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learned alchemy RAW novel - Chapter 8
8화
평소라면 근무를 마치고 집에 와서 잠자기 바빴겠지만, 수겸은 좀처럼 잠들 수 없었다.
“그냥 지금 바로 파서 팔아볼까? 아니지. 아침부터 금 팔러 금은방 가면 좀 이상하지 않나? 너무 눈에 띄면 안될텐데.”
금은방에 금을 파는 건 지극히 평범한 일임에도 수겸의 마음은 불편하기만 했다.
그건 앞으로 이게 반복적으로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었다.
“매일 같이 금 팔러 가면 누가 봐도 이상하지 않을까? 반지처럼 장신구도 아니고 말이지.”
말이 나와 하는 말이지만, 아직 수겸은 연금술사로 치면 애송이 수준이었다.
다만, 그의 머리 속에 연금술로 일가를 이룬 사람의 지식이 있기 때문에 이 정도라도 혼자서 연금술을 펼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가 원하는 모양으로 만드는 건 지식만으로 되는 일이 아닌지라, 좀 더 많은 연습을 하지 않는 한 반지 모양이나 각이 서 있는 금괴 모양으로 만드는 건 불가능했다.
‘의념을 싣고, 마나를 정교하게 다룰 수 있어야 시도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때까지는 ‘길을 걷다가 반짝거리는 돌을 주웠는데, 그게 금이었어요!’ 라고 하는게 더 신빙성이 있을 것 같았다.
물론, 그마저도 두번째부터는 의심의 눈초리를 사겠지만 말이다.
수겸은 이불을 박차며 몸을 일으켰다.
“모르겠다. 일단 고. 못 먹어도 고!”
수겸은 곧바로 서울에서 금은방이 가장 많이 모여있다는 종로로 향했다.
수겸의 첫 작품을 판매하기로 결정한 금은방 이름이었다.
뻐꾹- 뻐꾹-
무척이나 특이한 차임벨 소리가 울리고 수겸을 반겨주는 목소리가 들렸다.
“어서오세요. 어떻게 오셨어요?”
짧은 스포츠 머리에 턱수염이 제법 잘 어울리는 사장이 나와 수겸에게 인사했다.
“아, 예. 사러 온 건 아니고 금을 좀 팔려고 왔는데요.”
“네 .물건 좀 주세요.”
억양의 고저 없는 무뚝뚝한 말투였다.
“여기요. 엄청 오랜만에 대청소를 했는데 이게 장롱 구석에 있더라고요? 처음엔 먼가 했는데 자세히 보니까 이게 금 같더라고요. 색깔이. 그래서∙∙∙∙∙∙.”
묻지도 않았는데 수겸은 갑자기 사연팔이를 시작했다.
“아, 예. 손님 잠시만요.”
수겸의 이야기를 듣기나 한 건지 모르겠지만, 순금 나라의 사장은 수겸의 금을 들고 카운터 뒷 쪽 출입이 되지 않는 공간으로 들어가버렸다.
“어, 어디 가세요?”
산골짜기에 박혀서 세상에 처음 나온 자연인 마냥 걱정스런 눈빛을 하며 물었다.
“순도를 한번 확인해야 할 것 같아서요. 잠시만요. 금방 끝납니다.”
“네∙∙∙∙∙∙.”
지난 번 리카르도가 만든 금을 팔았을 때는 여기와 다른 금은방이었지만, 한 눈에 보고 24K라는 판정이 나왔는데 수겸의 것은 한번 살펴봐야 한단다.
‘24K는 아닌가보네. 18K는 되어야 돈이 될텐데. 그것도 안되면 이번엔 나가리다.’
잠시 후 사장이 나왔다.
“손님. 손님이 주신 금의 순도가 좀 애매해서 자세히 좀 살폈는데, 이게 18K는 조금 넘을 것 같네요. 정확하게 하려면 정밀 분석을 해야 하는데, 저희 같은 일반 금은방에는 장비가 없어서요. 그래도 파시겠어요?”
정확히 측정하면 더 높은 순도가 나올 수 있지만, 그럴려면 전문 장비가 있는 곳을 찾아야 한다는 말. 수겸은 별다른 고민도 않고 답했다.
