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learned alchemy RAW novel - Chapter 7
7화
“헉. 헉. 힘들어서 뒤지겠다. 진짜.”
하룻밤을 꼬박 새워가며 흑연가루를 만든 다음날, 수겸은 산을 타고 있었다.
‘이렇게 등산을 한 적이 있던가? 초등학교였나, 중학교였나 한번 단체로 온 것 같긴 한데.’
불편한 한쪽 다리 때문에 남들보다 2배는 등산이 힘든 수겸이었다.
그런 그가 산을 타는 건 스크롤 때문이었다.
‘젠장! 망할 영감 같으니라고. 이런 것도 좀 해결해주고 가지.’
있지도 않은 리카르도를 원망하고서 수겸은 발걸음을 멈추었다.
뒤를 돌자 꽤나 시원한 전망이 펼쳐졌다.
휘익-
시원한 바람이 수겸의 머리맡을 스쳐 지나가자 짜증도 한결 날아간 듯 했다.
“후아. 시원하다. 그나저나 어디서 찾는담?”
수겸은 확인 차 다시 한번 스크롤 제작법을 찾아봤다.
[스크롤 제작]– 마나가 깃든 나무의 수액을 바르고, 말리는 것을 여러 번 반복해 만든 종이. 최고의 효율을 내기 위해선 양피지를 활용해야 하나 구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대부분의 연금술사들은 종이로 대체해 사용하는 편이다.
– 나무의 경우 종류는 상관 없다. 단, 깨끗한 환경에서 자란 나무에서만 마나가 깃들기 때문에 주로 산, 밀림, 정글 등 오지에서 자란 나무일수록 품질이 좋을 확률이 높다.
‘지랄 났다. 지랄 났어.’
수겸은 장황한 설명을 꼼꼼히 읽어본 후 솔직한 감상평을 했다.
사실 스크롤 제작 과정은 리카르도 역시 크게 신경쓰지 않았던 부분이었다.
그가 살던 세상에선 현대와는 다르게 대기오염, 수질오염, 방사능 등 환경을 해칠만한 요소가 지극히 적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왠만한 나무는 마나가 조금은 깃들었기 때문에 평소에는 눈에 보이는 아무 나무에선 수액을 채취하고, 고품질의 스크롤을 만들 때에만 지금 수겸이 하고 있는 것처럼 탐사활동을 하면 되었다.
“에휴. 일단 좀 더 오르자.”
등산로 입구보다 산 정상이 더 가까운 위치가 되자 수겸의 눈에 새로운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호오? 이런 식이다. 이거지?”
수겸은 눈 앞의 나무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성인 남자 두 명이 팔을 쭉 빼서 손을 맞잡아야 겨우 안을만한 두께의 나무였다.
그렇지만 중요한 건 수겸이 만지고 있는 나무의 한 가운데 부분이었다.
파란색이 나오는 손전등이 마치 나무 안에 박힌 듯 은은하게 빛이 새어 나왔다.
수겸은 가방에서 준비해 온 장비를 꺼냈다.
흔히들 고로쇠 나무 수액을 채취할 때 쓰는 장비였다.
고개를 좌우로 돌려 근처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한 후 몇 번을 읽은 설명서대로 장비를 설치했다.
물론 지나가는 사람에게 들키지 않게 등산로에서 보이지 않는 나무 뒤편에다가 말이다.
똑. 똑.
조금씩이지만 수액이 떨어지는 걸 보고 수겸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케이. 한 번 해보니까 알겠어.”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수겸은 등산로 아래로 가는 것이 아닌 정상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의 가방에는 방금 전 설치한 것과 같은 장비가 4개가 더 있기 때문이었다.
***
등산을 마치고 집에 와서 씻고 시계를 보니 벌써 4시였다.
이제 곧 편의점으로 출근할 시간이었다.
수겸은 침대에 누워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그것보다 더 간절한 것은 어떻게든 금을 한번 만들어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수겸은 나갈 채비를 하면서 유리병 하나도 함께 챙겨 가방에 넣었다.
