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moved to the SSS-class production industry RAW novel - Chapter 146
제146화
35. 홍복을 기원하니 (4)
저를 제외한 모든 요괴를 제물 삼아 삼두구미는 일시적으로 마나로드를 회복했다. 그러곤 셋으로 찢어졌고. 하나일 때보다 덩치는 작았으나, 풍기는 기운은 범상치 않았다.
‘아니, 오히려…….’
세 여우의 기운을 가늠하다가 입술을 깨물었다. 힘의 총합으로 따지면 하나일 때보다 위였으면 위였지 덜하지 않았다. 주도권을 잡은 벽안의 영혼에 짓눌려 있던 다른 혼들이 기를 편 덕택이다.
[거짓의 미수] [재앙의 미수] [고통의 미수]각각이 A급 이상인 마수 셋. 이쪽의 숫자는 도깨비와 해랑까지 포함해 겨우 아홉. 그러니까 세 명 당 여우 하나를 상대해야 한다는 거다.
낙천적으로 본대도 결코 좋은 상황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긴 논의 끝에 세운 대형과 전략들까지 모두 물거품이 되었다.
그러나 이곳에 자리한 헌터들은 그런 일에 동요할 이들이 아니었다.
“셋으로 갈라지겠습니다!”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은 한차현이었다. 그는 처음 이 계층에 왔을 때처럼 팀을 나누자 제안했다. 일견 합리적인 말이었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그렇게 하면 팀원 간의 밸런스는 맞을지 몰라도, 적과의 상성이 애매해진다. 우위를 점하진 못하더라도 이 이상 불리한 조건이 생기는 것만큼은 막아야 했다.
머릿속으로 빠르게 계산을 마친 뒤, 입을 열었다.
“제 의견은 다릅니다.”
“가호 씨?”
“상성을 생각하면 팀을 다시 구성해야 합니다. 거짓과 고통, 재앙. 각각의 능력을 감안하면…….”
말할 여유가 있으려나. 고개를 들어 삼두구미를 살폈다. 이제 갓 분리된 세 여우는 엷은 장막 안에서 기운을 갈무리하고 있었다. 시험 삼아 차태양이 불꽃을 내질렀으나 맥없이 튕겨 나갔다. 변신 중인 마법 소녀도 아니고 뭐람.
‘그래도 덕분에 설명할 시간은 벌었다.’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푸른 눈을 한 거짓의 미수. 아이템 ‘동티’의 설명문에 따르면, 청안은 인간을 현혹하고 감염시킨다. 궁에서 그러했듯 디버프를 위주로 공격해 오겠지.
“‘거짓의 미수’는 차태양 헌터와 소리, 그리고 사로뫼에게 맡기겠습니다.”
영매의 자질을 타고나 해주 아이템 없이도 편안히 다니던 차태양이다. 청안의 상대로 그만한 이가 없었다. 천산의 기운을 운용할 수 있으니 사로뫼와는 붙이는 편이 좋았다. 온에 온 뒤로 재주를 한껏 발휘한 도깨비가 그들을 도울 것이다.
붉은 눈을 한 ‘고통의 미수’는 윤수호와 한차현, 이강토에게 부탁했다. 윤수호가 무언가 탐탁지 않은 눈치기에 얼른 덧붙였다.
“굳이 저 셋 중 가장 쉬운 상대를 고르자면 저 적안이겠죠.”
“윤가호, 그걸 알면서도 날 저기 붙이겠다는 건가? 네가 제대로 반응하지도 못하는 재앙을 상대하는 동안?”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
굳이 걸고넘어지는 윤수호를 노려보자 그가 입술을 일자로 다물었다. 처음에 비하면 이것도 장족의 발전이었다.
그간 본 양상으로 짐작하건대 저 적안의 능력은 접촉을 매개로 이루어지는 듯했다. 날개가 있어 운신이 자유로운 윤수호와 한차현이라면 쉽게 피할 수 있겠지. 둘로도 부족함 없는 조합에 굳이 이강토를 추가한 건…….
“속전속결을 원하시는군요.”
“네, 맞습니다.”
“박신주 씨의 스킬을 활용하면 히트 앤 런으로 버티면서 저희의 합류를 기다릴 수 있다고 판단하신 거고요.”
설명하기도 전에 한차현이 빠르게 내 의중을 읽었다. 고개를 끄덕이자 고민하는 듯 그가 안경테를 손끝으로 쓸었다.
