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learned alchemy RAW novel - Chapter 133
133화
“혹시나 해서 물었는데 뻔하긴 하네.”
수겸이 방송 내용을 복기하면서 작게 이야기했다.
“저는 사장님이 방송 중에 말씀하셨을 때 딱 생각이 들더라구요. ‘어? 이거 다 비슷비슷할 텐데?’라고. 딱 맞췄죠. 헤헤.”
최영지가 손가락으로 브이를 만들어 수겸에게 내보였다.
“아 그래?”
“네. 솔직히 요새는 남자든 여자든 보이는 게 전부잖아요. 이쁘고 잘생겼다는 이야기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하긴 그것도 그렇지. 거기다가 탈모약이랑 다이어트약은 아직 완벽한 약도 안 나왔으니까.”
“제 친구 중에 스트레스 때문에 원형 탈모가 온 애가 있는데 진짜 그것 때문에 또다시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았습니다.”
이번엔 이은호가 말했다.
“한 번 그렇게 되면 악순환이긴 하겠다. 스트레스 때문에 생긴 탈모인데 그게 다시 스트레스가 되어버리니까, 나을 수가 없겠네.”
“다이어트도 진짜 힘들어요. 저도 저녁에 맥주 한 잔을 마신 날이면 죄책감까지 든다니까요!”
“너도? 네가 뺄 살이 어딨다고 그래.”
“안 보이게 꼭꼭 숨겨놔서 그래요. 그러니까 꼭 만들어 주세요.”
“너희들까지 그렇게 말하니까 더 와닿는다. 미용 목적만으로도 있으면 좋겠다 싶은데 이게 진짜 치료제로써도 있으면 좋겠네.”
수겸은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했다.
‘뭐라도 건지면 좋겠는데.’
“일단 알겠으니까 잠깐 나 혼자 좀 있을게. 여기 정리 부탁할게.”
“네! 알겠습니다.”
수겸은 뒷정리를 둘에게 맡기고 위층에 있는 작업실로 향했다.
‘탈모 치료하는 약이나 발모제와 같은 효과인 시약은 없어?’
이쯤 되면 짠 하고 나타날 때가 됐다.
“그렇지!”
수겸이 손가락을 튕기며 눈앞에 떠오른 글씨를 읽어 내려갔다.
[발모제 제작]– 섭취할 경우 전신의 모공을 자극해 털이 나기 시작한다.
– 연금술이 만들어진 세계에는 탈모라는 증상이 없었기 때문에 연구가 깊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 시약 제조법과 함께 처음 발모제를 개발한 연금술사의 전언이 전해진다.
– ‘먹으면 귓등까지 털이 나니까 장난으로라도 타인에게 섭취를 권하지 말 것.’
“…망했네.”
수겸의 한줄평이었다.
역시나 탈모 치료의 길은 멀고도 험한지 당장 연금술로 뭔가를 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리카르도 아저씨가 살던 세상엔 탈모가 없었다고? 그런 축복받은 유전자가 있다니. 하긴 생각해보면 아저씨 머리 윤기가 남다르긴 했지.”
아직 본인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수겸은 빈약한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방송에서 채팅을 남겼을 누군가를 상상했다.
‘미안합니다.’
그러면서 수겸은 다짐했다.
“그래도 포기하지 마세요. 저도 포기하지 않을게요.”
연금술은 어차피 연구하는 학문.
끊임없이 공부하고 도전해야 했다.
“이제는 나도 나만의 시약을 만들 수 있을 테니까. 탈모를 정복하겠어.”
아닌 게 아니라, 수겸의 실력은 이제 완숙에 가까운 단계.
만약 리카르도의 세상이었다면 작위쯤은 가볍게 받고 자기만의 연구실을 꾸렸을 수준이었다.
이제는 전해지는 레시피만 따라 할 것이 아니고 스스로 연구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본의 아니게 가장 어려운 주제를 골랐지만 말이다.
수겸은 일단 첫 번째 주제는 나중을 기약하며 넘기고 다음 주제를 떠올렸다.
‘다이어트 약이니까… 적당한 키워드로는 체중 감량 보조제 정도?’
“오, 이건 되겠는데?”
수겸이 설명을 자세히 읽어보려는 찰나 밖에서 누군가 똑똑 노크를 했다.
“누구야?”
“나, 민환이. 들어간다?”
“들어오지 말라고 하면 안 들어오냐? 들어와.”
“말하는 꼬라지 봐라. 너 근데 혼잣말 좀 줄여. 뭐 그렇게 할 말이 많다고 계속 중얼거려.”