현 시점 수겸의 재산 1호인 흑연 가루였다.
“소중한 내 새끼. 우리 출근하자.”
수겸은 어느새 혼잣말을 하는 단계를 넘어서 사물에게 말을 걸 정도가 되었다.
집에서 걸어서 15분쯤 거리.
수겸 동네에 있는 단 하나 뿐인 고물상이었다.
지나가며 본 적은 많지만, 단언컨데 수겸은 살면서 자기가 고물상에 찾아올 줄은 단 한번도 상상한 적이 없었다.
‘생각대로 될 지 모르겠네. 영화 보면 이런 곳에 무서운 사람들이 있기도 하던데.’
그 때였다.
뒤에서 할아버지 한 분이 고물을 잔뜩 실은 리어카를 끌며 고물상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어이, 들어갈겨? 아니면 나와. 힘드니께.”
“예, 예?”
수겸이 한번에 이야기를 못 알아듣고 되묻자 할아버지가 버럭 성질을 냈다.
“아! 머혀? 한바퀴 더 돌라믄 시간 없어. 나와, 이 사람아.”
“아, 네. 죄송합니다.”
수겸이 옆으로 비키자 할아버지가 리어카를 끌고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수겸 역시 할아버지를 따라 들어가자마자 안에 있던 사람이 크게 소리쳤다.
“아이고! 아부지. 오늘도 엄청 많이 해부렸구먼?”
“누가 네 아버지여? 시덥잖은 소리일랑 그만하고 어서 물건 받어. 이놈아.”
방금 전 수겸에게 짜증을 냈던 할아버지와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분위기가 달랐다.
1~2년 거래해 온 사이는 아닌 것 같았다.
할아버지에게 싹싹하게 대하는 모습을 보고 수겸은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무서운 사람은 아닌가보다.’
“아부지. 오늘은 좋은 물건 많이 들고 오셨구만. 종이는 15키로, 유리 3키로 조금 덜 되는데 그냥 3키로로 치고. 이게 아주 비싸단 말이지. 이거 어디서 주우셨대? 이게 구리 배관 아니여.”
“몰라. 이 나이 먹고 어디서 주웠는지 기억이 나겄어? 훔친 것 아니니께 걱정 하지를 말어.”
구리라는 단어가 수겸의 귀에 쏙 들어와 박혔다.
고물상 사장이 웃으며 말했다.
“누가 훔쳤대? 아부지 혹시 찔려서 그러는겨? 보자 보자. 오늘은 4만 8천원 드릴께.”
할아버지는 돈을 받아서 흡족한 듯 표정이 밝았다.
“그럼 내일 보자고.”
손을 들어 작별 인사를 대신한 할아버지가 고물상을 빠져 나가고 사장이 수겸을 쳐다 봤다.
“아이고. 오래 기다리셨죠? 여긴 무슨 일로?”
‘와. 서울 사람이었어? 아까랑 완전 다른 사람 같네.’
“아 네. 물건 좀 구할 수 있을까 해서요.”
“그러세요? 사무실로 들어가시죠. 커피도 한잔 드시겠어요?”
수겸을 안으로 안내한 고물상 사장이 수겸에게 의자를 권한 뒤 자기 소개를 했다.
“제가 이름도 말씀 안드렸네요. 저는 여기 천진 자원 운영하고 있는 이기백이라 합니다.”
그러면서 수겸에게 악수를 청했다.
수겸 역시 손을 내밀어 이기백의 손을 맞잡고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강수겸이라 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제가 필요한 것들이 좀 있는데, 여기서는 구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혹시 판매도 하시나요?”
이기백은 팔짱을 낀 자세로 답했다.
“판매요? 흠∙∙∙∙∙∙. 저희는 도매로 하긴 하는데, 가격만 맞으면 못 팔 것도 없죠. 필요하신 물품이 어떤거에요?”
“구리, 납, 철이요.”
“흐음. 특이하네요? 전 그래도 어떤 물건일 줄 알았는데, 원자재를 말씀하실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힘들까요?”
수겸은 간절한 표정을 지었다.