“네! 팔게요. 얼마나 될까요?”
“무게는 2.5그램이시고, 18K로 쳐서 계산해보면∙∙∙187,000원입니다. 괜찮으세요?”
“좋아요. 현금으로 되죠?”
“그럼요. 그 전에 하나 여쭤볼 것이 있는데.”
수겸은 손바닥에서 땀이 났다.
“네?”
“아까 집에서 찾으셨다고 하셨는데, 그럼 본인 것 맞으시죠?”
“그럼요. 당연히 제꺼죠. 저희 집에 있던 거니까 제꺼죠.”
“그러면 장물은 아니신거고, 알겠습니다. 여깄습니다.”
다행히 별 다른 질문은 없이 무사히 거래를 마쳤다.
수겸이 서둘러 도망치듯 나가려는데, 금은방 사장이 뒤통수에다 대고 말했다.
“또 찾아주세요. 그럼 안녕히 가세요.”
촉이 좋은 사람인걸까? 수겸이 앞으로도 계속 금을 팔 것 같다는 예감을 한 것 같았다.
***
무사히 거래를 마치고 수겸은 집에 와서 계산기를 두들기기 시작했다.
“자, 계산해보자. 먼저 종이 빼. 돌멩이 주워서 쓰면 되니까 석회암도 빼. 그러면 남는 건 흑연, 철, 납, 구리고.”
수겸은 연습장 하나를 부욱 찢어 메모를 했다.
“밤에 들어간 양이 철이 42.5그램, 납이 8.45그램, 구리가 16.25그램이었지.”
수겸은 한참을 끄적이며 계산을 했다.
“공식이랑 비교하면 손실이 엄청나구나. 뭘 놓쳐서 그런걸까.”
동영상 되감기를 하듯 수겸은 어젯밤 일을 하나씩 떠올렸다.
“일단 스크롤 제작을 안한 것부터 문제겠군. 그냥 쌩 종이로 재료 추출을 했으니 순도가 떨어졌을테고, 그것 때문에 최종적으로 금을 만들 때에도 추출된 양이 적었을거야. 그리고∙∙∙∙∙∙.”
놓친 것이 한 두 개가 아니었다.
할 것이 많다는 건 앞으로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뜻이 아닐까? 라고 생각하며 수겸은 행복회로를 가동했다.
“고물상에서 산 걸로 금 1킬로를 만들기만 한다면∙∙∙그리고 그게 24K, 99% 순수한 금이라고 하며∙∙∙헉! 8,400만원? 이거 실화야?”
수겸은 진심으로 깜짝 놀라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아니, 7만원으로 8천만원을 버는 사람이 있다? 미치네. 역시 사람은 기술을 배워야 해. 한강물을 퍼다가 팔아도 이만큼 돈은 못 벌겠다.”
가슴이 웅장해졌다.
“제대로 일이 안된다고 쳐도 5천만은 될 것 같은데 이걸로 멀 해야 하지? 하하하. 뭐가 걱정이야. 막 쓰다가 부족하면 또 만들지.”
갑자기 인생의 난이도가 이지(easy) 모드가 된 듯 했다.
“이게 찐 행복이구나. 하하.”
그 때 수겸의 휴대폰에서 진동소리가 들렸다.
우웅- 우웅-
시계를 보니 2시 50분. 아무래도 고물상에서 배달이 온 듯 했다.
“여보세요. 네네. 저 맞아요. 태영 빌라 맞아요. 제가 나갈게요.”
전화통화를 마치고 문을 열고 나가니 이기백과 이기백의 직원 2명이 수겸을 기다리고 있었다.
“여깄습니다. 물건 확인해보시고요.”
이기백은 타고 온 트럭 뒤를 가르켰다.
“잘 해주셨겠죠. 죄송한데 안으로도 옮겨 주실 수 있나요?”
이기백의 뒤에 서 있던 직원 두 명에게 쳐다 보지도 않고 일을 시켰다.
“네네. 야, 안으로 옮겨드려.”
둘은 고개만 끄덕인 후 철을 들어 올렸다.
“여기 1층이라 그래도 계단은 없습니다. 잠시만요. 문 열게요.”
