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learned alchemy RAW novel - Chapter 69
69화
“국세청이 무슨 일이시죠?”
놀랄 법도 한데 수겸은 담담했다.
‘예상한 일이잖아. 쫄지 말자.’
“어어, 뭐하시는거에요?”
민환이 카운터 안으로 들어오려는 국세청 직원들을 제지하며 말했다.
“공익 제보에 의한 세무조사이며, 적법한 절차에 따른 조사입니다. 움직이지 마시고, 협조 부탁드립니다.”
국세청 조사4국 최창수 과장이 본인의 신분증을 제시하며 공문을 수겸에게 제시했다.
“지금부터는 녹취, 녹화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동의하십니까?”
“네. 동의합니다. 어차피 거절할 방도도 없는 것 같네요.”
“저희 국세청 조사4국은 공익 제보를 받아 조사에 착수하게 되었습니다. 제보에 의하면 이상 거래의 현장은 여기 편의점이며, 거래 주체는 강수겸님입니다. 이에 당일 발견된 현장의 모든 물품은 압수 조치하며, 강수겸님 개인 금융 거래 내역에 대해 전수 조사가 이루어질 것을 통보하는 바입니다.”
최창수는 고저 없는 목소리로 준비한 인쇄물을 읽어내려갔다.
“조사 대상기간은 최근 3년이며 조사 진행 중 상황에 따라 대상기간을 확대할 수 있습니다. 또한, 결과에 불응할 경우 이의 제기를 할 수 있으며, 조사 중에도 소명의 기회는 있습니다. 조사 결과에 따라 범법 행위가 발생될 경우 본인의 동의 없이 검찰에 고발조치를 할 수 있습니다. 이상입니다.”
“알겠습니다. 진행하시죠.”
“네. 그러면 동의하신 걸로 알고 조사 진행하겠습니다.”
“수겸아, 어떡하냐? 지금은 할 수 있는 게 없는 것 같다.”
민환이 수겸 옆으로 와서 어깨를 붙잡았다.
“응. 가만히 있어. 어차피 우리가 여기서 반항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니까. 금고 잠긴 것도 확인하실테니 미리 열어주라.”
“알겠어.”
어차피 뒤져봐야 편의점이었다.
진열대에 있는 과자를 압수할까, 냉장고에 들어 있는 음료수를 압수할까.
생각보다 현장 조사는 금세 끝이 났다.
어차피 이상 거래 현장을 확인하고, 조사 착수 통보를 하는 것이 주목적이기 때문이었다.
“수겸아. 어웨이큰은 한 상자 압수당했다. 오늘치 준비하려고 미리 내려둔거라 숨길 수가 없었어.”
“괜찮아. 어차피 예상못하는 일이니까. 이제부터 방어를 잘 해야지.”
수겸은 차에 올라타고 있는 국세청 직원들을 노려보며 말했다.
“까짓거 세금 내도 그만인데, 이왕이면 안내는 게 좋지 않겠어?”
“그건 맞지.”
***
책상 위에 어지러인 서류들.
화이트보드 위에는 방금 전까지도 회의한 흔적이 가득했다.
국세청 조사4국 중 최창수가 팀장으로 있는 개인세무2팀 사무실이었다.
“팀장님, 강수겸씨 뒤져보니까 확실히 이상한 점이 있긴 합니다.”
“내용 말해봐.”
“네. 현재까지 조사한 바에 따르면 강수겸씨의 주 소득원은 편의점입니다. 그마저도 매출이 낮아서 순수익만 따지면 고용중인 아르바이트보다도 수익이 적었습니다. 거기다가 부양 가족으로는 할머니 한 분이 계신데, 요양원 비용까지 본인이 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됩니다.”
팀원이 준비한 자료를 읽어내려갔다.
“그래서?”
최창수는 노트북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보고를 받았다.
“그런데 이상한 건 약 반년 전 아르바이트 한 명을 추가 고용했다는 점입니다. 이 때부터는 실질적으로 마이너스인데도 고용 유지를 하고 있었고, 그 이후 방금 말씀드린 할머니 요양원을 이동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해피니스 300이라고, 최고급 요양시설입니다.”
“그건 좀 이상한데?”
그제서야 보고 중인 팀원을 바라봤다.
“현금 흐름으로는 어떤데?”
“요양시설을 옮길 떄까지 편의점 매출은 대동소이한 수준입니다. 주 소득원으로 인한 현금 유입은 고정적이며, 추가 대출을 받은 내역은 없습니다.”
“그러면 이 사람은 현금을 만들어 냈다고 봐야하네? 거기서부터 시작하자.”
최창수의 눈빛이 한결 날카로워졌다.