이기백은 화통한 목소리로 답했다.
“양이 문제긴 한데 할 수는 있을 것 같아요. 근데 손님도 예상하시겠지만, 그렇게 드리려면 저희 품도 좀 거쳐야 해서 가공비가 추가 됩니다. 이해하시죠?”
“네네. 그건 맞죠. 세 개 모두 가능해요?”
“얼추요. 아까 들리셨을 것 같긴 한데 구리는 지금 당장 들어온 게 있으니 바로 가져가시면 되고. 철은∙∙∙∙∙∙.”
“녹슨 철도 상관 없습니다!”
된다는 답변을 받았는데도 수겸은 혹시나 힘들다는 이야기 나올까봐 이기백의 말을 끊고 외쳤다.
“아 그래요? 그러면 너무 쉽죠. 나머지 하나가 뭐였죠?”
“납이요.”
“납이라. 납이 문제인데. 소량만 필요하신거면 그냥 납땜용 납이면 되셨을 테니 양도 좀 되야 하고, 질도 중요한가 보죠?”
납땜을 생각하지 못한 수겸은 조금 놀랐지만, 태연한 척 답했다.
“네네. 한번 구할 때 제대로 구하려고요.”
“그러면 다 되죠. 이 중에서 구리가 제일 비싸요. 대충 필요한 양이 있으세요?”
수겸은 재빨리 금 제조 공식을 확인했다.
그에 따라 허공에서 좌우로 움직이는 수겸의 눈동자.
이기백은 지금 그가 거래하고 있는 상대방이 범상치 않은 사람이란 걸 깨달았다.
“철 10킬로, 납 3킬로, 구리 5킬로. 이렇게 구할 수 있으면 제일 좋습니다.”
수겸은 대충 공식에 따르면 금 1킬로를 제조하고도 조금 남을만큼 계산해서 주문했다.
평범하지 않은 요청인데도 이기백은 왜 필요하냐 등의 질문은 일체 하지 않았다.
“혹시 배달 해드려야 하나요?”
수겸이 답했다.
“네. 보시다시피 제가 몸이 좀 불편해서요. 차도 안 가지고 와서요. 가능하시면 배달 좀 부탁드립니다.”
이기백이 종이 하나를 찢어 수겸에게 건넸다.
“거기 주소랑 연락처 좀 부탁드립니다. 내일 오후에 가져다 드릴께요.”
수겸은 종이를 받아 들고 주소를 쓰기 시작했다.
“저 혹시 가능하시면 내일 3시까지 될까요?”
이기백은 고개를 갸우뚱 한번 하고는 답했다.
“얼추 될 것 같긴 하네요. 대신 결제는 오늘 해주세요. 가공비, 운송비 포함해서 7만원 주세요.”
“카드도 되나요?”
***
이틀만에 돌아온 편의점이었다.
수겸은 카운터에 올려둔 물건을 보고 있었다.
신줏단지 모시듯 하루종일 들고 다녔던 흑연이 든 유리병
수액 채취 차 올라간 산에서 주워 온 돌멩이 5개
아마도 야외 테이블의 다리였던 것 같은 녹슨 철.
이기백에게 부탁해서 얻어 온 납 조각과 조금만 잘라 온 구리 배관.
“가관이다. 가관이야.”
남들이 보면 ‘아~ 저 사람 고물상 하나보다.’ 라고 생각하는 게 지극히 정상 같은 비주얼이었다.
그럼에도 수겸은 기분 좋게 싱긋 웃었다.
“이게 금이 된다고. 이 사람들아. 흐흐”
제법 변태 같은 미소를 짓고 가방에서 구겨지지 않은 종이 한장을 꺼내 카운터에 펼쳤다.
근데 편의점인데 손님이 오면 어쩌냐고?
‘응 아무도 안 와. 여기 망한 편의점이야~’
조금 전까지 싱긋 웃던 수겸이 이내 시무룩해졌다.
“그.렇.지.만. 이것만 잘 되면 난 이제 부자다. 이런 편의점 따위.”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는 수겸이었다.
