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learned alchemy RAW novel - Chapter 41
41화
코너를 돌자마자 3명의 남자들이 수겸과 민환을 맞이했다.
검은색 마스크, 푹 눌러쓴 모자 그리고 공사장에서나 볼 수 있던 쇠파이프까지. 완벽한 삼위일체였다.
생각과는 정 반대로 흘러가는 상황에 수겸은 일순 당황했지만, 얼굴이 하얗게 질린 민환을 보고는 주먹을 꽉 지었다.
‘정신만 차리자. 민환이까지 위험해져. 얌전히 뺏기나, 반항이라도 해보다가 뺏기나 어차피 최악의 결과값은 다 털리는거니까. ‘
수겸은 왠지 저 셋이, 아니 뒤에서 쫓아오던 사람까지 넷이 왠지 살인까지 염두에 두고 있진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근거없는 생각이었지만,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은 어차피 지금 상황에 도움이 되진 않았다.
“민환아. 정신차려. 어차피 이판사판이야.”
“어, 어.”
아직 민환은 겁에 질려 눈썹까지 파르르 떨고 있는 상태.
수겸이 입술을 한번 꽉 깨물었다가 말했다.
“네들 뭐냐? 사람을 쫓아왔으면 용건을 말해. 이 병신들아. 왜? 막상 상황 닥치니까 쫄리냐?”
수겸은 일부러 도발을 했다.
그 사이 뒷주머니에 넣어놨던 지퍼백을 움켜지기 위해서였다.
그 때 가운데에 있던 남자가 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가방에 있는 돈 다 내놓고, 남은 약까지 순순히 주면 얌전히 가준다.”
“크크. 어차피 이렇게 된거 하나만 묻자.”
“말해.”
“니들 중 오늘 나한테 약 사간 놈이 있는거냐? 아니면, 해킹 같은거라도 해서 장소를 알아낸거냐?”
“∙∙∙∙∙∙. 잔말말고 내놔.”
그르륵.
대화에 나선 가운데 남자가 빨리 상황을 끝내고 싶은 모양인지 쇠파이프를 바닥에 긁으며 앞으로 한 발자국 걸어 나왔다.
상대방 입장에선 일종의 퍼포먼스인 셈.
그렇지만 이미 수겸의 눈은 까뒤집어진 상태였다.
“어쭈. 치겠다?”
“야. 그러지마. 그냥 주자.”
민환은 수겸의 팔을 잡아당기며 만류했다.
“놔 봐. 어차피 얘네 쫄보야. 저기 뒤에 두 명은 움직일 생각도 못하는 것 봐. 그냥 엑스트라라니까. 병신 새끼들. 강도 짓도 실력이다. 니들은 그냥 시험이나 쳐서 취직해라. 딱 보니까 면접도 못 보는 스타일 같네.”
수겸은 뒤가 없는 것처럼 말했다. 그리고 마지막 결정타.
“퉷.”
수겸이 도발의 끝단계. 침뱉기를 시전했을 때 이미 수겸의 손에는 회색 가루가 든 지퍼백이 쥐어진 상태였다.
“이 새끼가! 보자보자 하니까. 안되겠다. 야! 쳐!”
결국 수겸의 혓바닥이 상대를 이긴 모양이었다.
대표로 나온 사내와 엑스트라 2명 그리고 뒤에서 쫓아오던 남자까지 모두가 수겸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멘트하고는. 민환아, 일단 숨 참아.”
“뭐?”
피슉-
수겸이 지퍼백 입구를 열면서 공기가 새어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사방팔방으로 가루가 흩날리도록 봉지를 든 손을 이리저리 흔들어댔다.
만약 회색 가루가 아닌 꽃가루였다면 그야말로 이 곳은 축제의 현장이었을텐데, 수겸이 흩날린 가루는 골목을 시멘트 바닥을 까대고 있는 공사현장으로 만들 뿐이었다.
콜록 콜록-
수겸은 연신 기침을 했다. 다행히 수겸의 예상대로 근육경직제가 수겸에겐 효과가 있진 않은 모양이었다.
수겸은 재빨리 민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꺼억. 꺽. 꺽.”
생각보다 근육경직제의 효과가 강했는지 숨쉬는 것조차 버거워하는 것 같았다.
수겸은 지체할 틈도 없이 가방 앞쪽 작은 주머니에 있던 해독제를 하나 꺼내 민환의 입속으로 밀어 넣었다.
“컥. 컥.”
아직도 힘들어 보였지만, 이내 약효가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제서야 수겸은 고개를 돌려 강도 4인방을 살폈다.
저마다 제각기 다른 자세로 바닥을 뒹굴고 있는 이들. 약효는 기가 막혔다.
“새끼들아. 다음엔 KF94 인증 마스크를 쓰고 와.”
수겸은 순간 고민했다. 이대로 두고 가도 되는가. 혹여나 죽을까봐 이도저도 못하고 있던 때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자리 피하시죠.”
