을 운동회를 시작하겠습니다. 각 학년은 사전에 공지된 대로 배정된 위치로 돌아가 좌석에 앉아 주시기 바랍니다.”
삐이익.
학생들을 인솔하기 위한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고 학생들은 삼삼오오 모여 퍼지기 시작했다.
“진짜로 강수겸이 오는데 이렇게 아무런 말도 없고 행사가 없다는 게 말이 돼? 전 세계에 유일한 연금술사가 오면 폭죽 준비라도 해야 맞지. 안 그래?”
박상필은 걷는 와중에도 이지원을 몰아 붙였다.
“음… 그건 그런데. 교장 선생님 캐릭터에 만약에 그분이 오신다고 하면 지난주부터 대청소시키고 하긴 했을 것 같은데.”
“그러니까! 내 말이 그거라니까.”
“그런가…….”
이제는 이지원마저 포기한 모양이었다.
“내 말은 넌 올해도 100미터 달리기는 꼴찌란 이야기지.”
“아니거든. 나 진짜 연습 많이 해서 올해는 꼭 5등 할 거야.”
“만약에 네가 5등 한다고 하면 네 뒤에 들어오는 애는 진짜 평생 놀림감이다.”
박상필이 그렇게 재밌는지 말을 하면서도 박장대소를 했다.
사실 운동회 달리기가 무슨 대수겠는가.
평소에는 달리기가 빠르든 느리든 신경 쓰지 않지만, 이지원의 단짝 친구 박상필은 매년 이때 틈만 나면 이지원을 놀렸다.
그러니 별일이 아니어도 이지원에겐 별일이 되어버리는 것.
‘내가 무조건 꼴찌는 피하고 만다.’
이지원은 다시 한번 굳게 마음을 먹었다.
그게 달리기 속도가 빨라지는 것에는 도움이 안 되겠지만.
대회는 순조롭게 진행이 되었다.
강당에서는 인화초등학교의 특화 종목인 핸드볼 시합이 열리고 있었고, 운동장에선 단체 줄넘기를 진행하고 있었다.
줄넘기 시합이 끝나면 이제 점심 식사 시간이었다.
수겸이 도착한 건 바로 그때였다.
“야, 진짜 옛날 생각난다.”
민환은 옛 추억이 떠오른 듯 약간 촉촉해진 눈으로 운동장 전경을 바라보았다.
“그러냐. 난 사실 운동회 진짜 싫어했어. 최악이었어.”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보냈건만 둘의 기억은 완전히 상이했다.
“큼. 그럴 수 있지.”
“운동회만큼은 피할 수 없었거든. 그리고 모두의 시선을 한눈에 받았지.”
“너 근데 달리기는 안 하지 않았냐?”
“달리기를 안 하면 또 안 하는 대로 모두가 쳐다봐.”
뭐든 남과 다르다는 건 이목을 끌기 마련이었다.
수겸의 경우에는 그 이목은 연민과 동정이 실린 눈빛이었고.
“됐고, 이제 끝났다. 가볼까?”
수겸은 무슨 말을 할지 고민하는 것이 뻔히 보이는 민환에게 말했다.
“응. 내가 미리 연락은 해뒀어. 바로 교무실로 가면 될 거야.”
“근데 전화로 어떻게 이야기했어? 좀 뻘줌했을 것 같은데.”
“그냥 이벤트 같은 거라고 이야기했지. 사실 애들은 아직 연금술이 뭔지 직접 경험해볼 일이 없으니까 재밌어하지 않을까요 라고 하면서.”
“말 잘했네.”
그러면서 수겸은 혹여나 누가 눈치채지 않게 최대한 고개를 숙인 채 학교 건물로 향했다.
“아, 오셨다!”
수겸이 건물 안으로 무사히 들어오자 기다리고 있던 한 남자가 수겸을 맞이했다.
좀 전에 대회 시작을 알리던 사회자였다.
“안녕하세요. 강수겸 님이시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목소리만 들어도 얼마나 수겸을 기다렸는지 알 수 있었다.
“이쪽입니다. 우선 교장 선생님께 인사를. 아까부터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수겸은 안내를 받아 교무실에 들어갔다.
* * *
점심시간이 지나고 안내 방송이 나왔다.
“5학년 학생들은 100미터 달리기 시합을 위해 운동장으로 나와주시기 바랍니다.”
“야, 이지원 가자. 너 근데 꼴찌한다고 너무 속상해하지 마. 우리 반 애들이 달리기 잘하니까 네가 점수 깎아 먹어도 괜찮아.”
박상필은 질리지도 않는 모양이었다.
박상필의 말대로 달리기 시합은 각 반에서 한 명씩 나와 조를 이룬 후 등수대로 점수를 부여하는 방식.
이기기 위해서는 반 전체가 잘하는 것이 최고지만, 그렇다고 한 명 정도는 커버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었다.
탕!
신호 소리가 울려 퍼지고 첫 번째 조의 시합이 시작됐다.
“아, 떨린다.”
이지원은 손에 난 땀을 연신 옷에 닦으며 순서를 기다렸다.
“야! 나 먼저 출발한다. 화이팅이다.”
박상필은 마지막에 응원의 한마디를 하고 출발선에 섰다.
탕!
결과는 1등.
이제 이지원의 차례였다.
“후욱. 후욱.”
시작도 전에 이미 숨이 거칠어지기 시작했으니 결과는 보나 마나.
역시 이번에도 꼴찌였다.
최선을 다한 이지원은 거친 숨을 내쉬며 바닥에 쪼그려 앉았다.
