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moved to the SSS-class production industry RAW novel - Chapter 164
제164화
39. 케미스트리 (4)
깡, 까강-!
오래간만에 보는 공방은 전과 다름없이 분주했다. 신비로운 불꽃이 넘실거리는 화로와 그를 부추기는 풀무, 노래하듯 박자를 타는 망치와 모루,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색색의 금속들……. 질서정연한 작업 현장은 그 자체로도 한 폭의 그림 같았다.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다만, 딱 하나 달라진 점이 있었으니. 공방을 충만하게 채운 마력과 열기가 예전보다 확연히 선명하게 느껴졌다.
‘조금 과장하자면 칼로스의 안에 들어온 기분이야.’
오로지 칼로스만을 위한 필드. 그만을 받드는 불과 모루. 나는 뒤늦게 공방의 존재 의의를 실감했다.
이 모든 것을 만들고, 거느리는 장인을 바라보았다.
칼로스는 내가 그를 응시하든 말든 제 손바닥 위에 올려진 모노클을 살피기 바빴다. 그 어떤 곳보다도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이곳에 온 뒤에도 그는 한참을 고전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의 뺨에는 즐거운 홍조가 감돌았으니. 실로 장인다운 자세였다.
“방해하지 말자.”
재잘거리는 금속음을 들으면서 얼마나 기다렸을까. 조금 무료해졌을 무렵, 뜬금없이 오랜만에 보는 정보창이 떠올랐다.
[열네 번째 밤을 위하여(A)“빌린 것은 영원하지 못하다고 하나, 세상의 모든 것은 빌려 온 것이지 않은가.”
– 심해의 현자, 칼리아의 파편이 담긴 안경.
※ 착용 조건 : npc 칼리아의 인정을 받은 자]
뒤이어 목걸이의 구조가 훅 펼쳐졌다. 지금의 나로서는 해석도, 이해도 할 수 없는 발상을 구체화한 회로. 과감할 정도로 재치가 넘치지만 동시에 섬세한 칼리아의 작품다웠다.
나를 아는 체 마는 체하던 칼로스가 혀를 내두르며 다가왔다. 생각지도 못한 단어를 입에 담으며.
“고약한 고유 회로야.”
“예?”
“이 모노클 말이야. 이걸 만든 놈도 보통 고약한 놈이 아니겠어.”
“아니, 그거 말고요!”
칼로스가 미간을 옅게 찌푸렸다. 내가 무엇을 묻는지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고유 회로요. 스승님, 그게 뭔지 아세요?”
마음이 앞서 칼로스의 소매를 잡고 흔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물어볼 생각이었는데 이쪽에서 먼저 언급할 줄이야. 놀라운 우연이었다.
[최초로 고유 회로를 제작했습니다.] [‘플레이어 윤가호’의 고유 회로에 인챈트, ‘연쇄’의 효과가 중첩됩니다.]24계층에서의 퀘스트가 끝난 이래, 내내 이 문구들을 곱씹어 왔다. 그때 나타났던 목소리는 이 ‘고유 회로’란 것을 기대하고 날 지켜본 것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러겠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와의 인연은 이것이 끝이 아님을. 그래서 나는 알아내고자 했다. 멋대로 남의 명줄을 흔들어대는 그의 정체를. 그러나 가진 정보가 너무나 적었다.
■■의 ■■. 목소리는 세계탑과 모종의 관계가 있는 게 틀림없었다. 그리고 고유 회로는 모든 것이 희뿌옇게 가려진 그와 연결된 몇 없는 단서였다.
“모를 리가.”
“그게 뭔데요? 알려 주세요, 칼로스.”
“그 전에, 가호 네가 겪은 일들을 먼저 말해.”
처음 만났을 때 이후로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그러니까, 상당히 험악했단 소리다.
뭔가를 알고 있지 않으면 이런 반응은 안 나오겠지. 덩달아 심각해져 입을 일자로 꾹 다물었다.