낯선 듯 낯설지 않은 목소리였다.
수겸을 향해 저벅저벅 걸어오는 이는 왼쪽 팔이 온통 시커먼 사내였다.
조태규의 직장 동료 혹은 부하인 동철이었다.
“당신은?”
검은 왼팔 문신을 보니 조태규와 함께 있던 사람이란 걸 떠올린 수겸은 한편으로 안심이었다.
‘여기서 또 제3자가 나타나면 곤란하니까.’
“얼굴을 보아하니 누군지는 아시는 것 같고, 지금 그 사람들 챙길 때는 아닌 것 같은데? 오지랖도 정도껏이야지.”
“오지랖이라니.”
수겸은 동철의 말에 반박하며 이제 정신을 차린 민환을 부축해 일으켰다.
“케켁. 그건 뭐냐. 난 죽는 줄 알았다.”
민환은 연신 목을 긁어대는 기침을 하며 목을 매만졌다.
“미안. 너한테 말하면 쟤들도 눈치챌 것 같았어. 어차피 나한테 약도 있어서 그냥 저질렀어.”
“어우씨.”
수겸이 민환에게 변명을 하는 사이 동철은 쓰러진 4인방을 하나씩 살펴봤다.
발로 툭툭 차기도 하고, 뺨을 철썩 때리기까지.
“안 죽으니까 그냥 갑시다. 이리로.”
동철은 쿨하게 뒤돌아서더니 먼저 앞장 서서 골목을 빠져 나갔다.
수겸과 민환 역시 별 수 없는 건 맞기에 동철을 따라 나섰다.
***
조태규의 세무사 사무실.
“누추하지만 어서오세요. 마라탕 냄새는 여전합니다만.”
역시나 노란 넥타이를 한 조태규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수겸과 민환을 맞이했다.
“이쪽으로 와서 일단 한숨 돌리시죠.”
조태규가 사무실 가운데 있는 소파로 자리를 권했다.
“오랜만에 왔네요. 잘 지내셨죠?”
수겸이 간단한 인삿말을 하고는 소파에 몸을 던졌다.
민환 역시 수겸의 태도를 보고 나서야 안심하고 자리에 앉았다.
“근데요. 세무사님.”
수겸은 동철을 따라오면서 내내 했던 생각을 내뱉기 시작했다.
“네?”
“어째서 동철씨가 저희 근처에 있었던거죠? 우연이란 말은 하지 마시죠. 사람 등신으로 보는 게 아니라면.”
평소보다 확연히 쎈 단어선택이었다. 상황은 끝났음에도 수겸은 여전히 흥분을 다 가라앉히진 않은 듯 했다.
“하하. 기분이 상하셨나봅니다. 말씀하신대로 우연은 아니죠. 강 사장님은 나름대로 저희 VIP이신데 말이죠.”
조태규는 연신 미소를 지으며 수겸에게 설명했다.
“그러면요?”
“일종의 보디가드 서비스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제 제법 돈도 좀 만지고 소문이 날 때가 됐을 것 같았거든요. 제 생각과는 다른 이유 때문에 소문이 난 것 같긴 합니다만.”
“제가 등신으로 보지 말라고 했을텐데요. 어느 보디가드가 사람 뒤를 따라다녀요?”
수겸은 매섭게 조태규를 노려봤다.
그 사이 민환은 그저 물만 홀짝이며 상황을 지켜볼 뿐이었다.
“자, 조금 흥분을 가라앉히시고. 결과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까? 동철아. 네가 없었으면 무슨 상황이 됐을 것 같냐? 설명 좀 해드려라.”
조태규가 뒤에 서 있던 동철을 쳐다보며 물었다.
“예. 제가 지켜본 바로는 분명 괴한들을 도와주네 마네 하면서 오도가도 못하다가 정신차린 놈한테 다시 잡혔을 것 같습니다. 그게 아니면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노출이 됐거나요. 확실한 건 현장 벗어나는 게 쉽지 않았을겁니다.”
무미건조한데다 음의 높낮이도 없는 말투였다.
“하하. 들으셨죠? 게다가 제가 청소업도 좀 하는데 지금 현장 청소까지 마쳤다구요. 그러니까 이제 화 좀 푸세요.”
“크흠. 일단 미행하고 있었단 건 인정하시는거죠?”
수겸 역시 동철의 등장이 꽤 도움이 된 것은 인정할 수 밖에 없었기 떄문에 한 풀 꺾인 채 말했다.
“네네. 저희도 도움 드렸으니까 이번엔 없는 셈 치시죠. 동업자끼리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 그러자. 저 분들 도움이 크긴 했잖아.”
민환은 험악한 분위기로 바뀔까봐 걱정하는 눈치였다.
“일단 그건 그렇다고 치고 이유나 좀 들어봅시다. 미행한 이유.”
“별 이유는 없어요. 예전 같으면 항상 노심초사하면서 연락했을 양반이 도통 나타나질 않으니 찾은거죠. 툭 까놓고 저희한테도 돈이 되는데 행여 큰일이라도 나셨으면 안되잖아요?”