***
“아마 현금 흐름에서부터 시작할 겁니다.”
조태규가 화이트보드 앞에 서서 말했다.
“자, 우리 다시 한번 점검합시다. 사장님 저랑 만나기 전에 재산 상황 어땠어요?”
조태규가 손가락 사이에 낀 보드마카를 흔들며 물었다.
“개털이었죠.”
회의실 안에는 조태규와 수겸 그리고 동철 뿐이었지만 수겸은 누가 들을새라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작게 속삭였다.
아무래도 쑥스러운 모양이었다.
“이제부터 사장님 인생을 찬찬히 살펴볼게요. 아시겠죠?”
지금 이 순간 조태규는 국세청에서 나온 세무 조사관이었다.
조태규는 화이트 보드에 가로로 길게 선을 쭉 긋고 그 위에 짧은 세로 선을 3개 그었다. 기다란 선을 4등분한 모양이었다.
“첫번째 분기점이 여기, 순금 나라와의 거래 시점입니다. 이때부터 현금 융통이 되기 시작하셨겠죠.”
“네. 그렇죠.”
“이 시점에서 제일 걸리는 문제는? 그 전과 비교해서 확 달라진 점을 떠올리시면 돼요.”
“할머니 요양원 옮긴 것 정도? 나머지는 사실 쓸 것도 없었어요. 애초에 일 밖에 몰랐으니까요.”
“좋아요. 그건 실제로 금을 팔았으니, 그걸로 해결했다고 합니다. 이미 금은방 쪽이랑도 이야기가 다 됐습니다.”
“그것도 문제가 되지 않나요?”
“되죠. 근데 그나마 가벼우니까 일단 하나 던져주는겁니다. 그러면 그 다음 분기점은 바로 저와 직접 거래를 했을 때.”
조태규가 두번째 세로선에 동그라미를 쳤다.
“이 때는 오히려 좀 낫지 않나 싶은데요? 세무사님이 작업을 해줘서 편의점 매출이 엄청 잘 나왔거든요. 실제로 편의점만으로도 현금이 조금 쌓일 정도는 됐으니까.”
“맞아요. 아마 매출 증빙은 CV리테일 쪽을 쪼아서 받을 겁니다.”
“그건 걱정 안되네요. 있는 그대로니까.”
“맞아요. 그 당시에 동원했던 사람들은 어때?”
조태규가 수겸 옆자리에 앉아서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동철에게 물었다.
“문제없습니다. 믿을만한 친구들입니다. 애초에 자연스러운 손님들로 보였을거라 그 부분은 염려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오케이. 그러면 매출 쪽은 문제 없다는 말이지? 사장님은 어때요? 그 당시에 뭐 특별한 것 산 적없어요?”
“없대두요. 제가 진짜로 만나는 친구도 없고, 사치품을 사지도 않았어요.”
“∙∙∙∙∙∙.”
순간 조태규가 말을 잇지 못했다.
본의 아니게 친구가 없다는 것이 도움이 되어 버린 셈이었다.
*
다시 조사4국.
“리테일 쪽에서 자료를 받아보니 갑자기 매출이 확 올랐던데요?”
최창수가 월별 매출 실적표를 살펴보며 보고를 받고 있었다.
“매출 유지가 꽤 오랫동안 되네.”
“네. 맞습니다. 그래서 서대문구에서는 매출 1등도 찍고, 리테일 사에서도 매출 급등으로 인해 특별 관리 대상에 들었더라구요. 혹시나 점포 매매를 위해서 매출 부풀리기 같은 걸 했나 싶었는데, 그것도 딱히 특이사항 없었습니다.”
“그러면 현금으로만 따지면 이 때는 플러스이긴 한거네.”
“네. 월세, 인건비, 리테일사에 매달 내는 회비까지 모두 제하고 강수겸씨 본인이 챙긴 몫이 한 달에 600만원선입니다. 편의점 치고는 꽤 벌었어요.”
“네 감상은 넣지 말고 말해. 편의점 치고는 많이 벌었다는 게 지금 왜 중요하지?”
최창수가 뜻대로 풀리지 않자 짜증을 버럭 냈다.
“죄, 죄송합니다.”
“됐고, 편의점 쪽에서는 더 이상 특이사항이 없나?”
*
“다시 매출이 줄어든 것 외에는 더 이상 특이사항을 찾을 수 없을 겁니다.”
조태규가 단호하게 말했다.
“좋아요. 취조 때도 똑같이 말하면 된다는거죠?”
수겸이 양 손을 깍지낀 채 물었다.
“네. 편의점 사업에 관해서는 이 정도면 될 겁니다. 아직 한참 남았어요. 개인 재산도 확인할 것이고, 제일 중요한 제보로 들어간 저희 어웨이큰 판매 정황은 시작도 안했으니까요.”