“만일 저희가 늦는다면 위험해지실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된대도 괜찮을 겁니다. 신주랑은 원체 손발이 잘 맞고, 여차하면 제 고래도 도울 테니까요. 그리고…….”
천산이 어둠에 잠식되지 않도록 맹렬히 타오르는 불꽃을 바라보았다. 한차현이 내 시선 끝을 더듬는 것이 느껴졌다. 그는 이내 의문과 약간의 즐거움이 섞인 듯한 어조로 질문했다.
“또 저희 몰래 준비한 한 수가 있으신가 보죠?”
“예. 대단찮은 겁니다만.”
“겸손은 넣어 두세요. 가호 씨는 매번 저희를 놀라게 하셨잖아요.”
그 정돈 아닌데. 원체 듣기 좋은 말만 하는 사람이니 빈말이겠지. 그를 설득하기 위한 말들을 정리하다 문득 시선이 마주쳤다.
생각과 달리 황갈색에 가까운 엷은 빛깔의 눈동자는 사뭇 진지했다. 평소 웃음 뒤에 제 속을 감쪽같이 감추던 것이 거짓말처럼 그는 날 향한 감정을 훤히 드러냈다.
부정할 나위 없는 신뢰와 인정. 낯설었다. 아니, 생각해 보니 전부터 이런 눈빛이었던 것 같기도 했다.
‘내가 뭘 했다고?’
이어지는 한차현의 한 마디에 혼란은 가중되었다.
“믿고 다녀올게요.”
덜컥 가슴이 내려앉았다. 동시에 누군가 등 뒤를 강하게 받쳐주는 듯한 안정감을 느꼈다.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을 피하려 눈을 돌렸으나, 별 소용이 없었다. 나를 보는 파티원들의 눈빛이 모두 같은 빛을 띠고 있었으니까. 심지어는 윤수호마저도.
할 수 있는 말은 하나뿐이었다.
“네, 믿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산뜻하게 답한 한차현이 각 팀에게 맞는 장소를 지정해 주었다. 내 쪽이 임기응변이었으니, 한차현도 그럴 텐데. 미리 준비한 대본이라도 읽듯 능란한 설명이 이어졌다.
“세 팀이 싸우기엔 여긴 너무 협소해요. 셋으로 나뉘었다곤 하나, 저 여우들의 본질은 하나. 협공이라도 하면 곤란하니 흩어지겠습니다.”
“응, 그건 나도 동의. 괜히 붙어 있다가 콤보라도 깨지면 곤란하지.”
“이동은 저희가 하죠. 윤수호 씨, 이강토 씨, 준비하세요.”
차태양을 필두로 한 청안 팀은 화구호 중앙, 나와 신주는 호수 변, 적안의 여우는 산 중턱까지 끌고 가 처치하기로 했다.
생각할수록 괜찮은 구도였다. 이강토의 광역 스킬은 강력했으나, 아군이 많을수록 위력이 반감되었다. 우리와 거리를 벌리고, 윤수호가 한차현을 보호한다면 거리낌 없이 전력을 발휘할 수 있으리라.
또한 이 배치는 남은 두 팀의 약점을 보완하기에도 그만이었다. 비교적 전력이 약한 우리 팀과 경험이 부족한 차태양의 팀이 여차하면 협력할 수 있으니까.
“이제 곧 혼나비가 깨어날 시간입니다. 중턱에 가시는 세 분은 특히 유의 부탁드립니다.”
“그건 내가 신경 쓰지.”
“응, 부탁할게.”
혹시나 하고 당부하자 윤수호가 나를 안심시켰다. 일적으로는 믿을 만한 놈이니 맡겨도 되겠지.
장막이 걷힐 때까지 각 팀끼리 나뉘어 작전을 논의하는 분위기이기에 손짓으로 신주를 불렀다. 한 팀이라면서 들러붙을 줄 알았건만, 신주는 아까부터 저만치에서 히죽대기만 했다. 그러더니 오자마자 하는 소리가.
“그거 알아? 너 아까부터 엄청 표정 이상해. 귀엽기도 해라.”
“업무 시간에 헛소리하지 마.”
왜 저런 소리를 하는지 알기에 더 차갑게 신주를 밀어냈다. 그러자 신주가 헤벌쭉, 더 기분 나쁘게 웃으며 입에 자크를 채우는 제스처를 취했다.
“호흡 맞추는 건 뭐, 문제없을 거고.”
“그럼. 너만큼 내 리듬에 잘 따라오는 사람이 없는걸.”
