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moved to the SSS-class production industry RAW novel - Chapter 69
제69화
18. 차태양과 지옥나무 (2)
“호오, 한눈 팔 여유가 있어?”
내게서 자신에게로 시선을 떼어 내기 위해, 신주가 병정의 발치에서 맹공을 펼쳤다. 앞선 전투로 내 공격이 그리 아프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는 병정은 아래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병정이 한눈을 판 틈을 타 나는 모자 장식에 걸어 두었던 갈고리를 풀었다. 몸이 땅바닥으로 처박히기 전, 빠르게 화살을 메겼다.
“‘돌풍’을 적용.”
시위에서 손을 놓자, 투명한 화살이 돌풍을 이끌고 지면으로 날아갔다, 나를 위로 밀어 올리는 강한 바람에 대충 올려 묶은 머리가 풀어 헤쳐졌다.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 얼굴에 내려앉은 머리카락을 털어 냈다. 동그란 머리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탐색자의 눈이 알려 준 병정의 약점 역시 훤히 보였다.
“딱 먹기 좋은 빨간색이네. 앵커!”
병정의 정수리에 삼각형 모양의 커서가 나타났다. 이를 확인한 뒤, 곧장 응집을 두 번 중첩한 화살을 날렸다. 잔뜩 몸을 불려 거대한 검처럼 보이는 화살이 흰 직선을 그리며 떨어졌다.
– 5번 슬롯 : 응집 (잔여 횟수 2)]
콰광!
응집의 식이 걸린 화살이 병정의 정수리에 내리꽂혔다. 갑작스레 약점을 두들겨 맞은 병정이 크게 휘청였다.
화살과 함께 추락하던 나는 다시금 장난감 병정과 눈이 마주쳤다.
[X﹏X]“방법이 다 있다 했잖습니까.”
별 모양 마커가 그려진 어깨 어림을 가리키자 이를 알아본 신주가 팟 이동해 나를 받았다. 나를 내려다보는 적안에서 즐거움이 뚝뚝 떨어졌다.
“휘유, 역시 끝내준다니까!”
“오버는.”
병정의 발목에 심어둔 마커로 순간이동 한 신주가 나를 내려놓았다.
“그런데 윤가호, 네 스킬 원래 이랬었나?”
“으, 응?”
“아니, 좀 더 뭐랄까. 규모가 작았던 것 같은데.”
예리한 질문에 식은땀이 흘렀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신주 앞에서 새로 얻은 능력을 사용하다니. 그새 익숙해져 자각 없이 스킬을 발동하고 말았다.
내가 뒤통수를 긁적이며 답을 미루자 신주가 내 앞으로 바짝 다가와 얼굴을 붙였다.
“수상해, 아주 수상해!”
“음, 그러니까 말이야…….”
쿵, 쿵!
변명을 내뱉으려던 그때, 시기 좋게 병정이 신주의 관심을 뺏어갔다.
[(╬▔皿▔)╯]씩씩거리며 발을 구른 병정이 제 가슴팍에 그려진 완장을 꾹 눌렀다. 병정의 몸을 이루고 있던 블록 조각들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자폭, 이라기엔 좀 이상하지?’
생각하기 무섭게 블록 더미에서 병정의 얼굴에 달려있던 액정이 공중으로 붕 떠올랐다. 그리고 그를 중심으로 블록들이 휘몰아치듯 모여 무언가의 형태로 재구성되었다.
“저건…….”
“어때? 꽤 재밌는 볼거리지?”
기이할 정도로 큰 포신을 가진 탱크였다.
화제가 돌려진 것은 감사할 일이었으나, 불안한 예감이 스멀스멀 등허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런 직감은 십중팔구 들어맞는 법.
“박신주.”
“엉?”
“이 필드, 정말 B급 맞아?”
“물론 B급…… 같은 A급이지!”
울컥하는 감정을 참지 못하고 신주의 머리를 쥐어박고 말았다. 일부러 울상을 지은 신주가 갑자기 왜 그러냐 칭얼거렸다.
“너는 정말…….”