수겸은 그래도 혹시 몰라 화장실을 다녀 온다는 글이 적힌 종이를 문에 붙이고 편의점 문을 잠궜다.
수겸은 연금술을 시작했다.
돌멩이에서 석회암 부분을 추출하고, 녹슨 철에서 녹을 제거해 깨끗한 철로 만들었다.
구리 배관은 특별히 손보지 않았다.
납땜용 납 역시 순수한 납일거라 생각하고 그대로 사용하기로 했다.
그리고 미리 인터넷으로 구매한 초정밀 저울을 꺼내 무게를 측정했다.
다행히 분해, 합성 기술을 이용하면 재료를 나누거나 다시 합치는 것은 일도 아닐만큼 아주 간단히 해결할 수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이 모든 재료들을 혼합 해 금으로 탈바꿈하는 일이었다.
마찬가지로 리카르도가 넣어준 지식을 활용해 거침없이 마법진을 그렸다.
기초 재료가 되는 철을 한 가운데 배치하고, 그 외 재료를 배열에 맞춰서 올려두었다.
“후우. 가보자고!”
마나가 주입되고, 마법진이 활성화되며 예의 환한 불빛이 나왔다.
수겸은 눈을 비비며 얼굴을 가져다 대어 자세히 쳐다 봤다.
한가지 확실한 건 색깔만 봐도 이건 금이 아니었다.
“금이 까만 색일리가 없잖아∙∙∙∙∙∙. 난 망했어. 난 거지야. 난 이대로 은행 이자에 잡아먹힐거야. 아아아아아아. 으악!”
수겸은 이성을 잃고 미쳐 날뛰었다.
그러다 문득 왜 이렇게 된 건지에 대한 것도 지식에 있지 않을까 싶어 내용을 떠올려 봤다.
– 검정색 결과물이라면 재료의 상태, 특히 얼마나 이물질이 없는 순도 높은 재료였나를 확인해야 한다. 또, 결과물이 고체가 아닌 액체가 나왔다면 재료 배합 비율의 문제일 수 있다.
다행히 원인은 바로 찾았다.
수겸은 다시 한번 재료를 준비하되 이번엔 납, 철, 구리 모두 연금술로 가공해 사용해보기로 했다.
어차피 분해와 합성을 할 때 룬어로 각 물질을 기재하기 때문에 현대 과학에서 말하는 원자니, 분자니 하는 지식이 없어도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까는 무슨 자신감으로 안한거지. 나란 새끼. 무식한 새끼.’
모든 걸 다시 한 번 준비하고, 수겸은 편의점 문 앞에 서서 혹시 누가 편의점을 향해 오고 있는 지 확인했다.
역시 망한 편의점답게 인근에 사람이라곤 한 명도 없었다.
정성껏 마법진을 그리고, 이중 체크를 해가며 재료의 배치를 마쳤다.
재료의 무게도 다시 재고, 비율도 확인했다.
“휴우. 이번엔 제발.”
이제 오늘 밤에는 더 이상 도전할 수 없다.
수겸은 손을 들어 마법진에 마나를 주입했고, 이내 마법진은 반응을 시작했다.
“하압!”
수겸은 자신의 염원을 담아 기합 소리를 내질렀다.
화르륵-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종이가 불에 타며 더 격렬한 반응이 나타났다.
“그 놈 때깔이 참 곱다! 흐흐흐.”
수겸이 연금술의 결과물을 쳐다 보며 미친 놈처럼 실실 웃었다.
“이틀간의 노가다가 이렇게 성과를 내는구나. 이건 얼마나 하려나?”
수겸은 저울 위에 금 조각을 올렸다.
측정 결과 2.5그램이었다.
“와, 이거 맞아? 손실이 꽤 많구나. 문제는 질인데. 당연히 24K 순금이겠지? 빛깔이 이렇게 번쩍거리는데.”
어차피 더 이상 연금술을 시행할 재료도 없어서 수겸은 카운터 정리를 시작했다.
때마침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연금술사가 아닌 편의점 점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