“남은 건 이 녀석을 어떻게 활용할지.”
손등을 툭툭 두드리자, 해랑이 튀어나왔다. 답답했다는 듯 작은 고래가 허공에서 마구 몸을 털었다. 그를 본 신주가 스킬, ‘리듬 노트’를 발동해 제 손바닥 위에 노트를 띄웠다.
“얘, 너 이거 보여?”
순진한 낯을 한 고래가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괜히 신주의 손바닥에 입질만 해 대는 것이 전혀 뵈는 게 없어 보였다.
“하긴 네가 희한한 거지. 남의 스킬 이펙트가 보이다니.”
“이래서야 넣어 두는 게 나을지도.”
해랑이 마력을 흡수한 이들을 떠올렸다. 아스트로나, 사로뫼, 야나, 그리고 삼두구미까지. 하나같이 강력한 광역 공격을 지닌 이들이었다. 멋대로 그들의 능력을 베끼게 뒀다간 신주가 쌓은 콤보를 깰 확률이 매우 높았다.
‘누구게?’를 제외한 다른 스킬들은 이름만 보여 도통 뭔지 모르겠고. 내 정보창이 아니라 자세한 정보를 알 수 없었다. 미지수가 너무 많으니, 함부로 계산에 넣기가 어려웠다.
“음, 그럼 이런 건 어때?”
신주가 갑자기 손뼉을 치곤 제가 생각한 바를 늘어놓았다. 할 수 있겠냐 신주가 묻자, 고래가 고개를 끄덕이며 울었다. 솔직히 썩 미덥진 않지만…….
어느덧 눈에 띄게 걷힌 장막을 보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거라면 괜찮겠지. 좋아.”
* * *
“질척거리긴.”
부러 숨김없이 내뱉었으나, 나를 응시하는 벽안에서 웃음기가 가시지 않았다. 뭐, 상황이 우리 마음대로 흘러가면 그거야말로 세계탑답지 않겠지만. 짧게 한숨을 쉬었다.
작전은 반만 성공했다.
장막이 펼쳐지기 무섭게 한차현의 마도서가 펼쳐지고, 하늘에서 동아줄이 내려왔다. 절대로 끊어지지 않지만, 그뿐인 줄이었다. 그러나 그것이면 충분했다. 이강토가 동아줄의 한쪽 끝을 잡은 채 미수에게 달려들었다.
고통의 미수는 거칠게 반항했으나, 이강토는 그보다 필사적이었다. 그는 접촉을 불사하고 덤벼들었고 결국 구속에 성공했다. 고통에 훌쩍이면서도 이강토의 입술은 호선을 그렸다.
“흡, 야, 약속하신 거예요! 이놈의 꼬리는 다 제가…….”
“가지.”
날개를 펼친 윤수호가 줄의 다른 쪽 끝을 잡고 힘을 주었다. 산책하기 싫어하는 개처럼 질질 끌려가는 꼴이 우스웠다. 예상보다 수월한 시작이었다.
하지만 나머지 둘은 호락호락하게 당하지 않았다.
“그리도 가까이 있었던 게 며칠 전의 일인데 이리 매몰차게 밀어내시다니. 되려 더 마음이 쓰이는군요.”
“허, 저급 멘트 사절이요!”
“우연이 세 번 반복되면 운명이라죠. 이런 연을 어찌 끊을 수 있겠습니까.”
청안의 여우는 끈덕지게 내게 달라붙었다. 연인과 밀어라도 나누듯 달콤한 어조로 운명을 운운하면서. 잘근잘근 밟겠다고 으르렁대던 것은 싹 잊어버린 듯한 태도였다.
“너 같은 빌런한테 가호가호를 넘길 것 같아?”
호수 중앙에서 번쩍거리는 빛을 배경으로 선 신주가 외쳤다. 내가 민망함을 이기지 못하고 얼굴을 가렸으나, 신주의 호령은 멈추지 않았다.
“스위티, 어서 BPM 올려! 격렬한 음악으로 부탁해!”
– 큐!
BPM을 높이라며 재촉받은 스피커가 제자리에서 빙글 돌았다. 그러자 그 위에 올라타 있던 작은 고래가 보글보글, 거품을 터뜨리며 웃었다.
우르릉, 쾅! 천둥소리 사이로 개막을 알리는 전자음이 퍼졌다. 강렬한 비트를 따라 심장이 고동쳤다. 긴장을 억누르며 활을 바투 쥐었다.
“자, 이제 라스트 게임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