A급 두 명이 와야 클리어할 수 있는 난이도의 필드에 짐짝이나 다름없을 C급을 매달고 오다니. 내 등급을 잊어버렸거나, 제정신이 아니거나, 둘 중 하나임이 틀림없었다.
내 속을 모름이 분명한 신주가 흘러내린 머리를 손바닥으로 쓸어넘기며 호언장담했다.
“에이, 내가 설마 위험한 곳에 널 데려왔겠어? 우리 가호, 언니만 믿으라구!”
“언니는 무슨…….”
“어이쿠, 조심!”
힐난하는 나를 갑작스레 안아 든 신주가 풀쩍 뒤로 뛰어올랐다. 동시에 방금까지 우리가 서 있던 자리에 분홍색 빔이 날아들었다.
귀여운 빛깔과 다르게 흉악한 위력의 빔에 바닥이 깊숙이 파였다.
[✪ω✪]이어, 병정이었던 탱크가 우리를 향해 포문을 돌렸다.
“음, BPM 좀 올려 볼까?”
“박신주. 진지하게 해.”
대답 대신 씩 웃은 신주가 나를 내려놓고 두어 번 손뼉을 쳤다.
“헤이, 스위티. 하드 모드 개시다!”
신주의 옆에 떠 있던 스피커가 뱅글 제자리에서 돌았다. 회전을 멈추었을 무렵에는 스피커의 개수가 두 개로 늘어 있었다.
“신나는 음악으로 부탁해!”
한 쌍의 스피커가 각기 다른, 하지만 놀라울 정도로 딱 들어맞는 두 곡의 노래를 재생하기 시작했다. 곧장 마수에게로 뛰쳐나가려던 신주가 슬쩍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서포트해 줄 거지?”
“그걸 말이라고.”
“역시 너밖에 없다니까!”
당연한 일이건만 무엇이 그리도 좋은지. 텐션이 올라간 신주가 날 듯이 뛰어갔다. 그에 호응하듯 탱크 전체에 노트가 떠올랐다. 붉은색뿐이었던 조금 전과는 달리 알록달록한 색의 노트가 빠른 속도로 줄어들었다.
“빨간색 위주로 하자.”
다른 색의 노트들에는 특정 색을 친 다음에 타격해야 한다거나, 발로 차야 한다거나 하는 등 복잡한 규칙이 있었다. 대부분 외우고 있었지만, 어설프게 건드리는 것은 신주의 스텝을 꼬이게 하는 일밖에 되지 않았다.
“아주 신나셨네.”
탱크가 병정일 때 미리 심어 두었던 마커 사이를 오가며 공격하는 모습이 꼭 춤을 추는 것처럼 보였다. 박자에 맞추어 팡팡 터지는 이펙트가 눈부셨다.
“요란한 건 취향이 아니지만, 오늘은 어울려 줄게!”
웃음을 흘리며 시위를 강하게 당겼다.
***
“하, 3단 변신이라는 말은 없었잖아.”
사방에 깔린 블록 조각을 피해 벌러덩 드러누웠다. 마력을 바닥까지 닥닥 긁어낸 통에 도무지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빔과 포탄을 마구잡이로 발사하던 탱크가 커다란 사자로 변했을 때는 어찌나 놀랐는지. 첫 변신과는 다르게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하마터면 사자의 입안에 삼켜질 뻔했다.
진작에 바닥을 구르고 있었던 신주가 킬킬대며 들러붙었다.
“변신 안 한다는 말도 안 했잖아.”
설마 자기가 날 위험하게 했겠냐며 덧붙이는 모습이 마냥 밉지는 않아 타박을 멈추었다.
투덜거리긴 했으나 필드와 마수에 대해 훤히 꿰고 있는 신주가 활약한 덕분에 큰 위기 없이 클리어에 성공하기도 했고 말이다.
“내가 아주 많은 걸 계산해서 고른 필드라고.”
“그러셨어요?”
어르고 달래는 듯한 말투에 신주가 심술궂게 내 머리를 헝클였다. 신주는 내가 블록을 집어 던지고 나서야 손을 뗐다.
“우리 길드 사람들은 윤가호 헌터가 이런 사람인 줄 꿈에도 모를걸?”