칼로스는 이를 대답하기 싫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는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곤 허리 숙여 나와 눈을 맞췄다. 그가 품은 염려와 경계가 눈빛에서 고스란히 전해졌다.
“난 아직 너에게 고유 회로에 대해 알려 주지 않았어. 시기상조였으니까. 그런데 도대체 어디서 그 이야기를 들은 거지? 이것도 그 칼리아란 장인으로부터인가?”
고개를 젓자 칼로스의 표정이 한층 더 사나워졌다. 내가 24계층에서 겪은 일과 알 수 없는 목소리에 대해 털어놓을수록 그 정도는 점점 심해졌다. 용케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끼어들지 않고 경청했다 싶을 정도였다.
“고유 회로라는 말은 그렇게 알게 된 거예요. 그러니까 알려 주세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전 아직 그때 제가 만든 게 여태껏 건든 회로들이랑 뭐가 다른지도 잘 모르겠거든요.”
“나 원.”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던 칼로스가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가 싶어 슬쩍 눈치를 보자 그가 내 뺨을 아프지 않게 꼬집었다.
“으, 갑자기 왜 이러세요.”
“……우선 하나만 먼저 일러두지.”
볼을 좌우로 늘리는 장난스러운 행동과 달리, 칼로스의 목소리는 진지하게 내리깔렸다.
“앞으로는 네가 속하지 않은 세상의 회로에 손대지 마. 가호 네가 나를 뛰어넘는 그 순간까지, 절대로.”
“예?”
“약속해, 윤가호. 너의 스승인 날 걸고.”
물끄러미 나의 스승임을 자처하는 이를 올려다보았다. 침묵과 눈빛만이 오갔지만, 그가 이 이상은 설명해 주지 않을, 아니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쉽게 읽어낼 수 있었다.
대체, 어떤 뒷사정이 엮여 있기에 이러는 거지?
칼로스는 ‘세계관을 초월한 대장장이’라는 이명에 걸맞은 자였다. 아무리 단단한 금속도 그의 손 아래에서는 고무처럼 휘어졌고, 미지의 영역이라 여겼던 시스템마저도 그는 쉽게 다루어 냈다. 그런 그조차 함부로 입에 올릴 수 없는 사정이라니.
약속의 내용 또한 마음에 걸렸다. 다른 세상의 회로를 건드리지 말라니. 맥락을 보면 천산과 석등의 회로를 수정한 것을 두고 하는 말 같았다.
‘그게 왜 문제라는 건데?’
그 뒤에 따라붙은 말도 이해가 가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칼로스를 따라잡는 순간? 그런 날이 과연 오기나 할까?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가지 않았다. 아니, 그런 걸 떠나서.
역으로 뒤집어 생각해 보면, 계층에 간섭하는 일은 칼로스조차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것. 그보다 뛰어난 장인이 된다면 그걸 행해도 된다는 건가? 뭔가 더 내포된 뜻이 있는 듯한데 쉽게 가늠이 가지 않았다.
침묵이 길어지자 뺨을 잡은 엄지와 검지가 떨어지고, 이내 체온 높은 손바닥이 얼굴을 감쌌다. 이어 칼로스가 재촉의 말을 뱉었다.
“어서.”
목소리를 듣는 순간 깨달았다.
그가 뿌린 수많은 의문에도 불구하고 단 하나, 확실한 사실이 있었다. 이 모든 것은 나를 생각해서 하는 소리라는 것. 칼로스는 진정으로 나의 안위를, 미래를 걱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죄송해요, 스승님. 그건 못 하겠어요.”
“……왜지?”
“같은 상황이 오면, 저는 똑같은 선택을 할 거예요. 설령 제게 무슨 해가 온다고 하더라도요. 그런 순간들이 있잖아요.”
염려뿐이던 칼로스의 눈빛이 미묘하게 다른 빛을 띠었다.
나는 천천히 그의 손을 떼어냈다. 칼로스가 나를 귀하게 여겼기에, 나도 더 이상 그를 npc로만 대할 수 없었다. 과몰입이라고 해도 좋다. 마음 가는 길을 어찌 막겠는가.