“질문이 있습니다.”
동철이었다.
“지금 순서에 맞춰서 확인하시는 건 알겠습니다만, 제일 먼저 건물 사신거랑 땅 사신 것부터 소명 자료 준비하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적절한 질문이었다.
“그건.”
“아, 제가 말할게요. 이건 좀 섭섭할 수 있는 부분이니까.”
조태규가 설명을 하려는 걸 수겸이 손을 들어 제지한 후 말했다.
“건물이랑 땅은 말이죠. 사실, 제가 산 게 아니에요. 음∙∙∙ 이 이야기를 위해서면 제 외국인 친구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겠네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동철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분명 건물을 사서 아르케 사무실로도 쓰고 있고, 경작지는 이미 농사를 한창 짓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수겸이 산 것이 아니라니.
이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란 말인가.
“이건 아까 이야기한 제 현금 상황이랑도 맞물리는 이야기인데, 우리나라에 굉장히 관심히 많은 미국인 한 명과 중국인 한 명이 있습니다. 더글라스라는 이 미국인은 가상화폐 투자를 전문적으로 하는 투자가입니다.”
이번엔 수겸이 보드마카를 집어 들었다.
“저는 운이 좋게도 더글라스를 만나 제가 가진 돈을 맡기게 되었고, 지금까지 매우 안정적인 수익을 얻고 있는거죠. 그 돈으로 할머니 요양원 비용을 충당하고 있는 거구요. 아참. 여러분한테 월급 주는 것도 전부 더글라스에요. 이것도 몰랐죠?”
수겸이 뜬금없이 월급의 정체를 폭로했다.
“아! 그렇군요. 어쩐지 현금으로 나눠주시는 게 아니라 입금을 해주시더라니. 전 당연히 세무사님이 작업한 것까지는 예상했지만 이런 방식이라곤 생각을 못했습니다.”
아니다. 이 부분은 동철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하도 수겸이 재밌게 이야기를 해 동철은 짐짓 모르는 척 했다.
“가상화폐 거래로 인한 수익이 좋은 점은 세금을 때리고 싶어도 때리기가 힘들다는 점이지. 아직은 빈틈이 있거든. 요새 흐름을 보니까 그것도 이제 끝이겠지만.”
잠자코 듣고만 있던 조태규가 피식 웃다가 중간에 끼어들며 답했다.
“근데 그거랑 건물이랑 땅은 상관 없는 문제 아닙니까?”
“아, 그렇죠. 저희 건물주가 더글라스에요. 이 친구가 투자로 돈을 많이 벌어서 서울에 건물을 몇 개 샀거든요.”
“그래도 됩니까?”
동철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생각해보면 뭔가 깨름칙한 관계인 것 같았기 때문이다.
투자 회사와 투자자의 관계가 임대인과 임차인의 관계로 이어지는 것.
“묘하게 문제가 될 것 같은데요.”
“그건 연관이 있다는 인식 때문이지 실제로 따져보면 아무런 문제도 없지. 왜냐하면 우리는 월세도 꼬박 꼬박 내는 착한 임차인이니까. 그렇다고 시세보다 싸게 계약한 것도 아니지.”
“다만 조금 마음에 걸리는 건 원래 건물주분께 건물을 팔라고 설득할 때 잔뜩 감동코드를 집어 넣었는데, 막상 거래할 때는 외국인이었다는 점이 좀 그렇죠.”
수겸이 콧잔등을 긁으며 말했다.
“하하. 그건 좀 그랬습니다. 제가 위임장 들고 거래할 때 좀 놀래시더라구요. 그 자리에서 웃돈을 더 얹어주면서 무마했지만요.”
“그래도 그 때 원래대로라면 제 명의로 매매하려고 했는데 잘 말려주셨어요. 그대로 했으면 지금쯤 해명도 못하고 그냥 얻어맞았겠네요.”
“제가 괜히 비싼 월급 받으면서 한 자리 차지하고 있었겠습니까?”
“그러면 이천 땅은?”
“그 땅은 내 땅이지. 그리고 나랑 사장님은 사실상 연결고리가 없으니 땅은 문제가 없지.”
***
최창수는 팀원이 전해준 자료 모두를 책상 위에 휙 던져버렸다.
“이 새끼 분명히 냄새는 나는데, 나름 준비를 했단 말이지.”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며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맞습니다. 허술해보이는데 묘하게 잡을 게 없네요.”
“오케이. 어차피 본 게임은 지금부터니까. 한 번 가보자고. 강수겸씨.”
최창수가 넥타이를 거칠게 풀어 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