“내가 뭐.”
“좋다고.”
싱겁게 말한 신주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슬슬 꼬맹이들도 끝났을 것 같은데.”
누운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귀문개방을 사용했다면 원혼 군단이 소환되는 2페이즈를 순식간에 정리했을 것이다.
‘한참 전에 클리어를 마치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대도 이상할 게 없지’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때맞추어 헌터워치가 울렸다. 무사히 공략을 마쳤다는 메시지일 것이다.
태평하게 저녁 메뉴를 생각하며 메시지를 확인하는데 무언가 이상했다.
[- 발신인 : 차태양언니ㅠㅠㅠ 저 사고쳤나 봐요….
나무를 뽑았는데 이상한 게 나왔어요.]
“사고? 나무는 또 무슨…….”
“엉? 뭔데, 뭔데?”
“애들이 나무를 뽑았대. 근데 거기서 이상한 게 나왔고.”
내가 공유한 메시지를 본 신주가 배를 잡고 웃었다.
아니, 지금 이게 웃을 일이 아니잖아. 그냥 필드도 아니고 하필 아흔아홉 갈래의 굴에서…….
“참신한데? 나는 왜 그 나무를 뽑아 볼 생각을 못 했지?”
“뽑았다는 이 나무, 그거겠지? 지옥나무?”
“아님 뭐겠어.”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공략은 마쳤을 테니 입장 제한은 풀렸을 터. 빨리 가봐야겠다. A급이라지만 아이들 아닌가.
“가자, 박신주.”
“정말 마음에 쏙 드는 후배님이란 말야.”
“아무것도 하지 마, 생각하지도 말고.”
“네에~ 네.”
***
49번 굴에 진입하자마자, 스산한 기운이 물씬 끼쳤다.
“암속성 필드는 이게 싫다니까.”
꺼림칙한 기분에 팔을 문지르던 그때, 작은 인영이 내게 달려들었다.
“가호 언니!”
“김 서방, 우리가 얼마나 기다렸다고!”
붉은 달빛을 받아 발간 얼굴을 한 차태양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은 방향에 조성현이 휘적휘적 걸어 나왔다.
“왜 이렇게 늦으셨어요! …악!”
“이게 어른한테 하는 말버릇 좀 봐!”
제멋대로 구는 것은 저 하나면 족하다는 신조를 가진 신주가 냅다 조성현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얼마나 세게 찬 것인지 조성현이 다리를 부여잡고 눈물을 글썽였다.
“장유유서! 뭘 좀 아는 김 서방이구나. 예의는 중요하지.”
신주와 만담을 나누는 도깨비를 뒤로하고, 품에 안긴 차태양에게 물었다.
“차태양 헌터, 사고라니 무슨 일이 있으셨던 겁니까?”
“그…….”
“저쪽 가서 얘기하시죠.”
겨우 고개만 든 조성현이 제가 나온 곳을 눈짓으로 가리켰다. 그를 일으켜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 어떤 사고를 쳤는지 보는 편이 수습하기도 편할 것이다.
불안한 얼굴을 한 차태양이 앞장섰다. 늘 쾌활했던 도깨비도 시무룩해 보였다.
‘도대체 무슨 사고기에 저런 표정인 거지?’
필드 보스가 있었던 공터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질문의 해답을 얻을 수 있었다.
“어떡해요, 언니?”
“휘유, 이건 좀…….”
혹시 잘못 본 것인가 싶어 눈을 비볐지만 변한 것은 없었다.
장정 서넛이 팔을 뻗어도 둘러쌀 수 없을 만큼 커다란 나무가 통째로 뽑힌 자리가 달빛 아래 훤히 드러나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 뜬 시스템 메시지.
[필드, ‘최후의 굴, 푸르가토(?)’에 입장하시겠습니까?– 잔여 시간 : 71:27:32
– 제한 인원 : 5명
※ 입장 후, 필드 등급과 클리어 조건이 공개됩니다.
※ 00:27:32 이내에 입장하지 않을 시, 게이트가 폐쇄됩니다.]
아흔아홉 번째 굴이 드디어 그 모습을 드러냈다.