“밖에서 들렸어?”
“어, 완전. 좀만 더 시끄럽게 떠들었으면 밑에 애들도 듣겠더라.”
“그래? 그건 좀 창피한데.”
“크크. 뭐 생각 정리하다 보면 그럴 수 있긴 하지만. 집에 있는데 네가 방송 킨다고 연락받고는 바로 왔는데, 또 뭐 하려고?”
“요새 너무 진지하게 일만 해서 가벼운 마음가짐을 가져보려고 그랬지.”
“그래서 그건 성공했고?”
“음… 재미는 확실히 있는데 이게 또 사람들 부탁이니까 다 들어주고 싶어서 그렇게 마음이 가볍지는 않네.”
“그럴 수도 있겠다. 네가 만들어 준다고 약속한 것들 이야기는 오면서 듣긴 했는데 다 가능하겠어?”
민환이 의구심에 가득 찬 눈빛을 보냈다.
“일단 탈모는 탈락. 이건 시작 포인트는 잡을 수 있겠는데 하려면 내가 연구를 좀 해야겠네.”
“흠… 역시 그런가. 그리고 살 빼는 건? 그건 우리 엄마도 좋아할 것 같은데.”
“그걸 확인하려는 찰나에 네가 들어왔잖아! 잠깐만 있어 봐. 집중 좀 하자.”
수겸이 민환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다시 조금 전 내용을 떠올렸다.
다행히 같은 내용이 똑같이 공중에 떠올랐다.
[체중 감소제 제작]– 주로 귀족들이 찾던 시약.
– 수면 중 에너지 소비량을 기하급수적으로 늘려 운동을 한 효과를 낼 수 있다.
– 신체에 부담이 가는 시약으로 이틀 연속 사용할 경우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이름만 봐도 이미 완벽하네.”
수겸은 고개를 연신 끄덕이다가 제일 아랫줄에 쓰여 있는 걸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 제작하고자 하는 중량만큼의 금이 필요하다.
수겸은 읽은 내용을 민환에게 알려 주었다.
“처음에 네가 귀족들이 많이 먹은 약이라고 했지? 귀족들만 먹을 수 있는 약 아니야? 다이어트약 만들려고 광산을 사야 할 정도겠네. 아니, 잠깐만. 근데 금이 재료인데 사람이 먹어도 돼?”
민환은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터뜨리고 투덜거렸다.
그래도 첫 번째 제작 대상이었던 탈모제보다는 나은 편이긴 했다.
‘정 안되면 내가 금을 만들어서 그걸 활용해도 되긴 하니까. 들어가는 품이 엄청나게 많겠지.’
여기에 매달리기엔 이것 말고도 수겸이 만들어야 하는 더 중요한 시약들이 너무 많았다.
“이건 한정판으로 가끔 만들어서 배포해야겠다. 아니면 진짜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에게 직접 줘도 좋겠다.”
“그게 낫겠네. 이건 어웨이큰이나 다른 시약들처럼 상시 제작은 못 하겠다. 일이 너무 커져.”
민환이 대답하자 수겸은 고개를 끄덕거려 동의를 표했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 순서였다.
‘체육 대회에서 1등을 할 수 있도록 달리기가 빨라지는 약. 다시 생각해도 진짜 귀엽네.’
순수해도 너무 순수했다.
“이번엔 제발. 쉽게 가자 좀!”
수겸의 바람이 통했던 것일까.
아니면 단순히 우연의 산물일까.
마지막 달리기 시합에서 1등을 하고 싶다던 소년의 바람은 비교적 쉽게 이룰 수 있을 것 같았다.
[민첩성 향상 물약 제작]– 좀 더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게 하는 시약.
– 달리기를 비롯해 신체 움직임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 연금술사가 주입하는 마나의 양에 따라 지속시간이 결정된다.
“휴우. 이번엔 패널티도 없고 쉽게 만들 수 있겠다. 그래도 이거는 제대로 건졌네.”
“아 그래? 근데 난 또 괜히 걱정된다.”
“뭐가?”
“요새 학부모들이 보통이 아니라고 하잖냐. 네가 그 물약을 준 애가 1등을 하면 다른 학부모들이 엄청 뭐라고 할 것 같아서 말이지.”
“쩝. 나도 그 생각을 안 한 건 아닌데 이벤트 같은 느낌으로 하면 되지 않을까? 막말로 이게 체대 입시에 반영되는 것도 아니고, 내신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잖아.”
“그건 맞지만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으니까 하는 소리야.”