수겸은 절뚝거리면서도 서둘러 뛰어가 공동현관과 집 문을 활짝 열었다.
잠시 후 물건 이동이 끝나고 수겸이 지갑에서 5만원권 하나를 꺼내 이기백에게 건넸다.
“이건 감사해서.”
이기백은 도로 넣으라는 듯 수겸의 손을 살짝 밀었다.
“멀 또 주세요. 괜찮아요.”
“아니요. 저 두 분한테도 감사해서요. 많진 않아도 이걸로 식사라도 하세요.”
이기백은 두 번은 사양하지 않고 돈을 받았다.
“참. 괜찮은데. 주시니 감사히 받을게요. 얘들아 감사 인사 드려라.”
“감사합니다!”
이기백은 차에 타다 말고 수겸에게 말했다.
“손님. 혹시 더 필요한 물건 있으시면 전화주세요. 힘드신데 굳이 찾아오지 마시고.”
팁을 준 것이 도움이 된 듯 이기백을 처음 만났을 때보다 더 유해진 목소리였다.
수겸이 웃으면서 답했다.
“그래도 되면 너무 좋죠. 앞으로 종종 연락드릴 것 같습니다. 오늘 감사했습니다.”
이기백이 떠나가고 수겸은 집에 들어와 곧 황금으로 변할 금속 덩어리들을 흐뭇하게 쳐다봤다.
“어이구, 예쁜 내 새끼들.”
지금 수겸은 세상 모든 걸 가진 기분이었다.
마음 같아선 밤을 새서라도 주구장창 금을 찍어 내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는 것이 편의점 때문이었다.
“후. 가진 가야겠지. 생산성만 보면 그냥 아르바이트를 한 명 더 구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은데 말이지.”
수겸은 조금이라도 자두어야 할 것 같아 침대에 누워 고민을 시작했다.
근무시간 중 2/3을 놀 수 있는 꿀 중 꿀.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는 구하려면 언제든지 구할 수 있었다.
다만, 문제는 수겸의 마음 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괜한 근심이었다.
‘망해가던 편의점에서 1년을 넘게 점주가 몸으로 때우던 야간 알바 자리를 구한다면 누군가 의심하지 않을까? 저 새끼 돈 생겼다고. 괜히 걱정된다 이 말이지.’
친구 민환이 듣는다면 혀를 쯧쯧 차며 수겸을 비웃을만한 고민이었다.
‘일단 잠 좀 자자. 오늘 밤에도 일을 해야 하니까.’
흥분이 가시지 않아서 잠들 수 있을지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몸은 솔직한 지 곧바로 잠에 들었다.
***
오늘도 역시나 또 편의점.
삑-
“1,000원입니다. 카드 꽂아주시고요. 네. 결제 되셨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달랑 물 한 병을 산 손님이 나가고 수겸은 자리에 잠깐 앉았다가 정산 프로그램을 켰다.
벌써 월말이기 때문이었다.
정산을 시작하기도 전인데 수겸의 표정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타다닥.
계산기를 열심히 두들긴 후에야 이번 달 최종 스코어가 나왔다.
“마지막 월세 150만원까지 빼고 나면!”
탁!
계산기의 ‘=’ 버튼을 힘껏 눌렀다.
보기도 좋고 읽기도 좋은 1,000,000원이었다.
“이야! 최고다! 매일 쉬는 날도 없이 밤새서 근무한 내 인건비가 백만원이구나.”
‘여기에 할머니 요양원까지 하면 쓸 돈이 없네∙∙∙.’
수겸은 실제로 눈물이 흐르건 말건 상관 않고 느낌상 촉촉해진 눈가를 스윽 닦았다.
‘이승준 대리야. 내일 오랜만에 통화 한번 진하게 하자?’
안그래도 출근 직전까지 편의점을 접을 지 고민하던 수겸에게 이번 달 수익은 사형선고와 같았다.
아무대로 이 따위 편의점은 그만두는 것이 맞다고 하늘에서 수겸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모양이었다.
띠링-
좌절감에 연신 머리를 헝클이고 있던 찰나에 다시 편의점 문이 열렸다.
과연 수겸은 프로였다.
이내 감정을 추스르고 아무 일도 없다는 표정으로 손님들을 맞이했다.