“지키지도 못할 약속에 스승님을 걸다뇨. 그런 괘씸한 제자가 될 순 없죠.”
언짢아하면 어쩌나 했는데. 칼로스는 별말 없이 한발 물러났다. 그러고는…….
딱! 예고도 없이 얻어맞은 이마를 감싸 쥐었다.
“아! 갑자기 또 왜요?”
“어디서 스승 몰래 번드르르한 말만 배워 와선.”
“불만이 있으면 말로 하시라고요. 꼭 이러시지!”
“정 싫으면 제자 관두든가.”
정 없는 말이었으나 어조에는 웃음기가 배어 있었다. 왜인지 모르겠으나, 표정도 어딘가 후련해졌다. 고민하던 게 사라진 것처럼 보인달까.
근처에 있던 작업대에 걸터앉은 그가 제 옆을 툭툭 두드렸다. 냉큼 곁으로 가자 칼로스가 드디어 내 질문에 대한 운을 띄웠다.
“장인에게 있어, 신념은 곧 힘이다.”
이어 칼로스는 제가 가지고 있던 모노클을 내밀었다.
“장인의 영혼을 반영할 정도로 강한 신념이 담긴 작품, 그것이 고유 회로야. 누군가 이걸 마스터 피스라고도 부르지.”
“일반적인 회로와는 많이 다른 건가요?”
“아주 다르지. 가장 눈에 띄는 건, 이런 부분일 테고.”
칼로스가 모노클의 위를 손으로 쓸자, 아이템 정보창의 한 부분이 튀어나왔다.
[“빌린 것은 영원하지 못하다고 하나, 세상의 모든 것은 빌려 온 것이지 않은가.”]수식언? 저게 고유 회로랑 관련이 있다고? 칼리아의 공방에서 그와 나눈 대화를 더듬었다. 분명 그때 칼리아가 말하기로는…….
“아이템의 본질을 담은 문장이라고 들었는데.”
“음, 어디서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확한 표현이구나. 네가 한 말대로 수식언은 본질을 담은 말. 신념이 깃들지 않은 회로에는 부여되지 않아.”
칼로스는 그동안의 불친절한 설명에 배신감이 들 정도로 유려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고유 회로가 포함된 식이나 아이템은 매우 독특하고 강력해지지. 등급으로 매길 수 없는 힘을 품은 건 물론이오, 제작자 외에는 해석하기 힘들어서 다른 장인이라도 함부로 손대기 힘들어.”
마지막 말에는 진저리가 난다는 듯한 뉘앙스가 섞여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아까 칼리아의 모노클을 ‘고약하다’고 표현했었지?
“이 녀석은 개중에서도 유난한 편이지. 제작자의 성질머리를 알 만해.”
“어, 음.”
내게는 친절한 바다사람이었다. 하지만 칼리아가 객관적으로 좋은 성격이냐, 물으면 그건 또 모르겠단 말이지. 저지른 기행이 한두 가지도 아니고…….
“대신 변명할 필요 없다. 곧 그 낯짝을 보게 될 테니.”
뭐?
입꼬리를 끌어올린 칼로스가 허공과 모노클을 번갈아 두드렸다. 공방의 마력이 주인의 부름에 공명하니, 강한 파동이 우리를 휘감았다.
그리고 그 순간. 화로 앞에 물거품이 피어올랐다.
물거품은 작은 용오름처럼 소용돌이쳤다. 청보라색 비늘이 거세게 몰아치는 회오리 사이에서 반짝였다.
“설마…….”
아니, 방금 분명 고유 회로가 새겨진 아이템은 다른 장인이 함부로 건드릴 수 없다지 않았어?
‘자기는 거기서 제외다 이거야?’
잦아들 줄 모르는 나의 경악과 달리, 물거품은 서서히 가라앉았다. 소란이 사라진 자리, 졸음기 가득한 여인이 나타났으니.
“칼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