“그래, 네 말이 맞긴 해. 일단 그건 방법을 좀 찾아보자.”
“응. 그래서 이제 뭘 준비하면 돼? 재료부터 불러줘 봐.”
수겸은 민환이 준비해줘야 하는 재료를 부르기 시작했다.
* * *
이 남자와는 아주 오랜만에 만나는 것 같았다.
‘어떻게 보면 내가 만든 시약들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게 해준 장본인.’
수겸은 키오스크 화면을 꾹꾹 누르고 있는 남자를 쳐다봤다.
“수겸 씨. 전에 햄버거에 치즈 추가를 했던가요? 기억이 잘 안 나네요.”
바로 119구급대원 윤상준이었다.
“저는 오리지널파입니다. 아무것도 추가하지 말아 주세요.”
수겸이 오늘 하루 중 제일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각자의 취향에 맞춰 주문하고서 둘은 예전에 앉았던 것과 같은 자리에 앉아 서로를 바라봤다.
“요새 어떻게 지내셨어요? 진짜 오랜만이네요.”
“그러게요. 수겸 씨가 워낙 바쁘신 것 같아서 연락도 잘 못 드렸네요. 결국 오늘도 수겸 씨가 먼저 연락주시고.”
“에이, 제가 바쁘다뇨. 이게 인터넷 기사에서는 실제보다 더 과장되게 표현이 되는 것 같아요.”
수겸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바쁘면 좋지요. 그리고 사실 수겸 씨가 바쁜 건 우리나라 국가 차원에서는 좋은 것 아니겠습니까. 하하.”
“비행기를 너무 태우시네요. 저 이러다 날아가겠어요. 그래서 요새는 어떻게 지내세요?”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제 덕분에요? 제가 뭘 했다고 그러세요.”
“처음엔 수겸 씨 덕분에 마음 아픈 일을 겪지 않아서 너무 좋았습니다. 그런데 지내다 보니 새로운 기회를 얻게 되기도 하더라고요.”
“새로운 기회요?”
“예. 아무래도 저는 수겸 씨와 오래 알고 지내다 보니 당연히 힐링 포션을 사용한 경험이 많지 않습니까?”
“그렇겠죠. 제일 처음 힐링 포션을 드린 것도 상준 씨였으니까요.”
수겸은 처음 윤상준을 봤을 때가 떠올랐다.
‘제일 처음이 교통사고 현장이었나? 그때 사고 현장에서 다친 사람을 차마 무시하지 못해서 힐링 포션을 썼었지.’
“맞아요. 제가 가서 엄청 졸랐죠. 나 알고 왔으니까 나한테도 힐링 포션을 달라고.”
“그날 상준 씨에게 힐링 포션을 주기로 해서 저 스스로에게도 큰 변화가 있었어요. 상준 씨 덕분에 제가 만든 그 작은 시약이 세상에 도움이 되는구나를 알 수 있었거든요.”
“저희 둘에게는 역사적인 날이네요. 여하튼 힐링 포션 사용에 대한 경험치를 인정받아서 이제 교육 담당자로 일하게 됐습니다. 어떤 상황에서 힐링 포션을 사용하고, 또 어떻게 사용해야 효과적으로 쓸 수 있는지 가르쳐 주는 일이에요.”
‘변하고 있어.’
수겸은 자신의 연금술로 조금씩 세상이 바뀌고 있다는 생각에 순간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물론 이제 대한민국 안에서 수겸의 연금술을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새로운 직업과 새로운 역할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생각은 처음이었다.
“오! 그 이야기는 저한테도 기분이 좋은 이야기네요!”
“예. 다른 것보다 제가 잘 가르치면 수겸 씨의 힐링 포션이 더욱 인정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어요.”
“하하. 그런 생각은 하지 마시고, 어떻게 해야 상준 씨 월급이 많이 오를까 생각만 하세요. 너무 성인군자 스타일이시라니까.”
“뭐, 사실이니까요. 이제 대외적으로 발표하는 횟수가 줄어들었지만 지금도 수겸 씨가 만든 시약들 덕분에 응급 상황에서 목숨을 구하는 분들이 정말 많습니다.”
“잘 사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로.”
수겸은 꾸벅 인사를 했다.
“아니, 감사 인사는 제가 드려야지요. 저야말로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발령 소식을 전해주려고 만난 건데 왠지 모르게 숙연해졌네요.”
“그러게요. 그러면 우리 햄버거나 먹을까요?”
마침 종업원이 윤상준이 손에 쥐고 있던 번호표의 번호를 부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