“아이. 왜 안 와. 오기로 했으면 와야 하는 것 아냐?”
이제는 원망의 대상이 오기로 해놓고 오지 않는 강수겸을 향하기 시작했을 때 5학년 시합이 끝이 났다.
톡톡.
마이크를 손으로 두드리는 소리였다.
“모두 잠시 주목해주시기 바랍니다.”
사회자 선생님은 모두가 집중할 시간을 주기 위해 잠시 뜸을 들였다.
“이제 5학년 학생들의 달리기 시합이 끝났는데요, 이어서 6학년들의 시합까지 마무리가 되면 특별한 초대 손님이 오시기로 했습니다.”
이지원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방송이었다.
“야!”
“이지원! 진짜?”
같은 반 아이들이 모두 번개같이 빠른 속도로 이지원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거봐! 내가 맞지?”
이지원은 교무실이 있는 본관 건물 입구만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지루한 6학년들의 경기가 끝나자 이내 운동장 전체가 소란스러워지고, 수겸이 단상 위에 올라섰다.
“안녕하세요. 강수겸입니다.”
와아아아―
우레와 같은 함성이 이런 것일까.
수겸은 방긋 웃으며 마이크를 쥔 손에 힘을 주며 말했다.
“오늘은 제가 특별한 부탁을 받아 인화초등학교에 왔습니다. 바로 5학년 2반 이지원 학생이 한 부탁인데요. 그건 달리기 시합에서 이길 수 있도록 빨라지는 시약을 연금술로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수겸의 말에 곳곳에서 웃음소리가 났다.
“어떻게 보면 사소하고 유치한 부탁일 수도 있지만, 어릴 적 달리기를 못하던 제가 떠올랐습니다. 저도 진짜 달리기 잘하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이지원 학생의 부탁을 선택했고 그 결과가 바로 이것입니다.”
수겸이 하늘색 물약이 들어있는 앰플 병을 높이 들어 모두가 볼 수 있게 했다.
“이 약물의 효과는 말 그대로 달리기가 빨라지는 것인데요, 새로운 시약을 만든 기념으로 이벤트를 제안하려고 합니다. 바로 제가 만들어 온 이 시약을 먹은 지원 학생과 달리기 시합을 하여 이긴 조에게는 최신형 태블릿 PC를 선물하겠습니다!”
수겸이 힘을 주어 말하자 학생들의 박수 소리가 들렸다.
“에이, 소리가 너무 작은데요?”
와아아―
훨씬 더 커진 함성과 박수 소리.
“그러면 지원 학생은 제게 와주시고, 선생님들께서는 함께 달릴 학생들을 선발하여 주세요!”
수겸은 미리 상의한 내용대로 이야기했고, 선생님들은 수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반에서 가장 빠른 아이를 차출했다.
그렇게 모인 최정예 멤버 5명과 지원.
아쉽지만 모든 학년을 대상으로 하기에는 무리인 상황.
5학년 3명, 6학년 2명을 뽑아 조를 이루었고, 이지원은 수겸이 지켜보는 와중에 가장 출발선 가장 바깥쪽에 섰다.
“지원아! 나만 믿고 힘껏 달려.”
수겸이 지원의 등을 탁 쳤다.
“한 번 해볼게요! 파이팅!”
이제 모두가 준비를 마쳤고, 선발된 학생들은 영혼을 갈아 넣겠다는 각오로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셋, 둘, 하나. 탕!
경기가 시작되고, 애초에 반사 속도가 뒤떨어지는 지원은 다른 학생들에 비해 늦게 달리기 시작했다.
“이지원! 파이팅!”
수겸은 어느새 몰입하여 이지원의 등을 보며 소리쳤다.
타다다닥.
이지원은 말 그대로 바람을 가르는 느낌을 받으며 내달렸다.
‘믿기지 않아.’
몸이 너무 가벼웠다.
한 명을 제치고 또다시 한 명을 제친다.
‘이제 셋.’
너무 즐거운 순간이었다.
그리고 결국 선두까지 제치고 결승선을 통과한 이지원.
“허억. 허억. 심장이… 심장이 터질 것 같아.”
이지원은 결승선을 통과하자마자 침대에 눕듯 바닥에 뻗어버렸다.
“승자는 5학년 2반 이지원!”
사회자가 결과 발표를 하고 어느새 단상으로 간 수겸이 마이크를 손에 쥐었다.
“최선을 다해 뛰어준 학생들에게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런 의미로 다섯 학생 모두에게 선물을 드리겠습니다! 아, 그리고 참여하지 못한 다른 학생들이 섭섭할 수도 있으니까 제가 만든 시약들이 조금씩 담긴 패키지를 준비했어요.”
수겸이 본관 출입구 쪽에 쌓여 있는 박스더미를 가리켰다.
“와아아!”
“강수겸 최고! 재밌었어요!”
수겸은 아이들의 함성을 들으며 지그시 눈을 감았다.
‘여기 오길 잘했어.’
처음엔 그저 여러 가지 시약을 만들어 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한 프로젝트였다.
‘그런데 이게 이렇게나 힐링이 되다니.’
수겸이 고개를 돌려가며 즐거워하는 아이들의 얼굴을 보았다.
‘가끔은 가벼운 마음으로 연금술을 하는 것도 좋겠어.’
수겸이 연금술을 배운 이래로 가장 가벼운 마음이 들었던 날이었다.
돈으로부터, 누군가의 시선으로부터, 사람을 살려야겠다는 의무감으로부터
해방된 그런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