조태규가 어깨를 으쓱했다.
“아휴. 돈이네 돈.”
“돈보다 확실하고 믿음직한 이유가 있어요?”
조태규는 상황이 끝났음을 느끼고 더 없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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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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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겸, 민환, 조태규, 동철.
넷은 1층에서 마라탕을 포장해서 먹기 시작했다.
“왜 마라탕 냄새가 끊이질 않는지 알겠네요. 맛집이네. 맛집이야. 손님이 계속 오니까 냄새가 계속 올라오지.”
수겸이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저는 진짜 이제 마라 냄새가 느껴지지도 않는 것 같은데요? 얼른 이사가던지 해야겠어요.”
조태규는 말과는 다르게 마라탕에 들어있던 청경채를 우적 씹으며 말했다.
“그래서 이제 말씀 해보시죠? 무슨 짓을 하고 다닌건지.”
조태규는 이번엔 면을 후루룩 먹으면서 곁눈질로 수겸을 쳐다봤다.
수겸의 젓가락질이 멈췄다. 그와 동시에 민환 역시.
‘이걸 오픈해야 할까? 아니면 그냥 숨길까?’
고민을 하다보니 수겸은 생각이 정리가 되기 시작했다.
‘어차피 조태규는 나와 비밀을 공유하는 사이. 이 상황에서 숨겨봐야 피차 피곤해질 뿐일거야. 지금 당장은 넘겨도 계속 쫓아다니겠지. 거기다 민환이도 신경쓰이고∙∙∙.’
수겸은 민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잠시 회의 시간 좀 주시죠.”
둘은 마라탕을 먹다 말고 사무실 밖으로 나와 이야기를 시작했다.
하필 복도를 밝히는 전등마저 깜빡이는 것이 불안함 가득한 민환의 심정을 대변하는 듯 했다.
“민환아. 저 두 사람은 네 생각보다는 덜 나쁜 사람인데, 일반인 기준으로는 나쁜 사람들이야. 사실, 둘이라고 하기도 뭣하지. 뒤에 내가 모르는 조직이 있을테니까. 근데 난 이미 거래를 하고 있는 상황이야. 이까진 이해했어?”
“어, 어. 이해했어. 나도 이제 긴장이 좀 풀리긴 했어.”
민환은 그러면서도 바지 주머니에 손을 푹 집어 넣었다.
“일단 여기서 타협에서 우리 사업을 오픈하면 일은 쉬워질거야. 대신 수수료는 나가겠지.”
“어디까지 오픈하면? 네가 어떻게 약을 만드는지도?”
민환은 수겸의 믿기 힘든 능력, 연금술을 말했다.
“아니. 그것만 빼고. 어차피 중요한 건 ‘어떻게’ 가 아니고, ‘무엇을’ 팔고, ‘얼마나’ 벌 수 있을지거든. 그래서 난 내 비밀을 아는 네 도움이 여전히 필요해. 근데 말이야.”
수겸은 민환을 쳐다 보며 이어 말했다.
“오늘처럼 네가 위험한 일을 겪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네가 아까 그랬지. 공무원 때려 치우고 나랑 일하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다고.”
“응. 그랬지.”
민환은 생각이 많은 듯 평소 목소리의 절반도 안되는 크기로 말했다.
“그 생각, 지금은 어때? 나랑 계속 같이 일할 수 있겠어?”
수겸은 조심스레 물었다. 그리고 재촉하지 않고 차분히 민환의 대답을 기다렸다.
“어, 음. 무슨 고백 받는 거 같네. 겁나 소름돋아. 그래, 같이 해보자. 까짓꺼!”
민환이 양 팔을 연신 문지르며 소리쳤다.
“오케이. 콜.”
수겸은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다시 세무사 사무실의 문을 열어젖혔다.
그 이후 이야기는 수겸이 주도했다.
공급처를 아직 밝히지 않은 금과는 달리 이번 어웨이큰은 제작자가 본인임을 밝히는 것까지 이야기를 마쳤을 때
“브라보!”
조태규는 연신 브라보를 외치며 박수를 쳤다.
“아니! 아니, 아니. 강 사장님!”
브라보에 이어 이번엔 아니를 계속해서 외치는 조태규.
“이런 재주를 있는데, 왜 말 안했어요?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진짜. 동철아. 다시 인사드려라. 돈 복사기시다. 우리에겐 신이나 다름 없는 분이시다. VIP따위로 불릴 분이 아니시다.”
조태규의 말에 무엇이든 진담으로 듣는 동철이 허리를 꾸벅 숙였다.
“인사드립니다! 앞으로 최선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이게 무슨∙∙∙.”
비밀을 밝힌 건 수겸인데 오히려 당황한 것도 수겸이었다.
“다시 인사드립니다. 약품 판매 및 물류 전문가 조태규입니다.”
또 다른 조태규의 직업이 밝혀진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