“어서오세요.”
사람이 아무리 외모만 보고 평가하면 안된다지만, 지금 들어온 사람들을 보면 누구나 똑같이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다.
‘깡패구나. 눈 깔아야지.’
아무래도 재개발이니 철거니 해서 다른 동네보다 조폭들이 많이 모여 있는 동네이긴 했다.
둘 중에 덩치가 더 큰 깡패가 옆구리에 손을 올리고 큰 소리로 수겸을 불렀다.
“어이! 알바야. 여기 매운 새우칩 없냐?”
욕을 한 것도 아닌데 수겸은 화들짝 놀라며 답했다.
“네. 거기 없으면 없는데요.”
방금 수겸에게 말한 깡패 말고 그 옆에 있던 한쪽 팔을 문신으로 가득 채운 놈이 인상을 팍 썼다.
“이 새끼가 형님한테 말하는 뽐새 보소? 마, 니 뒤지고 싶나?”
어느새 수겸의 한 손에는 112 가 눌린 휴대폰이 들려있었다.
다행히 형님 깡패가 말렸다.
“고마해라. 없을 수도 있지. 다른 거 골라가 먹자. 니는 저어 가서 소주나 세 병 사와라.”
“예. 형님. 니는 형님이 살린기다. 알겠나?”
수겸은 자존심이 상했지만, 마지못해 답했다.
“예, 예.”
무슨 백화점 쇼핑을 하듯 둘은 과자, 냉동식품, 술, 음료수를 잔뜩 집어와 그야말로 플렉스를 하는 중이었다.
수겸은 카운터에 올라온 품목 먼저 바코드를 찍기 시작했다.
삑. 삑. 삑.
마지막으로 생수 1.5리터 한 병까지 모두 찍고는 수겸이 말했다.
“3만 8천원입니다. 봉투 필요하세요?”
“어.”
“100원 추가 되는데 괜찮으세요?”
문신 깡패가 짜증을 잔뜩 내고는 말했다.
“알겠다니까. 계집처럼 100원 가지고 떽떽거리네. 빨리 좀 해라.”
수겸은 순간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 들었다.
결제까지 마치고 봉투까지 다 담았는데 문신 깡패가 마지막 한 방을 날렸다.
문신 깡패는 카운터 앞에 진열된 소시지 하나를 집고는 수겸에게 말했다.
“야, 이건 서비스. 간다.”
수겸은 다급히 카운터 문을 열고 뒤따라 나갔다.
띠링-
깡패 두 명이 나가고 수겸이 뒤따랐다.
“손님. 그거 결제하셔야 하는데요.”
“아씨. 서비스라고!”
수겸은 결국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서비스는 내가 준다고 해야지. 네가 왜 서비스라고 가져가는데?”
“미친 새끼가 좀 맞아야 정신을 차리겠네?”
그 때 가만히 이야기만 듣고 있던 형님 깡패가 뒷목에 손을 올려 주물럭거리며 수겸에게 다가왔다.
“마, 니는 그거 두고 온나. 쪽팔리구로 소시지 하나 가지고 그라나.”
눈은 줄곧 수겸을 향해 있었지만, 말은 부하인 문신 깡패에게 한 것이었다.
문신 깡패가 후다닥 뛰어 들어갔다.
형님 깡패가 두 손을 수겸의 어깨 위로 탁 하고 올리며 말했다.
“니도 선은 그만 넘지. 알겠나?”
수겸은 고개를 푹 숙였다.
공포심에 피가 거꾸로 솟는 분노조차 사그라들었다.
“한번 더 선 넘으면 그 때는 알재?”
그러면서 솥뚜껑만한 손을 들어 수겸에게 내려찍는 모션을 취했다.
수겸은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치다가 절뚝이는 다리 때문에 그만 넘어지고 말았다.
그 모습을 본 문신 깡패가 박장대소를 했다.
“하하. 이 새끼 다리까지 병신이었네? 형님 가시죠. 장애인이었는데 제가 과했던 것 같습니다.”
수겸은 바닥에 넘어진 채로 주먹을 꼭 쥐며 울분을 삼켰다.
수겸에게 새로운 목표가 생기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